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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공>. 평화 위해 전쟁에 나선 묵가의 전쟁?
[우리힘의 눈] 냉혹하고 황폐해진 세상인심에 보내는 희망의 연애편지
 
김영주   기사입력  2007/01/24 [12:39]
묵공墨攻? 먹물 공격? 무슨 말이야?

인터넷 영화마당에 들어가 보니, 墨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묵가(墨家)를 뜻하였다. 그럼 묵가의 전쟁? 묵가는 전쟁에 극단적일 정도로 반대하는 집단인데, 묵가의 전쟁이라니? 하기야 묵가가 전쟁을 매우 반대하지만, 전쟁으로 날을 지새는 그 전국시대에 초연하게 비켜나갈 수는 없겠지. 오죽 했으면 그 시대를 전국戰國시대라고 이름지었겠는가!
 
그랬다. 묵가가 세상의 패권을 잡으려고 전쟁하는 게 아니라, 2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으로 짓밟히고 짓이겨져 초죽음에 빠진 백성들의 지겨운 고통을 덜어주고자 묵가가 전쟁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 .
 
▲한중 합작영화로 관심을 모은 <묵공>, 그러나 지나친 이상주의였을까?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이토록 어지러운 전국시대를 놓고 백가쟁명百家爭鳴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유가儒家는 직분에 따른 正名을 굳게 지킨다고 하지만 위선으로 가려진 음습한 암투에 둘러싸이게 되며, 묵가墨家는 근검하고 자기 것을 전혀 챙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활이 지나치게 각박하여 끝내 오래가지 못하게 되며, 도가道家는 세상만사에 집착하지 말고 저절로 흘러감(自然)에 맡겨둔다고 하지만 허망한 담론에 빠져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아무 것도 되는 일 없는 무능만 넘칠 따름이요, 법가法家는 형벌로 세상사를 단단하게 묶어서 부국강병을 한다고 하지만 법망만 피하는 속임수와 삭막한 다툼이 어지럽고, 명가名家는 이름 글자에 걸린 개념으로 세상사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그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잡아낸다고 하지만 작은 다툼에 매여 근본적인 이치를 놓치고 정감이 메마른다.( 왕필의 [老子微旨例略]이라는 老子해설서의 일부를 내 나름으로 각색했다. )
 
이처럼 세상만사에 자기의 색안경에만 매달려 자기가 추종하는 노선에만 맹신하면, 자기의 어둠은 보지 못하고 남의 어둠만을 들추며 분분한 주장과 혼란스런 다툼만 어지럽게 춤출 따름이다. 자기가 추종하는 노선을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무턱대고 맹신하지 말고, 자기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의 핵심적인 특징을 파악하여 그 밝음과 어둠의 흐름을 살펴야 한다. 거기에서 그 밝음을 어떻게 살려내고 그 어둠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그 경중과 선후를 살피며, 지금 주어진 현실을 바탕으로 지금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방책과 먼 훗날을 기다리며 꾸려야 할 계책을 세워서, 그 방책과 계책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세상을 제자백가의 주장에만 기대어 살피건대, 법가가 50%·명가가 40%·유가가 10%쯤 작용하여 그 밝음과 어둠의 겉모습이 대충 3:7쯤으로 어둠이 짙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사람들은 이 어둠에서 오는 긴장과 불안을 삭히고자 도가와 묵가의 밝음 쪽에 갈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불가佛家는 전국시대를 지나 600년쯤 뒤에야 중국에 들어온다. 도가와 엇비슷한 점이 있고 종교적 기복祈福까지 갖추고 있어서, 요즘 사람들이 거기에 많이들 기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런 갈증은 도가·묵가·불가가 가져올 어둠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도가·묵가·불가의 주장을 미화하고 신비화하는 말로 넘쳐나고, 그걸로 자기 자신도 위로하고 미화하는 허세와 허영의 도구로 사용한다. 사람이 여름에는 얼음물을 찾고 겨울에는 난로불을 찾듯이, 냉혹한 생존과 허황한 한탕주의에 눈 먼 세상에서 도가·묵가·불가의 말씀으로 그 갈증을 풀어내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걸 우리의 개인생활과 사회구조를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데에 뜻을 두지 않고, 그걸 신비화하면서 맹신하고 거기에 자기의 위선적인 허영을 위장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건 그 밝음을 찾아 지금의 어둠을 고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어둠에 또 하나의 어둠을 덧붙이는 꼴일 게다. 

▲영화 의 한 장면. 전쟁을 막기위해서는 평화를 준비하라는 구호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얼마나 허망한 구호인가...     ©
 
지금 세상에서 노장사상의 도가나 부처님의 불가에 관심이 들끓는 것은 보았지만, 묵가에 들릴 듯 말 듯한 호기심 말고는 들끓는 관심은 보질 못했다. 이 영화의 겉은 전쟁영화이지만 속은 묵가사상을 홍보하는 영화이다. 묵가사상을 그려내느라고 전쟁영화치고는 축 늘어진 감이 있다.
 
[반지의 제왕]이나 [알렉산더] [트로이]처럼 엄청난 전쟁장면이나 스케일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TV역사드라마의 전쟁장면처럼 꾸질꾸질하지도 않다. 일본 만화를 각색해서 만든 영화란다. 그 만화를 찾아보고 싶다.

묵가의 밝음만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 전국시대의 냉혹하고 황폐해진 세상인심에서 묵가의 밝음이 유난히 돋보인다. 그러나 그게 지금 이 세상의 우리에게 얼마만큼 현실적인 대안을 보여줄 수 있다기보다는, 지금 이 세상의 냉혹하고 황폐해진 세상인심에 지쳐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 어떤 갈망을 담은 한 장의 연애편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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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24 [12: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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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우 2007/05/08 [03:36] 수정 | 삭제
  • 묵공...을.... 먹물공격 또는 묵가가 전쟁(또는 공격)에 나섰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하셨다고요? 쩝.... .
    크게 틀린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가 틀린점이 있긴하네요.

    '묵수'라고 해서 묵가사상의 내용에는 수성술(성을 지키는 전술)도 있는데, 보다 공격적인 방법으로 수성을 한다고 해서 '묵공'이라고 제목을 붙였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글을 읽으면서 웃음이 난게 또 있는데요... "전쟁을 막기위해서는 평화를 준비하라"는 구호가 있다고요? 푸핫... 기가차서 말이 안나옵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과 헷갈리신건 아닌지요? 로마의 전략가 베제티우스가 한 말이죠... 글을 쓰실때는 제발 좀 신중하게 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