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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7세 고등학생 최초로 지문날인 거부해
주민등록증 신규발급대상자 거부, 지문날인제도 논란 야기
 
참세상뉴스   기사입력  2004/01/14 [16:41]
2004년 1월 12일, 천안의 한 동사무소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만17세의 고등학생이 지문날인 없는 주민등록증 발급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던 해당 동사무소의 공무원들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법률의 규정”을 이야기하며 그런 주민등록증은 발급해줄 수 없다고 했다. 어떤 법률의 규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냐고 묻자 주민등록법 시행령 제33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주민등록법 시행령 제33조의 문장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열 손가락 지문날인”이라는 문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만17세가 되어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으라는 통지서를 받은 이 학생의 지문날인 거부는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찍기 싫어서요”

▲천안시/신안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이가빈 학생

얼마 전 주민등록증 신규발급통지서를 받은 이 어린 고등학생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서류를 보면서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통지서와 함께 동봉되어 온 주민등록증 신규발급신청서를 본 순간 매우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노란색의 신청서 뒷면에 지문찍는 칸이 빽빽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빴어요.”

불쾌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이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본 지문날인 거부운동에 관한 내용을 상기했다고 한다. 사회교과서에는 우리 나라에서도 지문날인을 거부한 운동이 있었다는 내용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었고, 해당 교과 선생님께서도 지문날인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셨던 것이 기억난 것이다. 이 학생은 곧장 지문날인 반대연대로 의뢰를 했고, 지문날인 반대연대는 지문날인 없이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수 있는지 함께 동사무소를 방문하자고 이야기가 되어 이날 동행을 하게 되었다.

동사무소에서 지문날인 없는 주민등록증 신청이 거부되고 난 후 직원에게 거부사유를 문서로 남겨줄 수 있느냐고 묻자 이 직원은 “그런 확인서를 써주는 제도가 없다. 법률의 규정이 없다”라고 하면서 확인서 작성을 거부했다. 동장 역시 "그런 확인서는 써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동사무소야 위(행정자치부)에서 시키는 대로하는 것이니까 문제가 있으면 행정자치부와 직접 얘기하라"고 말한다. 더불어 "왜 이런 일을 이런 지역에 내려와서 하는가, 행정자치부가 있는 서울에서 직접 하라"면서 매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천안시/신안동사무소 장성균 동장이 이가빈 학생에서 왜 지문날인을 거부하는지 여부를 묻고있다. 결국 이가빈 학생은 지문날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못했다

1999년 9월에 제기된 경찰청의 불법적 지문정보활용에 대한 헌법소원은 아직까지 그 결과가 오리무중이다. 헌법재판소가 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헌법소원은 지문날인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이라기보다는 이미 수집된 지문정보를 부당하게 이용하는 공권력의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이었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지문날인제도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지금까지 이 헌법소원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문날인제도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을 하는데 가장 적절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만17세의 주민등록증신규발급대상자인데 이들은 미성년자로서 소송당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의가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어느 부모가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은 자기 자식을 송사로 밀어 넣고 싶겠는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개별적으로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싶어도 부모님의 동의라는 조건 때문에 포기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만17세의 고등학생으로서 동사무소에서 직접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주민등록증 발급을 요구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직 나이 어린 학생들의 입장에서 공무원들 앞에서 거부의사를 밝히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고,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 사회생활의 불편함을 걱정한 집안의 반대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주민등록증 발급을 미루면서 소극적으로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있었고, 이러한 사실들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1월 12일의 사건은 바로 이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동사무소에서 직접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주민등록증 발급을 요구한 사례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있는 다른 고등학교 재학생들에게 상당한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정을 모른 채 이미 지문을 날인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와는 달리 신규발급대상자들이 지문날인을 원천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은 현행 지문날인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될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이 학생이 헌법소원의 제기를 위해 부모님의 동의를 받았다는 점이다. 학생의 의사를 전해들은 학생의 아버지는 헌법소원을 허락했고, 따라서 조만간 지문날인제도시행 이후 최초로 지문날인제도 자체에 대한 헌법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이번 사건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미가 될 것이다. 특히 이 학생의 말에 따르면 이미 주민등록증을 만들었거나 앞으로 만들어야할 상황에 놓인 많은 친구들이 헌법소원이 잘 되서 꼭 지문날인제도가 철폐되었으면 좋겠다고 응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비단 이 학생의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많은 고등학생들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때 헌법소원이 제기된 이후 여기에 동참하려 하는 학생들이 더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서에 지문날인을 할 장소가 명시되어 있다. 이날 이가빈 학생은 이곳에 지문날인을 할 것을 거부했다

▲지문날인을 거부하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상당한 불편을 겪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이가빈 학생은 “뭐 어쩔 수 있나요? 소신대로 하는 거죠”라며 “그런데 이렇게 되면 진짜 지문날인제도가 빨리 철폐될 수 있는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그 동안 지문날인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와 경찰청은 지문날인제도가 필요하다는 강변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불과 고등학교 2학년밖에 되지 않은 어린 학생조차도 지문날인제도가 부당하다고 인식하고 있을 만큼 세간의 인식이 달라졌고, 더불어 2003년에는 법무부에서 인권침해를 이유로 출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제도를 사실상 철폐하겠다고 할 만큼 인권에 대한 의식이 달라졌다. 언제까지 행정자치부는 이 시대착오적인 제도를 빌미로 국민의 인권을 계속 침해하겠다고 할 것인가?

헌법소원의 결과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학생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상당한 불편을 겪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을 하자 이 학생은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어쩔 수 있나요? 소신대로 하는 거죠.” 그러면서도 천진난만한 눈으로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진짜 지문날인제도가 빨리 철폐될 수 있는 건가요?”

이제 행정자치부가 답할 때이다. [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

* 본 기사는 진보네트워크 참세상뉴스 http://cast.jinbo.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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