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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그들 안의 파시즘’
[인물과 사상의 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영남 패권주의
 
신기주   기사입력  2014/07/01 [01:47]
고종석은 2002년 『서얼단상』에서 지역주의에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고종석은 이문제에 관해선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종석은 영남 패권주의야말로 한국 사회를
침몰시킨 원흉이라고 주장한다. 이번에도 세월호 참사의 숨은 원인 역시 그것일 수 있다고지적한다. 한국은 소수자와 피해자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주류 일변도의 위험 사회다. 고종석은 끊임없이 다수의 입장을 배격하고 소수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려고애써왔다. 세월호의 비극 앞에서 한쪽은 미안하다고 말한다. 다른 쪽은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고종석은 양쪽 주류와는 다른 시각으로 사태를 바라본다. 도발적이다. 폐부를 찌른다.

▲ 작가 고종석     © 인물과 사상
1959년 9월 22일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출생했다.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언어학 석사를 받았다. 영자 신문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한겨레』 창간에 참여했다. 1993년 『기자들』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1994년 유학을 떠나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언어학 박사를 받았다. 1995년 『고종석의 유럽통신』을 썼다. 1999년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언론계에 복귀했다. 1999년 『감염된 언어』와 『국어의 풍경들』을 썼다. 2002년 『서얼단상』을 썼다. 2005년 『한국일보』 논설위원직에서 물러났다. 2006년 『모국어의 속살』을 썼다. 2009년 『경계긋기의 어려움』을 썼다. 2010년 최인훈의 연작 장편 소설 『회색인』과 『서유기』를 완결짓는 『독고준』을 썼다. 2012년 절필했다.

마피아 같은 한국 관료 사회

신기주 지금 청와대 앞에 있다가 오는 길입니다. 오면서 KBS 1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이 새벽부터 아침까지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 모여 있다는 얘기 같은 건 나오지 않더군요.

고종석 (당연하지 않느냐는 표정)

신기주 현장 상황에 대해 트위팅을 하시는 걸 봤습니다. 언론을 통해선 기사가 안 나오니까 트위터 말고는 정보를 습득할 방법이 없더군요. 유가족들이 어버이날 저녁에 서울로 올라와서 9일 오전에 청와대 앞에 모여 있는 상황은, 이제까지 진도와 안산이었던 사건 현장이 서울로 옮겨왔다는 걸 의미합니다.

고종석 내가 좀 얘기할게요. 좁게는 한국 정치, 크게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영남 패권주의라고 생각해요. 영남 패권주의의 기원은 물론 박정희한테 있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직후만 해도 경상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죠. 오히려 만주 인맥이 중심이라 이북 사람이 많았어요. 특히 평양 사람이 많았죠. 박정희 집권이 계속되다 보니까 점점 군부 요직이 대구경북, 이른바 TK 중심으로 바꿔치기 되죠.

신기주 왜 그랬던 건가요? 박정희도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만주 인맥인데요.

고종석 만주 인맥이지만 고향은 구미니까. 믿을 사람은 고향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겠죠. 하나회도 그렇죠. 박정희가 하나회를 직접 만든 건 아니지만 계속 뒷배를 봐준 건 사실이니
까.

신기주 군부 내에 TK인맥을 조성해놓은 건 사실이죠.

고종석 군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든 부분에 TK인맥을 심어놓았죠. 관료 사회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에도. 삼성만 해도 영남 패권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삼성이 지금은 정부만 해져서 영남 패권주의가 더 공고화되고 있는 상황이고.

신기주 삼성의 본산이 대구인 건 맞죠.

고종석 이걸 흔히 지역주의라고 하는데, 그 말은 적합하지 않아요. 영남 패권주의라는 건 일종의 신분제거든요. TK를 정점으로 하는 일종의 신분제 혹은 인종주의라고 생각해요. 박정희가 1961년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반세기가 조금 넘었죠.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했던 단 5년을 제외하면 모두가…….

신기주 영남 출신이었네요.

고종석 최초에는 폭력에 의해 권력을 잡은 집권 세력에 의해 영남 패권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했지만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어요. 지금은 한국 사회에 넓게 퍼진 상황이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말할 순 없죠. 그래도 영남 패권주의는 이 안에서 계속되고 있어요.

