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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인가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계시나요?
 
불꽃   기사입력  2003/05/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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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5학년때 이뤄진 '유신헌법 찬반선거'의 결과 90%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며 왕의 자리에 등극한 박정희대왕이 내 학창시절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바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이라는 절대왕정시대를 위한 충성심 강요행위였을 것이다.

매일 학교수업이 시작되기 전, 전체 운동장 조례나 교실조례의 시작은 바로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되었다. 교실 한켠에 아침마다 주번이 걸어놓는 태극기를 향해 기립해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우리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함께 외쳐야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국민학교 6학년때 위대한 영도자이신 박정희대통령 각하의 교시에 따라 모든 학생들은 반드시 외워야 한다며 선생님의 우격다짐 속에서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의 전문을 지금껏 대부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외우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나, 그 당시 뜻도 모르고 외워댄 그 어려운 국민교육헌장이 어떤 교육적 효과를 내 인생에 부여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군대식 사고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국기에 대한 맹세'나 '국민교육헌장'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제1권력자에 대한 충성이 동일시 되던 당시에 나의 존재는 오로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존재하여야 한다 세뇌를 받으며 자란 세대가 우리세대이리라.

그때 철저히 세뇌당하였기에 조례때나 극장관람 때, 특별한 행사장에서 태극기 게양이 있거나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장난을 치거나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비애국자'로 보며 애국가가 끝날때까지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며 이 한몸 불태우리라 굳게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늘 시위가 일상화되어 있는 대학의 담안에 살았기에 끝없이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전혀 다른 판단을 강요했었다.

시위가 벌어진 날이면 경찰서로 찾아가 새벽까지 수사관들에게 사정하며 학생들의 방면을 요구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새벽에 들어와 엄마와 얘기 나누시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받은 교육과는 전혀 다른 사회관을 갖고 계신 아버지를 알게 되며 느꼈던 혼란.

유신헌법찬반투표에 대해 학교교사들을 동원, 가가호호 방문해서 반드시 찬성표를 던지도록 강요하던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투표날 철모르는 자식들이 당연히 투표를 하러가서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기권을 하셨다고 했다.

반대표를 던지는 것조차 두렵게 느껴지던 그 시절

농촌에서는 반대표가 나오면 마을에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 공공연히 협박을 하던 그 시절. 국기라는 상징물은 나의 목숨과 인생을 모두 요구하는 절대권력자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3학년때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한 비판의 소리들을 하다가 한친구가 던진말

"우리언니가 그러는데 '너희들은 유신교육세대라 세뇌당해 있는거야'라 말하더라."란 말이 화두가 되어 어쩜 내가 받은 모든 교육들이 세뇌일지 모른다는 회의를 갖기 시작할 때까지 내게 있어서 태극기와 대통령, 국가란 오로지 충성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후, 이런저런 책들과 선배들을 통해 내가 다시 보게 된 사회는 이전에 배워온 사회와는 전혀 다른 사회였고, 역사였다. 그때부터 극장에서 영화상영전에 반드시 보여주던 애국가와 대한뉴스는 경멸의 대상이 되었고, 까닭모를 분노감으로 다들 일어서도 나는 앉아서 버티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애국가와 대한뉴스가 강요하는, 세뇌하는 것이 진정 이 민족과 이 국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절대권력자에 대한 충성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국가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대부분의 강요들이 과연 국가와 민족을 위한 진정된 길인가에 대한 회의는 기존의 모든 교육들을 뒤집어 엎었던 것이다.

그렇게 강요된 애국의 시대를 지나 민주화의 요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전의 교육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를 다시 보게 된다.

▲ 이제 태극기는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의식있는 국민의 바른모습은 제시하지 않고, 억압과 권위로 눌러온 교육과 가진자와 권력자를 성역화하며 사법권 밖에 두고 일반서민들에게만 법의 테두리안에서 머물것을 강요한 권력가들에 의해 '법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로 취급받는 사회가 오고 만 것이 아닌가?

권력에 대한 아부와 충성 이외에 무엇도 제대로 된 국가관, 사회관을 심어주지 못함으로 눈치껏 교통법규도 안지켜도 되고, 눈치껏 세금도 떼먹으면 되고, 재주껏 권력의 힘을 빌어 이익을 얻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 똑똑하다 불리고 잘사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을.

진정 내가 태어난 땅, 내 민족, 내 국가에 대한 사랑이란 결코 '권력'과 동일시 되어서는 안됨에도 내가 태어난 시대에는 '권력'에 대한 충성과 국가, 민족을 혼동시킴으로 일상적 삶속에서 함께 지키고 나누어 가는 사람으로 사는 법을 빼먹었던 게 아닐까?

유시민의원의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과 일제의 잔재'란 주장에 대한 논란을 보며 진정한 애국심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작은 것을 지킴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건전하게 발전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게 진정한 애국의 길이 아닐까?

* 본문은 독자기고입니다. 본문에 대한 네티즌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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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28 [11: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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