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패러디 사진, 성적 비하 맞다 이름만 듣던 박근혜 전 대표의 패러디 사진을 뒤늦게 보게 되었다. 작품을 본 첫 느낌은 되게 웃긴다는 것이다. 음, 유명세를 탈 만하군. 왜 한나라당이 분에 못겨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정곡을 찌르니까 분노를 산 것이다. 통쾌하다, 절묘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냈으면 패러디로서는 십분 성공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성을 논할 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따져보아야 할 텐데 이 작품의 정치성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여성을 비하했느냐의 여부를 거론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몸을 다 가리는 것 같으나 사실은 다 드러내는, 여성의 몸을 다루는 시각 예술의 완고한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긴 머리로 칭칭 맨몸을 가린 여신의 다소곳한 모습은 그런 동작 때문에 오히려 의도와는 정반대의 성적 암시를 낳는다는 평가는 설득력이 있다. 성적 상징인 머리카락으로 치부를 가린다는 것부터가 이미 역설이다. 이같은 여성성에 대한 이중적 묘사는 금욕주의 시대에 그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그리지 못했던 작가의 고충과 관련 있을 것이란 짐작을 낳게 한다. 그러나 그런 금기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워진 시대에도 여성의 몸을 '안 보일 듯 하면서도 보이게' 묘사하는 데 집착하는 작가들의 관습은 달리 풀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여성의 성에 대해 거부와 수용, 은폐와 노출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요구하는 사회적 통념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된 패러디 사진의 구도를 살펴보자. 작품의 중심에 박근혜 전 대표가 있고 불륜 상대 남자로 풍자된 '조선/동아'는 뒤에 물러나서 측면을 향한 모습이다. 물론 작품의 중심 공격 대상은 박 전 대표이다. 공격의 초점이 수구 신문이 아니라 이들과 야합하여 참여정부에 날을 세우는 한나라당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만 본다면 불륜에서 여자를 남자보다 부각시킨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냥 넘기기 힘든 것은 원전이 된 영화의 스틸 사진을 그대로 따온 여자의 몸 자세이다. 작품에 쓰여 있는 문구, 즉 불륜에 적극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여자의 말은 엎드린 채 몸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자세와는 대조적이다. 또 여자의 몸은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만, 관객 쪽으로 얼굴을 돌린 정면 얼굴은 우리의 시선에 굴절 없이 그대로 들어온다. 몸과 얼굴,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격이다. 성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한다는 태도를 남 앞에 당당하게 드러내니 모순이라는 말이며, 이런 인식의 기반에 여성의 성에 대해 양립불가능한 태도를 취하는 성적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적할 것은 더 있다. 왜 여자와 달리 남자는 얼굴이 없는지, 한 정당의 상징성을 한 사람의 여성이 떠맡아야 한다면 수구 신문은 사주의 얼굴이라도 박아놓아야 공평한 것 아닐까. 만든 이가 박 전 대표 개인을 공격하는 데 집중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얼굴이 노출된 여성과 익명의 남성이라는 구도는 여성에게 불리한 성적 통념을 의식하는 작가라면 재고했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현실과 따로 놀지 않는 투명한 작품은 세상에 없다. 이승훈 씨는 남녀 둘 다 풍자했으니 여성비하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 사진이 나타내는 것은 두 남녀의 야합이 아니라 외간 남자와 야합한 여자이다. 뒤에 물러난 남자는 보조 역할에 그친 셈이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간드러진 여자의 말을 읽으며 사람들은 웃지만 그 웃음이 기대고 있는 것은 성적 편견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 행적을 비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여성인 경우 성적 모욕을 겪는 경우는 흔하다.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는 오마이뉴스 독자의견란에는 정치적 비판과 성적 모독을 구별하지 못하는 글들이 넘쳐 난다. 차라리 그런 악질적인 경우보다 은근하게 성적 편견을 암시하는 경우가 더 해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각이 다른 이들의 반론을 기다린다.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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