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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고등학생들 집회 나오면, 무상등록금 가능"
[등록금 대토론회⑥] 등록금 문제 해결은 '사회적 에너지'에 좌우
 
편집부   기사입력  2011/06/17 [05:22]
아래는 지난 6월 7일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반값을 넘어 등록금 폐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의 발언 내용과 발제문 전문입니다<편집자 주>
 
▲ 우석훈 2.1연구소 소장‥7일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주최로 열린 <반값을 넘어 등록금 폐지, 가능한가?> 토론회     ©대자보 박진철

 
토론회 발언 전문
 
우석훈입니다. 오늘 발표에서 다음 책에 쓸려고 하던 개념 하나를 미리 꺼냈고요. 처음 쓴 개념이 하나 있어요. 2개를 오늘 처음 얘기하는 건데요. '대학 뉴딜'이라는 그런 개념을 제가 제목으로 썼거든요.
 
그거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우리가 한국형 뉴딜이라는 걸 한 적이 있었어요. 건설산업 지원 대책으로 골프장 한 200개쯤 만들자는 거였는 데요. 그 때 만약 그걸 안 하고 대학 뉴딜을 했으면 우리가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토건이나 다른 데 들어가는 돈들을 빼면 사실은 대학등록금이라고 하는 거는 큰 돈 안되거든요. 최근에 저축은행 문제 때문에 배드뱅크 만든다고 하는 것도 10 몇 조원에요. 그렇다고 그 배드뱅크 만들어도 그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니까, 정책의 우선 순위를 조금만 바꾸면 이 문제를 푸는 거는 돈은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돈은 문제가 아닌데, 결국 사회적 에너지가 어떻게 될 거냐. 정리를 해보면 국가와 대학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맺을 거냐. 그게 사실 저는 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을 하구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이런 논의를 사실 한 적은 없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이번에 새로 꺼낸 게요. 한국경제에 대해서 '상후하박(上厚下薄)'이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위로 갈수록 후하고 밑으로 갈수록 박해요. 잘사는 사람들한테는 후한데 대학생들에게는 아주 박한 게 대표적인 상후하박 경제인데. 이거를 '하후상박(下厚上薄)'으로 좀 바꿨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이 등록금을 통해서 하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좀 후하고 부자들한테 좀 박하게 굴어야 되는데 우리는 지금 거꾸로 그걸 했다. 그 얘기구요.
 
정몽준 의원께서 황우여 대표가 이번에 반값등록금을 한다고 하니까 반박을 하시더라구요. 제가 생각해 보니까 그 양반은 지금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대선을 나오고 그럴려면 지금 울산 대학교를 자기고 갖고 있잖아요. 그거를 내놓는 게 사실 반값등록금에서 더 나아가는 얼레이거든요.  
 
프랑스 같은 경우에, 제가 최근에 들은 얘기 중에 좀 안타까운 얘기는 작년에 있었던 일인데, 고등학교 학생의 어머님들이 자기 자식을 바칼로리아를 보게 해서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려고 하는 데 저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보내지 말라고 그랬는데, 몇 분은 보내셨나 보더라구요.
 
그러니까 지금 프랑스 등록금이 연간 20만 원쯤 되거든요. 그래서 지방에서 서울로 오거나 그냥 대학교를 보내려고 하면은 한국 대학에 보내지 않고 프랑스 대학에 보내는 것이 지금도 싸다는 거에요. 뒤집으면 우리는 유럽의 복지에 지금 우리 어머니들이 얹혀가야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그 얘기를 유럽 사람들이 5천에서 1만불 사이일 때 대부분 다 한건데, 우리는 지금 국민소득 2만불인데도 못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보는 거구요.
 
▲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대자보 박진철
그런데 차이는 뭐냐면은 프랑스에서도 우파들이 되게 웃겼어요. 대학 운영할 때 지금 한국에 아주 웃기는 대학들 있잖아요. 거의 중대 수준으로 운영을 했다고 보시면 되는데. 68혁명 때 실제 바꾼 거는 프랑스 대학을 바꿨거든요. 그 시절에 그 사람들이 무슨 진보나 정부가 좌파 그런 거는 아니었구요. 드골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우파 정부였는데, 고등학생들이 집회에 나오니까 인제 우파 정부가 대학 총장들들 부른 거에요. 불러서 대학 이름을 다 없애고, 번호표를 추첨하라고 한 거거든요. 그래서 제일 먼저 생긴 대학이 소르본느 대학인데 4번을 뽑았어요. 그래서 파리 4대학이 됐고요. 그리고 제일 늦게 생긴 개방대학인 뱅센느 대학은 8번을 뽑아서 파리 8대학이 된거죠. 그래서 파리 대학에 실제 등록금을 다 없애고 한 거는 우파 정부 시절에 우파들이 다 한 거에요.
 
근데 다만 사회적인 그런 집회가 있었고 요구가 있었으니까 생긴 거죠. 지금식으로 얘기하면 황우여 대표가 이를 테면 정몽준 의원한테 가서 '울산대학교 내놔라. 우리 정부가 운영하겠다'고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 건데, 아직 우리의 사회적 운동은 68급은 아닙니다. 그래서 인제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리가 되겠죠.
 
지금까지 논의했던 얘기들은 한국에서는 두 가지로 딱 돼 있어요. 황우여 대표는 세번째 방식을 낸 건데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구요.
 
첫번째는 대학별 접근 방식이구요. 이거는 국·공립대학을 먼저 무상으로 만들고 거기에 참여하는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지원하겠다는 그런 방안입니다. 이걸 조금 약화시킨 옵션이 있는데 2004년도 민주노동장이 원내 진출할 때 그 때 이 안이 최초로 제시된 적이 있었구요. 그 때 아디어는 이런 거에요. 어차피 지금 사립이나 국립이나 다 우리가 지원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면 사립에 가는 돈을 끊어서 국립대학을 무상으로 만들면 거기에 사립대학들이 네트워크로 참여할 거 아니냐라고 해서 그 대학교 내에서는 순위도 없애고 과별로 다 수업도 같이 들을 수 있게 하면 지역과 서울 사이에 균형을 이루면서 동시에 먼저 사립대학교를 움직일 수 있게 하겠다라는 아이디어였거든요. 얘기는 그랬는데 아무 일도 안 벌어졌어요. 사학이 워낙 세기도 하고 사실 그 안을 민주당도 받지를 않았었거든요.
 
