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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한‘ 노홍철, 우리 시대의 자화상?
[황진태의 좌충우돌] 다기능 멀티태스킹 시대, ‘산만하다’ 평가 달라져야
 
황진태   기사입력  2006/02/22 [18:14]
얼마 전 <싸이월드> 에서 '커버스토리'로 내걸고 재미있는 조사를 했다. "멀티인간 '한번에 다 한다' 음악 들으며 공부하는 정도는 가뿐, TV 보면서 전화하고 방 청소하는 수준까지  내가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라는 문구와 함께 누리꾼들에게 "황진태 님은 한 번에 몇 가지 일을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의례 수험생들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 공부를 하면 부모들은 "그렇게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면 정신 사나워서 공부가 되겠니"라면서 호통 치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그런 호통을 받고 자라난 나는 일상적으로 방 한구석 TV를 YTN에 맞춰놓고,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컴퓨터 화면에 몇 개의 인터넷 신문과 정치관련사이트 창을 띄워놓고, 음악을 들으며 음악을 다운받고 싸이월드에서 미니홈피로 쪽지를 주고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싸이월드의 조사에 참여한 누리꾼들의 댓글을 몇 개 살펴보더라도

"컴퓨터 하면서 먹을 거 먹고 TV보고 노래듣고 글씨 쓰고 전화하고"
"쪽지, 문자, 싸이, 노래듣기, 수학공부, 밥. 이것들은 한번에 하곤 하죠."

내가 하는 짓(?)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바야흐로 산만함이 인정받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는 '산만함'이 부정적이던 의미에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긍정성을 추출하고 있다. 일찍이 현대문명에 대한 탁월한 시각을 보여줬던 발터 벤야민도 그의 유명한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정신분산으로서의 오락Zertreuung"을 통하여 "어떤 과제를 정신분산적 오락 속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능력 자체가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이미 하나의 습관이 되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면서 현대인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수용자세로서 산만함을 긍정하기도 했다.

방송인 노홍철은 이러한 '산만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델이 아닐까. 그의 속사포와 같은 언변에 정신이 없다면서 '비호감'이라는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비호감 뒤에는 노홍철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도 거침없이 드러내고 구현하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서 '비호감'으로 찍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여기서 잠깐, 앞서서 산만하게 이어폰 귀에 꽂고서 공부하면은 "정신 사납다"는 부모들의 걱정도 이제는 현대미감에 떨어지는 잘못된 생각일지 모르겠다. 이런 사실까지 언급해야 하나 싶지만 노홍철은 모교인 홍대에서 교내 토익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LG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2010 대한민국 트렌드>에서도 산만함을 옹호하는 내 주장이 시대 흐름과 포개어진다는 사실이 재차 증명된다.

강승훈은 "컴퓨터, TV 등 디지털 시대를 맘껏 누리는 세대"인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 또는 병렬처리(parallel processing)에 능하다. 이들은 600개 이상의 TV채널, 80억 개 이상의 페이지와 같이 엄청난 양의 정보 속에서 자랐다.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두뇌구조가 변화되었다. … 기성세대는 '산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곳에 동시에 주의를 기울일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두뇌구조가 변했다는 주장은 농담인 듯하다. 아무래도 두뇌구조보다는 습속(習俗, habitus)이 변화되었다는 것이 옳은 해석이다.   

벤야민의 언급에서 짚었듯이 독일어에서 산만함과 오락은 동일한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오락, 놀이의 자세에서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싸이월드의 설문조사에서

"없다! 한번에 한가지씩!"
"두 가지까지는 가능한데, 셋 이상은 넘 힘들죠."
"전 한가지도 잘 못해요."

라는 반응도 있었다.

물론 이렇게 '멀티인간'이 아니라고 비난받을 것도 없다. 그저 나를 포함하여 어려서부터 '산만한 아이'로 찍혀서 동네 어르신과 학교 선생님에게 문제아로 찍혔던 설움(?)에 대한 자기위로가 이번 글을 쓰는 데 작용했고, 인간의 다양한 심성 중 하나인 '산만함'에 대하여 만약 푸코가 살았더라면 '타자'로 나눴을 법한 문제적인 주제라는 생각에서 산만함에 관한 산만한 단상들을 정리해보았다.

이 글을 읽은 독자여, 앞으로 부모가 되거든 자식이 산만하게 놀거나, 이어폰을 꽂고 참고서를 본다고 절대로 "정신 사납다"며 윽박지르지는 말자. 까딱하다 자식에게 미감이 촌스럽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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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22 [18:1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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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진태 2006/02/24 [08:28] 수정 | 삭제
  • 님의 충고 새겨듣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충고 부탁드려요. 그럼.
  • 자성 2006/02/24 [01:58] 수정 | 삭제
  • 1. 글쎄요 나는 늙은이인데 일종의 불문율을 건드리는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고료없는 게시판을 이용하는데는 개인적인 목적이 포함 안되기 어렵겠지요. 글에 하자를 잡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2. 님은 젊은 분으로서 좋게 본 글이 있었는데 이글은 좀 뜻밖이라 토를 달았습니다.

    3. 신세대가 a.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왔고 b. 멀티 태스킹이 장점이 된다는데는 부분적으로 밖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님이 든 논거들도 크게 의미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4. a.에서 나는 이 사회에 해방이후 교육이 부재했는데 이것을 정보의 홍수가 대체해 청소년기 없는 성년기가 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보화 사회에도 지식과 정보를 구분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지식기반이 없는 사회에서 인터넷으로 올인하여 넷 사용인구를 자랑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5. b 에 관해서는 진정한 권위(자)와 전문가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야에 권위가 없는 사회에서 한 사람이 10가지 일을 겸하는 것은 해당 개인이나 전체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 봅니다.

