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IT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치명적인 농업, 새만금을 산업용지로 쓴다?
[논단] ‘인류 생존의 최우선 조건’이 된 농업, 식량위기 다시 생각해야
 
강상헌   기사입력  2008/09/10 [12:56]
새만금 ‘진주’를 ‘돼지우리’에 던져 버린다고! 

 중국과 인도가 빨리 경제력을 키워가면서 고기 소비가 엄청나게 늘고 있다. 돼지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곡물 9kg을 사료로 먹인다. 중국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 이집트 등이 잇따라 자국 수요를 맞추기 위해 쌀 콩 등 곡물 수출을 금지 또는 제한한다. 수입국 곡물가격이 2~7배 뛰었다. 물가폭동이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다. 

 옥수수 사탕수수가 알코올이 되어 자동차를 움직인다. 소위 바이오 연료다. 바이오 디젤도 만든다. 엄청난 경작지가 식량용이 아닌 연료용, 사료용으로 활용된다. 먹을 것은 줄어든다.  

 세계 인구는 엄청나게 는다. 1997년에 50억명이었던 것이 2000년 60억명을 돌파했다. 유엔은 현재 10억명이 기아(饑餓)상태에 있고, 37개국이 식량위기라고 최근 발표했다. 기후변화가 몰고 오는 식량 문제도 심각하다. 
   
다시 ‘인류 생존의 최우선 조건’이 된 농업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란 단어는 이제 상식이다. 농산물 값이 폭등하는 것을 이르는 용어다. 올해 초와 같은 갑작스런 파동(波動)은 좀 가셨지만, 상황은 장기적으로 악화(惡化)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위에서 살핀 여러 현상의 결과로 해석된다. 

 외국으로부터 싸게 사먹을 수 있었던 식량을 이제는 비싸게 사와야 한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으면 굶어야 한다. 이건 ‘식량전쟁’이다. 안보(安保), 위기(危機) 등의 단어가 무색하다. 우리는 식량의 25%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한다.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 5% 이하다. 식량위기에 우리나라는 치명적이다. 그런데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은 좌절 중이다.  

 “미국이 설마 우리를 굶어죽게 놔두기야 하겠어?”라고 위안을 삼을 이도 있겠다. 그러나 사물과 현상은 냉정하게 봐야한다. ‘밥(쌀)의 정치경제론’은 철학보다 절박하다.

 선진국 중 농업이 시원찮은 나라가 있는가? 그 나라 농민들이 다만 부지런해서 우리보다 농업이 발달했는가? 그것은 보조금 등 고도로 계산된 정책적 수단으로 농업을 지탱해온 결과다. 농업(밥)의 자립 없이 국가의 품격과 안전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위정자들만 모르는 것 같다.   

 싸게든 비싸게든 식량을 팔아줄 나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고민과 모색(摸索)이 우리 외교의 ‘주요 노선’이자 목적이 된다. 이미 이런 상황은 꽤 심각하다. 석유를 향한 짝사랑과도 맥(脈)이 같다. 식량자원은 에너지자원과 함께 나라 유지에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조건이다. 

 장을 볼 때마다 물가 때문에 절망한다고 주부들은 말한다. 이런 얘기를 그저 ‘서민의 어려움’ 정도로 여기고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 실은 더 절망적이다.

 우리 삶의 산수(算數), 소위 패러다임(paradigm)이 변한 것이다. 반도체 자동차 배를 만들어 수출하고, 식량은 외국으로부터 사먹으면 된다는 이전의 비교우위(比較優位)가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일 수 없다는 얘기다. 세상이 변해서 농업이 이제는 제조업보다 더 큰 책임을 지게 된 상황이다.

 여기까지는 실은 상식이다. 이렇게 ‘상식’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새만금 때문이다. 바다 막고, 갯벌 없애 억지로 만든 그 피눈물 감춘 큰 땅을 ‘주로 비농업용으로 쓴다’는 것이다. 원래는 100% 농지로 쓰기로 했던 것인데, 72%로 비율이 줄더니, 이번엔 아예 30%로 내려앉은 것이다.

‘농업 약체(弱體)’ 한국을 이 위기에서 건지려면...

 전라북도는 ‘그래서 반갑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언론은 전했다. ‘산업용지가 그래도 부족하다’고 했다고도 한다. 발표자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제시한 농지 30%의 수치에 맞췄다’고 설명했다.

 농업(農業)은 없다? 농업을 모르는 정치가들에게 ‘예를 들면’ ‘왜냐 하면’과 같은 친절한 설명은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인가? 왜 이들은 ‘천하의 큰 바탕’인 농업에 무식할까? 또 국제 정치 경제의 흐름에 따라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치명적인 부문이 된 농업과 식량에 관해 우리 정부와 해당 지자체는 눈을 감고 있다.

 새만금을 농지로 쓰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는 계산이 이젠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농업을 유지하는 것이 가지는 여러 귀중한 가치는 돈으로도 셈할 수 없다.

 외국에서 농사지어 식량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대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조건이든 외국에서 수입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큰 농장을 하는 우리나라 회사의 한 간부가 들려준 말이 시사적(示唆的)이다.

 한국에 식량위기가 오면 자기 회사가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전제조건이 있다는 것, 그 시기에 러시아의 식량사정이 나쁘지 않아야 하고, 러시아와 한국이 외교적으로 원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손아귀에 있는 것처럼 확실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해외농업이 그렇게 쉽거나, 싸게 먹히는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녹색경제의 진정한 시발점은 농업이다. 농업은 편법이나 꼼수를 수용하지 않는다. 생명시대의 새 가치 체계인 농업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추진력이다. 새 농업, 특히 젊은이들의 깨달음과 행동을 당부한다. 
 
* 글쓴이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위원 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8/09/10 [12:5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