두번째 논의가 그래서 학과별 접근 방식이란 논의가 아직 공개적으로 그렇게 얘기가 많이 안된건데, 워낙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라고 하면 무상 과를 먼저 만들자는 논의가 일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테면 문사철 같이 중요성을 알지만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과, 혹은 물리학과처럼 기초과학에 해당되는 과를 먼저 무상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 지방대 먼저 서울은 나중, 이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늘려서 전면적으로 무상으로 만들자는 그런 과별 접근 방식이 있었거든요. 카이스트 방식의 연장 같은 거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는 학과별로 할 거냐, 학교별로 할 거냐 라는 두 가지 논의가 있었는데, 한나라당이 여기에 추가적으로 제시한 거는 소득별로 하자는 거에요. 소득별로 하자는 거는 부모의 소득에 따라서 연동시키자는 게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성적하고도 연동시키자라는 거였죠.
 
일단 두 번째 것을 먼저 말씀을 잠깐 드리면, 성적에 연동시키는 거는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그건 아마 한나라당도 그냥 해본 얘기일 텐데요. 성적에 연동시키면요 한달에 한명씩 자살할 거에요. 실제로 하면 카이스트에서 본 것처럼 그건 안 돌아가거든요. 그 얘기는 사실은 한나라당도 아닌 것 같고.
 
부모의 재산에 연동시키는 소득별 접근은 지금 문제가 뭐냐면,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학교급식 논의할 때 그 연장선으로 한나라당이 같이 본 거거든요. 거기서도 소득에 연동시켜서 급식을 주장했는데, 그 때는 이 사람들이 미성년자였으니까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대학생은 성년이잖아요. 민증이라고 하는 주민등록증이 나온 사람들의 행위를 부모의 재산과 연동시키는 것이 과연 철학적으로 옳은가, 헌법적으로 옳은가라는 논리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를 테면 너 아버지 부자니까 내라고 그런 얘기를 하는 건데, 현실적으로는 그런 얘기 할 수는 있는데 전면화시킬 때는 그게 좀 문제가 되구요. 저번 때 논의 생각해보시면 될 거에요. 그 때 오세훈 시장, 정운찬 총리 등 이건희 손자 얘기했었죠. 이건희 손자한테도 우리가 무상급식을 줘야 되느냐. 그 때 인제 반대측 논리가 뭐냐면은 그 양반이 제일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줘야 된다라는 게 우리의 논리였거든요. 아니 세금 몇 십억 더 받는 게 낫지, 밥값 얼마 그거 뺄 필요 없다는 거거든요.
 
등록금도 마찬가지인데, 부자들한테는 등록금 받아야 된다라고 하잖아요. 근데 그거 빼주고 더 많이 세금을 받는 게 맞죠. 그게 지금 유럽이 다 가는 방식이거든요. 스위스 같은 경우에 연방 공과대학이 좋은 학교에요. 아인쉬타인이 나왔던 학교니까. 거기가 한 50만원쯤 해요. 그런데 네슬레 회장 손자가 온다고 해서 돈을 더 받지는 않거든요. 그니까 사회통합에 관한 논리적인 문제가 하나 더 들어가는데.
 
만약에 한국 상황에서 지금 부자들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등록금을 따로따로 내게 한다. 그렇게 하면요. 갈라질 거에요. 실제로. 등록금 내는 부자 클럽의 대학이 생길 거고, 등록금 안 내는 가난한 클럽의 대학교도 생길 거거든요. 한나라당이 만약에 사회통합이라는 걸 얘기를 한다면 공평하게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사실 부자집 부모들한테 더 받고 이렇게 하는 게 맞을 거 같구요.
 
근데 한 가지 문제는 지금 아마 그거는 여러가지 논란이 지금까지 된 건데, 우리나라 사학재단이 돈(등록금)을 올린 거를 얼마나 인정해줄 거냐. 기술적으로는 베이스 라인 문제라고 하거든요. 만약에 재단 문제를 정리를 하지 않고 그냥 그 동륵금을 다 정부에서 떠안아 준다라고 한다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생기는 건 맞습니다.
 
이를 테면 많이 올린 사람이 이득을 볼 거 아니에요. 부당하게 올린 사람이 이득을 보니까 얼마 정도에 이걸 맞추고 거기에다 우리가 맞추자라는 논의가 같이 진행돼야 되는데. 그게 없으면 사실 나쁜 놈이 이득을 보게 돼 있는 거거든요. 일종의 보조금 형식이 되는 건데, 보조금을 억지로 올렸던 사람들이 이득을 보니까 그런 문제를 기술적으로 풀어야 돼요.
 
그 다음에 절차와 수용성 이런 건 기술적인 문제인데. 90년대 중후반에 프랑스도 사회당 정부에서 우파 정부로 바뀔 때 '국립대학 체계가 움직이지 않을 거다, 다시 민영화될 거다.'는 논의가 있었는데, 그 후에 다시 10년을 지나보니까 국가가 들어와서 무상으로 바꾼 대학을 민영화로 바꾼 사례는 없습니다. 유일하게 비슷하게 했던 게 멕시코에서 한미FTA의 멕시코 버전이 나프타(NAFTA)인데, 나프타 할 때 미국 대학이 멕시코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민영화 프로그램을 가동한 적이 있었는데, 멕시코 대학 등 한 1년 정도 학생들이 동맹휴업한 거 같아요. 그렇게 해서 막았거든요. 그러니까 인제 상당히 오히려 민간대학 체계가 안정성이 떨어지지 국립대학 체계는 생각보다 굉장히 안정성이 높다라는 그런 겁니다.
 
정리를 해보면 전체적으로 제가 청년문제에 대해서는 4대 권리를 얘기를 하거든요. 교육권, 노동권, 주거권, 보건권 이 네 가지를 우리가 책임지면 20대 문제가 풀린다고 하는건데.
 
그중에 등록금은 첫번째 문제이구요. 긴 싸움인데 어쨌든 지금 고등학생들이 집회에 나올 거냐 안 나올 거냐가 이번 승부를 가를 거라는 게 프랑스 사례였습니다. 68급으로 되면 당장 무상교육이 되겠죠. 그리고 대학생들만 나오면 절반이 될 거고, 일반인들과 부모가 나오면 그 중간에 어디선가 걸릴 거 같아요. 결국 사회적 에너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영상] 우석훈 소장 토론회 발언  


 
[발제문 전문]

등록금 폐지 가능한가? ‘대학 뉴딜’?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1. 들어가는 말

한 사회에서 가장 높은 학문을 다루는 기관인 대학교의 역사는 자본주의 역사보다 오래된다. 중세의 신학에서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간의 학문 즉 철학이 독립해 나오는 흐름과 근대국가의 형성이 결합되면서 대학이라는 아주 독특한 기관이 생겼다.