신기주 이젠, 한국이 정말 민주 사회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고종석 이번에 세월호 사건에서도 소위 일베라는 쪽에선 이런 얘기를 했잖아요. 선장이 전라도 사람이면 좋겠네. 유병언도. 사고가 전라도에서 났네. 뭐, 다 사실이 아닌 말들이었죠. 일베가 영남 패권주의의 주류라고 할 순 없어요. 일베라는 하위문화가 영남 패권주의를 떠받들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별다른 사회적 처벌을 받지 않잖아요. 유럽에
서 인종주의적 발언을 하면 법원의 형사 처분 대상이죠. 한국은 다르죠. 전 지금 상황이 거의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와 비슷하다고 봐요.

신기주 파시즘의 본질은 타자를 배척하는 것이니까요.

고종석 순수성을 강조하죠. 인종 간의 위계질서가 강조되죠. 히틀러는 아리아족을 최상위에
놓고 그 밑에 라틴족이나 슬라브족을 뒀죠. 쓸어버려야 하는 종족으로 유대인을 설정했어요. 한국에서도 지도자는 항상 영남에서 나와야 돼요. 영남과 호남 사이엔 신분적 위계가 있죠. 한국은 이 단계까진 가지 않았지만 이런 분위기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하다고 봐요. 단순히 지금의 집권 세력과 그 세력을 지지하는 소위 일베 같은 극단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야권에도 퍼져 있는 사고방식이거든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기 얼마 전에 「신분제로서의 지역주의」라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거기서 이런 말을 처음 했어요. 한국에서 지역주의는 인종주의고 신분제다.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에서도 그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요. 2007년의 낮은 투표율과 득표율을 보세요.

신기주 반면에 2012년 대선은 투표율과 득표율이 모두 매우 높았죠. 정동영 후보는 전라도
순창 출신이고 문재인 후보는 부산 출신이네요.

고종석 그게 문재인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정치적 능력과 도덕성에서 온 차이냐는 거죠. 전여기에도 신분제와 인종주의라는 지역주의가 개입했다고 봐요. 당시 대부분의 야권 지지자들은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거죠. 양심적인 야권 지지자들은 차마 이명박을 지지할 수는 없었으니까 기권을 했겠죠. 아니면 전라도 사람이 되는 것보단 이명박이 되는 게 낫다면서 찍었을 수도 있고. 물론 증거는 없는 얘기죠. 하지만 이 정도의 표 차이가 났다는 건 야권 내에서 강고한 영남 패권주의가 뿌리 박혀 있다는 의미일 수 있어요. 야권에서는 지금도 그러잖아요. 영남 후보가 아니면 안 된다. 영남 후보가 나서고 호남이 뒷바라지를 해줘야 정권이 교체된다. 특히 호남 후보로는 정권 교체는 불가능하다. 공식이죠.

신기주 그게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대표한테 야권 표가 모이는 이유잖아요.

고종석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영남 패권주의가 해체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봐요. 세월호 사건만 해도 그래요. 해피아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해수부 마피아. 재경부를 장악한 모피아 집단처럼 해피아도 결국 영남 사람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을 거예요. 한국 관료 사회는 자기네들끼리 혈연적 동질성을 느끼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마피아 같은 구조입니다. 사실 상상된 혈연에 불과하지만 결국 다 우리 편이란 식이죠.

신기주 그게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라고 믿어 의심치 않죠.

고종석 1992년 대선 때 김윤환이 처음 내세웠던 구호가 있잖아요.

신기주 우리가 남이가?

고종석 그 구호 덕분에 대구경북 TK가 부산경남 PK까지 흡수한 꼴이 되었죠. 김영삼 대통령은 3당 합당을 통해 대통령이 되긴 했죠. 대통령이 되고선 민주화 조치를 많이 취했죠. 정작 막판에 경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외환 위기를 맞으면서 실권하고 말죠. 결국 PK가 TK한테 흡수된 정치 현실만 남게 됐죠. 그전까지만 해도 PK는 민주 세력의 큰 보루였어요. 보수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버리게 된 거죠.

신기주 영남 패권주의가 확대 강화된 거네요.

