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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희 성추문 한방에 날린 이해찬 ‘묻지마 골프'
3.1절 총리골프는 집권당의 황폐화된 도덕의식 적나라하게 노출
 
김기대   기사입력  2006/03/06 [12:37]
3.1절 기념일에 이해찬총리의 골프가 정치권의 여러 가지 구설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철도파업으로 교통란이 문제되던 바로 그 시작일에 국정 최고지도자가 골프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구설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민족적인 3.1절 행사를 외면하며 골프에 탐닉한 것도 최고위 공직자로서 결코 좋은 모양은 아니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권에서 옹호한답시고 김진표 교육부총리 등이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심상찮은 주제에 불에 기름을 더 얹은 셈이 되었다. 동아일보 기자의 성희롱에 발뺌을 하느라 음식점 주인인줄 알고 성희롱을 했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최고위직 공직자로서 구설수에 오를 일을 쉽게 또 반복적으로 하면서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변명만 늘어놓곤 하는 총리나 그것을 비호하느라 말도 되지 않는 언변을 늘어놓는 김진표 부총리 등의 행위는 바로 노무현정권 핵심 권력자들의 황폐화된 도덕의식을 잘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일을 하고도 그것이 왜 부적절한 행위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반성은커녕 적반하장식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오히려 억울해하고 상호 비호하기에 바쁜 것이다. 계속되는 논란속에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 각종의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버티다가 결국 자신들의 더욱 추악한 비행이 드러나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책임지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로서의 높은 도덕성은 이들에게는 하나의 사치품처럼 된 것이다. 이들은 아직도 공직자로서 자신들의 행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저 언론에서 골프를 함께 친 사람들의 각종 비행과 전과 경력 등이 노출되어서 재수없이 걸려들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회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났던 몽테스퀴에는 그의 명저 <법의정신>에서 야만사회와 문명사회를 비교하며, 두 사회의 두드러진 차이를 사람들의 행태에서 발견했다. 그의 통찰력있는 분석에 따르면 가장 야만적인 사회에서는 가장 야만적인 행위를 하고서도 자신이 가장 선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반면에 가장 문명화된 사회는 가장 선한 일을 하고서도 혹시 악한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 하고 생각한다고 했다.
 
야만사회에서는 사람들 사고 방식의 폭이 좁아 자신이 별 생각없이 한 행위가 더 큰 관점에서 봤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야만성을 지적하는 것이며, 반대로 문명화된 사회는 사고의 폭이 넓어 자신이 선한 일을 했지만 혹여 더 넓은 관점에서 봤을 때 타인에게 의도하지 않았던 해가 되지는 않았는지 걱정을 한다고 했다. 이런 차이가 바로 야만과 문명을 구별하는 것이다.
 
오늘날 골프총리의 국경일날 골프놀이나 그것을 비호하는 김진표 장관의 억지 변명 등이 바로 야만사회에서의 야만적 행위들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협한 사고 내에서는 그것이 왜 잘못인지, 혹은 왜 사람들이 그것을 비난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남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중의 식당에서 자신의 자식이 혼자 뛰어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식사행위에 방해를 저지를 때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순히 왜 자신들의 자식의 기를 죽이려 하느냐는 강변을 늘어놓는 식인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이러한 야만성을 많이 겪었다. 전두환대통령 시절 깡패를 소탕하여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다면서 재판을 거치지 않고 위원회 결정만으로 사람들을 캠프로 강제로 끌고가 훈련을 시킨 삼청교육대란 역사도 갖고 있다.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야만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고도 관련인들은 반성은커녕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한 선한 일로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제반 일들이 모두 사고의 폭이 좁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런 폭좁은 사고 속에서는 전통적으로 혈연적으로 최고의 지위가 보장된 왕조차도 가뭄과 기근이 들면 근신하며 기우제도 지내고 식사도 단촐하게 하던 그 도덕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 밖에 있는 딴나라의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사회에서는 만성적 불경기와 양극화의 극심한 고통속에 노숙자들의 행렬이 일반인들에게도 가슴아프게 다가오는데, 책임총리라는 사람이 그런 양극화의 고통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비행기를 타고다니며 전국이 좁다고 돌아다니는 골프놀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 권력자들은 대통령의 실정으로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내라도 비를 같이 맞아준다며 아부를 하곤 했지만 국민들의 아픔과 같이 한다는 행위는 없는 것이다. 자신들끼리의 권력이고 자신들끼리의 단결이고 놀이문화인 것이다. 국민은 그들 안중에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국민의 아픔에 함께 비를 맞겠다는 생각이 추호라도 있었다면 그런 욕얻어 먹을 행위도 하지 않을 뿐더러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는 것이다.

