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의언론시평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몸이 아파도 약 사먹기 힘든 나라
[김영호 칼럼] 표나 세는 하류 정치인 탓에 국민들이 생고생해야 하나
 
김영호   기사입력  2011/01/26 [18:37]

1999년 미국의 유통재벌 월마트가 구내약국에서 응급피임약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가족계획 옹호자들이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월마트 구내약국 이외에 약국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는 이 약을 사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6년 마사추세츠에 거주하는 여성 3명이 월마트를 상대로 응급피임약 판매중지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월마트는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되자 미국 전역에서 이 약 판매를 재개했다.

월마트는 이와 동시에 ‘양심적 반대’ 정책을 채택했다. 즉 구내약국 약사가 이 약을 판매하는 데 심적 갈등을 느낀다면 다른 약국을 이용하도록 권유할 수 있다는 단서이다. 응급피임약을 일상적인 피임방법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른 오-남용이 빚을 부작용-후유증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약사가 판단한다면 판매를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약사가 콘돔이 찢어지거나 성폭행과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신중하게 복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면 그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12월 22일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감기약과 같은 일반약은 미국에서처럼 슈퍼마켓에서 팔도록 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는 지난 정권들이 수십년간 풀지 못한 해묵은 과제다. 이 발언이 또 다시 논쟁을 촉발했다. 약사회는 반대하고 나섰고 의료관련단체, 시민단체와 다수의 국민이 찬성한다. 과거처럼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이 끼어들어 이번에는 해결될지 두고 볼 일이다.

약사들은 동네 주민과 접촉이 많다. 약사회란 이익단체를 중심으로 결집하면 선거에 미칠 영향력이 클 수 있다. 의약분업에 따라 동네 약국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대형병원 주변에 대형약국들이 몰리면서 동네 약국은 그야말로 초토화된 양상이다. 남은 약국들도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이나 팔아 연명하는 신세다. 이런 형편에 슈퍼마켓, 편의점에서 소화제, 해열제, 감기약 따위를 팔도록 한다면 생계기반을 뺏긴다고 생각해 집단 반발할 게 뻔하다.

이재오 장관의 최측근인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이 1월 11일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성동구 약사회 총회에 참석해 걱정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튼 날인 12일 이재오 특임장관도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 약사회 총회에서 권력누수 탓인지 내가 막겠다고 진 장관을 옹호하고 나서 이 대통령의 발언을 무색케 만들었다. 기획재정부에서 슈퍼판매를 추진하려고 하는데 공론화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한 것이다.

집권당이라면 이 문제를 득표 차원에서만 접근할 성격이 아니다. 국민의 편익과 소비자 주권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의약분업 이전과 달리 동네는 물론이고 대도시 중심가에서도 약국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도 주말과 공휴일에는 문을 열지 않고 평일에도 밤늦으면 문을 닫는다. 365일 문을 연다는 연중무휴약국, 새벽까지 영업한다는 심야응급약국을 운영한다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몸 아픈 사람이 그곳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바다에 나가 낚싯배를 탄 적이 있다. 뱃멀미가 나서 죽을 고생을 했다. 차를 타고 국도를 달리며 동네마다 뒤졌으나 약국은 없고 있어도 휴일이라 문을 닫았다. 두어 시간 달려 어느 시골 동네 구멍가게에 들러 진통제를 한 병을 사마시고 겨우 살아났다. 주말에 감기 기운이 있으나 약을 살 수 없어 이틀 지나 병원에 갈 때가지 참았다가 덧이 나서 고생한 따위의 일은 주위에서 얼마든지 보고 듣는다. 국민은 뒷전에 두고 표나 세는 하류 정치인 탓에 국민들이 생고생한다. 응급피임약 판매방식을 결정하는 월마트의 지혜가 부럽다.

의약분업에 따라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약국의 어려움은 알만하다. 그렇다면 절충안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밤 10시 이후와 휴일에만 구멍가게나 편의점에서 일반의약품을 팔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소화제, 진통제, 해열제, 소독제, 지사제, 감기약 등 일반의약품을 재분류해서 안전성이 검증된 약만 팔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할인마트니 대형마트니 하는 유통재벌의 양판장에서는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 ‘통큰 치킨’이니 ‘이마트 피자’니 해서 동네상권을 말아먹듯이 약국마저 먹어치우면 국민은 더 고통스럽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1/01/26 [18:37]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바른나라 2011/01/28 [23:26] 수정 | 삭제
  • 감기약, 소화제, 두통약, 해열제 등의 가정상비약을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사면 '국민건강보험'에서도 약값의 일부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슈퍼에서 판매하면 국민건강보험에선 약값으 일부를 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전문의약품은 '보험약'인데, 일반의약품은 '무보험약'이라고고 하더군요. 즉, 전 국민은 법으로 정해진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로서 '보험료'를 '강제 납입'해야하는 '보험가입자'인데, 약을 어떤 방법으로 어디서, 어떤 용도로 사는가에 따라서 '보험금(약값)'을 받지 못하는 '무보험가입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가정상비약, 약국에서 사든, 슈퍼에서 사든,국민건강보험에서 보험금을 주지 않는 '약'은 없어져야 할 일이지요. '소비자의 편리성'을 내세워 덜컥 슈퍼 판매를 허용한다면, '국민의 보험료 부담'은 그대로이더라도 약을 사야 할 때 내야 할 국민의 부담이 더해지고, 판매자(슈퍼)의 추가 '이익'만큼 국민의 부담으로 추가될 것입니다. 단순하게 약사와 의사의 밥그릇 싸움이 본질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