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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프락치’폭로와 밀양성폭행 사건
[시론] 마녀사냥과 짐승들의 시간, 인간은 얼마나 진화해야 하는가
 
이태경   기사입력  2004/12/13 [09:56]
최근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들자면 단연 '국회프락치폭로사건'과 '밀양에서 자행된 집단윤간사건'일 것이다. 평균의 분별력과 도덕성을 지닌 한국사회의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상상력의 한계가 얼마나 좁은 것인가를 뼈저리게 알려준 사건들이라는 데에 이 사건들의 공통점이 있다.
 
한나라당 생각
 
동료 의원을 현재 암약(暗躍)하고 있는 간첩(!)이라고 규정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색깔공세는 중세유럽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의 현대판 버전이었다. 간첩이 아님은 간첩으로 지목된 자가 입증하여야 한다! 간첩으로 규정하면 간첩이 되고 이를 전제로 사상전향을 강요한다. 적어도 한나라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뇌구조는 그런식으로 작동한다.
 
▲황철민 감독의 영화 \'프락치\'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한국사회의 축소판을 통해, 오만한 권력이 개인에게 행하는 감시, 협박, 고문과 냉전, 간첩조작 등 비열한 행위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화를 통해 재구성했다.     © 황철민
 
아마도 국보법을 포함한 각종 법안들의 입법을 앞에 두고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무의식 깊은곳에 잠재되어 있는 레드컴플렉스를 자극시켜 보겠다는 셈법이 한나라당에 지배적인 듯 싶은데 이는 대다수 시민들을 '파블로프의 개'정도로 취급하는 저열한 인식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이러한 폭로를 실행하고 감수한 자들이 과거 군사정권의 버팀목 노릇하던 공안검사와 안기부 간부였던 것을 상기해보면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가는 착각마저 든다. 고문을 자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직 안기부 고위간부출신의 정형근 의원은 만약 자신이 고문을 했다면 국민의 정부에서 고문의 증거가 드러나지 않을 까닭이 없다고 강변하면서 자신의 고문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그는 문민정부 시절에 고문의 증거들이 인멸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별다른 증거도 없이 애먼 사람을 간첩이나 빨갱이로 규정하는 한나라당식 논리를 그대로 사용하자면 정형근 의원은 자신이 고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여야 한다. 정의원에게 고문을 직접 당했다는 피해자가 있으니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 것이다.
 
피해자들이 허위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 또한 정형근 의원이 입증해야 할 일이다. 불현듯 전직 국회의장 박관용의 명언이 생각난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예나 지금이나 한나라당을 대하는 감정이 복잡미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분노와 절망, 환멸이 뒤섞인 어떤 것이다. 한나라당을 떠올리면 자꾸 희망의 반대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여러 가지 악덕(惡德)들, 예컨대 몰염치, 비이성, 무일관성, 탐욕 등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요컨대 한나라당을 생각하는 일은 불편하고 유쾌하지 않다. '국회프락치폭로사건'은 이러한 감정이 쉽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을 확신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더 큰 낭패감이 이는 것은 이 정당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국회의석 가운데 3분의 1이상을 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시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은 구성원들의 수준과 정확히 조응(照應)하는 것인가!
 
짐승들의 시간
 
▲밀양사건 재발방지와 피해학생들을 위한 촛불시위 안내 포스터     © 인터넷 이미지
밀양에서 벌어진 집단윤간사건 앞에서 우리들이 가진 도덕성과 윤리의식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그저 손발이 떨리고 숨이 막힌다.
 
인류가 저지른 극악한 악마적 범죄 가운데 하나가 전장에서 이민족(異民族)여자들에게 행한 집단윤간이다. 오래 전 일을 들출것도 없이 몇년 전 보스니아 내전에서 벌어진 예가 이를 잘 보여주며, 일부에서 여전히 공창(公娼)이었다고 강변하는 일제하 정신대(挺身隊)도 그러한 범주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번에 자행된 밀양집단윤간 사건은 동족을 상대로 평시에, 그것도 1년여에 걸쳐 반복적으로 지속된 범죄라는 점에서 무릎이 꺾일 정도의 충격을 안겨준다. 이번 집단윤간사건의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정신과 육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피해자들을 한낱 성욕의 배설물로만 취급한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인격을 사실상 살해함으로써 스스로를 인간 이하의 지위로 전락시켰다. 가해자들이 학생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평가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을 협박했다는 일부 가해자의 학부모들, 오히려 피해자를 나무랐다는 담당 경찰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있노라면 인간이라는 종(種)에 대한 근원적 절망만이 마음을 채운다.
 
그들 앞에서는 염오(厭惡)의 감정마저 멀리 달아난다. 뭐라 형언할 길이 없이 그저 인간이 지녔다는 원죄(原罪)에서 유래되었음직한 악마성에 전율할 뿐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하다. 남성들의 왜곡된 성의식, 사회 일반에 만연한 남근우월주의, 공교육의 문제점, 가정교육의 붕괴 등등…
 
아마도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추악한 범죄를 빚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은 이 사건에 대한 원인과 처방에 있지 않다. 
 
지금 머릿속을 온통 채우고 있는 생각은 단 하나다! 우리 인간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진화해야 하는가? 그러한 진화가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 편집위원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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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2/13 [09: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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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리버리 2004/12/16 [22:10] 수정 | 삭제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덜진화한 유인원이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