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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염장 지르는 '읍니다' 대통령의 글쓰기
[정문순 칼럼] 이대통령은 국격 위해 맞춤법부터 제대로 공부하시라
 
정문순   기사입력  2011/03/28 [21:13]
우리나라 국격을 대표하는 어떤 분이, 일본의 지진 피해를 위로하기 위해 그 나라 대사관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의례적으로 토막글을 남기셨다. 
 
▲ 일본 지진 참사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방명록. 또 다시 '읍니다' 써 빈축을 사고 있다.     © 일본대사관

“희생자 여러분을 우리 국민 모두가 애도 드립니다. 일본이 빠른 시간 내에 회복되리라 확신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인 대한민국이 함께 하겠읍니다.”

이 짧은 글은 많은 생각 다발을 안겨준다. 일국을 상징하는 분이 자기 나라 언어를 정확하게 쓰지 못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외국에서 살다 오신 것도 아닌데 수 십 년 전에 바뀐 맞춤법을 착각하고 있는 것도 충격이지만, 통째로 손봐야 하는 글을 적은 것도 놀랍다. 

문법이 완벽한 글은 물살이 흐르듯 유연하게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이 글은 첫 문장부터 낡은 마루를 걷듯 삐걱거린다. 첫 문장은 서술어 하나에 목적어가 두 개 걸렸다. “애도 드립니다”가 “애도를 드립니다”를 줄인 것이라면, ‘드립니다’가 ‘여러분을’과 ‘애도를’이라는 두 개의 목적어를 받으니 한국어인지 외계어인지 종잡을 수 없는 문장이 된 셈이다.
 
더욱이 ‘드린다’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표현이므로, 나라를 대표하는 분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아무리 타국의 재난 희생자를 깊이 애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대한민국을 희생자보다 낮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진 참사 후 성금을 모았던 고등학생들은 일본을 위로하는 편지에서 “애도를 표합니다.”라고 썼다. 국격을 좋아하는 분보다 어린 학생들이 더 정확하게 국격의 위엄을 실천하고 있다. 

첫 문장의 어색함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한국어의 일반적인 어순은 목적어가 주어를 앞세우며, 간혹 목적어가 앞설 때는 강조를 하는 등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에 그칠 뿐이다. 글쓴이는 “희생자 여러분을”을 주어인 ‘우리 국민’보다 강조한 셈인데, 일본 희생자를 자국민보다 부각시키는 것 또한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는 일임을 알 필요가 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문장에서 ‘회복되리라’는 ‘회복하리라’로 바꿔야 한다. “함께 하겠읍니다.” 역시 어색하기만 한데 팔다리를 잘라낸 말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함께’는 홀로 쓸 수 없고 반드시 다른 말을 동반하므로,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나와야 하며, ‘하겠읍니다’ 역시 목적어 없이 저 혼자 쓸 수 없다. 

지금까지 거론한 것들은 준비 없이 급하게 생각 나는 대로 쓰다 보니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 치자. 그러나 ‘습니다’ 만큼은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글쓴이가 평소에 어떤 수준의 언어생활을 해왔는지 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뀐 건 쌍팔년도 한국어맞춤법 개정 때의 일인데, 이 분은 아무래도 독서나 인터넷 이용 등 한국어로 문자 생활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는 것 같다. 몇 년 전 현충원에서 쓴 방명록에도 똑같은 실수를 남기셨다. 그때도 원성이 자자했는데 본인은 그 사실도 모르시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언어생활을 가지고 무식하다고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런 모습에서 평범한 우리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점을 발견할 수 있어서 친근감이 들기도 한다. 재래시장에서 경호원들로 장벽을 친 채 기자들 앞에서 서민 음식을 종류별로 먹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보다는, 이런 흠결에서 감출 수 없는 서민적인 본바탕이 드러나는 듯하다. 이 분이 진짜 ‘친서민’적으로 보이기를 원한다면 맞춤법과 어법이 엉망인 글을 자주 쓰도록 기회를 마련해 줘라고 그를 보좌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싶기도 하다. 

우리네 장삼이사들도 입말과 글말이 일치하지 않기 일쑤인 한국어 맞춤법을 어려워하고,  방명록 같은 간단한 글을 써야 할 때도 긴장하는 경우가 많다. 살아가다가 실수하거나 틀린 것이 있어도 그걸 뜯어고치려고 애쓰기보다 먹고사는 것이 바쁘거나 재주나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손해 볼망정 약점을 교정하는 일에 게으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분은 결코 평범한 서민의 위치에 있는 분이 아니다. 왕조시대에도 군주가 공부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결격사유였고, 심지어 반대 세력에게 쿠데타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가령 연산군은 해 뜰 때부터 밤까지 줄줄이 있는 군주 과외수업인 경연이 지겨워 아예 없애버렸던 군왕이었다. 최고 집권자가 촌음을 아껴서라도 부지런히 공부해야 까닭은 지식을 높이 쌓아올려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자를 실패로 몰아넣기 쉬운 자기확신이나 고집, 편견을 물리치기 위해서이다. 꾸준한 공부와 독서를 통해 자신이 맹신했을지 모르는 정책의 허점을 고치고 국민이 더 나은 생활을 누리도록 기여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전에 맞춤법이 바뀌었는지 어쨌는지 알지 못하고, 신문 읽기나 인터넷 접속 같은 기초적인 문자언어 생활조차 게을리하고, 똑같은 실수를 거듭해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 수준의 인물이라면 나라를 이끄는 일에 대해서도 신뢰감을 보내기가 난망하다. 국정 운영 담당자의 자기계발 능력이 모자람은 자신만 망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나라 경영에서 잘못이나 실패가 드러나도 고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종교적 확신에 기대어 민심이 진작에 떠나간 일을 만신창이가 된 지경에서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것, 그의 글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진심으로 충고하건대, 청와대 비서실은 제발 전담 직원을 두어 ‘읍니다’ 대통령에게 한글 받아쓰기 연습이라도 시키기 바란다.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3.28에 게재된 글을 더 보태고 다듬은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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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3/28 [21: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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