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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기자의 문화일보기사를 반박하며
도올의 '경망성과 판단력의 미숙함'을 논함ba.info/css.html'>
 
108번뇌   기사입력  2002/12/21 [12:16]
{IMAGE1_LEFT}도올 기자님께
'지배자를 앞서간  민중이 승리'라는 제하의 글을 읽고 몇가지 느낀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올기자께서 노무현후보의 인터뷰기사를 쓰기 위해 여의도로 명륜동으로 발로 뛰어 다닌, 특종을 하기위한 기자정신은 높이 살만합니다. 그러나 글내용을 보니 도올기자의 편협한 생각과 판단에 몇가지 문제가 있어 감히 지적코자 합니다.

[관련기사] 김용옥, <도올 김용옥기자의 현장속으로>지배자를 앞서간 민중이 승리(문화일보 12. 21)

첫째, 정몽준의 노무현지지 철회선언은 정몽준의 속마음을 들어 가보지 않고선 누구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렇게 봅니다. 재벌의아들로 태어나 인생의 쓴맛이라곤 한번도 못느껴본 정몽준의 즉흥적인 자기 멋대로 식의 사고방식을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비록 노무현의 실언이 빌미를 주었고 불씨가 되었다 하더라도 정몽준의 아메바적인 반응은 유치할 뿐만 아니라, 도올기자님의 말을 빌어서 평가한다면 극히 '사적이고 경망스러운 판단'이었습니다.  더구나 국민통합21 몇몇 측근들과 그것도 술자리에서 '지지철회'를 결정한 것은, 국민은 물론 자기 주변의 당직자들도 안중에 없는 오만이었습니다. 상도의 조차 없는 장사꾼이 주먹구구 셈법을 가지고 몽니를 부렸습니다.

그런데 도올기자께서는 "정몽준에게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썼습니다. 정몽준은 20일 기자회견서도 스스로 "사려깊지 못했다"고 자인 했습니다. 도올기자님 ! 아무리 글을 쓴 시점이 저와는 달랐다고 하여도, 도올답지 못한 '돌머리'판단은 저에게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노후보의 경망성과 판단력의 미숙함'이라고 판단했다고 하셨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정몽준의 지지철회'와 관련된 노후보의 태도를 이렇게 봅니다.

구태여 노무현의 변명을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무현은 공조과정에서  정몽준과 '나눠먹기 밀약'은 없었다는 당당함과, 차후로도  '나눠먹기 밀약'은 않겠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노무현은 도박사와 승부사가 아니었기에 '정몽준의 지지철회'를 자초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과 정몽준 중에 누가 더 경망스럽습니까? 슬쩍 한나라당에 다리를 걸친 후안무치한 장사꾼 정씨 의 속셈을 도올기자께서는 정녕 모르시고 이런 글을 썼다는 것입니까?

 셋째, 도올기자께서  찬사를 보낸 친구인 한나라당 이부영의 정확한(?) 세가지 분석은 하나는 맞지만 두개는 옳지 않습니다 .

이번 대선서 드러난 현상은 여러 가지를 꼽을수 있지만, "세대간의 대결, 호남권의 결집" 운운한 이부영이나 그 말을 정확한 분석이라고 동의하는 도올기자의 생각은 숲은 못보고 나무만 본 단견입니다.

물론 세대간의 대결이나 호남권의 결집도 드러난 사실임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도올기자가 쓰신 것처럼 "민중이라는 어떤 거대한 추상체의 존엄한 명령과도 같은 속삭임이었다"라고 화려한 수사를 붙일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이번 대선의 핵심은 단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갈구하는 선남선녀,남여노소들이 함께 외친 우렁찬 외침이었던 겄입니다. 그런데  호남결집 운운하며 패거리정치를 일삼아온 한나라당의 일원인 이부영은 이미 낡은 정치인입니다. 도올기자는 그런 이부영을 묘사하기를 "목놓아 외치는 이의원의 선량한 두눈가에 눈물이 글썽"운운하면서 역겨운 형용사를 주절주절 늘어 놓으십니까?  과거에 이부영이가 민주화운동을 했던 안했던 그는 한나라당의 일원으로서 그의 업은 결코 씻을수 없습니다.

변명같지만 도올기자의 말꼬리를 물려고 이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도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볼려고하는 보통사람입니다.

  끝으로 이번 대선은 오프라인 매체인 조선,중앙,동아의 제왕적 사주와 그의 하수인들인 기자들의 패배입니다. 18일밤 '정몽준 지지철회'이후 인터넷에 들어가 보신 분이라면 누구든지 느꼈을 것입니다. 수많은 네티즌들의 예리한 글들과 촌철살인하는 분석력은 지금도 얼마든지 볼수 있으니 들어 가보십시오.
그들이 이 세상을 쳐다보고 분석해내는 글은 이미 조중동등 오프라인 매체들의 기사를 질적으로 능가합니다. 왜냐구요. 그들은 단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황제를 방불케 하는 신문사주와 기자, 그들의 주종적 관계는 사실을 비틀고, 일그러진 눈으로 기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알아서 먼저 기는 노예근성을 가진 귀족기자들이 어찌 보통 시민들의 무혈혁명을 간파할수 있겠습니까?

  이만 줄이겠습니다. 무례했다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視之不見이요 ,聽之不聞이요,搏之不得이라 (도덕경14장중에서)


위 도덕경 14장에 대한 해석이 구구해서 필자가 원문의 뜻을 다시 보내주셨습니다-편집자주.

視之不見이요 ,聽之不聞이요,搏之不得이라 (도덕경14장중에서)
A 視之不見  B 聽之不聞  C 搏之不得은  A.보아도 보이지 않고,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B. 들어도 들리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C.만져도 만져지지 않는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잡으려 해도 얻지 못한다로 해석 해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다시피 도덕경 14장 첫머리의 전체적 의미는 "도는 아무런 형체와 모습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으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경숙이 쓴 '노자를 웃긴 남자'는 당시 도올이 TV강의때 언론에서 흥밋거리로 과대 포장된 감이 없쟎아 있습니다. 그때 중앙일보서 연재하다가 중도에 흐지부지 되어버렸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경숙의 도덕경 해석은 도올의 100분의0.1도 못따라 갈뿐 아니라, 한문 해석을 보면 뒤죽박죽, 횡설수설 그 자체입니다. 학자로서의 도올은 -다방면의 박식한 지식에만 한정해서 본다면- 내노라 하는어떤 학자들 보다  성실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참고용으로 영문번역도 곁들인다면
Look for it, it cannot be seen
Listen for it, it cannot be heard
Search for it, it cannot be gotten



* 본문은 독자기고입니다. 본문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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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2/21 [12: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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