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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4자회담 결렬, 협상여지는 남겨둬
[종합] 양당 지도부 정치력 한계, 열린우리당 연내 강행처리 의지 내비쳐
 
취재부   기사입력  2004/12/28 [10:05]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27일 자정까지 열린 '4자회담'에서도 국가보안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한 합의에 실패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6시간이 넘는 마라톤협상을 이어가며 국가보안법과 과거사진상규명법 등을 논의했지만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4자회담'의 활동 시한을 넘겨 결국 결렬됐다.
 
이로 인해 '4대법안' 등 쟁점 현안을 둘러싼 양당의 대치는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밑 조율은 회기 말미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이 과정에서 특단의 계기만 마련된다면 우리당이 현재까지는 지극히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는 '4자회담'의 재개도 점쳐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양당은 28일 오전 의원총회를 열어 4대법안 처리 및 향후 정국대응을 논의키로 한 상태다.
 
그러나 '일괄타결'이 전제되지 않는 한 양당 지도부가 고정지지층의 비난여론을 무릅쓰고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을지는 회의적이며 정국 파행의 부담은 고스란히 양당 지도부에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4자회담을 거치며 보여준 여당 지도부의 당내 정치력 한계는 며칠 남지 않은 시일 동안 돌파구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4대입법'과 '뉴딜3법' 등의 처리 여부를 놓고 양당간에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고  '4자회담'을 거치며 해소되기 보다는 더욱 날이 선 상태라 결렬의 '책임 떠넘기기'로 도 한차례 공방이 예상된다.
 
열린우리당은 당장 '2백40시간 연속 의총'을 벌인 개혁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4대법안'의 연내처리를 시도하되 안 되면 임시국회 회기를 내년 1월8일까지 당초대로 되돌려서라도 단독 강행하자"는 강경한 목소리가 커지고, 비판의 초점을 김원기 국회의장에 맞춰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등 압박수위를 한층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협상이 결렬된 이상, '합의처리' 방침을 강조해 온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의 실력행사 저지책 마련에 돌입할 것이 확실시 된다.
 
앞으로 관련 상임위에서의 대치에 이어 29, 30일로 예정된 본회의는 최악의 경우 집단몸싸움까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원기 국회의장의 '4대입법' 등을 직권 상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김 의장은 현재까지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과 새해 예산안만 사회를 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본회의에선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과 새해 예산안 등 여야 공히 시급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 의사진행을 하고 다른 법안들은 해를 넘겨 합의를 계속 종용할 가능성이 높다.
 
4자회담 결렬을 이유로 한나라당이 파병연장안과 예산안 처리에까지 제동을 걸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드나 여론의 비판이 예상되는 만큼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편, 양당 대표들이 전한 회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날 '4자회담'에는 과거사진상규명법과 국보법이 테이블에 올랐고, 법안 문구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절충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됐다.
 
회담 도중 과거사기본법을 담당한 우리당 문병호,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이, 국보법을 담당한 우리당 우윤근,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이 조를 이뤄 30분가량씩 배석하기도 했다.
 
국보법의 경우 우리당은 법명 개정을 통한 사실상의 '대체입법'까지 제안했으나, '정부참칭' 및 '찬양고무' 조항을 둘러싼 이견으로 결렬됐다.
 
이와 관련, 김덕룡 대표는 "열린우리당측은 '국가안전보장특별법'으로 법명 개정을 제안했고 우리는 이를 받아들였다"며 "그러나 그쪽에서 대체입법 얘기를 해 우리는 곤란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우리는 대체입법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체입법이 아니라 법명만 바꾸고 현행틀을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세부적으로는 2조(정부참칭)와 7조(찬양고무)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결렬의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정배 대표는 "2조 중 이적단체 조항을 삭제할 수 있는지를 타진했지만 한나라당이 완강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며 "(7조에 관한 한나라당 개정안 중) '공연한 찬양' 조항도 삭제가 가능한지 타진했지만 한나라당이 완강한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김덕룡 대표도 "'공연한 찬양'이나 '이적단체'라는 표현을 열린우리당은 삭제를 요구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면 국보법의 핵심이 빠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로 규정된 정부참칭 부분을 "정부를 표방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단체"로 변경하자는 제안에 우리당 지도부도 수용 가능성을 내비쳐 2조는 상당부분 의견 접근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기본법은 비교적 의견접근 가능성이 높게 타진됐으나 국보법과 맞물린 '정체성' 차이로 두당이 다시 등을 돌렸다.
 