국가와 대학과의 관계는 복합적이며 중층적이다. 국가가 직접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민간이 재단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은가, 여기에 대해서 일관된 정답을 이론적으로 찾기는 쉽지 않다. 국가가 모든 것을 다 장악하면 좋은가? 분명히 지나친 국가주의의 폐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간이 모든 교육을 맡으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민간대학과 국립대학 사이에는 이념과 방침 그리고 효율성에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대학 운영은 영미식과 유럽식이 분명히 다르다. 영미식 대학의 특징은 아주 비싸다. 유럽식 대학 운영은 저렴하다. 프랑스가 연간 20만원, 스위스가 50만원, 독일이 80만원 가량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상징적 등록금’이고, 기본적으로는 국가가 대학을 운영한다. 이런 나라에서의 등록금은 ‘도덕적 해이’ 혹은 ‘자기 부담’과 같은 논리에 의해서 정해진다. 학생들이 내는 돈이 실제로 대학 운영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내지 않으면 대학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까지 대학에 가서 학생 신분이 주는 경제적 특혜를 누리려고 하는 부작용이 생겨날 수도 있다. 유럽의 국가별 대학등록금의 차이는 그 사회 내부의 힘의 관계와 담론 관계의 함수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독일에서는 ‘평생 대학생’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졸업을 지연시키거나 학부를 여러 번 다니는 일들이 생겨나니까 대학생에게 지나치게 많은 특혜를 준다는 논의가 있었다. 대학은 시장 사회에서 일종의 오아시스처럼 비추어지니까, 그런 부작용이 일부 생길 수는 있다. 결국 다른 국가보다 독일의 등록금이 더 높아진 것은, 그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그런 추측을 해본다.

국유화 과정을 통해서 국가가 대학을 운용하는 유럽 국가들과 한국의 차이점은 등록금 차이에만 있지는 않다. 경제의 눈으로 보면, 가장 큰 차이점은 점심식사와 국가와의 관계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차피 사설 기관이라는 눈으로 대학을 보니까 점심 식사에 어떤 보조금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이라는 눈으로, 대학과 국가와의 관계가 바뀌면 당연히 거기에 오는 사람들의 영양상태와 균형, 이런 것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50~60% 정도 학교 급식에 보조금이 들어오는 게 유럽의 일반적인 상황이고, 국가관리 영역으로 넘어간 한국은 그냥 일반 케이터링 서비스로 전환하거나,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학생생협, 두 개가 점심 식사를 담당하게 된다. 세종대 같은 사학의 경우, 학생생협과 재단이 아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이 이 구조 속에서 발생하게 된다.

지역사회와 대학과의 관계도 다르다. 물론 유럽식 모델의 경우에도 좋은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이 생겨나는 일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특히 지역별로 특정 대학, 특정 학과가 좋은 평가를 받는 현상은 당연하다. 니스 대학의 산업경제학은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콩코드 비행기를 만들었던 뚤루즈 대학의 항공 관련 학과들의 평가가 좋다.
 
그러나 이런 대학의 성과 차이가 서열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성과 차이가 생겨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큰 일 난다. 왜냐하면 국립 대학 체계에서는 서열이 없기 때문에 대학원까지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진학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를 옮길 수 있는 것은 박사과정에 진학할 때인데, 그 이전까지는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대학을 가도록 되어 있다. 국가가 무상으로 대학 진학을 책임지는 대신에 특정 지역으로 몰리는 것을 막는 장치를 이렇게 한 셈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보완 장치 없이 그냥 대학을 무상으로 바꾸면, 현 상황에서는 서울에 사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훨씬 더 많은 국민이 서울로 이사 오는 불상사가 벌어질 확률도 아주 높다.

마지막으로 대학 교육에 대한 지원은 실업계 교육에 대한 지원과의 균형과 형평성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온 국민이 대학에 가면 되지 않느냐? ‘지식경제’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조업과 지역 기업 같은 게 그렇게 대졸자만으로 구성되지는 않고, 지식의 형태가 다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5천불 정도 되는 스위스는 필요하다면 100% 대학진학율을 사회적으로 만들어낼 경제적 여력이 충분히 된다. 요즘 사람들이 얘기하는 창의 경제에 가장 가깝게 간 나라인데, 6만불 이상을 넘어간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이런 나라들이 대략적으로 30% 안팎의 대학 진학률을 기록하고 있고, 이 정도가 창의경제 혹은 ‘내연적 발전(internal development)를 위한 최적의 비율이라고 볼 수 있다.  

교과서적으로만 말한다면, 복지 국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그들의 삶이 사회적으로 최적화되게 만들어놓고, 그 후에 대학교육의 특수성을 얹는 것이 맞다. 시스템 디자인만으로 보면 그것이 최적안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오지는 않았다. 각자의 국가가 걸어온 궤적이 다르다.

그렇다면 유럽 국가들이 어떤 힘으로, 어떤 동기로 이런 전환을 만들어낸 것인지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의 보수주의자들이라고 대학을 장악하고, 그걸로 자신들의 2세들만 엘리트로 만들고, 그렇게 해서 사회에 격막을 친 자신들만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60년대의 유럽 대학들은 지금의 한국 대학들 못지 않게 형편없는 학교들이 많았다. 그런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68혁명 때 가장 마지막까지 먼저 대학 개혁이 사회적 의제로 남은 것이고, 실제로는 전국을 뒤덮은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의해서 국가를 운영할 수 없을 지경에 다다른 우파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카드가 대학 국유화이다. 서열제를 완벽하게 폐지하기 위해 대학 이름도 없앴고, 대학에 매겨진 번호는 총장들이 당시 뽑아든 번호표 숫자 그대로이다. 가장 먼저 생긴 소르본느 대학은 파리 4대학, 가장 나중에 생긴 개방대학인 뱅센느 대학은 파리 8대학, 68혁명이 처음 시작된 낭떼르 대학은 파리 10대학, 그 번호 사이에 어떤 논리적 개연성도 없다.

