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왠지 특수한 대학이다. 입학생들의 ‘과외 한 번 안 했어요.’라는 오래된 거짓말이 먼지처럼 묻어 있는 대학. 구두를 닦으며, 지게를 지며 노동하다 주경야독하여 입학한 사람들의 전설이 조금은 잔재하는 대학. 하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과외를 한 강남권 부유층 학생들이 가장 많이 입학하는 엘리트 대학. 이 대학의 2006년도 총학생회장은 황라열 씨다.
눈을 부릅뜬 인터넷 신문 기자 그런데 황 씨가 아는 체를 하고 말았다. 서울대의 한총련 관련설 그리고 탈퇴 선언, 서울대 총학과 관련된 광고업체와의 로비설 등등. 청문회에서 이 두 가지 사실에 대해 결국 자신의 ‘실수’라고 인정한 황 씨.
이윽고 패널과 학생들은 황 씨의 이력에 대해 자신들의 견해를 제시했다. “거짓말이 아니냐. 거짓말임을 증명할 기자도 있다.”면서. 모 인터넷 신문 기자는 황 씨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고려대의 공식 입장은 황라열 씨의 고대의대 특차 입학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 법대에 다닌다는 한 학생은 “고대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언제부터 시험공부를 했냐?”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서울대 총학생회 게시판에 공개된 청문회 동영상에는 이외에도 허위 사실로 밝혀진 한겨레21 수습 기자 경력과 기독교계 잡지 레베카의 수습 기자 경력, 대마초 판매 경력 등이 언급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보자. 학력이 중요한가? 대마초를 판매한 게 뭐가 그리 나쁜 것인가?
학력 위조한 게 어째서 메인 뉴스인가? 한국이 학력 중심, 우월주의 사회라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이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학력을 위조하고 있다. 특히, 목사들 경우 미국의 어느 대학을 다녔다는 학력들이 참 많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
대중은 신은 믿는 게 아니라 학력을 믿고, 목사 또한 신을 믿는 게 아니라 학력 위조를 믿기 때문. 이 점에서 교인과 일부 목사는 상부상조하고 있다. 즉, 경력 위조는 상호 교감이란 것. 이 점에서 황 씨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것은 어쨌든 상호 교감이다.
황 씨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되기 위해 학력을 위조했든, 말든 그건 사회 이슈가 되기엔 크지 않다. 그가 버클리 음대에도 합격했다는 것 역시 황 씨 이외 그 누구의 삶과도 직접 관련이 없다.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메인 뉴스의 이슈로 등장하기엔 너무 빈약하다.
역대 대통령의 학력 위조 따지고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학을 다닌 적 없다. 하지만 그는 상고를 다녔다. 이후 건국 대학교를 다녔다고 밝혔지만, 그 대학은 한국의 건국 대학이 아닌 중국의 건국 대학. 학교 인증도 못 받은 무늬만 대학이었던 셈. 실제 김대중 씨는 건국대학에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누가 이 사실을 문제 삼았던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더 심했다. 그는 서울대 청강생이었는데,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서울대 졸업생 모임에서는 김영삼 씨를 서울대 졸업생으로 인정하고 있다. 뭐니해도 대통령을 지냈지 않은가. 김영삼 씨의 아들인 김현철 씨는 한성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 F 학점을 받으면서 기이하게도 고려대에 편입했다. 하지만 고려대 총학에서는 당시 이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진보적 언론은 서울대의 사설 탐정? 황 씨를 일약 뉴스 메이커로 뜨게 한 주인공이 조선일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용 대상으로서 황 씨에게 접근했을 뿐이다. 소위 진실을 파헤친 것은 대학 신문 등 소위 진보계열의 언론사. 황 씨가 대다수 학생들은 침묵하는데, 소수 운동권 학생들이 나선다고 억울해 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진실을 어떤 관점에서 파헤쳤냐는 것. 시사저널, 오마이뉴스 등 몇몇 언론사에서 밝혀낸 것은 황 씨의 허위 이력 정도.
아주 대단하다. 대마초가 현행 법률상 위법일 뿐 중독성이 없고 담배의 건강 위해보다 백배 낮다는 게 드러난 상태에서 대마초 판매를 문제 삼다니. 진보는 어디 갔는가? 허위 경력이 문제된다면, 그건 서울대 학생들의 자정 능력에 맡겨야 할 차원이지 메이저 언론사에서 시시콜콜 따질 차원은 아니었다고 본다.
언제부터 일부 진보적 언론사가 서울대 학생들의 사설 탐정 노릇을 자처했나. 사실은 ‘서울대’라는 간판을 통한 대중의 말초신경 건드리기가 아니었을까. 청문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자기 학교의 명성이 떨어진 것에 상당히 분개한 듯한 인상마저 풍겼다.
진보적 언론도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황 씨의 입장을 조금도 옹호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서 써낸 황씨 관련 소설 기사에 관심도 없다. 기사는 읽어봤지만, 느낀 소감은 기자의 자질이 굉장히 뒤떨어졌다는 느낌 정도. 아마도 조선일보 부류의 중앙 일간지 기자는 ‘좀 멍청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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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는 서울대 황라열 총학생회장의 철지난 '한총련 탈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인터뷰까지 싣는 등 이를 최대한 부각시켰다 © 5월 11일자 조선일보 pdf |
그러나 황 씨 기사를 꾸준히 취급한 언론사 역시 반성해야 할 게 있다, ‘황 씨가 서울대 아닌 다른 대학의 총학생회장’이라면 이렇게 관심을 가질까? 아직도 서울대가 위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진보고, 보수고 간에 성숙하려면 참 참 멀었다는 생각만 들 뿐.
황라열이란 이름을 더 이상 꼴 보기 싫다. 아침마다 배달되는 신문에서, 인터넷 신문에서 황 씨 기사를 보다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알고 지내는 선배 중 황 씨처럼 해병대를 나온 사람이 있는데, 그는 현재 장애인 이동권 연대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경석 씨다. 황 씨의 이력 중 그나마 명확하다고 밝혀진 건 해병대 출신. 하지만 박경석 씨는 자신이 해병대 출신이라는 걸 어디가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건 자랑이 아니기 때문.
황 씨가 허위 경력 파문으로 총학생회장에서 탄핵되든 말든 그가 배울 점은 "말조심. 잘난 체 하지 마라. 빠징코 회사에서 일하는 주제에 사회운동을 안다고 까불지 마라". 이 정도가 아닐련지. 어차피 운동권이든, 반운동권이든 대학 총학생회장 된 후 졸업하고 나서 노동자, 민중 착취하는데 앞장 선 사람은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황 씨의 알몸을 공개하는 데 그만 신경 쓰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