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공방에는 ‘과장’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치 싸움은 기본적으로 ‘말싸움’이고 그 주요한 목적은 상대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며,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낙인찍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 사이의 공방은 날이 서고 침소봉대가 횡행하기 일쑤다. 우리의 ‘희망새’가 이명박 후보를 “실패한 기업인, 천민 자본주의자, 쓰러지는 태양”으로 규정하거나 정동영 후보를 “과거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그래서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라 정상적인 정치행위의 일환인 것이다.
‘희망새’는 친노 후보? 그러나 정치에서 나는 때리고 상대는 맞기만 하는 그런 싸움은 없다. 상대를 때리면 나 역시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희망새’가 이명박의 경제를 “가짜 경제”로 규정하니 한나라당이 “구라 경제”로 맞받아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평화방송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잘 알려진 장성민 전 의원은 며칠 전 ‘희망새’를 “노대통령의 정치적 양자이며 제2의 노사모 후보”라고 규정하면서 이른바 '노-문 연대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장 전 의원은 DJ 정부의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한 인물로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그 주장의 근거는 단순하다. ‘희망새’는 노무현 대통령 직속 ‘사람입국 신경쟁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현 정부 출신 인사이며, 그의 캠프에 노사모 출신들과 친노인사들이 참여하고 있고, '친노 후보'를 제외한 모든 범여권 후보들을 향했던 노대통령의 공격에서 '희망새'만은 열외라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사실 무근’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내가 봐도 청와대가 심정적인 호감을 가질 수는 있어도 당장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속단할 수 있는 정황은 아니다. 따라서 지난 경선 당시 이해찬 후보 대변인을 맡았던 김형주 의원의 해명이 현재까지는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친노 직계로 잘 알려진 김 의원은 “예전 참정연 회원들이나 개혁당 그룹에서 그쪽에 많이 가있는 건 사실이지만 개별 지지자들의 선택일 뿐이며 누군가 그렇게 조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장 후보 주장에 다소 ‘과장’이 섞였다는 것인데, 어쩌겠는가? 그게 정치공방의 속성인데….
청와대 지원설, 자업자득 아닌가? 정리하면 친노 인사 일부가 캠프에 참여하고 지지자들이 많이 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상층 차원의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는 셈이다. 그러니 ‘희망새’ 입장에서 “정치적 양자, 노사모 후보”라는 공격이 짜증스러울 수 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이 오는 지지자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을 가려 쓰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된다. 다만 지금은 그런 문제가 본질이 아니므로 일단 넘어가자.
이 사안에서 실제 중요한 것은 ‘희망새’의 모호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 반대”를 말하고 정동영 후보를 향해 “‘양극화 심화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라고 공세를 취하면서도 정작 사태의 핵심인 노대통령에 대해서는 '잘해보려 했는데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식의 평가를 하는 것 말이다. ‘희망새’는 출마선언 직후인 지난 8월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무현 정부가 좋은 일을 해놓고도 욕먹는 일이 많았다”며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겠다고 했지만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비정규직,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궁지에 몰리게 돼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누가 누구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보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앞뒤를 연결하면 결국 ‘노대통령이 오해를 받고 있으니 양극화를 심화시킨 정동영 후보가 책임져야한다’가 되어버리니 지난 5년 간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이 아니라면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 탓 말고 입장을 분명히 하라 정치 공방에서 상대가 싸움을 걸어올 때 시시콜콜 해명을 하기 시작하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상대의 의도에 말려들기 십상이다. ‘캠프에 참여한 친노 인사들은 얼마 되지도 않고 캠프의 중심도 아니며 친노 반노를 따지는 대신 미래로 가야한다’는 식의 답변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이런 경우는 전제를 잘라내고 아예 싸움거리로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희망새’는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도 반대하며, 그로 인해 겪은 국민들의 고통에 대해 퇴임 이후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껏 나온 얘기들은 명확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명확하지 않으니 ‘신자유주의는 반대하지만 노무현의 신자유주의는 좋은 일’이라는 것인지 대중은 헷갈린다. 그리고 대중이 헷갈려 하면 이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그 모호한 지점을 정조준해서 균열을 내고 들어가는 것은 정치싸움에서 기초상식이다. 그러니 ‘희망새’는 ‘자기과시를 위해 남을 공격하는 부도덕한 행위’라고 장 후보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라, 노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국민 앞에 명확히 밝히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희망새'의 이명박 공격이나 '희망새'를 향한 장성민의 그것이나 정상적인 정치행위인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헷갈리지 않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 더 이상 공격받을 여지도 사라진다. 그래서 기왕 말이 나왔으니 묻는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는 ‘희망새’는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 방향은 옳았는데 소통이 문제였는가? 국민이 노무현을 오해하는 것인가?
/ 정치 칼럼니스트
* 새로운민주정당추진회의 홈페이지
'새민추'(www.demokratia.kr)에도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