좌파들이 대학을 국유화하고 지금의 시스템을 만든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파들이 지금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힘은, 과연 어느 정도로 사회적 요구가 강력한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프랑스 전역을 뒤덮었던 고등학생들이 대학을 국유화하고, 대학 서열을 철폐하라고, 그런 기술적 방안을 주장했을까? 그랬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시에 대학생들은 학교 후생 수준을 높여준다는 방안 정도를 받고 대학으로 돌아갔다. 대학생들에게 “배신자다!”라고 외치면서 고등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다음에 결국 정부가 대학 국유화라는 극단의 카드를 꺼내들게 된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보수주의자 일색인 대학 소유주와 총장들이 정부가 제시하는 국유화를 받아들였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이라고 한국의 경우처럼 위헌 소송을 내면서 국가의 행정행위를 무효화시키라는 법리 논쟁을 몰랐을 리가 없고, 법정 투쟁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은 힘의 문제이다.

유사한 경우가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한미 FTA의 북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나프타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미국 대학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무상교육 체계를 무너뜨리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수 개월에 걸친 대학생들의 동맹휴학으로 결국 무산시킨 적이 있다.

지금의 반값 등록금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생들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등록금 인하의 폭은 커진다. 반면에 사실상 정부나 사학재단이 대학생의 목소리가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되면 등록금은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오른다. 대학이라는 제도가 상품 관계나 시장 가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회적 요소가 중층적으로 작용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그렇다. 대학 국유화 정도의, 개별 법만으로는 결정하기 어렵고, 헌법이나 국민투표 정도 되는 국가적 결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부가 진보 정부냐, 보수 정부냐, 민주당 정부냐, 한나라당 정부냐, 이런 것은 사실 대학 정책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DJ, 노무현 때에도 등록금은 계속 올랐고, 오히려 그 기간 동안에 대학의 보수화는 더 공고해졌다. 서울대 법인화 논의가 시작되고 추진된 게 현 정부 때가 아니고, 생각보다 뿌리는 깊다.

강도로만 보면, 대학 내에서의 목소리는 가장 강도가 약한 것이고,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면 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가장 강도가 강하다. 고등학생과 싸워서 이긴 정권은 역사적으로도 없다. 아직 나오지 않은 옵션은 시험거부, 동맹휴학, 일반인들의 참여, 이런 것들이다. 정부 예산, 이런 건 우선 순위의 문제이고, 우선 순위가 결정되면 나머지는 기술적 문제에 불과하다. 대학 국유화가 사회적으로 결정되면, 민간 기업 중에서도 탑 클래스 수준으로 올라간 대학 교수들의 임금을 공무원 수준으로 재조정하고, 대학이 지금까지 벌이고 있던 제2 캠퍼스 등 토건 사업들을 정상화하고, 근본적인 재조정을 하면 기술적 계산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재정이 진짜 문제는 아니다. 유럽 대학들의 경우는 1인당 국민소득이 만 불 이전에 이미 이런 제도들을 정착시켰고, 우리는 이미 2만불 수준에 와 있기 때문에 하려고 하면 못할 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대학과 국가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사회적 힘의 문제이다.
 
개별 법률로 문제를 정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다. 만약 지금 헌법을 당장 개정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그 때에 사회적 요구가 너무 강해서, “대학 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라는 조항 하나를 넣을 수 있을 정도라면, 그 때는 개헌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사회적 요구가 강한가, 아니면 집안이 가난해서 대학등록금이 너무 부담스러운 – 실제로 한나라당이 지금 상황을 해석하는 것처럼 – 것이라서 시혜적으로 약간의 경감 조치를 취해줄 것인가, 그 요구의 힘에 따라 최종적인 모습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한나라당이 시혜적 정책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중이다. 현재의 ‘반값 등록금’ 정책을 시행하는 황우여 원내대표는 그런 시혜 중에서는 좀 폭이 크게, 50% 수준을 얘기했다. 사회적 수요와 사회적 힘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닌데, 사회적 수요는 그보다는 클 것 같지만 총선을 염두에 둔 사회적 힘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당장 한나라당 내에서 반발이 거세다. 사회적 힘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증거가 바로 그 정몽준 등의 반발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68혁명 때 벌어진 일이, 정몽준 같은 사람이 울산대학교를 정부가 운영해달라고 맡긴, 바로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울산대학의 국유화는 울산이나 경북 지역에 사는 대학생들이 20~30만원의 돈을 연감 지급하고, 학교 급식의 절반 정도를 국가에서 보조 받으면서 다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울산대학교의 이사장인 정몽준이 학교운영을 국가에게 일임하게 되는 정도의 변화, 그 상황까지 우리가 갈까?

지금 현 단계에서 대학 등록금 문제는 계산 논쟁이 아니라, 수준 논쟁, 즉 어느 수준까지 대학과 국가와의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그걸 둘러싼 사회적 요구가 어느 수준까지 가야할 것인가, 그런 논쟁이 되는 게 맞을 것 같다. 대학 등록금 낼 거냐, 말 거냐, 낸다면 반값을 낼 것이냐, 백만원 이하로 낼 것인가, 그런 게 한 축이다. 그리고 대학에 가는 순간 짐을 싸고 일부는 서울로 떠나고, 또 일부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이 짓을 영원히 계속할 거냐, 말 거냐, 오히려 그런 질문이 종합적으로는 더 중요한 질문이다.

2. 지금까지의 논의, 두 갈레 방식
 
i) 대학별 접근 방식
 
한나라당 계열이든, 민주당 계열이든, 지금까지 등록금에 대한 논의는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기본적인 논의의 흐름은 2004년도에 발간된 정진상 교수의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 입시 지옥과 학벌사회를 넘어>라는 책을 중심으로 전개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에 진출할 때 부유세와 함께 ‘무상’이라는 키워드가 중심을 차지했었는데, 당시에 진보에서 제시한 무상의 대학교육 방안은 이 책에 대부분이 결집되어 있다.

기본적인 구상은 국립대학에 지원을 집중하고, 국립대학끼리는 학점 교류 등을 통해서 서열을 없앤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국립대학 사이의 서열을 없앨 수 있을뿐더러 최소한 국립대학은 무상에 가깝도록 만들 수 있다.

이런 방안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은, 서울대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전국으로 나눈다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이 방안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은 거의 없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대학 문제에 대한 기본 시각은 이 때의 논의 위에 서 있다.

사회적인 영향력은 거의 없는 듯해 보였지만, 서울대의 거의 집착증적인 듯한 법인화 흐름에는 일부 영향을 미친 듯하다. 서울대는 언제든 이러한 국공립 네트워크를 통한 평준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는데, 법인화가 되면 이러한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어쨌든 이 논의는 그 후에 몇 가지 변형들을 가지게 되는데, 가장 최근의 모습은 졸저<디버블링>에서 정리한 적이 있다.