고종석 굉장히. 그전까진 TK패권주의였어요. 대구경북 패권주의. 3당 합당을 통해 오히려 영남 패권주의가 거의 완성되었죠. 만약 호남 지역주의나 충청 지역주의라는 말이 있다고 쳐요. 그런 용어는 말이 안 되거든요. 인종주의를 생각해보세요. 보통 강자가 약자를 배척하는 게 인종주의죠.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건 명백한 인종주의죠. 흑인이 백인을 따돌린다고 해서 인종주의라고 부르진 않죠. 우스운 일일 뿐이죠. 전라도도 충청도의 지역주의는 그런 거죠.

신기주 호남이나 충청엔 패권이 없으니까요. 그건 그저 지역감정일 뿐일 텐데요.

고종석 그래서 문제시 되어야 하는 건 영남 패권주의뿐이죠.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고. 그걸 만든 사람은 박정희지만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부터, 심지어는 문재인 후보까
지 그걸 거든 셈이죠. 본의였든 아니었든. 가장 큰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에선 아무도 이걸
건드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동자 문제나 계급 문제는 굉장히 과격하게 발언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영남 패권주의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아요.

신기주 그만큼 고착화되어 있고 아무도 자유롭지 못해서일까요.

고종석 지금 새누리당의 중진 역할을 하고 있는 이재오나 김문수 같은 사람을 보세요. 민중당 출신들이죠. 좌파 정당을 하다가 결국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에 대거 입당하게 되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들이 영남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신기주 이념보단 지역 기반 결합이었단 거군요.

고종석 김대중을 정치적으로 가장 힘들게 했던 건 그 양반한테 씌워진 빨갱이라는 억지 굴레가 아니었어요. 전라도 출신이라는 게 더 결정적이었죠. 해방 직후에 좌익 정당에 잠깐 몸을 담갔을진 몰라도 그 이후로는 내내 일관되게 우익이었죠. 반면에 박정희는 남로당 출신었다가 자기 동지들을 다 팔아먹고 전향한 사람이잖아요. 만약 어떤 사람들을 이념적으로 추궁하려면 오히려 박정희를 추궁해야죠.

신기주 그것도 지역에 기반한 이중 잣대란 말씀이군요.

고종석 박정희가 전라도 사람이고 김대중이 경상도 사람이었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졌을
걸요?
 
신기주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함부로 얘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겁니다.

고종석 아주 뜨거운 감자라서 그렇죠. 서남대학교 법학과에 김욱 교수라는 분이 있어요. 『영남민국잔혹사』라는 책을 2007년에 써서 영남 패권주의를 심하게 비판했어요. 그런데 어떤 신문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어요. 조중동뿐만 아니라 『한겨레』나 『경향신문』에서도 다루지 않았죠. 과연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 그랬던 걸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쪽도 진실을 안 보려고 하는 거죠.

순혈주의로는 안 된다

신기주 이 시점에서 영남 패권주의를 다시 지적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고종석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거죠. 특히 일베 현상 같은 걸 보면 영남 패권주의의 반향 같은 거라. 지금 야권에서도 계속 똑같은 노선이죠. 영남 후보, 특히 PK후보를 내세우고 호남에서 몰표에 가까운 지지를 하고 영남에서 표를 일부 끌어와야 이긴다는 식이죠.

신기주 그건 이미 정치 공학적으론 해답처럼 여겨지고 있죠.

고종석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해서 한 번 당선이 됐고. 전 그런 건 전략적으로도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윤리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특정 지역 출신자들한테 특권을 몰아주는 행위죠. 가능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영남 출신 후보가 아니라 영남 이외의 후보가 나와서 영남을 포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호남 출신 후보가 나오면 제일 어렵겠죠. 충청이나 수도권이나 강원도에서 후보가 나오고 다른 지역이 연합해서 영남을 고립시켜서 정권 교체를 이루면 비로소 영남 패권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하겠죠.

신기주 정권 교체만큼이나 영남 패권주의 해체도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고종석 전 다음에도 새누리당이 계속 집권할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죽을 쑤고 있는데도 지지율 좀 보세요. 설령 운이 좋아서 새정치민주연합쪽 후보가, 그러니까 문재인이나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영남 패권주의를 해체할 순 없어요.

신기주 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군요. 세월호 같은 국가적 인재는 또 일어나고.

