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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졸음 쫓던 <죽비소리>가 그립다
이문열,신경숙,공지영에 죽비 휘두르던 <현대문학> 공동서평 <죽비소리>
 
정문순   기사입력  2013/04/06 [20:17]
<현대문학>의 자산 <죽비소리>

1955년에 창간된 “가장 오래된 순수 문예지” 월간 <현대문학>이 4월에 지령 700호를 맞았다. 자축의 기쁨이 클 것이다. 물론 <현대문학>뿐만 아니라 문학계 전체로도 경사라고 할 만하다. <현대문학>이 태어나던 당시는 전쟁이 끝난 직후 모든 것이 척박하고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당시의 문학 환경은 문학이 죽었다는 말이 예사로 나오는 지금과는 크게 달랐던 듯하다. 심지어 전쟁의 와중에도 문인들은 피난지 부산의 ‘밀다원 다방’ 등에 모여앉아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삶을 고뇌했으며, 급기야 시대가 부여한 고뇌의 중압을 견디다 못해 다방에서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은 시인도 나왔다.

전쟁 기간 중 다방에서 자살한 시인은, 고인에게는 차마 못할 말이지만 나에게는 그때 다방에 모여 앉은 문인들에게서 느껴지는 낭만성이 극대화된 것으로도 여겨진다. 그만큼 당시에 문학이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자기 위치를 고수했던 것은 아닐지. 전후의 피폐한 상황에서 <현대문학>이 태어났던 건 문학이 ‘쫄지’ 않았던 당대 환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대문학>의 장수 비결은 문학이 죽지 않았던 시대를 통과한 것뿐만 아니라 분단 체제 속에서 남한의 주류 문학 조류인 ‘순수’를 내세운 덕이 클 것이다. 그래도 <현대문학>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60년 가까이 장수해 온 건, 창간 후 몇 년이 못 가서 문을 닫기 일쑤인 요즘 문예지의 행태와 비교할 경우 존재감의 크기를 헤아리기 어렵다.

오랜 연륜은 왕성한 활동과 역량을 말해주기도 한다. <현대문학>은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산실이자 활동 무대였다. 시인 고은이 이 잡지로 등단했고, 시인 김춘수가 신인 추천자로 활동했으며, 소설가 김동리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낀 대표작이 실렸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중 진수에 해당한다고 평가 받는 1부가 연재된 곳도 <현대문학>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기까지 몇 년으로 범위를 좁혀볼 경우 <현대문학>이 단연 우뚝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직도 많은 문인과 독자들이 기억하고 있을 공동 서평 <죽비소리>가 아닐까 싶다. <죽비소리>를 시작한 1997년 당시는 우리 문학이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따른 후유증을 크게 앓던 시대였다. 진통은 오래도록 갔다. 1980년대 그 위세 높던 리얼리즘이 몰락하다시피하고 문학이 “골방의 심리주의”(최원식)라고 불릴 만한 내성주의로 끝없이 침잠할 때였다. 자본주의의 전일적 지배의 여파는 문학의 상품성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결과도 낳았다. 문학의 상품화나 출판사의 상업적 출판 행태에 평론가와 작가들이 동원되는 세태가 만연하던 때였다. 학맥이나 지연, 등단 매체 등에 얽힌 뿌리 깊은 연고주의, 폐쇄적 에콜의 병폐도 날로 깊어갔다. <죽비소리>는 이처럼 서평의 쇄신이 필요한 문단에 쓴 소리를 거침없이 날리기 위해 마련되었다.

당시 <죽비소리> 서평진은 1997년 6월호 편집 후기에서 “인정이나 의리에 이끌려 칭찬에 치우치거나 자칫 지루해기 쉬운 서평의 풍토를 개선하고 싶은 취지로 마련된 지면이다. 서평자의 솔직하고 날카로운 의견을 유머와 기지로 담아내 일반 독자들도 재미있게 공감할 수 있는 서평의 내용을 간결하게 소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서평진은 당시 <현대문학> 기획자문위원이었던 김화영, 이윤기, 최승호, 이남호, 이재룡으로 이루어졌다. 나중에는 외부 필진을 영입하기도 하는 드나듦을 보이지만, 이 5명이 주축을 형성했다.

