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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보수신문이 논술사업 할 자격있나?
[컬처뉴스의 눈] 보수신문은 시장 뛰어들기 전에 사설부터 제대로 써라
 
김소연   기사입력  2006/12/02 [14:37]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우스개 소리 하나. 여전히 여진이 가시지 않은 북핵문제 해결 비법. "자녀를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켜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대한민국 수험생 엄마들을 동원하면, 북핵문제쯤은 한달 안에 해결할 수 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2007 수능시험을 치룬 학생과 부모들이라면 쓴 맛이 돌 것이다. 대학입시라는 절박한 과업을 두고 어찌 편한 웃음을 흘릴 수 있겠는가.

그러니 또 어찌 입시 장사가 망할 수 있을까. 수능을 전후로 '논술'이 세간의 관심인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수험생들과 부모들에게 이제 남은 마지막 관문이 논술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문들은 한편으로 대학 논술 출제 경향부터 학교 교육 문제까지 논술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는 목소리를 높여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학 논술시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기사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러한 기사들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닌가 싶은 것이 논술고사를 성토하는 지면을 넘기면 바로 논술섹션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조선일보가 의욕적으로 만드는 중고생을 위한 논술학습지 ‘조선일보와 떠나는 논술여행’, 그런데 과연 효과가 있을까?     ©조선일보
영향력에서나 수익에서나 점점 위축되고 있는 신문사들에게 '논술'은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신문마다 논술섹션을 만들고 있는데, "프리미엄 논술섹션 '맛있는 논술'"(조선일보) "새 논술 전문섹션 '술술~ 논술'"(매일경제), "통합교과 논술 섹션 '열려라 논술'"(중앙일보) "교과서로 배우는 '理知논술'"(동아일보) 등이다. 거의 모든 신문들이 이렇게 논술섹션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지면이 판매 부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란다. 지면만이 아니라 아예 본격적으로 온오프 논술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신문사들도 적지않다. 

신문사들로서는 기존의 콘텐츠를 활용한 수익다각화라 할만한데 '축적된 지식과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논술이 '지식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논리적 접근과 분석 등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능력에 대한 것이라 할 때 결국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합리성과 객관성에 바탕한 논리적 글쓰기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설은 신문사 논술사업의 핵심 콘텐츠라 할만하다. 흔히 논술교재로 신문 사설을 꼽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과연 그런가. 자 여기 사설 한편이 있다. 논술섹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첨삭지도 방식으로 한번 살펴보자.
 

"문화계 左편향 바로잡기 나선 문화미래포럼"
-11월 18일자 <동아일보 사설>, [원문보기]

 

Ⅰ. 문제제기-문화가 정치와 이념에 종속되는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①문화가 정치와 이념에 종속되는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현 정부는 집권 초 문화혁명을 연상케 하는 '문화계 새판 짜기'를 강행했다. ②우선 문화관광부 산하 단체의 요직들이 좌(左)편향적인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들이 '문화권력'을 쥐면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원되는 국가예산도 코드에 따라 편중 배정됐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인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특정 이념이 창작활동에 반영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Ⅱ. 논거1-문화계 좌편향을 바로 잡기 위해 문화미래포럼이 나섰다.

③ 21일 출범하는 문화미래포럼이 문화계의 이런 좌편향을 바로잡고 정치로부터 문화예술의 순수성과 다양성을 지키겠다고 나서서 주목된다. 문화예술인 70여 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가 밝힌 실상은 충격적이다. 복거일(소설가) 대표는 "문화예술인 단체가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민족'을 강조하는 단체 일색이며, 중도 보수적 문화예술단체의 활동이 미약한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원리가 시민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④ 민예총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성명에 참가한 좌파 단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 온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의 국보법 위반 혐의 발언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Ⅲ. 논거2-편향된 이념을추종하는 세력이 예산을 편파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⑤ 이들 단체 소속이거나 편향된 이념 성향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화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는 국민 세금인 예산의 편파적 집행으로 논란을 빚어 왔다. 최근 국정감사에선 문화예술위원회 위원들이 자신의 소속 단체나 자신에게 지원금을 배정한 사실이 드러났다.

Ⅳ. 결론-불온한 이념적 정치적 기도에 문화예술인 스스로 맞서 싸워야 한다.

