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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뉴스] 왜 '여론조사' 탓만 할까?
여론조사 방식의 개선 뿐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 '언론 제 기능' 도와야
 
구용회   기사입력  2010/06/07 [18:17]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시원히 짚어 준다. [편집자 주]

 
6.2지방선거에서 선거결과가 한나라당의 ‘대패’로 나왔다. 대다수 언론의 예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였다.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잘못된 여론조사를 탓하고 있다. 여론조사 기법을 잘못된 예측의 주범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읽지 못한 것이 여론조사 탓이기만 할까? 서투른 무당이 장구만 나무란다는 얘기도 있는데 과연 잘못된 여론조사가 근원적 원인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선거결과에 대한 예측분석을 실패한데 대해 반성의 글을 올리는 언론도 있던데?

-많은 신문들은 선거보도의 실패 주범으로 ‘잘못된 여론 조사 결과’를 맹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숨은표 20%의 진실이라는 칼럼을 통해 “민심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비쳐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자책햇다. 서울신문도 기자 방담을 통해 “기자들이 유권자와 철저하게 유리돼 민심을 몰랐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신문은 20%포인트에 달하는 엉터러 여론조사를 제공한 것은 우리사회에서 '표현의 자유 위축 때문이다'라고 보다 근원적으로 반성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엉터리 여론조사라기보다는 유권자를 침묵시킨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는 것인가?

-단적인 예로 멀리 갈것도 없이 도올 김용옥씨에 대한 고발사건을 보자. 김씨는 천안함 사건이 발표된 직후 “조사결과 발표를 봤지만 나는 0.00001%도 설득을 당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보수단체는 김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걸 보고 제가 아는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0.0001%도 설득을 당하지 못했다"고 말한데 대해 "논란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도 아니고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고발될 만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것. 심지어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한두가지 ‘의혹’을 제기하면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하고, 보수단체는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지식인들이 이 정도인데 과연 어느 유권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었겠나?
 
▶‘의사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다’ ‘민주주의 역주행이다’라는 얘기는 지난 2년간 계속 제기가 돼오지 않았나?

-천안함 사건만이 아니다. 현 정부들이 지난 2년간을 되돌아보면 연예인은 정치적 발언을 해서도 안되는 일종의 ‘룰’이 형성됐다. 개그맨이 ‘1등만 아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자 여당 의원은 그 대사가 좋지 않다고 꼬집었고, 과연 그 개그맨이 다음프로에서 '살아남느냐?’가 저잣거리에서 회자되는 세상이었다. 또 현 정부를 ‘독재정권’이라고 비유한 전직 대통령에 대해 여당 사무총장은 ‘반군 지도자’라고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제가 아는 모 언론사 기자는 “우리 사회가 ‘통제사회다’라고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뭔가 말하고 쓰기가 부담스러운 나라가 됐다. 자기검열이 습관화됐다. 기자도 이런 지경인데 일반 국민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반대’와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필연적으로 엉터리 여론조사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말인가?

-보수 유력지들은 천안함 정국을 이용해 국민들을 이른바 ‘안보 우리’로 끌어들였다. 선거 직전까지만해도 이들 언론이 국민들을 ‘우리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보니까 국민들은 ‘우리 안’으로 끌려들어가지 않고 울타리 밖에서 버티고 있었다. 물론, 여론조사 방식도 보완할 점이 있다. 조사 기법이 개선돼야 한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근원적 처방’은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며 언론이 제기능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언로가 트이면 ‘사실’과 ‘사실 아닌 얘기’들이 어느정도 걸러지고 여론도 왜곡이 안될 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다. ‘격화소양(隔靴搔痒)이라는 말이 있다. ‘정작 가려운 곳은 신발속의 발인데, 가죽신을 신은 채 바깥쪽을 긁는다고 해서 가려움증이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뜻. 누이좋고 매부 좋은 일이 ‘민주주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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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6/07 [18: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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