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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세력을 믿을 수 있나?
[정문순 칼럼] 성찰 없는 참여정부 계승은 '독'이다
 
정문순   기사입력  2011/05/15 [15:09]
 
4.27 김해 재선거는 야권 단일 후보가 당선됐더라도 떳떳한 승리라고 할 수 없었다. 국민참여당은 선거에 발을 담근 내내 잡음과 분란만 일으켰다. 후보단일화 협상에서부터 야권연대 정신은 내동댕이쳐졌다. 자기 피는 한 방울도 안 흘리겠다는 참여당의 강짜 앞에 어떻게 민주당이 호남 지역 전부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 텃밭을 양보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단일화 열매를 딴 참여당의 선거 전략이라고는 노무현 정신 계승을 부르짖는 것이 전부 다였다. 1년짜리 국회의원이 무엇을 하는 것이 노무현 정신을 잇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서거한 전직 대통령 이름 석 자만 들이대면 김해 유권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릴 줄만 알았다. 그러면서 참여당은 스스로 그토록 비난하던 보수정당의 정치 풍토를 따라가는 데만 급급했다. 유세 현장에서 이봉수 후보 선거운동원들은 등판에 ‘김해 사람’이 새겨진 옷을 입고 춤을 췄다.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가 다른 지역 출신임을 겨냥한 것이었다.
 
한 술 더 떠서 유시민 대표는 노골적인 지역감정 발언으로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을 내보낸 건 김해 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말하고 다녔다. 정책 대결로 승부하는 선거 정신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복지를 간판으로 내세웠을 뿐 개발 약속으로 속을 채운 이봉수 후보의 공약에 비해 대놓고 현란한 개발 공약을 나열한 김태호 후보는 솔직하기라도 했다. 선거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면 참여당의 버릇을 키워주는 결과만 낳았을 것이다.
 
야권연대의 길은 험난하다. 야 4당 사이에는 MB 정권 반대만 공통될 뿐 한-EU FTA 비준 처리에서 드러나듯 공존할 수 없는 목소리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공동의 적을 내세우는 것만으로 선거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유권자들이 MB 정권만 아니라면 어떤 것이든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재·보선 결과 민심이 현 정부에 등을 돌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서 국민들이 지난 정권에 향수를 느낀다고 생각하면 더 곤란하다.
 
국민들에게는 참여정부 당시 끝 모를 경기침체나 자고 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있던 부동산 가격의 고통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국민들은 경제에 무능한 정권을 버리고 조금이라도 덜 무능할 것 같은 정권을 택했다. 개혁적 중산층에게 기댔던 참여정부는 남북화해 진전, 지방분권 시도, 과거사 청산 노력, 복지 지출 증가 등 일부 개혁에서 자신들의 역량만큼 성취했으며, 능력 밖의 일은 손대지 않았다. 빈부 격차, 노동 소외 등 사회의 지배 질서를 바꾸는 데는 관심 밖이거나 오히려 문제를 더욱 조장했다.
 
참여정부는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세력이었다. 한-미 FTA, 비정규직 문제도 답이 없었다. 민주당이나 참여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삼성의 지배 구도가 힘을 잃을 수 있을까.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국정과제로 베낀 것이 노무현 정부였다.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당당히 말한 정권이었다. 시장에서 탈락하는 이들이 속출하자 이들을 간신히 연명시켜 주는 선에서 복지 지출이 늘어나야 했다. 복지정책을 말하자면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참여당은 박근혜표 복지보다 더 뒤에 밀린다.
 
보수세력의 방해 때문에 참여정부가 할 일을 못했다고 두둔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참여정부는 제 능력에 맞는 역할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수행했을 뿐이다. 수구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으로 역할은 이미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반성 없이 참여정부의 계승을, 성찰 없이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따져 볼 것이 많은데, 하물며 노무현 계승을 내세우는 세력들과 손잡는 것이 얼마나 매끄러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정부의 공과를 엄정히 평가하는 과정이 없거나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안일하게 기댄다면 야권연대의 앞날에는 첩첩산중의 장애물이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 본 기사는 5월 10일자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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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15 [15: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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