성역 없는 <죽비소리>

<죽비소리>가 자신들이 공언한 대로 서평의 풍토를 개선하는 데 영향을 얼마만큼 끼쳤는지는알 수 없다. <죽비소리>는 2000년 5월 호로 종결하여 불과 3년 남짓한 수명을 누렸으므로 엄정하게 공과를 평가하기 힘들다. 그러나 <죽비소리>는 “인정이나 의리에 이끌려 칭찬에 치우치거나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비평”의 당대 관행에 적극적으로 도전했다. 적어도 <죽비소리>에 인정 비평, 주례사 비평은 통하지 않았으며, 인정이나 의리에 이끌린 비평에 매섭게 죽비를 내리쳤다. 죽비는 범작, 태작, 졸작임에도 불구하고 문단의 인정이나 의리, 또는 출판사·언론의 상업적 전략에 의해 실상이 가려지고 분에 넘치게 과분한 대접을 누리는 작품들을 겨냥했다. 국내 시와 소설이 위주였지만 해외 작가들도 가끔 다루었고 간혹 비문학 저서는 드문드문 언급했다.

<죽비소리>는 자신들의 공언답게 솔직하고 날카로운 서평에 대한 의지를 실천에 옮겼다. 1997년 7월호에서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호경의 <낯선 천국>이 현실에 대해 무슨 발언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습작 수준도 안되는 작품을 수상이라는 화제성 계기를 통해 근사한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출판사의 이벤트 마인드가 알장을 서고, 문단의 중견들이 관행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뒤를 받치는 식”이라고 혹평을 날렸다. 또 1998년 5월호에서는 원재훈의 <만남-은어와 보낸 하루>에 대해 이 작품을 대서특필한 일간지 문화면이 아니라면 죽비를 칠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서 “철없는 문학소녀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며 호되게 비판했다.

1998년 8월호에서는 김운하의 <언더그라운더>에 대해 “설익은 관념적 진술”로 “대학생 리포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 멈춰 있는 전위주의 미학”에 불과하다고 거침 없이 평가했다. <죽비소리>가 신인 작가임에도 사정을 봐 주지 않고 김운하를 ‘깐 것’은 작가의 뒤를 받치고 있는 문학과지성사 때문이었다. 함량 미달의 작품임에도 전위주의의 포즈만 내세우면 ‘신세대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간하는 데 적극적으로 보였던 당시 문학과지성사(문지)의 행태를 겨냥한 것이다.

1998년 7월, 한 출판사의 <한국대표작가 대표 중·단편>에 실린 이병렬의 <교수와 두목>이 실린 것을 두고는, 이 작가를 이광수, 김동인 등 한국 문학계 거물들의 반열에 올려놓은 출판사에 대해 “한창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이 작가의 선집을 <한국대표작가 대표 중단편> 전집에 포함시킴으로써 이 작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아시는지?”라고 비평한 것은, 1999년 9월호에서 하나무라 만게츠의 <울>에 대해 읽을 시간이 아깝다며, “죽비소리가 공연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우려”한다고 한 평가와 더불어 죽비가 낼 수 있는 최대 강도의 타격이라고 평할 수 있다.

<죽비소리>의 타격 대상에는 문단에서 굳건한 지위를 굳히고 있는 작가와 작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죽비소리>가 처음 선을 보인 1997년 6월, 고전으로 등극한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이 앞 부분은 용의 머리, 뒷 부분은 뱀의 꼬리라고 혹독하게 평가가 가해진 것을 필두로, 이문열, 유안진, 이승훈, 최영미, 도종환, 양귀자, 윤대녕, 은희경, 문정희, 공지영, 배수아, 신경숙, 유하, 박상륭, 이인성, 박노해, 그리고 자신의 창작시 때문이 아니라 동료 시인의 작품을 부실하게 펴냈다는 혐의를 받은 고은 등 1990년대 후반의 문단을 쥐락펴락했거나 성가를 누리고 있던 문단의 거장이나 총아들이 대거 죽비의 타격 세례를 받았다. 사실 이 작가들이 실상을 넘어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의혹은 공석이 아닌 문인들의 사석이나 술자리에서 뭉글뭉글 피어올랐지만, 문단의 ‘넘사벽’으로 대접받고 있는 이들에 대해 뒷감당을 할 각오 없이 공석에서 솔직한 생각을 발언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죽비소리>는 거침없이 ‘깐’ 것이다.

