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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과 옥소리: 여성억압 넘은 인권의 진전
[정문순 칼럼] 세상의 비난보다 당당함을 택한 그들의 용기가 세상을 바꿔
 
정문순   기사입력  2009/01/07 [17:50]
두 명의 배우 고(故) 최진실과, 옥소리는 1968년생 동갑이다. 20대에 한 사람은 만인의 우상으로, 다른 사람은 여자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화장품 광고 모델로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것도 똑같다. 그러나 대중에게 그들의 삶은 결혼 이전과 결혼 이후로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꽃으로 둘러싸여 있던 여자 연예인들의 미혼 시절은 ‘행복’을 단념하고 살았다고 스스로 밝힌 결혼 후의 삶과 얼마나 거리가 먼가. 복잡다단한 개인의 삶을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무리일 수 있지만, 베테랑 배우로 한창 활약할 그들의 순항에 암초로 작용한 것 중 하나가 결혼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고(故) 최진실과 옥소리의 선택; 여성억압을 넘어 인권의 진전으로
 
결혼이 삶의 전부나 다름없음을 요구받는 한국 여성에게, 결혼은 불행이 무엇인지 몰랐던 삶을 전혀 다른 곳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남자들에게 결혼은 그 이전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격변이나 전환의 계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누려온 삶의 틀을 고스란히 유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얻는 것이 있을 뿐 그 자신이 손해 볼 일은 별로 없다.
 
남자 운동선수들 중 상당수는 일찌감치 20대 중반을 넘기기 전에 결혼하며 20대 초반에 아버지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집 비우기를 밥 먹듯이 하는 그들에게는 결혼이 빠를수록 심리적 안정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한창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여자 선수가 결혼하는 이유로 마음의 안정을 운운한다면 십중팔구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여자 선수가 결혼을 생각할 때쯤이면 이미 은퇴까지 고려하고 있을 즈음이다.
 
결혼을 공짜로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가정은 자신이 무언가 애쓰고 기여하는 곳과는 거리가 멀며, 일방적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제공받는 안락한 공간일 뿐이다. 중학생 아들을 둔 어떤 여성은 아들이 훗날 자기 아내 대신 설거지 하는 버릇을 들이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손끝에 물을 안 묻히게 한다고 말한다. 그 아들은 나중에 어떤 남편이 되어 있을까.
 
귀한 아들로 자란 남자에게 결혼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준 일을 대신할 사람을 얻는 것이다. 가정이 남자의 심리적 긴장을 풀어 줄 쉼터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쉴 수가 없다는 것은 무시되거나 정당화된다. 일터에서 지친 몸을 쉬게 해줄 ‘고향’과 ‘어머니’ 같은 존재를 가정과 아내에게서 바라는 남자의 이기심이 충족되려면 여성이 허리띠 풀고 긴장을 놓을 곳은 없다.
 
결혼이 한쪽에만 쏠리는 권력을 낳는 한 남편의 외도, 폭력, 학대 등 인면수심을 가진 자만이 저지를 것 같은 악행도 개인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라 이 제도에서는 필연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무릇 세상의 군주에는 폭군과 성군이 있다. 폭군이든 성군이든 그 간격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 권력을 누리는 재미를 혼자 맛본다는 건 똑같다. 남자가 집안에서 용상에 앉고 싶어하는 한, 군주의 두 가지 얼굴은 어느 남자에게서나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남편 같잖은 남편을 낳는다고 깨닫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은 폭군을 모시고 사는 결혼을 청산하는 과정에 있다. 결혼이 불행의 시작이었음을 각성한 여성이 맞닥뜨려야 할 벽은 결혼이 아닌 이혼을 삶의 불행과 실패로 낙인찍는 세상이다. 적지 않은 여성들은 ‘이게 아니다’ 생각하면서도 가족과 주변으로부터 응원을 받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최진실과 옥소리는 사생활이 샅샅이 공개된 처지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이목이 무서워 위선을 강요하는 사회에 언제까지고 순응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행복을 가로챘던 남성 중심의 결혼 제도에서 피해자로 사는 데 주저앉지 않았다. 물론 그 대가는 혹독했다. 불화와 이혼 과정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남자라면 받았을 응원은 고사하고 무책임한 대중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고인이 된 이후 최진실은 남편을 잘못 만난 애처롭고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살아 있을 적 대중의 평판은 이와 딴판이었다. 생전에 고인을 사납고 드센 악처로 몰았던 근거 없는 악평은 이혼 후 홀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내 성을 물려주고 싶다”며 자녀 성씨를 바꾼 결단 등에서 보인 그녀의 당찬 태도와 관련이 있었다.
 