이들의 후안무치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패륜적 정치행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반복된 것이기에 국민들은 만성이 될 정도인데,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오히려 국민들을 질타하고 윽박지르는 행위도 쉽게 하곤 하는 것이다.
 
휴일날 등산가는 것은 되면서 왜 골프치는 것은 안되냐는 식으로 따져드는 것도 후안무치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차라리 휴일날 총리가 등산을 갔다면 국민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봐주었을 것이다. 등산이 아닌 골프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 그 이유를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도 똥을 길가에 싸는 사람은 가르칠 수 있지만 똥을 길 중앙에 싸는 사람들은 가르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골프총리나 부총리나 모두 똥을 길중앙에 싸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전국민이 아는 그러한 상식을 그들만이 모르는 발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한달간 휴가를 즐기기도 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냐고 짐짓 억울한 듯이 강변하기도 하는 데서는 이들의 무지한 야만성이 그 극에 달한 느낌을 받는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그들 지도자들이 진심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국가적 도전은 거의 없다. 그래서 사실 긴 휴일을 즐겨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다민족 국가의 특성으로 모두가 함께 잘 산다는 사회적 유대감도 강하지 않다. 그래서 미국사회에 존재하는 극심한 양극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큰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기에 엘리트들은 그들만의 휴가를 장기적으로 즐기곤 하는 것이다. 사회적 환경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단일민족을 배경으로 하기에 지금 수준의 양극화만 해도 큰 사회적 고통이 되어 사회 주요 쟁점이 되어 있다. 또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강대국이 아니기에 각종 사회적 도전에 대단히 취약하여 국가지도자들이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국가적 위기가 언제든 올 수 있는 사회이기에 전통적으로 국가지도자들은 근면하게 국가적 소임을 하려고 최대한 노력한 것이다.
 
강대국과 그렇지 못한 우리 사회를 단순하게 비교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진정으로 있으면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일본에 말하면 잘 듣는데 왜 한국의 지도자들은 일본에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지 스스로 자문하고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 남의 나라와 비교하고 싶으면 강대국이 아니지만 미국에 대해서 계속 쓴소리 비판적 소리를 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와 비교를 하며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한다. 당신네 비겁하고 개혁을 배신한 권력자들은 마하티르 총리의 반의 반은커녕 백분의 일만큼도 못한 것이다.
 
강한 자에게는 그렇게 비겁하면서 국민들에게는 흑두루미 백두루미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쉽게 매도하면서 윽박지르는 것이 오늘날 골프사건을 일으킨 본질인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하지 못하고 비겁한 권력자들끼리 비호하는 문화가 사태를 더 악화시켜 결국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권력도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골프총리와 주변 권력자들의 황폐화된 의식과 그런 사고가 묻어나는 각종 행위는 결국 공론장에서 이를 따지는 한나라당의 도덕적 우월성만 확인시켜준다. 정권 핵심자들의 도덕적 해이 행위는 결국 죽은 박정희를 되살리고 전두환을 부활시키고 한나라당의 지지도를 올리는 역할만을 할 따름인 것이다.
 
이들 권력핵심자들의 도덕성 결핍 행위는 지금의 한국정치를 황폐화시켜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미래를 함께 약탈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하기에 아픔이 더욱 크다. 이제 이 정권이 끝나더라도 이들의 양두구육 정치로 인해 혐오감이 너무 많이 형성되어 개혁이니 진보니 하면 일반인들의 인식은 말로는 이런 말을 하며 행동은 다른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기꾼처럼 보게 될 가능성도 아주 높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덕적 난장이 정권이 쏘아올린 골프공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그들의 파멸을 재촉하는 벙커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이야 자신들이 한 부도덕한 행위로 파멸을 맞는다 하더라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개혁인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이들의 파렴치한 행위가 쉽게 용서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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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06 [12: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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