동료 평론가 이승훈을 공박한 것은 특히 시원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시 쓰기와 연구로 단단한 권위를 구축하고 있는 시인이자 평론가이자 교수인 이승훈에게 “아무 소리나 무책임하게 정신없이 늘어놓은 것”을 시론이라고 쓴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 자신도 머리 아프게 쓰기로 유명한 이승훈의 이상 시 해설서를 작심하고 읽으려다가 불과 몇 장 넘기지 못하고 지레 포기한 적이 있다. 이건 작품보다 해석이 더 난공불락이니 차라리 이상 시를 혼자 캐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상 시는 결코 독해할 수 없다는 굴욕이나 맛보라는 의도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상 시보다 더 어려운 해설이 있을 수 있는가 말이다.

난해한 글쓰기에 대해 주눅 들지 않는 <죽비소리>의 비판은, 난해함의 정도가  이승훈의 글쓰기를 능가하는 박상륭의 소설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죽비소리>는 박상륭의 소설을 잘 모른다고 자백하면서도 상찬하는 비평가들을 정직하지 못하다고 공박했다. 이승훈과 더불어 요령부득의 불쾌한 독서 체험을 안겨주는 박상륭을 과감히 포기하는 <죽비소리>에게서 나는 용기를 얻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게 생각한다.

당시 책이 너무나 잘 팔렸기 때문인지 도무지 부정적 평가를 볼 수 없었던 신경숙을 호되게 비판한 것도 <죽비소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9년 4월호에서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 대해 “이야기의 개연성이라든가 인물의 형상화에 있어서 어설프기 짝이 없다”고 호되게 평한 것은 신문 문화면에도 보도됐고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유안진과 정과리의 격분

<죽비소리>는 죽비를 때리는 목적이 나태에 빠진 문단의 졸음을 쫓는 데 있다고 했지만, 죽비를 맞는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반응을 보인 이는 시인 유안진이었다. 1997년 7월호에서 <죽비소리>가 유안진의 시집 <누이>에 대해 문법에 맞지 않는 말, 부적절한 고사성어나 관용구를 썼다고 지적한 것은 시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는 중견 시인에 대한 비판으로는 강도가 셌다. 시도 제대로 못 쓰거나 시작 훈련도 안된 초보 취급을 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유안진의 시대착오적인 “양반 의식”과 국수적 민족주의도 이 자리에서 함께 비판받았지만, 어법도 제대로 모르는 지경에 떨어뜨린 비판에 비하면 오히려 약과였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던지 시인은 정제되지 않은 날선 비난을 쏟아냈고 반론의 형식으로 두 달 뒤에 게재되었다.

유안진이 <죽비소리>의 서평에 대한 응수로, 서평자들의 시 독해력이 “사진사만도 못한” 것이라고 하거나  “발달 수준”이 의심스럽다고 한 것을 보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할 만큼 화가 단단히 났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흥분을 참지 못하더라도 특정 직업을 비하하거나, 듣기 싫은 말을 했다고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어떤 선을 넘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안진이 자신의 양반 의식을 비판받은 것에 대한 응답으로 “양반질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나 비판하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인 데 이르면, 따뜻한 시를 즐겨 쓰는 것만 알려졌던 이 시인이 직업 차별 의식뿐만 아니라 섬뜩한 계급의식까지 갖춘 사람임을 알게 한다.