고종석 호남 사람들도 이제 이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해요. 우리가 새누리당을 찍을 순 없지 않느냐. 군사 정권의 후예 정당을 찍어줄 순 없지 않느냐며 계속 몰표를 줬죠. 지난번에도 문재인 후보한테 몰표를 줬죠. 호남 사람들도 이런 행태를 반복할 것이냐. 사실 이런 투표 행태 때문에 오히려 호남 사람들이 지역주의자라고 욕을 먹어요. 어떻게 이런 목표가 나올 수 있느냐고요. 그런데 호남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신기주 한국 대선처럼 표 대결로 대통령을 뽑는 제도 아래에선 필연적으로 지역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가 많은 지역이 대통령을 결정하는 거죠. 사실 미국 정치에서조차 이런 정치 행태가 발견되는데요.

고종석 미국에는 스윙 스테이트가 있잖아요. 한국처럼 한 번 공화당이면 영원한 공화당이라거나 한 번 민주당이면 영원한 민주당인 구조가 아니죠. 게다가 미국은 인구 비례가 아니라 선거인단을 확보해서 그들이 대통령을 뽑는 식이니까요.

신기주 미국은 인구 비례식 대선의 단점을 보완한 셈이지만 한국은 대선이 점점 더 무조건수적으로 우세한 쪽이 이기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죠. 덕분에 2012년 대선은 국민이 총동원된 내전 수준으로 치러졌고요.

고종석 이젠 사람들이 그걸 거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문제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도 부산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배척하니까 나온 말이긴 합니다만, 노무현이 부산 사람인데 왜 우리가 부산 정권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죠. 굉장히 경솔한 말이었죠.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부산이 뒤집어져야 대선이
뒤집어진다면서 거의 부산에만 머물렀죠. 어차피 호남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테니까요.

신기주 호남은 잡은 물고기란 거군요.

고종석 호남이 날 지지하지 않으면 누굴 지지하겠느냐는 거죠.

신기주 앞서 물었듯이, 지금 이 시점에서 영남 패권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해피아이고, 해피아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인영남 패권주의의 산물이라는 건가요.

고종석 어떤 집단이 완전한 순혈 집단일 때 그 순혈은 반드시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 안에서 서로 견제가 안 이뤄지니까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세월호 참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부조리는 결국 순혈 집단 안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병폐들이었죠.

신기주 그리고 그 근원은 유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요.

고종석 사실 박정희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공동 지지로 대통령이 됐어요. 윤보선 후보가 박정희 후보를 빨갱이로 몰면서 경상도와 전라도에는 빨갱이가 많다는 실언을 하죠. 덕분에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지를 받아서 대통령이 됐죠. 1971년 대선에서 우연히 자기 맞수가 호남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처음으로 신라 대통령론을 꺼내들어요.

신기주 김대중 후보였죠.

고종석 당시 공화당으로 국회의장이었던 이효상이 신라 대통령론이나 경상도 대통령론을 꺼내들죠. 1971년 대선이 사실상 지역주의의 출발점인 거죠. 1980년 광주 학살에서 완전히
악화된 거고. 전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극우적 성향이 강한 사회라고 봐요. 한 지역, 구체
적으론 영남이 강고한 패권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극우 사회라고 봐요. 차별과 배제를 기반으로 한 인종적 위계질서 속에서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지역이라는 건 피로 환원되는 가치거든요.

신기주 피든 지역이든 무슨 이유에서든 타자를 배척하면 파시즘이니까요.

고종석 그런 파시즘이 이미 대중적으로 많이 확산됐어요. 영남 출신의 노빠나 문빠들 중에
도 일베 못지않은 호남 혐오자가 많거든요. 그걸 보면 이 사람들은 도대체가 민주주의가 뭐
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진보에도 여러 가치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차별
의 철폐일 겁니다. 어떤 사람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핍박을 당하면 진보적 지식인이 나서겠
죠. 어떤 사람이 호남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면 그것에 대해선 눈을 감죠. 영남 패권주의
에서 나오는 부조리한 현실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신기주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영남 패권주의의 수혜를 입은 당사자입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경남 거제 출신이죠. 정홍원 국무총리는 경남 하동, 강병규 안행부장관은 경북 의성, 이주영 해수부장관은 경남 마산,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경남 하동이죠. 정권 자체가 영남 정권이죠.

