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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 정몽구 회장 구속의 의미
[비나리의 초록공명] 대형 경제위기에 대한 관리능력 키우는 계기돼야
 
우석훈   기사입력  2006/04/28 [14:16]
정몽구 회장의 구속과 한국경제의 향방
 
정몽구 회장의 구속을 보면서 그야말로 만세지감이다. 예전에 현대에 근무하던 시절 MK 회장이 만들어놓은 조그만 연구소에서 환경이라는 이름을 입에 달면서 살았던 시절에 나 같은 피래미도 MK계열로 분류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짧은 기간이지만 제일 많은 시절에 58개인가 되었던 계열사의 환경관리의 최전선에서 뭔가 했던 기억들이 아주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울산의 벙커 C유를 LNG로 바꾸기 위해서 투자계획을 세우고 소위 '품의'를 받아내던 시절에 몇 달을 밤을 새웠어도 약간은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작은 기쁨이 있기도 했다. 
 
IMF 이후에 재벌시스템에 대해서 사회적 지적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한 때는 세계은행에서 '경선적 시장(contestible market)'이라고 한국 경제가 저렇게 황당한 일을 하면서도 왜 망하지 않고 버티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특수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정책을 그냥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방적으로 경제 시스템이 저런 상황에서도 부패하지 않는 것은 수출 금융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경선(contest)이라는 특수 시스템을 운용하게 되었기 때문에 소위 아시아의 신흥개발국(NICs) 같은데 한국이 끼여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차피 IMF 이전의 개념이기 때문에, 세계화 국면에서 이러한 경선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한국 경제에 적용하지는 않는다.
 
IMF 이후에 삼성과 현대의 기업 진화의 방식이 조금 바뀌었는데, 두 개의 회사 전부 다 90년대 후반에 세계화라는 특별한 조건을 어떻게 견뎌낼 것이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됐다. 이 때 말하는 세계화는 금융의 세계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특수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전제되었던 실물경제의 조건 즉 높아지는 R&D 비용과 세계화된 과점 구조에서 몸집을 늘리기 위해서 어떻게 자산을 동원하고 구축할 것인가에 관한 얘기들이다.
 
삼성은 일부 기술에서 결과적으로 선도력을 가지게 되었고, 수많은 우연들 속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셈이다. 물론 도요타의 분석에서 사용했던 네트워크 분석틀 같은 것을 삼성에 적용하면 삼성이 만들고 있는 네트워크는 그렇게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다. 기술과 디자인 능력에 의해서 모든 것이 만들어졌는가라는 관점을 들이대면 할 말이 여러 개가 있기는 할 것 같다. 어쨌든 삼성은 95년 이후의 세계 경제의 패턴이라는 흐름에 대체적으로 따르기는 한 것 같다.
 
현대의 경우는 수직계열화 쪽으로 더 많은 힘을 기울였는데, 마찬가지 방식을 채택한 일본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J-Firm 모델에서의 분산형 의사결정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수직계열과 동시에 중앙형 의사결정이라는 A-Firm, 미국 기업들의 중앙형 의사결정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건 단순히 전근대적이냐 그렇지 않으냐는 민주주의 담론만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그런 중앙형 의사결정 체계를 좀 더 강하게 고수한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자동차에 결정적 위기가 언제 올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점쳐보고 있는 중인데, 나는 2006년 가을에 현대그룹 자체에 위기가 올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 위기가 과연 부풀어질대로 부풀어진 한국의 버블과 미국 경제의 위기, 그리고 보통은 일본 우정국 개편 이후의 국제 외환위기라고 부르는 1경원대의 엔화 자금의 흐름과 결합되면서 터질 것인가 터지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중이다.
 
한국 경제에 위기가 깊은가라고 하면 깊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걸 조금 더 분석하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와 같은 큰 얘기보다는 조금 더 작은 기업들의 관계를 볼 수밖에 없는데, 현대 같은 경우가 사실 상당히 위험한 상태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위기의 돌발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금융경제의 흐름과 조건 같은 걸 좀 더 심각하게 봐야하는데, 불행히도 난 금융경제에 대해서 그렇게 매일매일 조건을 점검하면서 자세하게 보지는 않는, 금융 전문가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내 말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대에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첫 번째 조짐에 대한 생각은 포스코의 위기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포스코의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제철산업의 현황 같은 걸 조금 볼 필요가 있는데, 포스코가 고부가가치강으로 가는 속도보다는 중국의 양산 증가 속도가 더 빨랐고, 그래서 크게 소문은 나고 있지는 않지만 포스코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누적되는 중이다.
 