기본적인 생각은, 유럽식의 무상 등록금을 국립대학을 통해서 실현하는데, 그 대신 사회적으로 당장 이행하기 어려운 사립 대학의 국유화를 추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다음부터의 방안은 다분히 논리적인 전개이다.
 
100만원 이하의 상징적인 등록금을 받는 국립 대학 네트워크를 만들고, 여기에 사립대학에 들어가던 지원들을 빼서 일단 무상 대학 체계를 만든다는 것이 이 논리의 출발점이다. 장점은 지방에 거점대학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사립대학에 가던 기본적인 정부 지원을 줄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 지원 없이도 자생적으로 대학 행정을 꾸려갈 수 있는 사립대학은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정부 지원 없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사립대학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재 한국의 대학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국립대학을 중심으로 정부가 무상교육을 전개하면, 버티지 못하는 사립대학들이 국립대학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되고, 이 경우에 네트워크를 개방하면 일정하게는 무상 교육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꼭 사립대학을 국유화하지 않아도, 네트워크를 통해서 일정한 블록을 무상교육 체계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2원화 운영이 단점인데, 이런 방안의 실질적인 걸림돌은 국립대학을 무상교육으로 전환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사립 대학 측이 강력한 반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논리적으로는 가능한데, 강력한 사회적 요구가 없이는 시행되기 어려운점이 이 방안의 단점이다.
 
국립대학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온 학교에 대해서는 무상 등록금 및 기타 연계한 지원방안들이 다양한데, 그렇지 못한 사학은 현실적으로 운영 자체도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사학 측의 반발이 사회적으로 아주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끊기게 되니까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더 큰 사회적 요구가 있을 때에만 가능한데, 만약 그 정도의 사회적 요구가 있다면, 차라리 우리가 건국 하면서 실시했던 농지에 대한 ‘유상 몰수, 유상 분배’처럼, 정부가 직접 사들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ii) 학과별 접근 방식
 
2004년 이후로 국립 대학 네트워크 방식 혹은 그와 유사한 국립대학과 사립대 사이에서의 소유 구조를 전제로 한 논의가 실제로 사회적 논의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 그렇게 높지 않다. 실제로 노무현 정권에서 사학재단에 대한 논의는 사외이사 파견 정도의, 정말 기초적인 논의였지만 이걸 국가보안법과 동등한 정도의 문제로, 3대 개혁악법 수준으로 강렬하게 저항했던 것이 지난 정권에 벌어졌던 일이다.
 
한국에서 사학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아직은 사회적으로 사학재단을 제어하거나 혹은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낼 정도의 사회적 힘은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게다가 중앙대 사태에서 보듯이 대기업들이 직접 대학의 소유 및 지배구조에 개입하는 것도 점점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전면적으로 국립대학 네트워크 방식이 채택될까 우려한 일부 대학은 법인화를 통해서 아예 국립대학 혹은 공립 체계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학 네트워크에 대한 논의도 사회적으로 힘을 받지는 못했고, 수 년 동안 대학개혁 문제는 거의 지지부진했다. 이 상황에서 재단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서 나온 방식이 학과별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대학 무상 체계를 만들기 위한 방법인데, 국립대학 네트워크 방식은 그 시작부터 국가와 사립대학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 사회적 분위기의 강력한 지지가 없으면 단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에 대한 소유구조에 손을 대는 대신, 특정 학과에 대해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우회로를 찾자는 것이 학과별 접근 방식이다. 조금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면, 카이스트 방식을 특정 학과로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문학과 국사학과와 같이, 누구나 중요성은 인정을 하지만, 실제로는 취업이 어려워서 학생들이 진학을 기피하는 과들이 있다. 소위 문사철이라고 부르는 학문들이 그렇고, 물리학 같은 기초 과학 분야 역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취업이 잘 되는 과들과 사회적 중요성에 비해서 취업의 어려움으로 폐강이 속출해서 결국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서 폐지되는 과들의 학생들에 대해서 무상 교육을 추진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인센티브 방식이라서 저항이 가장 작아서 시행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수용성’이 가장 높은 등록금 문제의 해결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 관련 학과나 경영학 계열과 같은 곳들에 대한 무상 교육을 후순위로 돌리게 되는 문제점이 있지만, 일부 학과라도 당장 무상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 순위 선택에 의해서 조금 더 복잡한 디자인을 시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수도권 집중을 완화시킨다는 면에서, 지방 소재 대학에 먼저 이런 학과별 접근을 시도하면, 사회적 저항이 훨씬 적은 상태에서 지역 경제에 대한 지원 방안의 일부로 이러한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중요한 것은 세밀한 제도 다지인이나 예산 확보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이렇게라도 등록금 문제 해결을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그런 국민적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다. 국가와 대학과의 관계를 우회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무상교육 그리고 대학별 서열을 줄여나가서, 지역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논의와 원칙을 세우는 과정 없이 그냥 추진되면 비인기학과라는 장치를 통해서 그냥 대학에 보조금을 주는 장치로 전락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국립대학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립대학들도 이러한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해서 무상 대학 체계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일단은 특정 과부터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무상 대학체계로 전환할 것인가, 두 가지 방식은 논리적인 분류일 뿐이다. 사회적 목소리가 더 크거나 정치적 흐름이 강력하다면 국립대학 전환 방식이 맞지만, 그 힘이 약하면 현실적으로 학과별 접근과 같이 완화된 방식으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201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국가와 사립대학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시민과 지식의 재생산 과정에서 대학에 어느 정도의 역할과 기능을 부여할 것인가, 그런 사회적 원칙에 관해서 한국 사회가 설정하는 방식과 그 힘의 강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어떻게 볼 것인가?
 