고종석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되는 건 아니겠죠. 전 이제 영남 이외의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료 사회만 봐도 영남이 과대 대표되고 있잖아요. 경제 부처나 검찰처럼 힘 있는 부처일수록 영남이 과대 대표됩니다. 이래선 한국 사회는 계속 썩어 문드러질 겁니다. 세월호 같은 참사는 계속될 거고. DJ정부 때 『동아일보』가 사고를 친 적이 있어요.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라는 기사였죠. 『동아일보』가 이때 이걸 1면 톱으로 뽑으면서 처음으로 자기 정체성을 선언하죠. 호남 정권 아래에서 대구와 부산 경기가 안 좋다고 대대적으로 쓰는 건 명백하게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기사죠. 이전까지만 해도 『동아일보』는 중도를 표방했죠. 결국 이 기사로 『동아일보』도 영남 패권주의에 휘말려요. 하긴, 영남 독자들이 더 구매력이 있죠. 게다가 지금은 『동아일보』가 삼성과도 혼맥으로 연결되어버렸죠. 이제 조중동이 영남 패권주의의 본거지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 되었으니까. 전 『한겨레』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봐요. 친노 세력과 연관이 있으니까요. 최악을 피하려면 어쨌든 영남 출신 후보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죠.

신기주 진보적이지만 패권적인 거군요.

진보와 차별은 양립할 수 없다

고종석 그런데 그 진보라는 것과 차별이란 게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걸까요. 진보라는 가치와 신분적 위계질서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저는 위선적이라고 생각해요. 차라리 조중동처럼 대놓고 하는 것보다 『한겨레』가 위선적이라고 봐요. 『오마이뉴스』도 그래요. 2007년 대선 때 정동영이 대선 후보로 나오니까 『오마이뉴스』는 문국현을 계속 띄웠어요. 정동영이 전라도 사람이 아니였으면 그냥 밀고 나갔을 겁니다. 그때 『오마이뉴스』에 무척 실망했는데요. 『오마이뉴스』도 대통령 만들기를 하려고 하더군요. 이명박 정권 때는 조국을 띄워보려고 애를 썼죠. 학벌 자본과 외모 자본까지 갖고 있으니까.

신기주 조국 교수도 부산 출신이던가요?

고종석 부산 출신이죠.

신기주 미국에서도 흑인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차별한다고는 얘기하지 않아요. 설사 흑인이라서 차별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명분은 다른 곳에서 찾죠. 『오마이뉴스』도 설사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호남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내세우진 않는다는 거죠. 오히려 문국현이나 조국 같은 사람들이 훨씬 본선 경쟁력이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겠죠. 이렇게 되면, 누군가를 인종주의자로 몰았다간, 거꾸로 역공을 당할 수 있어요.

고종석 그래서 이런 말을 아무도 안 하는 거죠.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자기가 흙탕물에 빠져버리거든요.

신기주 그래서 해소 방법은요? 인구수에 따른 대선 구도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닙니까. 총선을 놓고 보면 역시 인구 비례에 따르는 소선거구제를 뜯어고쳐야 하는 게 아닙니까. 이런 식이면 새누리당이 국회 다수당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구조니까요.

고종석 영남 인구가 과반수가 아닌 이상, 현 제도 아래에서 비영남이 영남을 포위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해요.

신기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문재인 의원이나 안철수 대표 같은 인물들을 다시 대선 후보로
내세우면 결코 안 된단 말씀이군요.

고종석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전 안희정 같은 후보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안희정이 역량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으나. 소위 친노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수가 영남 사람이긴 하지만 아닌 사람도 있잖아요. 안희정이 대표적이죠. 친노라는 사람들이 정권을 계속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안희정처럼 비영남 출신의 친노 후보를 내세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신기주 정치 공학적으론 성립이 안 되는데요. 김두관 전 지사 같은 인물이 여전히 야권 안에서 잠룡 대접을 받는 이유도 결국 영남에서 잠재적 영향력 때문인데 가능할까요. 사실 영남 후보는 영남 표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관료와 정치와 경제 분야의 영남 주류 세력을 분열시키는 효과도 있는데요.

고종석 박근혜 대 문재인 대선은 박빙이었죠.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건곤일척이었던 게 사실이죠. 다들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죠. 박근혜만 안 되면 된다고. 문재인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조차도. 그럼에도 졌죠.

신기주 이러니, 더 이상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거죠?

고종석 보장할 수 없다는 거죠. 사실 이제까지 야권 영남 후보들도 충청권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김대중 대통령은 JP의 도움을 받았죠.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 수도의 혜택을 봤죠.

