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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 틀리는 KBS가 ‘말글 선생’ 자임?
[강상헌의 글샘터] 언어 무분별한 사용은 안전과 품격 떨어뜨리는 요소
 
강상헌   기사입력  2013/02/07 [17:28]
“네, 발사 된지 5시간 지났는데요. 지금쯤이면 위성은 벌써 지구를 세 바퀴를 돌고 이란 카스피 해 상공을 순항하고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생략)...위성은 타원형의 모양으로 3백~천5백 킬로미터 상공에서 초속 8킬로미터 속도로 돌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생략)...당초 예상대로 위성은 순조롭게 운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언어의 무분별한 사용은 방송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 KBS 나로호 성공보도 화면



나로호가 지구를 박찼다. 앵커가 기자에게 물었다. 현재 위성이 어디쯤 있나요? 한국방송 1월 30일 메인뉴스 ‘특집 KBS 뉴스9 나로호 발사 성공’ 보도다.

위 글을 곱씹어보자. 별 느낌 없다면, 추측컨대, 한자 없이 자란 세대다. 그러나 그 세대에 속하더라도 사전 뜻풀이를 제대로 익힌 이라면 다른 단어를 썼을 터다. ‘예측’ 대신 ‘추측’으로, ‘예상’ 대신 ‘상상’으로. 둘 다 토박이말 ‘생각’으로 바꿔도 문제없다. 이와는 달리, ‘미리 생각한 대로’라는 뜻의 두 번째 ‘예상대로’는 흠 잡을 데 없다.

도대체, 예측(豫測) 추측(推測), 예상(豫想) 상상(想像) 등은 어슷비슷한데 그냥 쓰면 안 되나? 어떤 차이가 있어?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면, 이 말들은 쓰지 않는 게 낫다.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같다’고 여기고 질러버린다면 그는 지식인으로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뭐가 다르지? 한자말 예(豫)가 키(key)다. 말하자면 관건(關鍵)이다. ‘미리’ ‘먼저’라는, 이 말의 너무도 선명한 의미를 염두(念頭)에 두지 않고 단어를 익혀 머리에 넣어둔 까닭이다. ‘미리 생각하다’와 ‘생각하다’를 같은 말로 간주(看做)해 어처구니를 스스로 버렸다.

신령스런 동물인 코끼리[상(象)]가 나[여(予)] 즉 자신이 죽을 줄 알고 죽음의 장소로 미리 간다, 그래서 둘을 합친 예(豫)가 ‘미리’라는 뜻이 됐으리라 하는 풀이가 있다. 予자는 여기서 주로 발음부호 역할이다. [예]와 비슷하지 않은가. 우리 역사에 한자가 많이 도입된 수, 당나라(우리의 삼국시대) 때는 우리 한자어나 중국어의 발음이 거의 같았다.

단어나 문자(글자)의 일획(一劃) 일점(一點)에 의미 없는 것이란 없다. 이런 요소들이 인간의 다양한 뜻을 붙들기 위해 생겨나 호흡하고 소멸한다. 언어다.

“다들 그렇게 쓰는데 왜?” 할 텐가. 묻자, 영어로 'see'(보다)라는 단어와 'foresee'(미리 보다)라는 단어가 같은가? 영어는 그리도 민감(敏感)하게 구분하여 공부하는 이들이 왜 우리말글 쓰임새에는 둔감(鈍感)할까. 영어 predict forecast anticipate prophesy foretell 따위 비슷한 말들이 그 ‘학구파’들의 입에서는 곧 쏟아져 나올 것이다.

‘어휘 실력’ 빵빵한 이들이 정작 제 생각과 뜻을 우리 말글로 붙잡아 내는 공부에는 신경을 안 쓴다. 단어가 희미하니 뜻이 흩어진다. 안개 속 같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 희미함은 실은 매연(煤煙)이고 황사(黃砂)다. 언어의 기능은 물론, 안전과 품격을 떨어뜨리는 병적 요소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국어)교육이고, 언어(문화)정책의 한 표출(表出)이다.

▲ 강상헌 · 언어문화평론가 / 사단법인 우리글진흥원 원장     ©대자보
KBS는 실질적인 말 선생이다. 토박이말 겨루기 프로도 있고, 한글 활용 시험도 운영한다. 정작 방송 현장 언어는 이렇듯 초라하다. 어찌 믿음 두터우랴. ‘예측 예상 사태’는 거대 빙산(氷山)의 일각, 실망의 고리가 시민의 미움으로 바뀔 수 있다. 라디오에서 듣는 오광균이나 김방희 같은, 말 바른 사람이 방송에 나오는 것이 옳다. 아나운서도, 연예인도.

토막새김
 
예(豫)처럼, 뜻 드러내는 형(形/ 象)과 소리 요소 성(聲/ 予)의 글자가 합쳐 만든 글자가 형성(形聲)문자다. 모양을 그린 상형(象形)문자, 일이나 상태를 가리키는 추상 부호인 지사(指事)문자, 두 글자가 뜻과 뜻으로 만나 다른 소리의 새 글자를 이루는 회의(會意)문자, 형성문자 등 네 가지가 문자의 틀이다. 이렇게 그때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긴 역사 속에서 많은 글자가 만들어졌고, 각각의 글자를 톺아보니 대충 그 네 가지 틀에 들더라는 얘기다. 바탕인 상형(그림)문자는 불과 수 백 자(字), 이를 붙이고 떼고 비틀고 바꿔 만든 수 만 자, 우리가 한자라고 부르는 문자다. 그 ‘수 백 자’ 활용법만 알면, 한자는 ‘내 손 안’에 있다.

 

 

 

언론인 / 시민의 자연 발행인, 한자탑어학원(www.hanjatop.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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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2/07 [17:2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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