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엉망 토론문화가 토론프로그램 제약 한계 초래"
손석희씨 서울대강연, 정치 안맞고 방송 편해, 소탈한 일상사 밝혀 호응
 
홍성관   기사입력  2004/03/23 [12:51]

"우리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막는 큰 잡음은 '불신'이라고 생각한다"

MBC '100분 토론',‘시선집중’의 진행을 맡고 있는 손석희 아나운서가 22일(월) 서울대에서 한국의 토론문화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손석희 아나운서     ©한겨레
손 아나운서는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서 개최된 특별강연회에서 “서로 믿지 않기 때문에 커뮤니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며 “모든 왜곡된 커뮤니티의 공통분모는 불신”이라고 말했다.

손 아나운서는 주최측이 3000원씩 수업료를 걷었다가 환불했던 것을 예로 들면서 “주최측이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수업료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 바로 취소하라고 했다. 이것은 주최측과 나 사이에 잡음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그래도 여러분은 내 덕에 삼 천원 번 줄 아세요”라고 덧붙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또 손 아나운서는 "(사회적으로는)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으면서, 자기와 같은 편인 사람들을 위한 '카타르시스(배설적) 커뮤니티만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치 커뮤니티에서 두말할 나위가 없는데, 라디오 인터뷰를 하면서도 답답함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밝혔다.

한 예로 아무런 합리성이 없는 지역주의를 들면서, 설득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토론문화로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면 끝이라는 식의 문화가 있다”며 “상대의 다름에 대한 관대함이 없다”고 보았다.

손 아나운서는 '불신‘이외에도 '침묵은 금이다'는 문화가 커뮤니케이션을 막는다고 주장했다. “남자들은 침묵해야 하고, 여자들의 대화는 수다로 폄하되는 게 우리 문화이며, 또 한번 말한 건 바꾸면 안 되는 '남아일언중천금'식도 그 중 하나”라면서, “말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가 팽배하다보니, 말을 하더라도 정리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손 아나운서는 토론 프로그램이 시간적 제약과 시청률의 압박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면서 “토론프로그램의 제약과 한계가 우리나라 토론문화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하버마스의 <공적영역의 쇠퇴>를 들어 “모든 논의들이 공적영역에 모여서 합리적인 생산과정을 거쳐 합리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자유로운 장이 되어야 한다”며 토론 프로그램이 시청률로부터 덜 영향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학생들과의 질의 응답시간에 일상생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손 아나운서는 "보통 4시 40분에 기상해 5시에 출근하고, 방송시작 전까지 밤사이에 놓친 기사나 변동사항 등을 체크하며, 방송이 끝난 후 스탭들과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회의를 한다. 그 후 점심식사를 하고 인터넷 검색이나 이메일 확인 등을 하며, 섭외나 아이템에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4시 이후 퇴근한다. 집에 와서도 저녁식사를 하고 인터넷을 한다. 프로듀서나 작가와의 저녁회의는 전화로 하고, 문제가 없으면 일찍 쉬는 편이다. 여러분 생각보다 재미없지요?"고 답했다.

토론의 사회자로서 지켜야 하는 중립성에 대해 손 아나운서는 "공식적으로는 개인적인 입장은 없다“면서, “굳이 얘기를 하자면 의견이 없을 순 없지요. 하지만 의식적으로 중립을 지키려고 애쓴다”고 답했다.

이어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 편향된 적은 없었다. 토론의 경우에도 일부만 보지 말고 총체적으로 보면 결코 편향되지 않다. 가능하면 전방위로 비판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영향력있는 언론인으로 꼽히는 점에 대해서는 “영향력이 있다고 기분 나쁠 것은 없지만, 영향력이 있다는 실체에 대해 믿지 않는 편이다”며 “단지 청취자나 시청자들의 가렵다면 그곳을 긁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의 잇단 ‘러브콜’에 대해서는 “그 쪽(정치) 잘 안 맞고, 이쪽(언론인)이 편하다”면서, “요구사항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쪽으로는 생각 없다”고 못 박았다.

덧붙여 “직업을 통해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봉사할 수 있다면 지금 저는 럭키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학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손 아나운서는 자신의 '100분토론'과 관련해 "요즘엔 많이들 봐요. 시청률이 좀 나오지. 쟁반노래방(동시간대 KBS 2TV 프로그램)때문에... 우리집 식구들만큼 고민이 많은 집이 있을까. 쟁반 노래방을 볼까, 제 식구 나오는 프로를 볼까. 그러나 뻔히 쟁반노래방 보는 거 알지. 그래서 집에 들어가면 클로징멘트 뭐라고 했나 아들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작은 아들과 일요일에 두 시간 정도 동네에서 야구하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면서 “그 통에 아들이 괴롭다. 초등학교 나이에 나의 강속구를 받아내려니..,”라고 답해 또 한번 웃음도가니로 만들었다.

"일요일엔 집 청소를 열심히 한다"며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 많은 여학생들이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번 특별강연회를 기획한 ‘좋은 수업 만들기’는 손 아나운서와의 협의를 통해 취재진의 출입이나 사진촬영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손 아나운서는 “요즘 상황이 복잡미묘 하다보니 어디 가서 얘기하다보면 잘못 알려지기도 하고 그래서... 조용히 왔다 가고 싶었다. 오늘은 방송을 진행하면서 내가 느낀 바들에 대해 학생들과 기분좋게 대화하고 싶었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강의는 수용인원을 한참 초과한 300여명의 학생들이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채 무려 3시간 반 가까이 진행돼, 일부 학생들은 ‘끝장강연’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또 500여명의 학생들이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다 끝내 돌아갈 정도로 관심을 끌어 손 아나운서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4/03/23 [12:51]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