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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람죽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다룰터"
감시카메라에 비친 한남자의 몰락 ‘모자이크 다큐’로 구성
민주노동당 진성당원, 전주영화제 3인3색 디지털 선보여
 
취재부   기사입력  2003/12/13 [12:14]

2003년 한국영화 최고의 영화감독을 손꼽으라면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     ©대자보
우리사회의 ‘엘리트’들에게 날카로운 조소를 보냈던 단편 ‘지리멸렬’ 이후 내 놓는 영화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으며 ‘살인의 추억’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라갈 준비를 마친  봉감독이 이번에는 ‘디지털 영화에 도전한다.
일본 이시이 소고(46), 홍콩 유릭와이 감독(37)과 함께 내년 4월 개막되는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3인3색’에 참가하는 봉준호 감독(34)은 디지털 작업이 처음이라고 한다. 전주 영화제 사무국에서 이 세 감독에게 5000만원씩 지원해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30분 안팎의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 옴니버스 3부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봉 감독은 이번 작품에 대해 은행의 감시카메라, 공익근무자들의 캠코더 등에 우연히 담긴 한 남자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불경기 속에서 무너지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모습을 이루는 ‘모자이크 다큐’로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플란더스의 개, 살인의 추억에 이은 세번째 장편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번째 장편에 대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재난에 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등 재난이 유독 많은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사람이 죽는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봉준호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과 함께 민주노동당 당원인 것으로 알려져 언론의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단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며 당비를 내는 유권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97년 대선부터 개인적으로 권영길 대표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12월 9일 명동 세종호텔에서 이뤄졌다. 아래는 봉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이번에 내년 전주영화제를 위해  디지털로 작업을 하는 소감은?
개인적으로 영화를 배울 때 스팀백 앞에서 16mm필름을 가지고 작업한 마지막 세대라는 경험이 있고 8mm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물론 표현하는 도구에 따라 다른 특성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릿이지 도구는 아니라고 본다. 이번 작업은 개인적으로 처음 디지털 작업을 한다는 의미도 있다. ‘라이크어 버진’ 이다. (웃음)

▼영화아카데미 20주년 기념작 <씽크엔 라이징>의 경우 다른 19명의 감독과 달리 디지털이 아닌 필름으로 작업을 했는데?
<씽크엔 라이징>의 경우에는 “디지털기술의 진보로 이런 화질이 나옵니다”라고 속이려고 했는데... (웃음) 사실은 그 작품이 원씬 원테이크라 다리 밑에 어두운 장면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찍을 경우에 화면이 하얗게 날아갈 위험성이 있고 촬영 중 조정도 용이치 않아 슈퍼16mm로 작업했다.
▼작품에 나타나는 성향이 늘 약자나 패배자에 대한 애정을 보내고 그들을 돕는 진보적이지는 않으나 경우에 밝은 ‘원로’가 등장하는 것 같은데?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정도의 애정과 의식은 있다고 본다. 큰 의식이나 의무감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변두리나 주변부의 삶과 생활이 재미있는 점이 많다고 본다.
▲봉준호 감독     ©대자보
▼현재 민주노동당 당원인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 예술가가 진보정당 당원인 것은 아직 특이한 모습인데?
원래 당원이었는데 당에서 모르다가 뒤져보니 내가 당원임을 안 것 같다(웃음) 통장에서 매달 당비를 걷어가고 있기 때문에 당비를 내는 당원이고 유권자로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이전 97년 대선부터 개인적으로 권영길 대표를 좋아한 점도 있다.
▼대학 때 전공이 사회학인 것으로 아는데 그 영향이 있는 지?
대학은 국문과와 철학과 사회학과 등을 놓고 고민하다가 골라간 경우인데 사회과학을 한 것이 도움이 되는 면도 있을 것이지만 특히, 학교생활 중에 정말 좋은 동기나 선•후배를 많이 만난 것이 삶과 작품에 도움이 됐다.
▼올해 개봉한 <살인의 추억>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있는데, 이전 작품과 다르다는 관객도 있고 이전과 같은 흐름으로 보는 관객도 있다.
첫 장편인 <프란다스의 개>는 솔직히 첫 장편이라는 생각 보다는 이전에 찍은 단편 3작품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발산하고 뽑아낸 작업이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엄청난 사건이 실재로 존재를 했고 좋은 원작(김광림 작•연출의 연극 ‘날보러 와요’)이 있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예의를 지키도록 노력했다. 그런데도 개인적인 특징이 여기저기 드러난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첫 장편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모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스며 있는 것 같다. 본인은 다른 영화로 찍었는데도 관객이 감독의도를 느낀 것 같다.
스페인의 한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주면서 멘트가 있었는데 ‘군사독재 상황을 연쇄납치, 살인과 잘 대비시켰다’는 코멘트를 들었다. 어떤 분들은 너무 약하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너무 직접적이라고 까지 한다. 아마도 자신이 지나온 경험과 의식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     ©대자보
▼전주영화제를 위한 작업을 좀 더 설명해 준다면?
일종의 페이크다큐멘터리, 혹은 ‘모큐멘터리’ 장르로 실제사건을 다룬 기록 같지만 실제로는 연출된 내용이다. 한 남자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불경기 속에서 무너지고 망가지는 모습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줄 예정이다. 은행의 감시카메라, 공익근무자들의 캠코더 등에 우연히 담긴 한 남자의 소멸해 가는 모습을 담을 것이다.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모습을 이루는 ‘모자이크 다큐’로 보면 될 것 같다. 
▼그 후에 찍을 3번째 장편도 구상중인 것으로 안다.
재난영화를 구상중인데 <타워링> 같은 할리우드적인 컨벤센 한 작품이 아닌 갑자기 사람이 죽는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다룰 예정이다. 이번엔 농어촌에 가지 않고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봉 감독은 영화관계자들 사이에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꼽힌다. 그 비결을 말해 준다면?
비결이라고 하기는 아직 쑥스럽다. (웃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솔직히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이 너무 길다고 좀 자르자는 압력이 있었는데 내가 고집으로 버텨서 극장판이 곧 감독판인 영화가 됐다. 그런 점이다.
▼끝으로 어린시절 영화감독이 된 토대를 마련해 준 계기가 있다면?
누구 영화인지도 모르고 TV에서 우리가 본 <자전거도둑>이나 셈 페킨파의 명작들이 비디오도 흔치 않던 그 시절에 좋은 ‘교재’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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