    6. 다시 a.에서 나는 5년 이내에 인터넷 글쓰기가 외국수준으로 시들해지리라 봅니다. 인터넷으로 선거를 하는 따위의 낭비가 없어지기 바랍니다. 가치있는 글이라면 차별화 (유료화) 돼야 할 것입니다.

    7. 종합적으로 나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크게 보지 않는데 이를 과도히 신뢰하는 한국인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8. 구세대로서 나는 신세대 문화가 '자연스럽게 말하기 (생각하기)' 가 되기 바랍니다. 노홍철 같이 본말전도 하지말고 (착하게는 생겼습디다만)..눈치보고 흉내내지도 말고.. 한국인은 세계에서 드물게 99% 시각인인데 '상상력'이 포함된 통큰 생각도 해서 좀 독창적이 되고 인생을 길게보고 자랑할 만한 것을 자랑하길 바랍니다. 인터넷 강국이니 브레이크 댄스니 양궁이나 숏트랙 같이 부분을 전체로 알고 목숨걸어 승리하는 건 좋은데 더큰 다른 부분이 세상에는 허다하다는걸 알았으면..

    9. 우리가 인터넷 강국이라는 것이 결코 세계의 문화를 주도 또는 선도하게 되지 않습니다. 선진국이 20여년전에 정/부 효과와 함께 다 생각했던 것을 기술적으로 따라하게 된 것 뿐입니다. 이제 비가시적인 것 (가치지향, 도덕윤리의 문제) 에 눈 돌리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습니다. 아니 우리에게는 요약본과 색인 (정보) 에 접근해 외운 것 외에 자신의 동기로 궁구하여 자기것이 된 지식은 거의 없습니다. 독자적인 현대문화가 없는 지경이라 봅니다.

    10. 님이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에는 전혀 이의 없습니다. 좋은 방식을 찾으십시오. 노홍철이 방송 외에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전혀 몰랐는데 그가 사는 방식에는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 자성 2006/02/23 [23:20] 수정 | 삭제
  • 첫째 글쓴이는 커리어를 구축하는 자의 입장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혹시 노홍철이 글쓴이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성공모델이 아닌지까지 의심하게 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노홍철 같은 사람을 방송인이라 부르는 건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그가 엔터테이너로서 무슨 사회적 정기능을 하는지 (방송에서 이름 얻어 개인사업한다는 것 빼고는) 잘 모르겠군요.

    둘째 한사람이 10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자체는 감탄할 일도 배척할 일도 아니며 일반대중은 그가 하나하나를 어떻게 수행하느냐만 따지면 되고 그도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준비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ABC의 유명한 시사토론자 Barbara Walters 가 은퇴하는 모양인데 이정도 되는 방송인은 기대할수 없을까요? MC 조차도 아무나 돌려가며 하는 방송풍토.. 전문가나 권위자 없이 젊은이 취향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성공하는 방송문화(?).. 우중과 짜고 방송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방송인이라고 하기는 어쩐지..영화 다음에는 방송 연예부문이 개혁의 대상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비로소 한국의 현대문화를 구축해야하는 시점이니까.. 이인화 같은 원숭이 날라리가 신세대인으로 양산되면 안되니까..

    한국에 (북한과 비교해)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합니다. 해야 할 말은 다 사회적 편견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고 (항상 두셋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일. 선택지 두세개 있다고 '자유' 라고 환호하는 건 원숭이 밖에 없을거요) 노홍철 같은 경우는 어떻게 이 하나마나한 말에 최대한의 외형을 부여하느냐가 관건이 된 사회에서 호들갑과 과장 제스처로 상품성 있는 시도를 한 것 뿐이지요. 그가 산만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치밀할 터인데 내가 소위 방송인에게 따지는 것은 그런게 아니라 시청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이놈들은 방송에 나오면 저희들끼리 즐겁게 놀다가요. 형님 동생하고 서로 상대 활동 홍보해 주며..

  • 황진태 2006/02/23 [18:05] 수정 | 삭제
  • 노홍철 씨가 그간에 자신만의 색깔로 여행사 운영을 한다던가. 앨범에 피쳐링을 한더던가 가히 멀티 태스킹이라고 할 정도의 개인행보가 있었고, 거기에 주목해서 원래는 그의 인물론 중심으로 쓰려고 했었고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을 안했던 것은 이미 타매체에서 노홍철 씨 인터뷰가 범람해서 이 글에서 '동어반복'이 될 거 같아서 여기서는 그 이상의 언급을 안했습니다. 자성 님이 "논점과 용어의 정의가 불분명하다"하셨는데 그게 이 글의
    키포인트입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 자성 2006/02/23 [14:23] 수정 | 삭제
  • 동시에 여러 일을 정신분산적 오락으로 수행한다는 것과 하나의 일을 할때 외형적인 태도의 산만함과는 구별해야 하지 않을까?

    논점과 용어의 정의가 불분명하다. 산만함과 오락은 동일한 어원이라? 산만함 (disorderliness) 을 오락 (distraction) 과 혼동한 건가? 독일어에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글의 논지에 얼마나 충분한 논거가 될까?

    노홍철의 경우가 산만한 건가? 다시말해 방송중 멀티 태스킹을 하고 있었나? 상대의 정신을 빼는 다변과 제스처를 트레이드 마크로 보여주지 않았나?

    산만이건 안 산만이건 '시청자' 나 '독자' 는 생산된 결과물에 관심있을 뿐이다. 이글은 노홍철의 경우를 빼고 현대 대중문화의 한 측면을 지적했다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