한나라당에서 제시한 반값 등록금안은 아직까지는 유동적이라서 정확히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① 부모의 재산에 연동시킨 반값 등록금
② 성적과 연동시키는 장학금 방식
 
외교에서 “Something is better than nothing”이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그냥 협상이 결렬되는 것보다는 낮은 수준에서라도 합의를 보는 게 낫다는 할 때 이렇게 얘기한다. 실제 대학생의 등록금 투쟁이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최대치는 등록금 동결이었다. 해마다 물가 인상폭 이상의 등록금 인상을 학교측이 제시하면, 등록금 투쟁을 통해서 여기에서 얼마를 깎고, 그 최대치는 동결이 현재까지의 상황이었다. 이런 10년간을 거치다보니 재단에서 그냥 가지고 있는 돈이 서울의 주요 대학의 경우는 수 천억원을 상회하고, 전국적으로는 10조원 이상이 되었다. 그건 현금만 볼 때 그렇고, 제2 캠퍼스 등 여러 가지 명목으로 부동산에 돈을 투입한 것까지 염두에 두면 많은 한국의 사학재단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학교만을 운영한 게 아니라 일종의 사람장사를 했다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 별도로 돈이 들어온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에서 그 돈이 왔겠는가? 우리는 아직 사학재단이 어떤 방식으로 돈을 굴렸고, 그 원가는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지, 소위 ‘캐쉬 플로우’라고 부르는 돈 흐름을 아직 명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이 상황에서 ‘반값’은 그야말로 외교가에서 말하는 ‘something’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정도면 충분한 것인지, 혹은 한계생산성 같은 것과 연결된 수치는 아니다. 그야말로 사회적 논의의 강도에 따라서, 이게 크면 등록금 폐지와 같은 무상도 가능하고, 반대로 전혀 없으면 등록금 동결 정도가 해볼 수 있는 최대한의 크기였던 지난 시기의 등록금 투쟁의 양상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반값’이라는 말은 정말이지 경제적 수치가 아니라 상징적 수치인 셈이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현재의 반값 등록금 논의에 관한 몇 가지 기술적 쟁점들을 살펴보자.

1) 소득별 접근 : 성인의 독립성의 문제와 분리 접근의 문제
 
지금까지 한국에서 논의된 등록금 문제는 학교별 접근과 학과별 접근 두 가지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황우여 원내대표가 제시한 방안은, 제3의 방식인 소득별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급식 논쟁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이건희 손자에게는 무상 급식을 줄 수 없다”는, 한나라당의 일부 강성파들이 보편적 복지의 틀을 거부할 때 사용하였던 논리를 대학생 문제에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이 때 소득의 기준을 중간정도로 할 것인지, 아니면 중산층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것인지, 이런 소득별 지원 계층에 관한 기준은 오히려 기술적이고 부차적인 문제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 방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년 즉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스스로 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연령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의 중등교육 과정 중 고등학교 과정은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고등학교 단계에서 이미 노동과정을 시작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기존의 접근방식 두 가지는 대학생을 성인으로 보고 정책을 디자인하고 있는데 반하여 황우여의 반값 등록금안은 이미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성인들을 과연 부모의 소득과 연동시키는 정책 수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옳으냐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의 급식 논쟁 때에는, 이들이 경제적으로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서 이 문제가 중요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학생은 다르다. 그들은 이미 성인이고, 실제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경제적 활동에 참가한다.
 
물론 대학에서 장학금을 지원할 때에 현실적으로 부모의 재산을 감안해서 지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건 제한적이며, 국가의 일반 시책은 아니다. 지금과 같이 국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전면화시킨 정책이 도입될 때, 과연 대학생이라는 성인을 부모의 재산에 따라서 연동시키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옳을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긍정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품 안의 자식’으로, 끝까지 교육시키고 재산도 챙겨주고, 취직자리까지 알아봐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일반의 눈으로 보고, 선진국의 눈으로 본다면, 이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국가의 영역, 가족의 영역 그리고 대학의 영역이 묘하게 겹치는 전근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영역과 가족의 영역을 분리시켜서, 최소한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부모로부터 독립된 개별적 주체로서 재생산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의 등록금 조정 정책이 단기적인 것이고, 잠시 하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없던 일로 할 것이거나, 아니면 대학 정책에 사소한 영향을 주는 작은 지원 정책 하나라면 어떤 식으로 지원 방식이 디자인되던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방향을 잡으면, 10년 이상 크게 방향을 바꾸기가 어려울 것이다. 제도라는 것은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라는 것이 있어서, 부모의 재산과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지금 정하고 나면 나중에 이걸 풀기가 쉽지 않다.
 
자, 이건희 손자의 급식 논쟁의 한 단면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이건희 손자에게도 무상 급식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부자에 대한 혐오’ 혹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동정’, 이 두 가지의 양가적 감정이 유아적으로 뒤섞인 것이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은 아니다. 합리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인 것인데, 이건희 손자에게도 급식을 주어야 하느냐는 얘기는 이런 부자 혐오를 부추킨 한나라당의 감정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건희 손자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 찬성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가 몇 가지 논란이 있겠지만 어쨌든 공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집단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이미 충분히 세금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몇푼 되지도 않는 학교급식을 차별한다는 것은 댓가의 지불이라는 관점에서 말이 되지 않는 얘기이다.
 
대학 등록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소득에 연동시킨다는 것은, 국가가 성인이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황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거나 혹은 지연시키겠다는 얘기이니까, 기본적으로는 말이 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하경제의 세원을 좀 더 투명하게 만들고, 조세의 누진적 성격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부자들의 2세라고 해서 국가의 등록금 지원으로부터 차별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전면 등록금 폐지로, 지원의 수준을 높인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이면, 일반세입의 형태가 되든 특별세의 형태가 되든, 고등교육에 대한 조세 지출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들이 바로 경제 엘리트들이고 부자들이다. 정상적으로 세원을 늘리고, 그들의 2세들에게 동일한 지원을 하는 방향이 맞지, 대학 지원과 같은 재정정책에서 차별하면서 무슨 논리로 그들에게 세금 부담을 요청할 수 있겠는가? 스위스의 대표적 다국적 기업의 사장 손자가 대학에 가더라도, 당신 할아버지가 부자니까 등록금을 사립 대학 수준으로 내야겠소, 이렇게 얘기하는 법은 없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의 틀을 우리가 거의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부모의 재산에 의해서 2세의 대학 교육지원을 차등화한다는 발상은 유럽 기준으로 볼 때에는 해괴한 얘기이다.
 