두 번째로 반응을 보인 사람은 평론가이자 ‘문지’ 사람 정과리였다. 정과리는 문지에서만 줄곧 시를 발표한 채호기가 펴낸 시집 <밤의 공중전화>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 꽤나 불편했는지 <죽비소리>의 비판이 ‘방뇨’ 수준이라고 공격했다.(몇 년 후 신경숙은 <죽비소리>를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작품에 우호적이지 않은 평자들을 향해 예의도 없이 ‘배설’ 수준의 말을 쏟아낸다고 거칠게 공격한 적이 있다. 문단에서 한 자리 꿰찬 이들이 자신이나 동료의 문학적 성취를 고분고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내뱉는 말은 표현마저 비슷하다. 비판이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에 대한 비판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됨됨이가 드러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정과리는 <죽비소리>가 채호기의 시집에 나타난 몸에 대한 관심 그 자체를 상업적 전략으로 오독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채호기 시에 대한 비판이 맞고 그름을 떠나 <죽비소리>는 몸을 탐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상업적이라고 폄하한 것은 아니었다. <죽비소리>는 채호기가 “상업적 전략”에서 몸을 다루었다고 분명히 밝혔으므로, 오독은 오히려 정과리 자신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정과리 또한 <죽비소리> 서평자들의 “지적·정신적 수준을 의심케 한다.”는 말로써 인신공격에 치중한 것은 유안진의 태도와 비슷했다. 유안진이나 정과리의 생각에는 작품 비판에 대해 사람 됨됨이를 공격하는 것으로 응수하는 한 비평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물을 흙탕물로 만듦으로써 이편이나 저편이나 똑같이 나쁜 놈 되기를 의도하는 물귀신 전략을 기도한 것일까.

그러나 <죽비소리> 서평진은 노련하고 유연했다. 재밌는 것은 <죽비소리>가 유안진의 경우 반론에 전혀 손대지 않고 원고 그대로 게재했다는 것이다. 내용은 손댈 수 없더라도 맞춤법을 교정하는 편집 일도 생략함으로써 덕분에 이 시인의 띄어쓰기 실력을 알게 해주었다. 띄어쓰기도 자주 틀리는 시인이라면 어법에 맞지 않는 용어를 남발한다는 <죽비소리>의 지적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죽비소리>가 상대방이 겨눈 칼을 그대로 상대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썼다면 절묘하고 재치가 넘치는 것이다. 딱딱하고 재미 없는 글이 아니라 유머와 기지가 담긴 서평을 쓰겠다는 <죽비소리>의 공언은 잘 지켜졌다.

1997년 8월호 류시화의 시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 대해 “그는 표절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한 것은, 류시화를 짐짓 생각해주는 척하면서 기실은 그가 표절만큼이나 나쁠 수 있는 것들, 이를 테면 모방이나 저급한 패러디 등을 함부로 쓴다며 야유한 것이다. 1999년 1월호에서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대해서도 “신문 연재소설 치고는 꽤 읽을 만한 작품이다.”라고 평함으로써 이 소설을 영락없는 통속소설 급으로 매긴 데서는 작품을 대놓고 비판하는 것보다 더한 독설 솜씨가 엿보인다. 1998년 11월호에서 양귀자의 <모순>이 “기초수학적 이분법의 단순성”이 핵심이라고 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비결이 “독자에게 안도감을 준다.”는 데 있다고 한 것도 능청스러운 반어의 기지가 번뜩인다.