자동차 산업 중에서 강판까지 '내부화'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은 내가 알고 있기로는 현대 자동차가 유일하다. 한보철강을 현대제철이 인수했었는데, 이 자리에 고로라고 불리는 제철을 만들 계획이다. 구 인천제철이 대체적으로 5조원 정도가 되고, 쓸만한 첫 번째 생산품이 - 자동차에서 사용되는 철강은 상당히 고급 강판류이기 때문에 전기로에서는 생산하지 못하고 고로에서만 생산된다 - 생산되기까지는 대체적으로 10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인 예측이다.
 
이 현대제철의 자금은 산업은행을 통해서 지원되는데, 이것에 대해서 지급보증을 서는 회사가 바로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이다. 그러니까 한보철강 자리에 새로 들어서는 철강을 놓고 현대자동차의 지급보증을 통해서 돈이 장기간 묶여 있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산업은행이 현대제철을 보고 돈을 마련해서 융자해주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여기에 새로운 조건으로 들어오는 것이 세계 자동차업계의 대전환인데, 이미 작년부터 GM과 토요타의 일전이 시작되었는데, 대단히 빠른 속도로 토요타가 승기를 잡고 하이브리드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를 자동차와 관련된 사람들은 주목해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GM이 넘어갈거냐 말거냐라는 걸 봐야 할 정도로 토요타의 약진이 무서운데, 이 약진이 의미하는 바는 하이브리드 출시에 자동차 회사들의 장기적 승운이 걸려있다는 걸 의미한다.

현대자동차도 모르는 척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엄청나게 R&D에 돈을 쏟아붓는 회사는 아니라서 대개는 지켜보다가 이기는 편 쪽에 붙는 'wait and see' 전략을 사용하는데, 어차피 돈을 끌어올 규모가 도요타나 GM 같은 곳과는 비교되지 않는 아직은 '2장'에 있는 회사라서 그렇다.
 
기술만 놓고 보면 현대도 GM 쪽에 더 기울어져 있었고, 작년 일산에서 벌어진 자동차 박람회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정몽구 회장이 전격적으로 손을 잡고 정부에서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던 기술이 GM 방식이다. 양쪽 다 조금씩 기술에 분산투자한 경우인데 GM 방식에 조금 더 가까왔다. 하이브리드 스펙이 어느 쪽 흐름으로 갈 것인가를 좀 봐야하기는 하지만, 후발 주자가 시장의 표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금투입이 필요하기는 하다. 물론 그 대신에 손실비용이 줄어드니까 총비용 자체는 줄어들 수 있어 그런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현대자동차 입장으로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올해 후반부터는 사운을 건 투자가 한 번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일텐데, 자금의 상당 부분은 결국 발생하게 될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구 한보철강)에 묶이게 된다.
 
물론 실제로 실물에서 이런 위기가 벌어져서 제철과 자동차 사이에 뭔가 복잡한 일이 현실로 벌어지는 것은 5년이나 더 지나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시장에서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GM의 위기도 그렇다. 정말 GM이 경영손실이 엄청나게 크고 기술이 없어서 까닥까닥하느냐 하면 그보다는 시장에서 앞으로는 이렇게 될 것이다는 예측이 나오면 그 순간에 경영위기가 벌어진다.
 
간단한 작업가설이기는 하지만 금융위기가 내재적 불안과 함께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것이 2006년 후반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이 순간에 도화선이 뭐가 될 것인가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데, 현재로서는 당진발 폭발이 가장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기업과 사회적 관계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만으로 경제나 기업이 움직이는 현상 같은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좀 어렵기는 하다.
 
대체적으로 현재의 경제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불만들이 총괄 관리 같은 개념이 거의 없고, 경제이론으로는 클린턴 시절의 신경제 이론에 너무 매혹되어 있는 것 같다. 마치 YS 시절의 경제팀과 케인즈 이론에 너무 매혹되어서 "펀더맨털은 아직 튼튼하다"는 헛소리만 마지막까지 하고 있던 것과 비슷하다.
 