천정배 대표는 "우리당은 과거사법의 조사대상을 '해방이후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과 '정부수립 이후 권위주의 시대의 위법한 인권유린' 등 2가지로 한정했지만, 한나라당은 '북한정권과 좌익세력에 의한 테러'와 '민주화운동을 가장한 친북이적 활동'도 포함할 것을 주장했다"며 "한나라당이 포함시키자고 한 두가지는 우리가 폐지하려는 국보법을 과거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자 이념대립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미래로 나아가는 법에 이를 넣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힘겨루기에서 우리당측은 한나라당의 요구사항을 '불법적 집단행위 또는 테러에 의한 집단적 인권유린' 등 순화된 표현으로 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한나라당은 "대상이 명료치 않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과거사조사위원 구성 방식에서도 양측은 접점을 찾지 못했다. 우리당은 전체 위원 13명의 추천권을 국회 5명, 대통령 4명, 대법원 4명으로 할당할 것을 주장한 반면, 국회 7명, 대통령 2명, 대법원 2명, 학술원 1명으로 하자고 맞섰다는 게 천 대표의 전언이다.
 
양당의 쟁점법안 대치가 '4자회담' 이전 상황으로 회귀함에 따라 향후 남은 임시국회 회기는 극단의 파행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부영 의장은 회담 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오늘 국보법과 과거사진상규명법 등 두가지를 중점적으로 다뤘지만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현격하게 달랐고 한나라당이 냉전적 이념대결의 시각을 넘어서지 못했다”며 회담결렬을 밝혔다.
 
천정배 원내대표 역시 "아무 성과가 없었고 다음 약속도 하지 못했다"며 "어제(27일)로 4인대표회담은 종료됐다"고 밝혔다.
 
천 대표는 "회의는 할만큼 했다"며 "한나라당에서 입장변화가 있어서 타협가능성을 연다면 뒤늦게라도 이를 배척할 이유가 없겠지만, 그런 여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만날 이유는 없다"고 추후 접촉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표했다.
 
천 대표는 "6시간 이상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과거의 달콤한 향수에 안주하려는 사람과 미래로 가려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좁힐 수가 없었다"며 "한나라당은 과거사법과 국보법 등에 대해 우리가 내 놓은 안의 쟁점이 되는 부분 일부라도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결렬책임을 한나라당으로 돌렸다.
 
천 대표는 특히 "첫 '4인 회담'에서 합의했던 '합의를 전제로 한 4대법안의 연내처리에 최선을 다한다'는 부분이 실현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국회법의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말해 해당 상임위의 법안처리를 서두르는 한편, 김원기 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한 연내처리 강행 가능성도 암시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회담장을 나서며 "차이가 크게 난다. 각 당 입장이 정리돼야 한다"며 "내일 만나는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결렬을 인정했다.
 
박 대표는 "국보법도 합의가 되지 않았고 과거사법도 대상에서 막혀버리니 다른 얘기가 잘 안됐다"고 짤막하게 덧붙였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다음 '4자회담') 시간을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사법은 '8인회담'에서 다시 논의를 해보자고 했고, 국보법도 당내 논의를 거쳐 만나자고 기약했다"고 회담 연장 가능성을 밝혔다.
 
김 대표는 "30일까지 처리하려면 상식적으로 27~28일에는 끝내야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지 27일을 시한으로 정한 적은 없었다"며 추후 접촉 가능성을 열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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