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싸이월드> 에서 '커버스토리'로 내걸고 재미있는 조사를 했다. "멀티인간 '한번에 다 한다' 음악 들으며 공부하는 정도는 가뿐, TV 보면서 전화하고 방 청소하는 수준까지 내가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라는 문구와 함께 누리꾼들에게 "황진태 님은 한 번에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의례 수험생들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 공부를 하면 부모들은 "그렇게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면 정신 사나워서 공부가 되겠니"라면서 호통 치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그런 호통을 받고 자라난 나는 일상적으로 방 한구석 TV를 YTN에 맞춰놓고,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컴퓨터 화면에 몇 개의 인터넷 신문과 정치관련사이트 창을 띄워놓고, 음악을 들으며 음악을 다운받고 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로 쪽지를 주고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싸이월드의 조사에 참여한 누리꾼들의 댓글을 몇 개 살펴보더라도
"컴퓨터 하면서 먹을 거 먹고 TV보고 노래듣고 글씨 쓰고 전화하고" "쪽지, 문자, 싸이, 노래듣기, 수학공부, 밥. 이것들은 한번에 하곤 하죠."
내가 하는 짓(?)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바야흐로 산만함이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는 '산만함'이 부정적이던 의미에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긍정성을 추출하고 있다. 일찍이 현대문명에 대한 탁월한 시각을 보여줬던 발터 벤야민도 그의 유명한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정신분산으로서의 오락Zertreuung"을 통하여 "어떤 과제를 정신분산적 오락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능력 자체가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이미 하나의 습관이 되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면서 현대인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수용자세로서 산만함을 긍정하기도 했다.
방송인 노홍철은 이러한 '산만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델이 아닐까. 그의 속사포와 같은 언변에 정신이 없다면서 '비호감'이라는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비호감 뒤에는 노홍철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도 거침없이 드러내고 구현하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서 '비호감'으로 찍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여기서 잠깐, 앞서서 산만하게 이어폰 귀에 꽂고서 공부하면은 "정신 사납다"는 부모들의 걱정도 이제는 현대미감에 떨어지는 잘못된 생각일지 모르겠다. 이런 사실까지 언급해야 하나 싶지만 노홍철은 모교인 홍대에서 교내 토익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LG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2010 대한민국 트렌드>에서도 산만함을 옹호하는 내 주장이 시대 흐름과 포개어진다는 사실이 재차 증명된다.
강승훈은 "컴퓨터, TV 등 디지털 시대를 맘껏 누리는 세대"인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또는 병렬처리(parallel processing)에 능하다. 이들은 600개 이상의 TV채널, 80억 개 이상의 페이지와 같이 엄청난 양의 정보 속에서 자랐다.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두뇌구조가 변화되었다. … 기성세대는 '산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곳에 동시에 주의를 기울일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두뇌구조가 변했다는 주장은 농담인 듯하다. 아무래도 두뇌구조보다는 습속(習俗, habitus)이 변화되었다는 것이 옳은 해석이다.
벤야민의 언급에서 짚었듯이 독일어에서 산만함과 오락은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오락, 놀이의 자세에서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싸이월드의 설문조사에서
"없다! 한번에 한가지씩!" "두 가지까지는 가능한데, 셋 이상은 넘 힘들죠." "전 한가지도 잘 못해요."
라는 반응도 있었다.
물론 이렇게 '멀티인간'이 아니라고 비난받을 것도 없다. 그저 나를 포함하여 어려서부터 '산만한 아이'로 찍혀서 동네 어르신과 학교 선생님에게 문제아로 찍혔던 설움(?)에 대한 자기위로가 이번 글을 쓰는 데 작용했고, 인간의 다양한 심성 중 하나인 '산만함'에 대하여 만약 푸코가 살았더라면 '타자'로 나눴을 법한 문제적인 주제라는 생각에서 산만함에 관한 산만한 단상들을 정리해보았다.
이 글을 읽은 독자여, 앞으로 부모가 되거든 자식이 산만하게 놀거나, 이어폰을 꽂고 참고서를 본다고 절대로 "정신 사납다"며 윽박지르지는 말자. 까딱하다 자식에게 미감이 촌스럽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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