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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예술에 대한 그리움, 최병수를 읽다
[책동네] 최병수가 말하고 김진송이 지은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김소연   기사입력  2006/04/29 [02:37]
얼마전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를 읽었습니다. ‘최병수가 말하고 김진송이 지은’ 이 책은 일종의 인터뷰집이기도 하고 또 소략한 평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최병수가 말하고 김진송이 지은’ 이 책은 일종의 인터뷰집이기도 하고 또 소략한 평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 현문서가, 2006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최병수는 1987년 6월 연대 학생회관에 걸려있던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걸개그림을 그린 이 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뭄에 타는 논바닥처럼 갈라진 땅을 딛고 서 있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 위로 사방으로 뻗어있는 거대한 확성기와 노동자들의 외침을 그리고 있는 <노동해방도>를 그린 이 입니다. 
 
걸개그림을 시작으로 그의 작업은 항상 우리 사회의 격렬한 싸움의 ‘현장’에서 계속 되어왔습니다. 그가 그린 <장산곶매>는 <자 우리 손을 잡자>와 같은 공연의 배경막이 되기도 하고 문익환 목사 장례식에서는 추모의 그림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장미술인’으로서 그의 작업은 항상 예술의 경계 밖에서 이루어졌지만 또한 그의 작업은 예술의 의미와 양상을 확장시킴으로써 역동적이고 풍성한 예술로 수렴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첫 작업이라 할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시위도중 이한열 군이 쓰러진 다음날 신문에 실린 보도 사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문에서 처음 사진을 보는 순간 그는 ‘피가 거꾸로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절부절 못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기사를 읽어내려가다던 그는 학생들이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문구를 적어 가슴에 달고다닌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 사진을 판화로 옮겨서 그 밑에다가 ‘한열이를 살려내라!’ 그렇게 파넣고 천에다 찍어서 가슴에다 붙이면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든 거야.
 
그런데 <한열이를 살려내라!>의 발상이 막 떠오른 바로 다음 순간 최병수에게 떠오른 생각은 초상권이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지.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 사진을 써도 되는 건지 걱정이 들었지. 초상권이라는 게 있잖아? 이한열의 초상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또 한열이를 끌어안고 있는 애는 어떻게 되지? 이런 걸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되나? 만일 한열이가 죽었다면 죽은 사람을 그렇게 그려도 되는 건가? 그리고 한열이를 그린다면 부모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또 한열이의 상태가 궁금하기도 해서 연대세브란스 병원으로 갔던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한열이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한 학생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학생들은 판화를 찍을 천을 사러가고 그는 판화를 새기고 학생들은 천을 자르고 프레스기가 있는 선배의 화실로 옮겨 그가 잉크를 칠하면 선배가 프레스기를 돌려서 찍고 판화가 나오면 학생들은 노란색과 붉은 색 아크릴로 바탕을 칠하고 그렇게 밤새 작업을 해서 다음 날 오전 열 시까지 모두 180장의 판화를 완성하게 됩니다. 
   

▲   <한열이를 살려내라!>                  © 최병수
 
두 세시간 잠깐 눈을 붙이고 연세대에 나갔던 그는 백양로를 오르면서 민가협 어머니들이 그와 학생들이 함께 밤새 만든 그 판화를 가슴에 붙이고 구호를 외치면서 나오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더라고 밤새도록 찍은 게 벌써 가슴에 붙여져 나오니까 그 느낌이 더 강렬했지.
 
그리고 이 판화는 다시 대형 걸개그림이 됩니다. 한열이를 크게 그리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나오고 사진을 그리자 판화를 그대로 그리자 의견이 분분한 중에 그는 사진처럼 그려야 한다면 ‘실력도 달리고’ 판화를 놓고 먹줄을 튕겨서 도면대로 그리면 제작 시간도 훨씬 단축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우겨서’ 판화를 그대로 크게 그리는 것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학생들 여렷이 달라붙어 24시간 만에 그림을 완성하고 그림을 들고 영등포에 있던 성문밖 교회에 가서 구로공단 미싱사들이 줄을 걸 수 있도록 꿰매고 그래서 드디어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완성됩니다.
 
한 장의 보도사진이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작품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대로가 전장의 전략회의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걸개그림을 기획하는 장면에서 사진으로 갈지 판화로 갈지를 논의하는 부분은 아슬아슬함마저 느껴졌는데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던지는 슬픔과 분노는 바로 판화의 질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위암 말기를 예술혼으로 극복, 더욱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최병수작가     ©대자보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그의 작업은 전장의 전략회의 같습니다. 그의 작업은 항상 급박하게 전개되는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순간 순간의 선택과 판단은 얼핏 제한된 조건에서의 차선 혹은 차악이거나 우연의 연속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핵심을 정면으로 겨누는 이미지”를 길어오리는 그의 작업이 보여주듯이 “누구도 도무지 피해갈 수 없는 정서와 감정과 의식의 밑바닥을 훑어 올리는 표현”과 명쾌하고 분명한 이미지의 효과들로 “그가 미술의 언어와 문법을 간단히 틀어쥐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는 <얼음펭귄>이나 새만금 갯벌에 세워진 장뚱어 솟대 그리고 ‘북한산 살리기 정진도량’에 세워졌던 설치물 <NO TNNEL> 등은 작업의 과정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이면서 그 결과는 다시 현실의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 이라크전의 비참함을 표현한 <너의 몸이 꽃이 되어>     © 최병수

이라크전이 발발하고 폭력으로 온 몸이 찢긴 어린 주검에서 꽃송이가 날려 폐허를 덮고 있는 <너의 몸이 꽃이 되어>나 작살을 꽂은 채 검은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고래의 등에 한가롭게 서 있는 동물들을 그린 <우리는 당신들을 떠난다> 등 근작에서는 분노가 뭉쳐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슬픔이 다가옵니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는 목수 최병수가 화가 최병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 목수 김진송이 화가 최병수에게 말걸다로 읽었더랬습니다.) 친구의 벽화작업에 사다리를 짜주었다가 경찰의 취조과정에서 얼껼에 화가가 되어버린 그리고 이후 정말 누구보다 치열한 미술가로 살아온 최병수의 이야기는 예술이 얼마나 뜨거울 수 있는가 얼마나 격렬한 것인가를 환기시켜 줍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 필자는 <컬처뉴스> 편집장이며, 연극평론가입니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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