신기주 하긴.

고종석 꼭 충청도 출신이 아니어도 좋아요. 비영남 출신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사실 지난 대선에서 손학규 후보가 나섰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겁니다.

신기주 당시 한나라당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후보가 손학규였으니까요.

고종석 다만 손학규 후보는 당내 경선을 통과할 수 없다는 거죠. 당을 소위 친노가 장악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정권 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당권만 잡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저도 지금은 안철수한테 많이 실망을 했지만, 안철수가 그런 모습을 보이기 전이라면, 안철수든 손학규든 누가 나왔더라도 박근혜를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문재인이라는 최약체 후보가 이 정도까지 표를 끌어 모았던 겁니다.

신기주 야권의 영남 패권주의가 패배를 불러왔단 말씀이시네요.

고종석 바로 그겁니다. 민주당 안에서 영남 패권주의 때문에 손학규가 힘을 못 썼죠. 문재인 의원과 손학규 전 의원 중에 누가 더 뛰어난 정치인인지는 판단을 못하겠어요. 하지만 손학규가 왜 후보가 될 수 없었는지는 분명하죠. 그것만 없었다면 세월호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겠죠. 민주당 안에서 영남 패권주의 때문에 소위 친노라는 사람들이 정권을 그냥 내준 거예요. 자기들이 잡을 수도 있었는데. 물론 자기들이 잡은 정권에서 주변화될 수도 있었겠죠. 예를 들면 손학규 정권 안에선 친노가 주변화되었을 수도 있죠. 그 사람들은 그걸 못 참는 거죠.

신기주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구도를 보면 김한길과 안철수 공동 대표의 비노 세력과 친노 세력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 역시 영남 출신이니 결국 이것도 영남권 세력끼리의 다툼일 뿐이겠네요.

고종석 궁극적으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신기주 그렇다면 이 싸움은 사실 누가 이기든 크게 중요하지 않겠네요. 누가 이기든 결과는 똑같으니까요.

고종석 친노가 이기든 비노가 이기든 전 별 관심이 없습니다. 비노가 이기면 안철수가 나올 테고 친노가 이기면 문재인이 나오겠죠.

신기주 결국 다음 대선에선 또 질 거고요.

고개를 드러내는 ‘그들 안의 파시즘’

고종석 사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인종주의자죠. 그걸 완전히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기는 어려워요. 다만 사회적 상식 때문에 그걸 차마 말로 표현은 안 하고 못 하죠. 그런데 일베는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신기주 일베는 인간의 주류 지향성이 만들어낸 산물 아닐까요. 그들이 실제로는 주류가 아
닌 마이너이기 때문에.

고종석 그게 진중권 같은 사람이 일베를 바라보는 시각이죠. 루저다. 물론 루저라는 말도 함부로 쓰면 안 되겠지만. 그런데 일베는 루저가 아니에요. 오히려 더 멀쩡한 사람들이죠.

신기주 그들이 루저이기 때문에 지역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사회에선 주류에 들어가는 게 유리하다는 걸 몸으로 체득한 세대와 사람들이란 거죠. 이 사회에서 주류가 누구인지 딱 봤더니 영남 패권 세력인 거죠. 정작 자신들은 완벽한 주류가 아니죠. 그때 주류 흉내를 내는 겁니다. 주류처럼 비주류를 차별하는 발언을 쏟아내면 자신도 주류의 탈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죠.

고종석 글쎄요. 그것도 한 측면일 수 있겠지만 핵심은 아니라고 봐요. 전 지금 파시즘이 한국 사회에서 슬슬 대가리를 내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와 비슷한 징후들이 일베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노빠들한테서도 읽히거든요. 상대 정파에 내뱉는 경멸적 언
사들은 매우 파쇼적이죠.

신기주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되고 히틀러가 등장한 건 대공황이 결정적이었죠. 외부적 사고가 독일 체제를 붕괴시키고 혼란을 일으키자 파시즘이 득세하죠. 다시 세월호가 떠오릅니다. 세월호가 진보적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보단 중앙집권적 권력에 대한 대중의 맹목적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파시즘의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요.

