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덕성여대 103주년, 차미리사 선생을 기억한다
18일 기념식..이윤옥 시인, 차미리사 높이 평가
 
김철관   기사입력  2023/04/18 [21:34]

▲ 대학본부가 있는 덕성여대 정문  ©


18일, 오늘이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덕성여자대학교 창학(創學) 103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본교 약학관 아트홀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103년 전인 1920년, 독립유공자 차미리사 선생이 ‘조선여자교육회’를 창학했고, 조선여자교육회에서 근화학원으로, 지금의 덕성학원이 그 뿌리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본교 도서관 주최로 올해로 여섯 번째 차미리사 선생의 ‘창학 정신 바로알기 에세이’를 공모하고 있기도 하다.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을 두고,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의 저자 이윤옥 시인은 ‘조선 여성을 무지 속에서 해방시킨 사람’으로 표현했고, 덕성을 ‘조선여자교육의 요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서양화가, 판화가, 자연이 그린 그림의 작가로 활동했고, 강북구 수유리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작가의 딸(7)이 덕성여자대학교 부속유치원에 다닌다. 최근 작가가 몸이 많이 아파, 나에게 딸을 ‘등교 좀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다.

 

카카오 영업용 택시를 불러 딸을 싣고 덕성여대 부속유치원에 등원을 시켰다. 이후 유치원을 나오는데, 지근거리에서 석등, 석상 등 문화재들이 많이 보였다.

 

▲ 교정내 문화재  ©


야외 교정에 이런 문화유산이 있는 자체가 신기해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덕성여대 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는 문화재였다. 여기에는 문인상, 동자상, 석등, 석상, 망주석, 장명등, 비석받침 등의 문화유산들이 즐비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지역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의 작품 ‘비석 받침’, 조선 중기의 작품 ‘망주석’, 조선 후기의 작품 ‘동자상’ ‘문인상’ ‘장명등’ 등이 시선을 끌었다. 이들 문화재는 덕성여대를 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관람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안내판에는 문화재 훼손, 기대거나 오르는 행위, 상업적 목적 촬영금지 등의 주의사항과, 안전한 관람을 부탁드린다는 문구도 게재돼 있다.

 

▲ 덕우당  ©


바로 옆에 덕우당(德友堂)이란 한옥 건물이 있다. 덕우당은 ‘덕이 있는 벗들이 모인 곳’으로서, 1930년대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처음 지어졌고, 98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건물이다. 상가동과 사랑채, 안채, 문간채, 별채로 구성돼 있다. 현재 학생들이 세미나실, 대외협력처, 학생상담센터, 서울심리지원동북센터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덕우당 맞은편에, 잘 단장돼 줄지어 있는 짙푸른 향나무가 있다. 그곳으로 향하니, 잔디밭이 나왔다. 그곳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변을 살펴보니 북한산의 만경대, 인수봉 등이 훤히 보였다. 정말 아름답고 위엄을 자랑했다. 장관이어서인지 한참 그곳을 쳐다보면서, 휴대폰 카메라를 연신 눌렀다.

▲ 교정 잔디밭에서 본 북한산 인수봉.  ©


특히 잔디밭 모퉁이에 노란색 설치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미메시스(mimesis, 모방)의 정원’이란 설치작품이었다. 미메시스의 정원은 “인류에 의한 자연의 변화와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모습과 소통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 ‘순환’을 명제로 한다”고 설명을 해 놨다.

 

이후 유아교육관, 테니스장, 운동장, 박물관, 차미리사 기념관 건물, 박물관 등의 외경을 잠시 둘러봤다. 여기에서 관심이 갖던 것은 덕성여대 설립자 ‘차미리사 기념관’ 건물이었는데, 사정상 외부인이라서 내부를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솔직히 기념관 건물에서 자료관을 보고 싶었다.

 

차미리사는 여성독립운동가로, 평소 잘 알고 지낸 이윤옥 시인의 시집 <서간도의 들꽃피다, 2>에 소개된 인물이었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차미리사 기념관이 궁금했지만 어쩔 수 없이 퇴청하기 위해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과 함께 대학본부가 그곳에 있었다. 타 대학에 비해 정문에 대학본부가 있어 다소 생소했다.

 

▲ 덕성여대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 초상.  ©


잠시 건물 실내로 눈길을 돌리자, 대형 흑백 여성 초상이 보였다. 바로 차미리사(1879~1955)선생의 초상이었고 그 옆에 ‘독립운동 유공자-덕성학원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에 대한 설명을 해 놨다. 그의 창학 이념인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을 보니, 뭔가 찡한 느낌이 왔다. 지금 생각해도 명언이기 때문이었다.

 

차미리사 선생은 고종 16년(1879년)에 태어나 당시 무지한 여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여성교육기관 설립 등 계몽 운동을 통해 자주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가 고종황제 때 세상에 태어났으니 왕정에서 활동했고, 50년 6.25를 경험한 이후 55년에 작고했으니 이승만 정권인 공화정까지 활동한 인물이기도 했다. 차미리사 선생의 묘는 학교 후문 뒷산에 있다.

 

특히 차미리사는 조선 여성의 손에 의한 자각적·자립적·자생적 기치를 내걸고 여성교육 기관을 설립해 운영해오면서 헌신한 분이었다.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꽃을 상징하는 근화(槿花)학원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일제의 압력으로 인해 근화에서 지금의 덕성(德成)으로 학원 명칭이 바뀌었다. 그는 2002년 정부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대학본부 2층 계단 입구 벽면에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으로 할동하고 있는 이윤옥 시인이 쓴 차미리사 선생을 위한 헌정시 ‘조선 여성을 무지 속에서 해방한 차미리사-덕성은 조선 여자교육의 요람-’이 걸려 있었다. 이 시는 2018년 5월 29일 <광복회보> 제14면에 실린 시였다.

 

▲ 차미리사 선생에 대한 이윤옥 시인의 헌정시.  ©

 

이윤옥 시인은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조명한 <서간도에 들꽃피다>(얼레빗, 1~10권)를 남겼고, 한 권의 시집에 20여명 씩, 총 200인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직접 조명하면서 헌정시를 남긴 인물이다.

 

이날 대학본부를 나와, 수유리 사무실로 향하는데, 갑자기 소변을 보려고 다시 대학본부를 찾았다. 하지만 들어갈 때 보이지 않았던 경비가 대학본부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의 왈, ‘앞에 팻말을 확인하라’는 것이었다. 보니 ‘대학본부, 외부인 출입 금지’라고 쓴 문구였다. 꾹 참고 수유리 사무실을 향한 이유였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3/04/18 [21:34]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