뭐니뭐니해도 1999년 11월호 이윤학의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에 대한 비평은 글 전체를 수놓는 재치와 발랄함의 압권을 보여준다. “편하게 읽힌다. 어느 정도 편하게 읽히냐 하면 나중에는 독자까지 덤덤해질 지경에 이른다. 묘사는 평범하고 진술은 당연하다. 놀라움, 그런 것이 없다.”라고 한 비평에 대해 시인 본인은 아팠겠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반어적인 독설에 대해 웃음을 머금지 않을 수 없다. 또 시집 제목을 야유하듯이 “어떤 버드나무가 깊은 고뇌 없는 시인을 향해 울음소리를 내겠으며 어떤 버드나무가 자신을 경이와 찬탄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에게 빼어난 시 한 줄을 선뜻 내어주겠는가.”라는 혹독한 평가에서도 재치 만발한 입담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자신이 관계하는 '문지'의 작품들을 계속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이 불편했던지, 정과리 같은 문인들은 <죽비소리> 필진이 권력 행사를 남용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했지만, <죽비소리>는 마냥 죽비만 휘두르지는 않았다. 작품을 솔직하게 평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좋은 작품을 평가할 때도 찬사에 인색하지 않았다. 1998년 5월호에서 주창윤의 시집  <옷걸이에 걸린 양>에 대해 “시작의 성실성이 이 정도만 되어도 시가 죽었느니 어쩌니 하는 염쟁이 같은 담론들이 감히 시의 장례식을 꿈꾸지 못했으리라”고 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98년 8월호에서는 이승우의 <목련공원에> 대해 “세기말 한국문단이 생산한 가장 탁월한, 물론 가장 중요한 작품집으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최상급의 평가를 보냈다. 사실 엄정한 비평문에서는 이런 주관적인 표현들은 모두 금기시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죽비소리>는 칭찬이든 비판이든 양쪽 모두에게 박하지 않는 태도를 통해 딱딱하고 재미없는 비평문 쓰기의 방법적 쇄신도 추구했던 것이다. 문단의 관행에만 쇄신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기존의 글쓰기 관습에서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멋지지 않은가.

물론 <죽비소리>의 주관적이고 솔직한 표현들이 늘 일관되게 견지되는 것은 아니어서 1998년 1월호에서 박서원의 시집 <이 완벽한 세계>에 대해 “시 쓰기의 미숙함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있다.”라고 평한 부분에서는 통상적 비평문의 애매한 글쓰기 방식이 드러나기도 한다.(시인이 남들한테 ‘오해’받을 것을 평자가 왜 걱정해 줘야 하는가. 평자 스스로 판단하기에 ‘오해’라고 생각한다면 작가에 대한 ‘오해’를 안하면 되는 것이다.)

<죽비소리>는 독자들이 진가를 알기 힘든 작품을 발굴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1998년 2월호에서는 김춘랑의 시조집 <작은 행복론>을 소개하여 구시대의 유물로 폄하 받기 일쑤인 시조의 가치를 조명해 주었다. 1998년 3월호에선 문단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원로시인 김종길의 시집 <달맞이꽃>에 대해서도 조명을 아끼지 않았다.

시조라는 변방의 문학 장르를 다루거나 힘이 센 출판사를 만나지 못하거나 신문 문화면의 조명을 받지 못한 운 없는 작품은, 그래도 시중에서 상품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서점에 깔릴 일이 전혀 없는 동인지 같은 경우 독자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에 속한다. <죽비소리>는 1998년 1월호에서 ‘율목독서회’라는 단체가 펴낸 무크지 <여성과 문학>을 소개하며 상업적 전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부독서회 동인지를 구매하지 않고 그냥 받아온 것을 후회하며, “그렇게 좋고 편안할 수가 없다.”라는 최상의 평가를 매겨준다. <죽비소리>가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율목독서회나 이 단체가 생산한 무크지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옥의 티 

남에게 서늘하고 가차 없는 비판을 감행하는 사람은 고독을 피하기 어렵다. 응원해 주는 사람 못지않게 적도 많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자신도 기꺼이 비슷한 대우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모진 말을 표출하는 일에 대한 정당성이 늘 의심받기 마련이므로 주변에 친구가 꼬이지 않는다. 죽비를 든 견책사가 정작 자신에게 죽비를 휘두르는 일은 없듯이 <죽비소리>의 서평에서 간혹 신뢰를 보내기 힘든 것도 나왔다. 물론 <죽비소리>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작품이나 작가를 솔직하게 비평했다고 할 수 있지만, 더러 ‘솔직함’을 마냥 신뢰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서평진이,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현대문학>이 발간한 도서나 자신들이 쓴 저서에 대해서는 죽비를 내려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죽비소리>는 1999년 7월호에서 자사 출판 저서에 상을 주는 모 출판사의 행태를 꼬집는 자리에서 이 점을 언급하면서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성은 반성으로 끝났을 뿐 이후에도 별반 달라진 적은 없었으며 자기 반성은 죽비를 손에서 놓을 때까지 유효한 것으로 남았다. 오히려 <현대문학>이 출간한 저서를 서평 대상에 올리는 경우도 희박했지만 어쩌다 논평할 경우에도 죽비를 들기는커녕 옹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스러운 행태를 보였다. 

