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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방송은 FTA 무풍지대 아니다
[김영호 칼럼] 외국 투기자본 들어오면 방송 공익성-공공성 그냥 무너져
 
김영호   기사입력  2006/05/02 [19:35]

 미국의 통상정책은 미국의 상품-자본-용역-인력의 이동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철폐하여 국익을 극대화한다는 국가발전전략에 근거한다. 그러니 미국이 한국과의 FTA를 어떤 모습으로 이끌어낼지는 예측이 가능하다. 지난 20년 이상 다자간 협상, 양자간 협상을 통해 미국이 개방을 요구했지만 아직도 개방단계가 낮은 모든 분야를 전면개방한다는 전략으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방송분야는 결코 무풍지대일 수 없다.

 미국은 한국이 '1986년 7월 301조 일관타결', '1995년 1월 WTO(세계무역기구)체제 출범', '1996년 12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1997년 11월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도입'을 거쳤지만 아직 개방단계가 낮은 분야가 많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FTA를 통해 무역-투자장벽을 철폐함으로써 전면개방을 성취한다는 전략을 깔고 있다. 미국과의 FTA가 체결된다면 관련법령의 재정비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사회구조-산업구조가 재편되고 이어서 한국사회에 일대변혁이 일어난다. 생활양식마저 바꾸어 놓을 변혁이 예고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요식행위로 공청회를 한 차례 가졌다. 그나마 농민의 반대로 무산되어 버렸다. 전국민이 이해당사자인 국가적 대사라면 분야별로 체계적인 공청회를 가져 여론수렴을 해야 한다. 그런데 관변학자나 불러놓고 정부의 홍보자료를 뒤적거리다 일회성에 그쳤다. 그렇다고 언론도 덩달아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이 FTA가 가져올 의미의 중대성-중요성을 알리지 않으니 대변혁을 앞두고도 나라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기만 한다. 

 공청회(public hearing)는 그야말로 널리 듣는 모임이다. 지난 3월 14일 USTR(미국무역대표부)이 워싱턴에서 주최한 공청회를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관련단체-업계에서 나와 폭넓은 의견을 개진하고 정부에 갖가지 주문을 당부했다. 서비스 분야만 보더라도 미디어, 방송, 통신, 법률, 금융, 회계, 컴퓨터 등 전분야에서 각종 규제를 철폐하라는 소리가 높았다. 외국영상물을 규제하는 쿼터제를 없애라, 외국방송광고의 재송출을 제한하는 규제를 폐지하라는 따위가 쏟아졌다.

 로브 포트만 USTR 대표가 지난 2월 2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양국정부는 지난 6-8개월간 집중적인 협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같은 날 상-하양원 의장에게 보낸 공한에서 협상방향의 대강을 밝혔다. 그렇다면 양국 사이에 깊은 논의가 이뤄져 협정의 골격이 세워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 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경제-국민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사인임에도 기밀에 붙이고 있는 것이다. 

 시청각 분야만 하더라도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협상에 임할지 밝힌 바 없다. 그런데 혹자는 방송은 제외되었다니 하는 따위의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고 있다. 포트만 대표는 분명히 밝혔다. 소유제한을 철폐하겠다고 말이다. 이것은 방송사의 소유지분과 직결되는 문제다. 미국이 소유제한을 규정한 방송법을 겨냥했다고 보아야 한다. 방송법은 케이블 TV 외국인 소유한도를 49%로 규정하고 있다. 또 위성방송은 33%로 제한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도 민간방송은 소유지분을 30%로 제한하고 있다. 소유지분제한 철폐는 곧 바로 방송개방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상파 방송이 케이블 TV의 PP(program provider)로 전락한 현실에서 그 대주주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외국자본이 케이블 TV와 위성방송이 장악한다면 각종 규제를 철폐하라고 나올 것이다. 이 경우 지상파 방송이라는 이유로 꼭 케이블을 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면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 축소는 불가피하다. 또 지상파 민간방송이 외국자본에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방송위원회는 해마다 방송프로그램 편성비율을 개정해 고시한다. 그 내용은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은 등은 국산작품을 몇% 이상 방송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것을 외국제작물에 대한 차별대우로 보고 철폐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 동안 미국은 통상압력을 통해 그 같은 요구를 해왔다. 미국제작물이 인기가 없어 편성비율이 낮으면 오히려 반대로 나올 것이다. 미국영상물 편성비율을 의무화하라고 말이다.  

 미국은 광고시장을 개방하라는 통상압력을 집요하게 가해 왔다. 특히 방송광고공사가 공격목표이다. 방송광고공사가 정부투자기업이라는 점에서 FTA 협상에서는 민영화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정부투자기업이 방송광고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제한한다는 논리다. 결국 방송광고공사는 민영화의 과정을 거쳐 외국자본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을 나갈 가능성이 높다.

 1986년 7월 담배시장 개방은 단순히 양담배 시판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이듬해 담배-인삼전매사업을 영위하던 전매청이 미국의 통상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민영화의 과정을 거쳐 담배인삼공사로 개편됐다. 정부기관이 독점사업을 영위하면 공정한 경쟁을 제한한다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던 것이다. 그 담배인삼공사에 외국인 자본이 허용되고 KT&G로 개편된 지금 외국투기자본의 사냥감으로 전락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방송광고공사는 독점기업으로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민영화를 거쳐 외국자본이 참여한다면 방송의 공익성-공공성을 지키기 어렵게 된다. 광고수주를 위한 시청률 경쟁이 가열됨으로써 오락화-선정화가 더 심해질 것이다. 신문처럼 광고수주를 위해 광고회사에 굽실거려야 한다. 다시 말해 광고주가 방송내용을 통제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신문이 광고주인 재벌을 비판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광고주의 이익을 위해 경제정책도 재벌위주로 오도하는 데 앞장설 수 있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면서 방송과 통신의 영역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미 외국자본이 통신분야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외국자본이 통신을 통해 간접적으로 방송을 장악할 여지가 열려있는 것이다. 미국은 디지털화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개방대상으로 삼고 있다. 통상정책책임자들이 방송의 철학과 가치를 알 리 없다. 자본논리-시장논리에 매몰된 그들이 협상을 잘못하면 방송의 공공성-공익성은 사라지고 만다. PD들이 나서 미국자본이 방송을 장악하는 사태를 막는데 앞장서야 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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