자,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두 가지 기준을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인데, 형평성과 사회통합이라는 눈이 있다. 자본주의는 능력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지만, 최소한 출발점에서는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 형평성(equity)의 논리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2세의 출발점이 대학교육까지 올라와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최소한 대학 교육까지는 차별없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형평성은 현실적으로는 상층부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격리시킬 것인가, 사회통합의 방향으로 갈 것인가, 이런 논의와 연결된다. 대학까지는 가난한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같이 친구가 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길게 보면 우리 사회의 자산이 될 것이다. 등록금 지원에서 분리를 시키고 나면, 일종의 공동체로서의 대학이 싸늘하게 두 개의 집단으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가 그렇게 되어있고, 지원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또래 그룹’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동체로서의 대학을 생각한다면, 부모의 소득과 연동시키는 이런 지원 방식은 공동체를 분리시킬뿐더러, 사회 전체의 통합성에 장기적 폐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본주의에서는 빈부가 갈리게 된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장치들을 통해서 그걸 완화시키고 보완시키면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런 분리 장벽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

지금 대학생들이 주장하는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이라는 표현에서의 ‘조건 없는’ 대로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조건을 달 때, 부모의 소득에 연동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수준, 즉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할 것인가, 여기에 조건을 다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것은, 부모 소득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문제들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2) 성적에 의한 차등
 
성적에 의한 차등은, 국가 지원의 장학금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부가적으로 추가된 용어인데, 국가의 대학 지원을 이렇게 한 사례도 거의 없고, 또 이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이미 카이스트에서 본 사례가 있듯이, 성적에 걸어놓게 되면, 자살 등 수많은 부작용이 생겨서, 1년도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는, 현실성 없는 옵션이다.
 
아마 최소한의 시뮬레이션도 안 해본 것 같은데, 성적에 의해서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현재의 사회분위기상 집행이 불가능한 정책이다.
 
3) 보조금 논란과 ‘도덕적 해이’ : 재단에 대한 매칭 펀드?
 
현재의 한국 대학 구조가 비정상적이고 문제가 많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재단 국유화 혹은 네트워크 방식 등 일련의 문제는 지금의 사회적 에너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훨씬 복잡한 문제임을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 않고 기술적인 문제만을 보자면,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정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보조금 성격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전면적으로 어떤 정책이 시행될 때에 대체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 문제이다.
 
등록금에서 ‘기준선(base-line)’이라는 것이 설정될 수 있다면, 그걸 기준으로 해서 반값이든 무상이든, 지원을 하고, 그 기준선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등록금에는 그 기준선이라는 게 없다. 다시 말하면, 현 상황에서 ‘원가’라는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등록금이 그 기준선이고, 평균적으로 거기에 맞추는 게 좋다, 그렇게 제시할 수 있는 수치가 없다.
 
만약 대학에서 돈 벌이로 대학을 운영하지 않고 처음 사학재단을 만들 때의 생각으로 대학을 운영했다면 지금 등록금은 얼마인가, 혹은 얼마가 적정한 기준인가, 이런 것을 정하기는 어렵다. 기준선은 ‘정당성(legitimacy)’ 논의와 관련되어 있는데, 과연 이 가격이 정당한가, 그런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원가와 수익률 등의 수치를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의 대학에 대해서는 이런 분석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지난 수 년간 10조원 이상의 현금을 대학이 쌓아놓고 있다는 정도이다.
 
이 상황에서 별도의 논의 없이 등록금을 정부가 지원하게 되면, 현 상태에서 부당하게 등록금을 높이 올린 대학일수록 유리하게 된다. 왜냐하면 현 등록금 수준이 법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모랄 해저드라고 부르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여기에서도 발생하게 되는데, 부채탕감이나 공적 자금지원 같은 것에서 생겨나는 똑같은 문제가 여기에도 개입된다. 대학 입장에서는 들어오던 등록금이 그대로 들어오니까 똑같을 것 같지만, 등록금 지원이 없었다면 대학을 다니지 못했을 학생들이 계속 다닐 수 있으니까, 사실상 보조금 효과가 생겨난다.
 
대학생을 하나의 지식 자본의 단위로 보고, 여기에 대해서 대학 교육이라는 서비스라는 것에 대한 R&D 투자라고 본다면, 개인과 국가가 ‘매칭펀드’로 공동 투자하는 걸 반값 등록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민간 기업의 R&D에 대한 정부 보조는 최근 이런 매칭펀드 방식으로 많이 진행되는데, 형식적으로는 이런 것과 다를 게 없다.
 
서울에 있는 서열 앞에 있는 대학의 경우는 크게 차이가 없겠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서열 아래로 갈수록 보조금의 효과가 더 커진다. 다시 말하면, 정부 지원이 없었으면 문 닫았을 대학이 정부 보조금 덕분에 버티는 효과가 일부 발생할 수 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고, 수도권 집중화가 더욱 강화되는 현 상황에서, 당연히 지방대학일수록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
 
현 정부는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에 있는 서열 아래 대학들을 문 닫게 만드는 것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이런 지금까지의 방향과는 반대 방향의 정책이 진행되게 되는데, 이 방향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기 지역에서 대학을 나올 수 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경제로 갈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4) 절차와 수용성 그리고 안정성의 문제
 
황우여 원내대표의 반값 등록금 추진은 전격적이고, 속도전 형식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성격이 강한 정책은 많이 토론할수록,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를 더 많이 반영할수록 힘을 가지고 있다. 학교급식 정책은 단 번에 시행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지역에서의 작은 시범사업 등을 거쳐서 전면화된 것이기 때문에 뒤로 다시 각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는 누군가 최적안을 만들고 한 번의 공청회 과정을 통해서 확정하는 방안은, 아주 큰 사회적 에너지와 연결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 정권이나 다음 번 국회에서,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게 정부 정책이다.
 
정부세의 경우는 조세조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세밀한 디자인이 없이 그냥 정권의 힘으로 강행한 것인데, 사실상 정부가 바뀌면서 빈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진행될수록 국민들이 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떻게하면 반대하는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수용성’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현재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은, 현 상황 그대로라면 재단도 반대하고, 한나라당 내부에도 강력한 반대가 있고, 그 수혜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들도 반대하는, 그래서 고립되어 있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논의 절차와 수용성이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하면, 지금의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은 수용성이 아주 낮은 정책이다. ‘고독한 지사형 결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그것이 아무리 옳거나 나은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수용성이 아주 낮게 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국립 대학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수용성이 아주 높은 제도이다. 미테랑 정부가 끝나고 다시 시락 등 우파 정권이 들어섰을 때, 국립대학을 다시 미국처럼 사립대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전면적으로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우파 중의 우파 정치인인데, 그도 68혁명이 최초로 벌어졌던 파리 10대학 출신이다. 그도 다시 국립대학을 민영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국립대학이 안정적인 제도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데, 정책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현 시점에서 급하게 결정한다고 하면 안정성은 아주 낮아진다. 다음 번에는 누군가 아예 없애거나, 혹은 훨씬 더 강화시키거나, 어쨌든 지금 결정되는 형태의 제도가 그 모습 그대로 수 십년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안정성이 아주 낮은 방식으로 지금의 대학 등록금 논의가 가고 있는 것은 우려된다.
 
