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광고비에 눈 먼 한경만의 산타랠리
‘현자의 선물’은 명품뿐인가?
 
황진태   기사입력  2003/12/20 [11:08]

한경이 생각하는 ‘선물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국경제신문 17일자 기사, 박성희 논설위원희 선물     ©한국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이하 한경) 12월 17일자 ‘천자칼럼’에 박성희 논설위원이 ‘선물’이란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아 백금시계줄을 사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머리빗을 선물한다는 오 헨리의 단편, ‘현자의 선물’과 2001년작 이정재, 이영애 주연의 영화 ‘선물’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박 위원은 “선물의 본질은 뭐니뭐니 해도 받는 사람이 기쁨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하고 정성어린 마음일 게 틀림없다. 손자를 위해 운동화를 사주고 먼길을 걸어서 돌아오는 ‘집으로’의 외할머니 심정같은.” 것이라고 밝혀주는 훈훈한 글이었다.

그러나 한경은 이러한 박 위원이 말하는 “‘집으로’의 외할머니 심정같은”것과는 너무도 먼 선물관(觀)을 보여주고 있다. 12월 16일자 한경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획특집으로 8면을 할애했다. 이 특집의 눈의 띄는 텍스트를 보자. (이 텍스트들은 이 글이 끝날 때까지 쥐고 있으면 독자들의 기사에 대한 이해가 원활할 것이다.) 

“불경기에 주머니는 가볍지만 가족에게…친구에게…연인에게…”
“정성으로 포장한 ‘마음’드려요.”

한경에서 모처럼 불경기인 것을 감안하여 서민들에게 알찬 정보를 제공해 줄 거라 기대했던 기자로서는 기사를 읽고 나서 그 실망이 컸다. ‘이러니 ‘광고지’란 소리를 듣는 게 아닐까.’가 한경 기사에 대한 내 소감이다. 한경은 선물을 고르는 법에 대해서 충고하기를 “충분한 정보를 갖고 구매계획을 세워야 한다”면서 쇼핑에 나서기 전 신문기사를 훑어보거나 전단 등을 살펴보는 게 좋”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경의 ‘광고지’임을 복선으로 깔아주고 있는 문구였다.

▲12월 16일자 한국경제신문,크리스마스 선물 기획특집란     ©한국경제신문
“선물을 사기 전에 무얼 고려해야 하나”는 한경의 첫번째 질문은 말치레였다. 롯데백화점 홈페이지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상품권이 차지했는데 이는 곧바로 다음 2면에서 "불황의 계절…상품권만한 선물 있나?”라며 상품권에 대해서 2면을 가득 채웠다. 여기서 편리하고 경제적인 ‘상품권테크’란 기사는 정말 선물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주는 기사다. 어떻게 ‘선물을 받고서 그것을 다른 것으로 팔아먹는다’는 ‘교환가치’적인 발상을 크리스마스 선물 ‘특집’으로 지면을 할애할 수 있는 지 정말 ‘독특’하다. 혹시 박성희 위원이 말한 “받는 사람의 기쁨을 먼저 생각”한다는 선물의 본질이 ‘상품권테크’ 기사를 쓴 류시훈 기자의 “아끼고 아껴 돈을 벌자”는 절약정신과 상통하는 건가? 상품권의 거래시세표까지 명시한 류 기자에게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듯하다.

선물은 ‘정성어린 마음의 가치’인가, ‘교환가치’인가

한경에서 예전에는 간단히 선물을 포장하는 방법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족이 함께 만들어 먹는 음식 같은 코너가 있었는데 올해는 그러한 코너를 보기 힘들다. 대체 “정성으로 포장한 ‘마음’ 드려요”라는 큼직한 텍스트와 그 나머지를 차지하는 신문지면의 콘텍스트는 너무나 불일치 한다. 한경은 입으로는 “정성으로 포장한 ‘마음’”을 드린다고 했으나 한경이 제공하는 선물은 ‘교환가치’에 의해서 선별된 것이고 그 교환대상은 바로 ‘광고비’였다.

앞에서 류시훈 기자의 선물관(觀)이 ‘교환가치’가 아닌지 의심했던 것은 약과다. 상품권에 대한 -상품권을 이용한 재테크 전략까지-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알려준 배려는 5면에 지면의 삼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는 롯데상품권 광고와 연결되었다. 어디 이것 뿐인가. 7면에는 “피곤한 연말”에 “원기회복, 정력증진, 성인병 예방, 면역기능 강화..”를 위한 건강식품 설명이 도배를 했다. 주객전도의 극한으로 기사와 광고와의 경계가 거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인지 기사인지(손성태라는 기자가 쓴 것으로 보아서 기사인 듯하다.) 건강식품에 대한 제품소개에서 언급된 ‘상황버섯’이란 제품에 대해서 2면에서 하단광고를 하고 있고, 중소기업보다는 광고수주가 좋은 대상그룹에서 내놓은 ‘클로렐라’라는 제품은 역시 ‘광고인지 기사인지 헛갈리는’ 기사에 실린 설명으로 부족했던지 8면에 제품 전면광고를 실었다.

