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에서 집권세력의 참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작년 4·30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은 0:23으로 전멸했다. 이어 10:26 재·보선에서도 0:4로 영패했다. 이것은 국민이 집권세력에 보낸 엄중한 경고였다. 그럼에도 집권세력은 권력중독에 빠졌는지 그 참담한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말장난으로 국민을 희롱해 왔다. 많은 국민들이 인내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벼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이것은 정치적 탄핵이다. 그런데 집권세력은 아직도 그 의미의 중대성을 깨닫지 못하는지 허튼 소리나 일삼는다.
대통령 노무현의 탄생은 정치적 대변혁이었다. 상고 졸업생인 그는 학벌사회인 이 나라에서 비주류였다. 그의 부적절한 언변을 트집잡아 수구세력이 포진했던 국회에서 그를 탄핵했다. 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나와 그를 구출해 냈다. 그것도 모자라 총선거에서 표를 모아 급조된 정당인 열린우리당에 과반수의 의석을 안겨줬다. 이것은 구시대의 적폐를 혁파하여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를 교정하라는 역사적 소명이었다.
그런데 국민적 여망을 거역하고 실체도 불분명한 '실용'이니 '쇄신'이니 하며 시대정신을 호도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인사발탁에서도 그 같은 자세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수구세력을 대거 중요하자 불투명한 재산형성이 줄줄이 말썽을 빚곤 했다. 그럴 때마다 과거에는 관행이었는데 왜 귀찮게 시비를 거느냐는 투로 나왔다. 급기야는 한나라당에게 권력을 통째로 넘기겠다며 '대연정'이란 제안을 내놓았다. 여기서 많은 국민들은 집권세력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돌아선다.
집권세력은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고 자임하는 모양이다. 그 중에 민주인사도 적지 않지만 70, 80년대 정말 투쟁현장에 있었나 싶은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학내시위에 몇 차례 가담했다는 이유로 386이니 뭐니 하며 훈장처럼 자랑한다. 자신의 무지, 무능, 무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이가 위라면 수구로 포장해서 매도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도덕성을 말하면 엉뚱하게도 개혁에 딴죽을 걸지 말라는 말로 응답한다. '싸가지'란 말이 그냥 나왔을 리 없다.
세계적 저금리로 부동산 투기는 지구적 현상이다. 하지만 서울강남의 아파트 값은 고삐 풀린 미친 말 날뛰는 꼴이다. 그것을 잡으려면 금리인상을 포함한 다각적인 정책대응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세금 한번 내보면 알 거라는 식이다. 투기꾼만 잡으면 됐지 왜 수 십 년 동안 성실하게 일해 집 한 채 지닌 무고한 사람들도 세금벼락을 맞아야 하는가? 징벌적 세제론을 내뱉으며 시장과 싸우는 몸부림에 많은 국민들은 염증을 느꼈을 것이다.
IMF 사태가 양극화의 주범이다. 집단도산에 따라 대량실업이 발생했다. 외국자본의 개방압력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요하여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거대자본·외국자본에 구멍가게가 몰살당하고 농업기반이 무너진다. 신자유주의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판에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한미 FTA를 맺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교육도 산업이라며 신자유주의를 설파한다. 이것이 좌파 신자유주의의 정체라면 국민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집권세력의 참패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진보진영의 지형이 협소한데 그것을 더 좁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에 우호적이던 세력이 지지를 철회하면서 그 근접점에 있는 민주노동당에게도 표를 주지 않았다. 최악을 선택해서라도 응징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으로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다.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에 사표(死票)를 던지는 심정으로 말이다. 국민의 교육배경·의식수준이 집권세력보다 못할 리 없다. 편견이 낳은 오만과 독선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민심이반의 의미를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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