지금까지도 현 경제팀의 가장 황당한 주장은 골프장 지으면 외화도 벌고 국내 경기도 진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순간의 기억이다. 아마 경제학자로서 내 평생 잊지 못할 최대한의 코메디일 것이고, 혹시나 내가 언젠가 제대로 된 경제학 교과서를 한 번 쓰게 된다면 반드시 박스처리해서 들어갈만한 경제관료의 바보 같은 주장 1번 정도 될 것일 것 같다.
 
현 경제팀은 냉탕에서 온탕을 오가듯 하는데,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루즈벨트 시절과 클린턴 시절을 오가듯 한다. 어떤 때에는 루즈벨트팀보다 더 강성인 케인즈 우파적 발상을 하다가 어떤 때에는 "바보야, 중요한 것은 경제라니까"라는 말을 만발하며 가장 강력한 신경제 주장을 하던 클린턴 시절과 비슷하게 왔다갔다 한다.
 
정몽구 회장이 구속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찬성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총수 일가의 불법적인 부의 이전과 이를 지탱하기 위해서 생겨난 중앙형 의사결정 체계는 극복하기 싫더라도 한국 경제에서 언젠가는 넘어가야 할 일이다. 물론 총수체계가 사라지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그렇지는 않다. 포스코와 같은 매각된 기업에서 보듯이 주인이 사라진 기업이 그 뒤에 보이는 '주주 자본주의'의 또 다른 폐해가 역시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새로운 사회와 대형 기업 사이의 긴장 관계의 문제로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해서 풀 문제이지 이게 무섭다고 언제까지나 1인형 결정체계를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박정희 경제시스템이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적 독재에도 불구하고 '경선(contest)'이라는 특별한 시스템에 의해서 효율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우리나라가 뒤로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면에서는 박정희 시절의 경제적 기여에 대한 논의를 약간 퇴행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옳았든 혹은 옳지 않았든 뒤로 가지지도 않고, 그 시절의 시스템이 다시 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이 구속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의미상으로는 앞으로는 순환형 출자의 한 고리의 빈구멍을 찾아서 불법으로 기업을 상속할 수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정상적인 자본주의의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한 걸음 나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만큼 미국처럼 '공정거래'라는 개념이 더 중요해진다는 또 다른 사회적 숙제를 떠안게 된 것이기도 하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정몽구 회장이 모든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더라도 재벌시스템을 다시 복원시켜서 현대제철이 현대자동차에 강판을 공급한다는 이유로 한보철강을 미래를 생각하며 인수하고 결국은 자동차가 고로에 투자하는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이미 진행형이지만 이런 황당한 일은 정상적인 시스템이라면 벌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공정거래란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기업에 너무 관대하다. 재벌의 힘으로 커진 몇 개의 회사들에 대해서 약간의 긴장감을 형성하는 정도가 기업과 사회의 관계의 전부인데, 그러다 보니까 공정거래 혹은 반독점에 관한 관계형성이 아직도 너무 늦다. 하긴 너무 황당하게 대선 때 후보에게 직접 돈을 주고 거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공정거래의 시각에 대한 정상적인 사회와 기업 사이의 긴장관계를 생각하는 일이 너무 앞서가는 일 같기도 하다.
 
IMF 때 엄청나게 겪었던 경제위기도 큰 시각에서 따져보면 자연스럽게 벌어져야 할 크고 작은 다양한 조정과정을 무시하고 정부가 OECD 가입을 명분으로 지나치게 강제조정하고, 끌고 나갔던 경우와 상관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에 대해서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고 하는 현 정부에서는 부동산 버블을 제외하면 대규모로 뭔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맞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잠복된 대형위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현대와 포스코 같은 큰 기업들의 관계의 연결 속에서 또 다른 위기가 잠복되어 있기는 한 것 같다.
 
어쨌든 정몽구 회장의 구속으로 그야말로 새로운 시기가 열리기는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현 경제시스템 내에 대형 경제위기가 가능성에 대해서 점검하고 생각해보는 작은 전담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는 하는데, 정치는 경제에 대해서 언제나 청사진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둡고 음습한 내용들을 다루게 될 경제위기팀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가끔 IMF 경제위기를 통해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았는가라는 생각을 해보면, 위기의 예측과 관리 시스템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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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4/28 [14: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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