2000년 3월호에서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에 대해 서평자들은, 이전에 은희경의 작품을 두 차례 혹평한 것을 의식했음인지 “이번에야말로 은희경이 자기에게 꼭 들어맞는 음역을 골라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상찬을 보냈다. 거의 일 년 전 같은 작가의 소설집에 대해 “삶에 대한 관찰에서 깊이가 있거나 꼼꼼하지 못하”다고 깎아내린 태도와는 180° 달라진 것이다. 작가가 죽비를 얻어맞고 대오각성하여 각고의 정진을 거듭했으면 몰라도 1년도 안되는 시간 간격을 두고 삶에 대한 관찰이 깊고 꼼꼼해지는 일대 변신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것은 꿈이었을까>에 대해 비평하기조차 뭣한, 뻔한 통속소설로 읽었던 나로서는 막 꿈에서 깨어난 듯 어리둥절할 뿐이다. 서평자들이 예전에 죽비를 세게 때린 게 미안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현대문학>이 발간한 책이라서 어쩔 수 없이 죽비를 내려놓아야 했을까.

드물긴 하지만, <죽비소리>는 부당하게 비판받는다고 생각한 작가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지면을 활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1999년 4월호에서 다룬 황지우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가 그랬다. 서평진은 일부 평론가들이 투사나 선비한테나 들이댈 만한 잣대로 황지우를 비평한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정작 이 시집에서 정제되지 않은 넋두리 같은 진술의 남발이나 성차별적 인식, 현실에 대한 감상적 접근 의혹 등 논란을 일으킬 만한 부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가령 시인이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여성의 죽음을 소재로 다룬 시에서,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 운운하는 것은 타인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대하는 태도로는 태평하기 짝이 없는 접근이 아닐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시집 말미에 붙은 시인 이인성의 발문이다. 이인성이 황지우와의 사적 인연을 줄창 늘어놓더니 “지금도, 내 몸은 방금 껴안았던 이 시집 옆에 축 늘어져 있건만, 내 마음은 어서 다시 껴안고 싶어 안달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이걸 독자더러 읽으라고 쓴 글일까. 서평진이 박노해의 시집에 붙인 정효구의 발문과 최영미 시집에 발문을 단 평론가 최원식(실명은 언급하지 않았다)에 대해 따끔한 죽비를 휘두른 것을 감안한다면, 자신에게 시집이 ‘처녀성’을 바쳤다는 표현까지 쓴 이인성의 발문에 대해서도 간도 쓸개도 내줄 인정 비평이라고 타격해야 형평에 맞을 것이다. 인정 비평이나 주례사 비평 풍토야말로 <죽비소리>가 가장 경계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혹시 그 달의 서평진에 포함된 최유찬, 김사인 등 현실참여적 리얼리즘 경향의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취향과 비슷한 황지우와 거리를 두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죽비소리>는 어쩌다 동료 평론가들을 비평할 때도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이승훈을 제외하고는 호의적 평가 일색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승훈에 대한 세찬 비판도 그가 평론가와 시인 양쪽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지식인이기에 서평자들이 보기에는 이승훈이 확실한 자기 동네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마음 놓고 때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의심을 하다 보니 끝이 없다.)

