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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청문회, 수첩을 탓하랴 세상을 탓하랴
[변상욱의 기자수첩] 왜 기자는 녹음만 하고 보도하지 못하는가
 
변상욱   기사입력  2015/02/12 [23:47]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왜곡된 언론관에 대해 비판과 질책이 청문회에서 터져 나왔다. 그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이 후보자가 지난달 27일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담긴 녹음파일. 그날 술자리에는 4명의 기자가 있었다 한다.
 
◇ 기자들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정당한 걸까?
 
이 질문은 이렇게 되물어 보면 조금 더 명확해진다.
▶대화 중 허락받지 않은 녹음은 몰래 엿듣는 도청과 같은가?
▶ 녹음은 하지 않았는데 꼼꼼히 기록하면 잘못된 걸까?
▶ 대화내용을 외운 뒤 복기해 문건으로 만들면 부당한 취재행위일까?
▶초대받은 기자의 취재원과의 대화 녹음은 프라이버시 침해인가?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청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법률이 따로 규정해 놓은 예외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의 취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그 대화를 하는 타인의 발언을 녹음 또는 청취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3인 간의 대화에서 그 중 한 사람이 상대의 발언을 녹음·청취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취재기자의 녹음은 합법적이다. 남는 문제는 상대방인 이완구 후보의 녹음하지 말라는 요구와 이에 대한 기자의 동의가 사전에 있었는지 여부이다.
 
기자가 취재원과의 대화를 녹음하는 건 최선의 방책이다. 대부분 불리한 보도가 나가면 ‘그런 말 한 적 없다’, ‘편집됐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걸 보도하다니 반칙이다’ ... 이렇게 도망친다. 그 때 가장 확실한 기자의 증거와 반박은 녹음기록에서 나온다. 녹음기록에 의해 그저 말실수가 아닌 분명한 의견과 주장이었고, 정확한 내용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녹음을 못하고 기록만 했을 경우 기록 내용을 본인에게 확인시키고 서명을 받기도 하고 동석한 다른 기자의 취재수첩 내용이 반론에 대한 반박 증거로 채택도 된다. 취재보도 내용이 문제가 돼 법정에 설 경우 동석했던 다른 동료기자의 기록이 중요한 증거나 판정 자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기록하고 기록물은 장기간 보관해야 한다. 우리 풍토에서는 취재기록에 서명을 받는 일이 피차간에 어색하니 녹음이 최선이다.
 
◇ 왜 녹음하고도 보도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커다란 이슈가 될 사안을 왜 보도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이유와 해명을 읽어보지만 납득되는 건 없다. 보도하지 않겠다는 기자의 약속이 있고, 이에 대한 데스크 및 편집책임자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취재기자와의 모든 대화는 보도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기자도 총리 후보자도 이를 모를 리는 없다. 이 정도 내용은 별 것 아니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판단이 어디에서 비롯됐을까하는 점이다.
 
언론계에서 사회부 사건 취재 기자, 흔히 ‘사스마와리’라 부르는 젊은 기자들을 ‘기자의 꽃’이라 부른다. 왜 노련한 베테랑이 아니라 젊은 사건기자가 ‘기자의 꽃’이 되었을까? 그것은 우리의 시대상 및 언론의 굴욕적 처신과 관련이 깊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과 정책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들은 철저히 통제되었다. 힘 있는 거물 정치인은 언론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못했다. 문제 발언 좀 했다고, 언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가치관과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는 못하고 살았다. 청와대, 국회, 외교와 국방 등의 분야에서 취재도 보도도 쉽지 않으니 언론사들의 우위 경쟁은 사건 속보와 특종에서 판가름 났다. 그래서 매일 특종경쟁에 나서고 있는 젊은 경찰서 담당 기자들이 취재전쟁터로 내몰렸고, 그 사건기자들은 그날 그날 승부를 가르는 첨병이었고 꽃으로 대접 받았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비리들이 터져 나오고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던 시기이다. 이때는 검찰이 대형 기획수사로 사회의 흐름을 주도했고 검찰공화국이란 위명까지 얻었다. 언론계에서는 사건기자에서 검찰법원을 담당하는 법조기자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기도 했다. 취재와 보도도 이처럼 시대적 산물이고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행위이다. 녹음내용을 보도는 하지 않았지만 야당에 넘겨준 뒤 뒤따라가며 보도하는 것도 당연히 정치적 행위이다.
 
총리 후보자, 여당 거물 정치인의 폭압적인 언론관을 듣고도, 보고 받고도 당장 보도하지 못한 배경은 무얼까? 과연 술자리의 사담이었기 때문일까? 관계가 틀어지면 총리라는 중요 취재원을 놓칠까봐서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일까? 혹시 70년대 80년대에 체득된 관변적 타성이 전승된 거라고 본다면 지나친 오해일까? 더구나 이전 후보였던 문창극 씨의 경우 교회 강연에서 드러난 역사관의 일면이 총리 낙마 요인이 되었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언론사 간부들을 이리저리 흔들고 프로그램 제작과정에 압력을 넣었다는 본인의 실토가 별 것 아니라 판단한다는 건 오히려 상식에서 벗어난다.
 
총리 후보자 쯤 되는 사람이 기자들을 불러 놓고 ‘너네들도 한 번 당해볼테냐’…라고 큰소리치는 세상. 이런 총리 후보자를 수첩에서 꺼내 내어놓고 청문회 통과를 요구하는 세상이라니…대통령의 수첩을 탓해야 할 지 우리의 처지를 탄해야 할 지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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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2/12 [23: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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