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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당된 민주노동당, 여의도시대 활짝펴
민노당 약진은 환경변화에 적극적 대응, 정책정당 진성당원으로 거듭나
 
장상환   기사입력  2004/04/16 [12:41]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 경남 창원 권영길, 울산 북구 조승수의 2명의 당선자를 냈고, 비례대표에서 13%, 277만표의 지지를 얻어 8석을 획득해 총 10석으로 원내에 진입하게 되었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에서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10.5%에서 21.9%에 이르는 고른 득표율을 올려 명실 공히 전국정당이 되었다. 정말 진보정치의 쾌거이다. 당원 여러분들과 함께 축하하며, 이러한 성과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애쓴 분들과 지지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약진한 의의와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권영길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환성을 보내는 당직자들     ©민주노동당

1. 민주노동당 약진의 의의

첫째, ‘운동권’세력이 재야 정치세력을 넘어서 제도정치 속에서 합법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합법적으로 등록하였고, 2002년 6월 지방자치에서 벽을 넘었으며, 2002년 12월 대선에서 3당 후보 토론회에까지 나갔으니 어느 정도의 합법적인 지위를 획득했지만 그것은 아직 불완전한 것이었다.

또 운동권 출신들이 기성정당에 들어간 경우 대체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기성보수정당이 요구하는 것을 수용했다. 민중당 간부출신들이 여러 명 한나라당에 입당한 경우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의 경우는 다르다. 민주노동당은 당원 가운데 10명이나 근본적 변혁 지향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가운데 면책특권을 가지는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의원이 됨으로서 명실공히 제도정치 속에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것은 민중운동 역량이 이만큼 성장해온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 적합한 수준으로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하게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당당한 의회 진입으로 한국 정치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져서 한국의 경제발전 수준에 다소 접근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경제적 발전 수준에 비해서 정치가 가장 뒤떨어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재벌들에게 돈을 받는 금권정치, 자신과 패거리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부패정치를 지속해왔다. 그 결과 정치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돕지 못하고 자꾸만 누적되도록 했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실제적으로 존재하는데도 노동을 대변하는 정당이 의회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외에서 격렬한 투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노동자, 농민의 빈번한 자살 사태는 바로 이러한 민중의 정치적 소외 때문인 것이다.

이번 민주노동당의 10명 의회 진출은 노동자 농민의 정치적 대표가 의회에서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대표와 입법을 둘러싸고 협상과 조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으로 그만큼 노동자 민중은 계급투쟁에서 좀더 나은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이러한 노자 대립의 정당과 의회 구성은 유럽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것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이제야 실현되었다. 보수정당 독점의 정치가 종식되고 노동자 민중의 진보정당이 보수정당과 경쟁하고 이를 견제하는 정치구도가 성립하게 된 것이다.  

2. 민주노동당 약진의 배경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약진한 데는 우선 민주노동당이 약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측면과 민주노동당을 일궈온 추진주체, 즉 당원과 지도부들의 그동안의 준비와 대응이 정확했다는 측면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객관적 여건의 성숙>

첫째, 경제위기 이후의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었다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과 1997년말 외환위기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80년대까지의 고도성장 기간에는 빈부격차의 문제가 있긴 했으나  일자리가 늘어나고 실질임금이 상승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본주의적 모순을 느끼지 못했고 따라서 노동자 민중들의 이익을 대변할 정당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통일사회당, 민중당 등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웠다.  

둘째, 한국전쟁 종전 후 50년으로 냉전 이데올로기가 약화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5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냉전의 정신적 상처가 많이 약해졌다. 철든 나이에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한 65세 이상의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내려갔다. 전쟁체험세대는 체제에 도전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체제에 순응적이다. “말많으면 빨갱이”라는 지배세력의 위협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제발 나서지 말아라” 라는 정말 어이없는 조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젊은 전후 세대들은 이제 상당수가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 도입을 지향하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거나 유럽식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적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민주노동당은 조갑제와 같은 극우 세력들의 터무니없는 색깔 공세에도 불구하고 13%라는 획기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셋째, 사회단체 운동이 활성화되었다.

이 사회에서 개인은 약하다. 단결하지 못한 약자는 강자에게 의지해야 한다. 약자들의 일차적 단결방식은 사회단체 결정과 참여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전에는 민주적 사회단체 활동조차 불온한 활동으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조합, 농민회, 여성단체, 환경단체 등 사회단체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것이 민주노동당이 약진할 수 있는 주체적 토대를 제공했다.

노동자 민중들은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운동을 통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제기했으나 정치가 보수정당의 독점 구조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이에 노동조합 조합원, 사회단체 회원들은 정치적 힘을 가져야겠다는 각성을 하게 된다. 민주노총이 가장 먼저 그러한 필요를 느껴서 1997년 대선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전국농민회총연맹에 모인 농민들은 외환위기 후 농가소득이 도시노동자 평균소득에 비해서 1996년에 90% 수준이다가 2002년에 73%로 내려가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거기에다가 보수정당들이 연합하여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을 비준시키는 것을 보고 자신을 옹호할 노동자 민중의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서 2003년에 민주노동당에 합류했다.    

<정확한 주체적 대응>

객관적 여건이 성숙되었다고 해서 일이 자동적으로 잘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일을 추진해가는 주체들의 대응이 정확해야 하는 것이다. 1992년 총선에서 민중당이 실패하여 해산하고 이번 총선에서 녹색사민당과 사회당이 거둔 성과가 저조한 것을 보더라도 추진주체의 올바른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추진주체들은 최대한 무리를 하지 않고 ‘실사구시’의 자세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자세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첫째, 민주노동당은 1만명 이상의 당원으로 창당했다.