또 전반적으로 <죽비소리> 비평의 강도를 보면 출판사가 상업적 전략으로 작심하고 키우는 신진급 작가들이거나 이름이 덜 알려진 작가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가혹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도 고개를 든다. 비평 대상이 균일하지 못한 점은 당시 문단에서 ‘신세대 작가’들로 조명을 받았던 소설가들 중 김영하를 제외하고는 <죽비소리>에서 충분히 언급하지 못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문단의 가장 큰 상품인 신경숙 소설의 경우, 자고 나면 신작을 내놓았던 그녀의 다작 성향에도 불구하고 <죽비소리>는 한 작품만 찍어 혹평했을 뿐 작품 세계나 작가 의식 전반을 조명하지는 못했다. 최영미, 공지영, 은희경, 윤대녕 등 잘 알려진 작가들에 대한 몸을 사리지 않는 비평도 속이 뚫릴 정도로 시원하기는 하지만, 평자들 사이에서 이미 해당 작가들의 약점으로 누누이 지적된 것들을 <죽비소리>가 동어반복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생각도 든다. <죽비소리>가 이런 저런 환경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만만한 작가들을 ‘팼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든 것이다.

<죽비소리>의 비평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에 대한 방법론이 더 정교해야 한다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가령 창비와 '문지'의 상업적 출판 행태를 비판할 때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은 개별 작품에 대한 서평이라는 한계상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비평의 심각한 위기를 감안하여 좀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비평 작업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또 서평진이 고정되지 않고 넘나든 것도 비평의 유연성을 보이는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일관성이 부족한 흠을 낳기도 했다. 

때린 부위에 약 발라준 <죽비소리>

그러나 <죽비소리>의 가장 큰 흠결은 같은 작가에 대해 별로 시차를 두지 않고 극과 극을 오가는 오락가락 그네뛰기 비평을 한 부분이다. 1년 만에 평가가 크게 달라진 은희경의 경우는 이미 살펴보았지만, 유안진과 이문열도 그랬다. <죽비소리>의 문을 열 때 비평 대상에 올랐던 유안진과 이문열은 2000년 5월 마지막 지면에도 나란히 등장한다. 1997년에 싸움과 갈등이 생략된 화해의 태도가 지적되었던 유안진은 2000년에는 “자기 내부의 모순과 갈등에 직면하되, 그것과의 투쟁을 숨기지” 않은 작가가 되어 있었다. 사람의 성정이나 성향은 몇 십 년이 지나도 변하기 쉽지 않은데, 문학 세계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중견 작가가 불과 3년 만에 머리와 발끝을 뒤집듯이 달라지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유안진과 마찬가지로 첫 회에서 <선택>으로 매서운 죽비 세례를 받은 이문열이 3년 후 <선택> 못지않은 논란을 일으킨 후속 작품 <아가>를 내놓았을 때, <죽비소리>는 예전에 자신들이 이문열 소설을 어떻게 대했는지 잊어버린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죽비소리>는 이문열의 직계 조상인 장씨 부인이 무덤에서 나와 현대 여성을 꾸짖는 <선택>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생각할 ‘여백’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대소설의 문법조차 모르는 함량 미달의 소설이라고 혹평하더니, 장애 여성이 마을 남자들에게 성적으로 농락당한 것을 정당화함으로써 <선택>을 뺨칠 정도의 ‘문제적’ 여성관을 드러낸 <아가>에게는 베스트셀러 1위를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라고 극찬을 보낸다.

물론 <죽비소리>의 관심사는 <아가>가 아니라 이문열의 논란 많은 행태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서평진은 죄 없이 돌팔매를 맞는 작가에게 동정을 느낀다고 하더니(돌팔매는 몇 년 전 본인들이 던진 것이었다!), 소설을 간판으로 내걸고 실상은 정치 평론을 쓰는 이문열의 글쓰기 습관에 대해 고려 적부터 이어온 이 나라 선비 지식인의 ‘직접 화법’ 전통을 계승했다며 더할 수 없이 높이 추켜올린다.(소설인지 정치선전인지 알 수 없는 이문열 소설을 일러 전통 계승 운운하는 평가는 이문열 스스로의 주장과 일치한다.)