4. 새로운 논의를 기대하며 : 하후상박경제와 재정정책의 새로운 이해
 
대학의 문제는 단순한 교육복지 차원보다는 더 깊은 문제이다. 만약 지금 나에게 최적안을 만들어보라고 하면,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대학운영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 그리고 서울에 집중된 많은 대학들을 지방으로 이전시키고, 그 자리를 시민공원 같은 것으로 바꾸면서 도시의 생태화와 지역경제로의 집중 완화, 그런 방향의 계획을 수립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 수준에서는 이런 방안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다. 어쨌든 대학이라는 것은 자본주의보다 더 오래된 제도이고, 한국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건국 역사보다 더 오래된 것이 대학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대학 자율이 맞는 방향이라고 하였다. 대학에 세 가지 주체가 있다고 한다면, 재단 등 소유주, 교수 그리고 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재단의 목소리는 더 강해졌고, 교수들의 월급은 많이 올랐다.
 
결국 두 집단이 총체적으로 협력해서 재단전입금과 교수 월급을 학생들에게 씌운 것 아닌가? 재단은 재벌급의 삶을 살고, 교수들은 중산층의 삶을 살면서, 미래에 새로운 주인이 될 대학생은 빈민으로 몰락하게 되는 상황, 결국 이런 대학과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재설정이 지금 논의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상후하박’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제가 가지게 된 특징을 총괄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위로 올라갈수록, 권력에 가까울수록 후하고 넉넉하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진짜 박복하고 쪼들린다. 대학이야말로 재벌과 중산층 그리고 빈민이 대학 학력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밑으로 갈수록 박하다. 국민경제 자체가 ‘하후상박’ 형태로 가야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등록금을 폐지한다고 할 때, 유럽식으로 국가가 소유권을 갖는 방안도 있을 수 있고, 지금 공기업에 정부가 출자하듯이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재단과 공동소유하는 완화된 방식도 있을 수 있다. 이 관계를 어떻게 하는가, 기술적으로는 구매라는 방법에서 공동소유까지 수 많은 방식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 논의와 결정을 이끌어낼 사회적 힘의 관계이다.
 
하후상박의 경제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고, 대학의 전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재원 논의는 그 다음의, 정말 기술적인 하부적인 논의이다. 사회 내에서 사회적 결정이 재원 문제보다는 우선적인 문제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대학 문제보다 우선순위를 먼저 놓고 있었던 것은 최소한 토건과 금융, 두 분야라고 할 수 있다. 2004년경 ‘건설산업 연착륙’이라는 기치로 ‘한국형 뉴딜’을 추진하였다. 그 때 ‘대학 뉴딜’이라고 방향을 조금만 바꾸었으면 지금과 같은 등록금 문제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효과도 불분명한 수 많은 국책사업의 하나만 ‘대학 사업’의 형태가 되었다면, 지금의 상후하박과는 다른 경제로 우리가 왔을 것 아닌가?
 
IMF 경제위기를 통해서 금융에 우리가 쏟아 넣은 공적자금은 규모 추산도 되지 않을 정도이다. 당장 저축은행의 부실완화를 위해서 ‘배드뱅크’에 집어넣을 돈도 10조원 정도는 가뿐하게 넘어간다. 금융 경영의 실패와 대학 등록금으로 인한 ‘시민의 재생산의 실패’, 어느 쪽이 더 장기적으로 국민 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큰가, 여기에 대해서 진짜로 고민해볼 순간이 온 것 아닌가?
 
2만불 경제에서 등록금 폐지를 못한다면, 지구 안에서 그런 걸 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는 특권층에게 부를 몰아주는 상후하박 경제로 만드느라고 아주 이상한 대학 시스템이 21세기에도 생존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재정효과로 따지면, 건설이나 토목보다 한국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인 대학생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도 클 것이고, 무엇보다도 내수 시장 형성 기여도가 높을 것이다. 그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바로 대체 소비효과로 나오게 된다.
 
지금 시급하게 논의를 열다 말고 덮을 게 아니라, 2010년대에 국가와 대학,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어떤 식으로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대학생에 대한 지원 정책을 수립할까, 그런 장기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현 ‘반값 등록금’ 논의를 전개시키는 게 옳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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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6/17 [05: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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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1/06/23 [10:08] 수정 | 삭제
  • "80년대 독일에서는 ‘평생 대학생’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졸업을 지연시키거나 학부를 여러 번 다니는 일들이 생겨나니까 대학생에게 지나치게 많은 특혜를 준다는 논의가 있었다. 대학은 시장 사회에서 일종의 오아시스처럼 비추어지니까, 그런 부작용이 일부 생길 수는 있다. 결국 다른 국가보다 독일의 등록금이 더 높아진 것은, 그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그런 추측을 해본다." > "...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조금 더 돈을 받게 하지 않았을까 " 추측한다고 했는데 잘못된 추측입니다. 독일에 몇년전에 등록금이 도입된 "주"(우리나라식으론 각"도"에 해당)들이 몇개가 되었는데 이젠 몇개 안되는 "주"마저 폐지하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주"에선 등록금이 없습니다. 대신 학교에 매 학기마다 등록하는 등록비가 있는데 200 유로에서 300유로 사이 정도되는 돈인데 여기에는 대학교가 속한 도시만이 아니라 주와 주 경계되는 지역까지 모든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비가 포함되어있어서 이렇습니다. 독일은 교통이 한국과 달리 국가소유여서 버스 운전자든 기차기관사든 공무원지위이며 우리식의 사립 버스회사가 다니는 버스가 없습니다. 물론 여행사의 버스들과 아주 극소수의 버스들이 있지만요. 즉 우리식의 학생회가 독일 철도청과 협상해서 어떤 구간까지 학생증으로 갈 수 있을지도 협의하고 등록한 학생들이 돈을 내게 됨으로 철도도 더 이용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점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공공의 영역이니 학생들이 내는 돈이 얼마 안되지만 철도청에서 하는 것이죠. 이들은 나중에 일을 하게 되면 세금을 많이 내는 직업을 가질 확률이 더 많겠죠. 즉 독일에서 세금이 거의 40프로에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