유일한 친권자로서 자식들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은 한 여성의 소박한 소망은 부계혈통주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고인은 법원의 허가를 받기 전까지 이혼 당시의 아픔이 떠올라 괴로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감수했던 고통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을 환한 꽃길로 이끌어준 셈이 되었다. 고인은 자신의 행동이 세상에 던지는 “작은 돌멩이”라고 말했지만, 돌멩이의 파장은 크고 넓었다. 그녀 이후로 자식의 성을 자신의 것으로 바꿔달라는 엄마들의 신청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당당함을 택한 그들의 용기가 세상을 바꿔
 
폭군에 순종하기를 강요하는 낡은 가족 질서에 생채기를 내기로는 옥소리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오랜 세월 동안 성적으로 존중받지 못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사상 4번째로 간통죄의 위헌성 여부를 심판하도록 만들었다. 그녀에게 성적인 존중과 자유는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과 같았다. 신체의 모멸과 구속을 거부하는 존엄한 인간의 이름으로 그녀는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었던 금기의 파탄을 선언했다.
 
지엄한 헌법재판소에서 성을 당당히 말한 여성은 타락하고 몹쓸 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러나 그녀 덕분에 세상은 그동안 성폭력에서만 가끔 언급될 뿐 여성학 논문에서만 구경할 수 있던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을 간통죄 논의에서도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혼인 관계에 있더라도 개인의 성적 자유가 배우자에게 제약될 수 없다는 담론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옥소리가 자신의 심경을 밝힌 말에는 ‘행복’이라는 낱말이 빠지지 않는다. 행복한 척 하고 긴 세월을 산 것이 가장 후회가 된다고, 이혼 소송 중인 남편에게 간통 혐의로 피소된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그렇게 해서라도 결혼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두 사람으로서는 혼자 키우는 아이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인간으로서 차마 단념할 수 없는 행복을 되찾으려는 소박한 행동이었지만, 여성이 자신의 성씨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금기일 뿐인 성을 말하는 것은 여성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서 인권의 커다란 진전으로 작용할 것이다. 세상의 비난보다 당당함을 택했던 이들의 용기 덕분에 개인에게 불행을 감당하게 하는 시대의 어둠은 조금씩 걷히고 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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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07 [17: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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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승오 2009/01/12 [10:53] 수정 | 삭제
  • 천만의 말입니다. 80년대 중반까지 군대에서 휴일 종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곧 삐딱한 놈 내지는 잠재적 왼쪽으로 인식되어 암묵적으로 어느 종교든 참가해야만 했죠. 그것처럼 아직도 결혼 거부자는 사회 부적응자 내지는 무능력자로 인식될 뿐이죠. 거기에는 이유 불문입니다. 물론 잘 생긴 고소득 전문직은 오히려 멋있게 산다고 부러움을 사지만.......
    경제적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법적으로만 갈라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실의 이혼에서 미국 영화처럼 멋있게 서로 갈라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결혼에서 이혼은 단순한 후회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재정 문제, 양육 문제 등 만약 소송까지 가게 된다면 온갖 추악한 까발리기와 트집 잡기가 난무합니다. 그 고통은 당사자나 친한 지인이 아니면 절대 모릅니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처럼 기본적인 법이나 사회 통념이 남성 우위인 사회에서는 여성 쪽이 법적인 승자가 되더라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패자일 따름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이 확정된 양육비나 기타 재정 부분 지급을 안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단순히 법절차만으로는 해결 안 되는 제약들이 엄청난 벽으로 가로막고 있습니다.
    혼자 살기도 그렇고 결혼에 편입하는 것도 그렇고......! 방법은 결혼해서 문제없이 잘 사는 것뿐인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문제라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