계속해서 한경은 “계절적으로는 춥고 건조해 보습크림과 에센스 등 피부에 영양을 주는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때”라며 “이 때문에 화장품 선물세트는 가장 대표적인 성탄 선물상품으로 꼽힌다”면서 화장품에 대해서 설명을 줄줄이 하다가 -기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서- 역시나 3면의 삼분의 일을 화장품 광고로 채웠다. 기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때”가 “자사의 광고수주가 늘어나는 때”라서 한경이 “이 때문에 화장품 광고는 가장 대표적인 성탄 광고수주로 꼽힌다”고 보는 듯 하다.
 
아이까지 팔아먹는 파렴치한 광고지로 전락할 것인가

박성희 논설위원은 이러한 교환가치가 내재된 한경의 선물관(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한경은 최근 국제면에서 외국의 연말 ‘산타랠리’가 부러워서 그런가? 한경의 크리스마스 선물 기획특집의 대문면에다가 “불경기에 주머니는 가볍지만”이라고 박고서 마치 서민들을 배려하는 듯한 텍스트에서 실로 가증이 묻어난다. 특히 한경이 누리고픈 ‘산타랠리’에 진정 아이들을 위한 ‘산타’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한경을 구독했었는데 기자의 어렸을 적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노동자인 아버지는 일찍이 소액주주로 증권과 경제정보을 얻기 위해서 한경을 구독하셨고 그로 인해서 기자 또한 한경을 초등학생 시절부터 읽기 시작했다. 당시에 가장 흥미로웠던 기사는 나이가 어려서인지. 게임 회사에 대한 동정기사가 가장 흥미를 끌었다. 직접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세가(SEGA)와 소니, 그리고 닌텐도(NINTENDO) 등의 회사가 게임시장이란 파이를 두고서 펼친 한판 경합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해줬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그러한 기업 간의 경쟁만으로 만족을 충족시켜줬겠는가. 닌텐도 64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어린 소년은 그 게임기기가 너무나도 갖고 싶어졌다. 그건 단지 게임기 시판으로 인한 ‘광고 아닌 기사’가 아니라 객관적인 보도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소년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던 것이다. 당시 집안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소년의 맹목적인 땡깡은 노동자인 아버지에게 ‘가난’이란 단어를 다시 한번 가슴 속에 쓸리게 하였다. 당시 불경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게임기는 중하층 계층에게는 선물이라기 보다는 ‘사치’였었다.

기자가 왜 어렸을 적 일을 꺼내놓는 가 하면 한경이 이젠 ‘아이’까지 팔아먹는 고약한 심보에 화가 나서다. 한경은 특집에서 “꼬마는 게임기”란 두터운 텍스트를 박고서 플레이스테이션2와 엑스박스에 대해서 “겨울방학이 다가오면서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게임기나 게임CD의 수요가 부쩍 늘고 있”기 때문에 “꼬마는 게임기”를 사야 한단다. 한경의 기사에 의하면 옵션을 제하더라도 게임기기의 기본가격이 21만원. 불경기에 이러한 고가격 게임기를 대한민국의 꼬마들은 죄다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꼬마는 게임기”? 이건 절대 비약이 아니다. 도대체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2만원도 아닌 21만원짜리를 광고하면서 어떻게 “불경기는 주머니는 가볍지만” 서민을 배려하는 듯한 문구를 달 수가 있는가 말이다. (게임기 이외에 다른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소개했으면 기자가 마지못해 ‘배려’라고 받아들였겠지만) 회초리를 맞아오던 기자의 어린시절도 땡깡을 부렸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 땡깡이 오죽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자기 자식만큼은 다른 자식한테 기가 꺾기는 것을 못 본다는 요즘 부모들은 카드를 긁어서라도 게임기를 안 사주겠는가.

여기서 또 하나의 오류가 발견되는데. 한경은 최근의 불경기가 그간 한경 오피니언을 통해서 ‘DJ정권부터 시작된 잘못된 무차별한 카드남발로 인한 경제정책’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집’으로 편성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보통 서민인 독자들에게는 카드를 긁어서만이 살 수 있는 상품들이다. 한경은 자신들의 광고비만 챙긴다는 단차원적인 경제적 사고가 다차원적으로 구조화된 거시경제 상에서는 한경이 그토록 비판하던 카드정책을 향한 화살이 결국 한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한국경제’에 대해서 이리도 무지의 소치를 보이면서 ‘한국경제신문’이라고 떵떵거리는 오만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박성희 논설위원은 ‘선물’이란 칼럼에서 영화 ‘선물’의 대사를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그리고 그거 알아? 당신은 세상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걸.” 한경은 선물을 ‘교환가치’로 보는 인간미가 피폐해진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미가 스며있는 선물에 대해서도 알길 바란다. 다시 한경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거 알아?”/사회부기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12/20 [11:0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