⑥ 이대로 가면 문화예술이 아예 좌파 이념을 확산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미 영화 속의 반미(反美)는 유행처럼 됐고 좌파 서적이 학교의 필독도서로 선정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근거한 건강한 문화관과 국가관을 수호하겠다'고 선언한 문화미래포럼의 등장은 때늦은 감이 있다. "이제 촛불을 켰으니 어둠 속에서도 모이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복 대표의 말처럼 문화예술인 스스로 불온한 이념적 정치적 기도(企圖)에 맞서 싸워야 한다.


총 다섯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글은 '문제제기-논거1-논거2-결론'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 후 결론을 밝히는 이러한 구성은 논술문의 일반적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단락의 주제문을 연결해서 보면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Ⅰ. 문제제기-문화가 정치와 이념에 종속되는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Ⅱ. 논거1-문화계 좌편향을 바로 잡기 위해 문화미래포럼이 나섰다.
    Ⅲ. 논거2-편향된 이념을 추종하는 세력이 예산을 편파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Ⅳ. 결론-불온한 이념적 정치적 기도에 문화예술인 스스로 맞서 싸워야 한다.


얼핏보면 문화가 정치와 이념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에서 불온한 이념적 정치적 기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문제제기와 결론의 상관은 논지의 통일성을 갖춘 구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각 단락은 주제문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와 합리적 해석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이다.

먼저 ①번. 자신의 주장과 논지를 글의 첫 머리에 먼저 밝히는 두괄식 문장이라 하자. ②번. '우선'이라는 접사에서 밝혀지듯이 이 세 문장은 앞에서 밝힌 주의 주장에 대한 근거 제시라 할 수 있다. 논거에 '좌편향'이라는 도그마적 재단을 앞세운 것도 문제이려니와 '요직을 차지'하고 '문화권력을 쥐고' 있고 국가예산의 '편중 배정'이라는 근거 자체도 해석에 따른 것인 만큼 근거로서의 객관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문제제기는 그렇다 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본론이라 할 논거1과 논거2이다. 우선 논거1은 두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단락(③)은 "∼라고 말했다"라는 인용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두 번째 단락(④)은 인용문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논거1은 제시한 논거에 대한 필자의 분석과 판단이 제시되고 있지 않다.

또한 ④번은 앞 단락에서 언급한 민예총과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대한 부연설명인데 문장의 구조를 보면 "민예총은 ∼한 좌파 단체다. ∼해 온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냈다(했다)"이다. 먼저 "민예총은∼"의 첫 문장은 민예총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성명에 참가'했기에 좌파단체라는 것이다.

▲신문사들에게 논술이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운영하고 있는 ‘理知논술’ 홈페이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우리 사회에서 찬반 여론이 분분한 사안인데 이러한 입장의 대립이 좌우의 이념에 따른 것이 아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서로 대립되는 견해가 있을 때 그러한 대립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적인 논제파악 능력이다. 이 단락은 논리적 글쓰기를 위해 당연히 갖추어야 할 현실에 대한 합리적 논리적 분석력과 이해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단락은 논지전개에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합리적 반론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이 단락(만이 아니라 글 전체)에서 '좌파'라는 규정 이외에 언급하고 있는 단체나 세력의 부정적 내용을 지적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좌파'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정치적 이념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 현안의 한쪽 입장에 대해 비판하면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반론을 '좌파'라는 도그리마로 대체하는 것은 비논리적 글쓰기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논거2(⑤)를 보자. 논거1이 정치적 이념에 대한 지적라면 논거2는 비도덕적인 권력 행사에 대한 비판이다. 우선 ②에서 지적한 것처럼 특정한 단체가 문화권력을 장악했다는 현실판단 자체가 자의적이다. 또한 두 번째 문장의 경우 이미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관련 기관에서 해명된 사항임에도 '의혹'을 '사실'로 제시하고 있다. 결론(⑥)은 '∼맞서 싸워야 한다'라고 맺고 있는데 이제까지 비논리와 왜곡으로 일관해온 이 글이 결국 논리적 글쓰기가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는 '선동문'이었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위의 사설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없이 주의 주장만을 나열하고 있는, 논리적 글쓰기와는 무관한 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다가 그럴 듯한 형식의 외피로 자신의 논리적 결함을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을 도그마로 재단하여 자신의 주의 주장에 꿰맞추는 데다가 형식의 외피로 그러한 결함을 감추는 이러한 글쓰기는 '논술고사'의 취지에 가장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논술사업에 뛰어들기 전에 사설부터 제대로 써라. / 편집인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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