이문열 소설에서 작가의 육성이 작품을 뚫고 나오는 것에 대해 근대소설 문법에도 미달된 증거라고 타박하던 이들은 3년 전 <죽비소리>였고, 이제는 그것이 선비들의 글쓰기 전통을 이은 것이라고 말한 것도 <죽비소리>였다. 서평진이 바뀌었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같은 작가에게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평가를 감행한 것도 <죽비소리>만의 새로운 글쓰기 방식인지는 모른다. 자신들한테 다친 작가들에게 미안해서 때린 자리 약 발라 주며, 없던 일로 하자고 화해를 청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동안 서평진이 문단 동료들로부터 받았을 적지 않은 고통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일간지 문화부 기자는, 서평 대상에 올랐던 작가가 자신을 혹평한 필자를 어떻게든 알아내어 공격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이문열 등에 대해 앞뒤가 맞지 않는 서평진의 태도를 통해 미루어 짐작하자면, 이들이 치른 곤욕은 언론 지면을 통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가혹했을 것이다. <죽비소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나온 불만은 서평이 비겁하게 익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평자들은 매회 이름을 서두에 나란히 밝혔고 낱낱 서평의 필자만 드러내지 않았으니 익명이라는 주장은 맞지 않다. 구태여 말한다면 ‘반실명’ 또는 ‘반익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죽비소리> 서평진들이 낱낱 서평에 대해서 일일이 실명을 밝혔다면 우리 문학 토양에서 <죽비소리>가 과연 3년 간이나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을까. 감자 줄기처럼 이리 저리 얽혀 있는 문단의 인간 관계에서 죽비를 제대로 휘두르는 일이 쉬웠을까. 직업이 평론가이자 교수들인 서평진이 동료인 이승훈을 가차 없이 비판하는 일이 가능했겠으며, 문단의 양대 권력인 창비와 문학과지성사를 껄끄럽게 언급할 수 있었을까. 창비더러 색깔이 변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지고, 문지에게 돈 되는 작가를 발굴한다는 비판을 문학잡지 지면에서 볼 수 있었을까. 반실명제 운영으로도 '문지'로부터 ‘배설’ 수준의 비평을 한다는 거센 반발이 나올 지경이면, 이름을 낱낱이 다 털어줬다면 서평진은 아마 밤길이 무서워졌거나 해꼬지 당할 각오를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의아스럽게도, 서평진에 참여한 김화영, 이남호, 류보선, 권오룡 등은 개별적 면면을 따지자면 모두 보수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김화영은 이문열과 친분이 두텁고 그를 대놓고 오냐오냐 두둔하는 사람이며, 이남호는 2000년 친체제 문인의 거두인 서정주 사후 무슨 사명감이라도 걸머진 듯 그를 맹렬히 옹호하는 데 총대를 멨으며, 류보선과 권오룡은 나중에 문단에서 문학권력 논쟁이 불붙자 각각 <문학동네>와 문지의 대변인으로 문단 기득권을 옹호하는 일에 앞장선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문학권력을 비판한 <죽비소리>에 합류했던 건 반익명·반실명으로 비평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보수적인 색채의 <현대문학> 지면에서 <죽비소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안전판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죽비소리>가 시작은 창대했으나 결말은 미미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날렵하고 세찬 죽비의 타격은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떨어지고 무뎌진 게 사실이다. 특히 마지막 지면에서 굴욕스러울 정도로 넙죽 엎드린 태도를 보면 더 초라해지는 모습을 보이기 전에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여전히 아쉽다. 죽비가 내려진 후 문단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주례사 비평, 인정 비평은 아예 당연지사가 될 정도였다. 출판 자본의 상업적 전략을 운운하는 것조차 이제는 언급하기도 구차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죽비소리>가 살아 있을 때는 비평이 망가지는 데 대한 공감대나마 있었다.

그런 만큼 가차 없이 매서우면서도 익살 넘치는 <죽비소리>의 성성한 글발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아직 적지 않을 것이다. <죽비소리>의 예봉은 비슷한 시기 폐쇄적 에콜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이었던 <비평과 전망> 동인들의 작업보다 더 날카로웠다. <현대문학>이 당대의 낡은 문학적 관습을 넘어서려고 고군분투했던 <죽비소리>의 시즌2를 마련할 계획이 없는지 궁금하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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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4/06 [20: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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