일정한 당원을 모은 후에 창당하고 국민들 앞에 나서서 활동하지 않으면 추진주체들도 오래 버티기 힘들고 또 유권자들의 신뢰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1월에 창당할 때에 1만명을 목표로 해서 9천명의 당원으로 출발했다. 1만명이라는 당원 수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쉽게 흩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수준이다. 양적 축적이 없으면 질적 도약을 하기 어렵다는 원칙에 충실하려 한 것이다. 반면 민중당은 1990년 당시 2천여명의 당원으로 창당하여 결국 견디지 못했고, 사회당 당원수도 수천명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여 지지도가 점차 하락해갔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매년 1만여명씩 당원이 증가하여 지금은 후원회원까지 합쳐 5만3천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에 철저히 근거하려 하였다. 민중당은 당시 전노협의 조직적 지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지식인 중심으로 출발했고 결국 실패했다. 당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통일민주진보당’이라는 당명으로 보다 많은 세력을 모을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우선 노동자 민중의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기본 당원세력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채택되어 ‘민주노동당’으로 결정했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근본적 변혁의 지향을 견지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정책을 제시했다.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현실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에는 성공한지 모르지만 빈부격차, 실업, 인권 억압, 전쟁 등 갖가지 모순을 배태하는 체제로서 극복되어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서 구소련과 현재의 북한과 같은 국가적 사회주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유럽 사회민주주의체제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체제이기는 하지만 실업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안고 있는 것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이러한 역사적 한계까지 해결해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물론 오늘 한국사회에서 우선은 유럽 사회민주주의가 실현한 복지국가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기는 하지만 강령에서는 당연하게 그것을 넘어서는 보다 바람직한 체제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서 의문이 있으면 강령 전체를 정독해보기 바란다. 

민주노동당은 제반 선거에서 어떤 내용의 공약을 제시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강령의 수준에서 제시할 근본적 지향을 정책으로 내세우면 앙상한 꼴을 면하지 못한다. 사회당이 2002년 대선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것을 주장했지만 그 구체적 내용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해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그 실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총선시민연대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에 최우수 점수를 줬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노동당이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체적 역량을 정확하게 계량하고, 오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외국 진보정당들의 경험을 수렴하여, 현실성 있는 정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에서는 ‘서민이 살맛나는 경제’, ‘평등한 복지사회’, ‘자주적인 나라’,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  등 네 가지 기본개념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는 ‘부자에게는 세금을, 서민에게는 복지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조세혁명, 복지혁명, 완전고용 실현’, ‘자주화, 반전평화, 한반도 평화실현’, ‘식량주권 수호, 환경친화적 삶의 실현’,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모든 정책은 법과 제도, 기구, 담당 인원, 재정이라는 4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만 실현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공약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법령의 개정과 제정, 재정충당계획까지도 제시하려고 했다. 보수정당들이나 언론에서 진보정당의 정책에 대해서 취지는 좋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 내지 비방을 해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당연히 이에 대비하려고 한 것이다. 재정계획까지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책 내용이 분명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재정충당계획까지 제시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보다 구체적인 정책내용과, 재정조달계획까지도 마련해서 제시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권자들과 사회단체, 언론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셈이다.    

셋째, 민주노동당은 무기력과 모험주의가 아닌 현실적인 대응을 해왔다.

선거와 일상 활동에서 민주노동당은 주체적인 능력에 맞게 실천하려 했다.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모험적인 시도를 하려는 조급한 경향도 문제가 된다. 우선 지구당 건설도 법에서는 30명 이상이 되면 지구당을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은 최소한 당원이 100명이 되어야 지구당을 조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야 지구당이 유지될 수 있고, 지구당 위원장 개인의 헌신이라는 명목 때문에 위원장의 독선이 지구당을 좌우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보았다.

2000년 총선에서는 기획단 일부에서 100개 지역구에서 출마하고 이를 위한 재정 마련방법으로 선거공채를 발행하고 선거비용을 국고에서 되돌려 받으면 그것으로 상환하자는 의욕적인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주체적 역량에 맞게 선거에 임하려 했다. 허장성세는 곧 몰락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민주노동당의 주체적인 역량이란 당원수와 당원이 내는 당비이다. 그 외의 것에서 힘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일정한 당원수가 있는 지구당, 노동자 밀집지구로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으로 출마지역을 제한하여 21개 선거구에서만 출마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역량이 성장하여 이번 총선에서는 123곳의 지역구에서 후보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역량 성장과 다수 지역구 출마라는 기반이 없었더라면 전국적으로 고른 13%의 정당투표 득표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넷째, 민주노동당은 규정과 제반 민주적 의사결정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후 지금까지 이러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철저히 민주적으로 결정해왔다. 당대표도 자신의 마음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경우 내부에 민주적 의사결정기구를 가지고 대통령 탄핵 추진에 대해서도 당원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거쳤더라면 중도에 저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결여되어 소수 지도부의 일탈적 행동이 견제 받지 않은 채  그대로 관철된 결과 결국 위기에 빠지고 만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지구당을 장악하기 위해 당적을 허위로 옮기는 등 일부 욕심을 부리는 당원들의 무리한 행동에 대해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규제해왔다. 규정은 자신에 대한 약속이므로 누구나 지켜야 한다.

민주노동당 내부에는 다양한 정파가 존재하고 경쟁하고 있지만 이러한 민주적 의사결정기구와 제반 규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왔다. 일부 당원들이 소규모 사회단체나 비공개 정치조직에서 활동하던 행태는 이러한 규정과 기구, 그리고 공개적인 대중활동이라는 단련을 통해서 현실성 있는 모습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약진 배경에서 지켜왔던 원칙은 이번 의회에서 의원들이 실천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다음 총선에서 또 한번 도약하는데 있어서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 필자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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