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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교육의 추억과 광장에 선 아버지들
근대화와 군부독재에 희생당한 우리의 어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 건네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4/10/08 [13:29]
며칠 전 민방위교육을 받았다. 민방위교육을 받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외없이 안보교육이 교육 프로그램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청 앞 광장에 모인 노인들은 어쩌면 그동안 자신들의 삶에 내면화 됐던 반공과 근대화라는 '정신적 지주'에 대한 상실감과 소외감에 나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그들을 보듬어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 이미지
단상에는 연배 지긋한 안보전문가(?)가 등장했고 이 안보전문가는 느리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주한미군의 중요성과 장사정포로 상징되는 북한군 전력의 막강함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서 헌신한 어버이 세대의 업적과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그 뒤를 이었다.
 
또한 그는 요즈음 홀대(?)받고 있는 어버이 세대의 곤궁한 처지에 대한 한탄과 어버이 세대를 보수나 수구로 칭하는 사회일각의 평가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서운함도 드러냈다.
 
아마도 이 초로(初老)의 신사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의 미래를 염려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머릿속 시계는 한국전쟁 직후나 유신 시절에 멈추어 있는 듯 보였다. 세상이 급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고집스레 고수하는 이 초로(初老)의 신사와 지난 4일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열렸던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우리들의 어버이를 광장으로 불러내는가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이후 최대의 인원이 집결했다는 시청 앞 잔디광장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50 ~ 60대 이상의 노인들과 주부들이라고 한다. 경찰 추산 10만, 조선일보 추산 30만에 이르는 대규모 군중이 운집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대형교회 목사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이는 그간 극우보수단체에서 수차례 주최한 우익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와 비교해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 중 진정으로 국보법이 왜 존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수도이전과 사립학교법 개정 등의 사안에 대해서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태어나서 광장에 나선 경험이라고는 거의 없을 이들을 광장으로 이끈 열정과 결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명박 시장이 친절하게 사용을 허락한 시청 앞 잔디광장 집회에 참석한 이들 가운데 50 ~ 60대 이상의 연배에 해당하는 분들은 직·간접적으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다. 이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절박한 공포와 지독한 궁핍을 경험한 세대이다.
 
정전(停戰)이 된 이후의 삶도 이들에게는 전혀 평탄치 않았다. 연이은 군사독재정권의 등장으로 인해서 일체의 기본권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 하에서 이들의 양 어깨 위에는 조국 근대화라는 지상과제가 부여되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들은 살인적인 고강도 ·장시간 노동과 저임(低賃)을 견디어야 했다.
 
조국은 언제나 이들에게 의무만을 강요하였고 먼지만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이들에게 빛나던 청춘의 시간들은 아득히 사라져 갔고 이제 남은 것은 고장난 육신과 경제적 빈곤 그리고 사회적 홀대 뿐이다.

해방 전 세대의 상처난 자존심을 보듬어야
 
어쩌면 이들이 광장으로 나선 것은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조국에 저당잡힌 자신들의 삶을 뒤늦게나마 인정받고 싶은 욕망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국보법이 폐지되면 당장 적화통일이 될 것으로 전전긍긍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분단과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어버이 세대에 내면화 되었을 반공친미이데올로기의 존재를 생각해 보면 이는 오히려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 마냥 이제는 앙상하고 시들어 버린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 이제 이들을 감싸 안아야 하지 않을까?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로 시작되는 기형도 시인의 '노인들'이라는 시가 새삼 다가온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시나브로 반공이라는 주술(呪術)의 약효는 사라지고 있다. 지금 보다 시급한 일은 잔디광장 집회에 참석한 어버이 세대의 얕은 역사인식과 왜곡된 현실인식을 맹렬히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업적을 평가해주고 상처난 그들의 자존감을 보듬는 일이 아닐까.
 
잔디 광장 집회에 참석한 노인들은 화성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삼촌이자 이모들이다. 열린 마음으로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이 우선일 듯 하다.
 
이제 잔디광장 집회에 대규모 신도들을 동원하여 집회의 주력군(?)을 자임한 한국 개신교에 대해서 말해 보자! 한국에 개신교가 전래된지 120여 년이 넘는데 그 종착지가 고작 대형교회 목사들의 신성권력(?)을 지키기 위해 신도들이 가병(家兵)으로 동원되는 지경이란 말인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면서 사랑과 용서를 몸소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잔디광장 집회에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종교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신도들을 선동하는 대형교회의 목사들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맹종하는 신도들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미국 대통령 부시를 찬양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서글픈 희극에 다름아니다. 감히 충고하건대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진정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한국 개신교에 미래는 없다.  / 편집위원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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