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프랑스 68혁명과 고교생만의 촛불집회
[논단] 68혁명을 이끈 것은 참여지식인, 한국 지식인들은 무엇하고 있나
 
우석훈   기사입력  2005/05/10 [16:02]
고등학생들의 촛불시위에 붙여
 
프랑스를 비롯한 전세계에는 68세대라고 하는 특별한 세대가 있다. 68년에 전세계를 덮었던 일련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외침이 그야말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이들을 68세대라고 부른다.
 
이 때의 주역들은 단순히 하나의 흐름을 만든 것만이 아니라 방송과 신문 그리고 소설과 영화 등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68세대가 없었다면 전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빨리 헐리우드와 디즈니의 지배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68년은 세기에 전환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파리의 68년에서 실제로 생겨난 일은 무엇일까? 장기적인 인식전환과 같은 효과들이 있겠지만, 현실에서 벌어진 일은 대학을 국유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국유화를 통해서 대학의 등급과 입시지옥을 없애는 일이 프랑스에서는 벌어졌다. 파리 1대학, 2대학 혹은 니스 1대학, 2대학 아니면 리용 1대학, 2대학, 3대학과 같은 국립대학 체계가 바로 68년도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의 프랑스 상황을 정리하면 드골이 민족주의 보수파 정권을 강화시키던 시절이었고, 프랑스 민족이 다시는 독일 민족에게 전쟁과 같은 이유로 당해서는 안 된다는 민족주의가 경제이데올로기와 결합하던 시절이다. 그 과정에서 대학의 서열제가 점차적으로 강화되고 있었다. 소르본느 대학이나 아사스와 같은 1류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지금의 한국 상황만큼 강력한 시점이었고,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었고, 또 경쟁이 강화되고 있었다.
 
후에 드골은 68혁명의 한 해가 지난 1969년 국민투표에서 압승을 거두지 못하자 스스로 하야하게 된다. 드골의 민족주의와 시장경제가 결합된, 지금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상황과 비슷했던 것이 68년 5월의 상황이었다.

이 때의 68혁명이 대학생의 힘이라고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학생운동의 이데올로기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실제로 68년에 바뀐 것은 대학 국유화라는 결과였고, 이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대학생이 아니라 중고등학생이었다.
 
이미 대학에 들어간 대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시키는 정도로 상황을 마무리 할려고 하였는데, 실제로 경쟁 구도로 몰린 중고등학생들이 문제를 그렇게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자체 집회를 시작하면서 68년의 프랑스의 상황이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급속하게 반전되었다.
 
역사적으로 대학생들의 집회가 상황을 반전시킨 적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세계사적으로 실제로 의미 있는 변화는 중고등학생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 '조직되지 않은' 그러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 외침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렇다. 4.19가 그랬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상황이 68년의 프랑스 상황과 그렇게 엄청나게 다르지는 않다. 사회경제적 조건 같은 것들이나 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사회가 급속하게 극우파적인 인종주의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도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작은 차이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프랑스의 대학생들이 고등학생들을 지지하면서 집회의 주도권을 자발적인 고등학교의 학교별 조직으로 넘겨주면서 지지선언을 했던 것과 달리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대학생의 지원이나 심정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
 
게다가 지식인과 학자의 도움을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받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모두가 석학이라고 알고 있던 샤르트르와 까뮈가 있었고, 미셀 푸코가 있었다. 당시의 고등학생들을 때리거나 잡아가지 말라고 샤르트르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과 대문호들 그리고 학자들이 맨 앞에서 저지선을 만들어주었다.
 
당시의 프랑스 경찰들은 말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시위대를 경찰봉으로 치면서 심심찮게 사고로 사람들을 죽일 정도로 폭력적인 경찰이었다. 
 
이 앞을 맨 앞에서 지켜준 사람들이 소위 학자들이었고, 지식인들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의 지식인의 '참여' 즉 engagement이라는 단어가 전세계를 휩쓸게 되었다.
 
지식인들이 68년 프랑스에서 사회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강력 진압하겠다는 경찰들의 앞을 막아서고 저지선을 만들어주고, 때리지 말라고 개인성명을 신문 같은 곳에 발표하는 정도의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땅의 고등 학생들은 불쌍하게 고립되어 있다.
 
이들의 외침이 의미 있는 작은 반전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대학은 산업파'가 수장을 맡고 있는 교육부는 처벌로 이어지는 공작 교육부로 악랄하게 움직일 것이다. 김진표 교육 부총리, 충분히 그럴만한 위인이다.
 
▲광화문 촛불 추모제 모습     ©대자보
 
지금 이 땅에 아직도 남아있는 학자가 있다면, '우리의 아이들의 외침을 들어보자'는 작은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나를 비롯한 공부한 사람들, 정작 촛불 시위의 500명으로 추정한다는 고등학생들 앞에서는 역사의 배신자에 불과하다.
 
68의 배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샤르트르가 움직였듯이, 배신자가 아닌 학자들은 움직여야 한다.
 
단 한 명의 고등학생이라도 촛불 시위에 참여한 학생이 불이익을 받거나 고통을 받는데도, 지식인과 예술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미안하지만 이 땅의 역사 앞에 모두 배신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슬픈 시대, 이 어두운 시대에 가장 민감한 고등학생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고, 더 이상 그들의 자살이 개인의 일이 아니라고 먼저 움직인 셈이다. 그들이 외침은 그들이 아직 민감하고, 악에 덜 물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이론보다 앞선다. / 논설위원
 
* 필자는 경제학박사로 초록정치연대(www.greens.or.kr) 정책실장입니다. 최근 <아픈 아이들의 세대 - 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뿌리와이파리, 2005)를 출간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5/05/10 [16:02]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노재환 2005/05/11 [04:28] 수정 | 삭제
  • 물론 유럽의 68년이 절대로 현재의 한반도에서 재현 될 수는 없지요..
    윗님의 지적처럼 다른 방식의 다른 모습의 다른 주체에 의한 다른 목적과 지향의 우리식 항쟁이 있어야 함을 부인한것 같지도 않고요..

    암튼...잘 되어야 .할텐데..(쌩뚱맞군..내가봐도 내가..ㅋㅋ)
  • 김수민 2005/05/10 [18:39] 수정 | 삭제
  • 68운동이 가져다 준 문화적 업적은 위대하지만,
    그 당시 주체들이 몽상적인 유토피아주의나
    마오이즘 등에 심취해 있었다는 건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사르트르 이야기를 하셨지만, 아도르노 같은 지식인들은
    좌익 전체주의라고 학생들을 공격하며 운동에서 이탈한 바 있지요.
    한국에서는 68운동과 다른 항쟁이 일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