고종석 대통령뿐만 아니라 총리며 장관까지 연일 사고를 치고 있는데도 지지율이 지금처럼
견고한 건 위험합니다. 한국이 193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당시 독일만큼 힘이 있는 나라가 아니거든요. 큰 사고를 칠 만한 나라
가 아니란 거죠. 한국이 내부적으로 완전히 파시즘화되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도 않을 거고.
다만, 당시 히틀러가 내부의 유대인과 외부의 소련과 프랑스를 공공의 적으로 삼았던 것과
같은 구도가 재현될 것 같습니다. 이게 지금 한국과 매우 비슷하잖아요. 지금 북한은 예전의
소련보다 위험한 체제죠. 훨씬 사악하죠. 게다가 이웃 나라 일본은 틈만 나면 사고를 쳐요.
지금 집권 세력은 히틀러처럼 자신의 정치적 실수를 밖으로 돌리기에 좋은 공공의 적들을
갖고 있어요.

신기주 안팎으로 그렇단 말씀이군요.

고종석 만약 당시 유대인이 호남 사람이라고 하면, 북한은 소련 정도 되는 거고, 프랑스는 일본 정도 되는 겁니다. 이걸 잘 이용하면, 지지를 공고화할 수 있어요. 실수를 해도 지도자의 말씀에 따르겠다는 지지 세력을 조성할 수 있다는 거죠. 이미 상당수 한국 유권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해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여기죠. 북한과 내통하는 빨갱이들과 무조건 반대만 하는 호남 사람들 탓인 거죠. 이걸 충분히 이용만 하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조건들이 형성되어 있는 거죠. 아주 위험해요.

신기주 꼼수네요. 요즘 20대들을 만나봐도 위험 징후는 발견됩니다. 슬픔과 분노를 느끼다가 불신과 혼란으로 이어져요.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청년 세대가 느꼈던 감정이죠. 그들이 결국 히틀러 유겐트가 되는 거고.

고종석 그렇죠.

신기주 이럴 때 누군가 모든 것의 원흉은 저것이라고 지적해주면 쏠리겠죠. 충분히 가능하네요.

고종석 일베가 자발적 동원이란 게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박정희 체제를 파시즘이라고 차마 말 못하고 ‘유사 파시즘’이라고 하는 건 자발적 동원이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위에서 강요한 거였죠. 지금은 실제로 대중 운동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극우적이고, 인종주의적이고, 반지성적이고, 차별과 배제를 목표로 하는 대중운동이. 정재계, 문화, 군부 다 마찬가지죠. 그런 식의 사고가 지금 상황을 만들어요. YS가 하나회를 다 쳤다고 하는데도 이번에도 겁 없이 군국사이버사령부가 대선에 개입했죠. 이런 패권주의적 사고를 해체하지 않으면 진보의 미래는 없어요.

신기주 전 이 모든 상황이 1987년 체제의 한계로 보입니다. 내전 수준의 대선을 치러서 권위주의적 대통령을 뽑는 방식으론 앞으로의 난제들을 해결하지 못할 겁니다.

고종석 전 1987년 헌법에 대해서는 애착이 있어요. 이걸 더 좋게 바꿀 수 있으면 좋지만, 헌법을 바꾸는 과정에서 각 정파들이 자기네 유리한데로 바꾸려고 들 테니까, 결국 개악이 되지 않을까요. 현행 헌법보다 나쁜 헌법이 되겠죠. 헌법을 제대로 지키느냐가 문제지 고치는 게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지금은 개헌 운동이 아니라 헌법 지키기 운동이 필요해요.

신기주 역설적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본인은 자신이 헌법을 수호하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고종석 아니라는 걸 계속 일깨워줘야죠.

신기주 박근혜 대통령은 1987년 체제 이후 가장 강력한 대통령으로 군림하려고 시도해왔죠. 그렇게 대통령 지지율을 높이려고 애썼던 이유고요. 외교 정책으로 포장하고, 부동산 부양책으로 떠받들고, 그것도 안 되니까 언론까지 동원해서 지지율을 밀어올렸죠. 박근혜 정부는 1987년 체제가 만들어낸 최종 병기인지도 모릅니다.

고종석 그래서 언론이 중요해요. 지금 중요한 건 헌법 지키기예요. 무엇보다 언론이 나서서
정권을 견제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는 건 역시 언론의 영남 패권주의 탓이죠.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4년 6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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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7/01 [01: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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