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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른 말, 구분해서 써야
[강상헌의 글샘터] 정치가 등 남 앞에 자주 서는 분들은 명심해야
 
강상헌   기사입력  2013/02/21 [21:18]
‘다르다’고 해야 할 대목에 ‘틀리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보고 들은 바가 적은 탓이겠으나, 특히 우리 정치 동네 인사들에게서 이런 말버릇은 더 자주 관찰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선생님의 ‘어법(語法)’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주 지적되는 일이기는 하나 좀처럼 바로잡히지 않는군요.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만나는 우리말 오용(誤用)의 전형적인 사례지요. 방송에서도.

예를 들어 볼까요. 조용필과 라훈아는 틀리다, 대한민국과 일본은 틀리다, 불과 물은 틀리다 따위의 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르다’라고 해야 맞지요. 각각 다른 사람(가수)이고, 다른 나라이고, 다른 물질입니다.

'다르다'는 '같지 않다'는 뜻의 형용사(形容詞)입니다. 한자로는 다를 이(異)나 별(別)이지요. 좀 ‘있어 보이는’ ‘폼 나는’ 말로 표현하자면 가치중립적(價値中立的)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영어로는 디퍼런트(different)가 되겠지요.

'틀리다'는 '옳은 것이 아닌 상태가 되다'는 뜻의 동사(動詞)입니다. 그르칠 오(誤)나 류(謬)지요. 오류라는 한자어도 있습니다. 앞서의 예와 같이 설명하자면 가치 측면에서 부정적(否定的)이지요. 옳지 않은 것, 나쁜 것이라는 얘깁니다. 영어로는 롱(wrong)입니다.

왜 이렇게 엄연히 다른 말이 혼란스럽게 오용되고 있는지 곰곰 궁리하고, 알만한 이들에게 여러 번 물어도 봤지만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아직 그렇습니다. 응원해 주실 분은 안 계신지요?

물론 뭇 사람들의 무심한 말버릇이라고 넘겨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필자더러 "당신, 너무 예민(銳敏)한 것 아닌가."하고 꾸중하실 이도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한번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만(萬)에 하나라도 우리의 의식(意識) 속에, 혹은 무의식(無意識) 중에 '다른 것은 틀린 것'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하는 걱정이 그것입니다. 또 그 생각의 바닥에 '모든 것은 같아야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획일주의(劃一主義)가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달라야지요. 달라야 창의적(創意的)인 생명력이 생겨나지요. 사전은 다르다는 말의 가치판단을 유보(留保)하고 있지만, ‘다름’은 우리 삶에서, 또 다른 모든 분야에서 귀하게 여겨져야 마땅한 개념입니다.

자녀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학생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짐 지우는 선생은 필경 실패합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지요. 나와 다르니까 부부의 인연(因緣)이 시작됐고, 지속(持續)되지요. 같아야 한다고 한쪽이 강요한다면 거울은 깨지게 마련입니다. 파경(破鏡)은 불행이지요.

우리 정치의 ‘틀리다’ 어법을 살핍니다. 주류(主流) 실세(實勢) 당명(黨命) 따위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와 예의 그 획일주의가 함께 ‘다른 것은 틀린 것이자 나쁜 것’이라는 심뽀를 생산하는 것은 아닌지요. ‘윗분의 뜻’ ‘박심(朴心)’ ‘코드’ 따위의 어느 것에라도 맞추지 않으면 모두 자동으로 오답(誤答) 처리되는 기계 속에 매몰(埋沒)된 생각 말입니다.

일제(日帝)시대와 독재정권시기를 거치며 우리 의식에 똬리를 틀고 앉은 눈치주의 획일주의 따위가 우리 정치에 저 못생긴 ‘틀리다’ 어법(語法)으로 표출되는 것인 아닌지 묻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정치가 ‘인간(人間)’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한 시기였지요.

영국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이렇게 ‘현상과 그 뜻 사이의 관계’를 읊었습니다.

한 알 모래알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無限)을 쥐고
한 순간의 시간에서 영원을 보라.

‘순수의 전조(前兆)’라는 시(詩)의 한 부분입니다. 모래알 한 알이 세상을 보듬듯, 이 같은 어법과 의식이 담고 있는 획일주의의 큰 무게 또한 엄존(儼存)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생각들에 앞서, 보신 바처럼 그 두 말은 저렇게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또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두 단어를 틀린 말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앞으로는 ‘다른 말’이라고 하시지요.

▲ 강상헌 · 시민의 자연 발행인, 한자탑어학원 대표   ©대자보
‘다름’의 존귀함 소중함을 여러분들과 함께 말과 글 속에서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는 것이지요. 그 둘을 똑 소리 나게 분별하는 것과 같은, 명징(明澄)한 언어로 소통하는 사회라야 그 언어대중들 즉 언중(言衆)들이 품고 사는 생각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먹다 남은 사과 그림으로 일세(一世)를 풍미한 미국의 혁신가 스티브 잡스(1955~2011)의 ‘Think Different’라는 책 이름을 생각합니다. 이 영어 이름을 ‘틀리게 생각하라’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분도 필시 계실 것입니다. 국내 번역본 이름은 다행히 ‘다르게 생각하라’였습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전혀 다른 말이니 구분해서 틀리지 않도록 잘 쓰십시다. 특히 정치가나 인기강사 MC 연예인 등 남 앞에 자주 서는 분들은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인 / 시민의 자연 발행인, 한자탑어학원(www.hanjatop.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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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2/21 [21: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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