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화요일(2일)에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시 고등학교 학군조정안을 발표했다. 2010년부터 시행할 고교선택제를 위한 개편작업이다.
기존 11개 학교군을 단일학교군 1개, 일반학교군 11개, 통합학교군 19개로 구분해 모두 31개 단위로 재편성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바뀌는 것은 고교진학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재편성된 학교군 속에서 학생들은 1단계에서는 서울시 전 지역 고교 중 2곳을 지원할 수 있고, 2단계에서는 자기 거주지의 일반학교군에서 고교 2곳을 지원할 수 있고, 3단계로 가면 집근처 통합학군에서 강제배정된다.
복잡하다. 간단히 잘 가던 고등학교를 이제부턴 신경 써서 가게 생겼다. 이렇게 사람이 신경 쓰는 절차를 만드는 것을 일컬어 ‘선택권 확대’라고 한다.
▲ 지난2일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2010년 부터 3단계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 고교학군제를 발표했다. © 서울시교육청 | |
한국인은 대입 정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대학선택권이 자유롭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교평준화는 그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고입단계에서만큼은 국민들의 머리가 가벼웠다. 이제 다시 무거워진다.
하지만 고교평준화가 완전히 깨지는 건 아니다. 1단계 지원에서 떨어지면 2단계로 밀리고, 2단계 지원에서 떨어지면 다시 3단계로 밀리지만, 시험은 보지 않는다. 학생선발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교육수요자는 서울시 전체 고교 일람표를 쭉 펼쳐놓고 심혈을 기울여 1지망, 2지망을 선택한다. 그 다음에 할 일은? 달 보고 기원하는 것이다. 붙느냐 안 붙느냐는 운이 가른다. 왜냐하면 당락을 ‘추첨’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말 엉터리같은 정책이다. 기껏 원하는 학교를 고심해 선택해놓고 추첨이라니, 장난하나? 이 제도가 막상 시행되면 누구도 추첨으로 갈리는 당락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왕 선택했으니만큼,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당락을 가려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못 이기는 척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게임은 끝난다.
즉, 고교평준화 해체다. 운이 아닌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성적선발이 시작된다. 사람들한테 선택권 나눠주고 학교선택을 고민하게 한 다음, 정작 뽑을 땐 추첨으로 뽑는다는 이 황당한 정책은 사람들이 스스로 고교평준화 해체를 요구하게끔 만드는 책략이라고 할 수 있다.
-강북을 교육슬럼 만들 우려가-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모두가 강남학교를 지원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 측은, 시교육청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수요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통편이고, 그 다음이 시설과 학풍(두발자유 등 학생인권)이며, 명문대 진학률은 맨 마지막 고려사항이었으므로 강남선호에 의한 부작용은 적을 것이라고 판단한단다.
정말 황당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수요자들이 원하는 학교는 교통 편리한 집 근처 두발 자유 학교란 말인가? 이런 정도로 만족하는 소박한 학부모들의 나라에서 입시경쟁, 입시지옥이 생겨났단 말인가? 특목고 경쟁은 왜 있으며, 국제중 경쟁은 왜 생겼을까? 아무래도 교육당국이 꿈나라에서 사는 것 같다.
선호학교와 기피학교가 극명히 갈리면 선호지역과 기피지역도 갈리게 된다. 선호지역은 당연히 중상층 밀집 지역이 될 것이다. 이런 지역은 지금도 교육특구지만 선호집중으로 인해 더더욱 교육특구가 된다. 반면에 기피지역은 아무도 원치 않는 교육슬럼이 될 텐데, 결국 강북이다.
강남을 정점으로 한 아파트 가격대 분포와 학교선호도가 일치할 것이란 얘기다. 좋은 학교와 땅값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그 학교는 정말로 황금학교가 된다. 반면에 나쁜 학교와 싸구려 부동산은 저주받은 동토의 땅을 만들 것이다.
이때 예전부터 주장 됐던 학교퇴출제가 함께 시행되면 더더욱이나 강남북 양극화는 극으로 치달을 것이다. 강북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학교선택제 하나로 졸지에 자기 지역이 교육슬럼으로 변해가는 꼴을 봐야 한다.
강남북 양극화를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평준화를 유지하고 열악한 지역에 재정지원을 늘려 서울시 전체를 상향평준화하면 된다. 학군조정-학교선택은 거꾸로 가는 길이다.
강북 학생이 강남에 갔을 때 학교 친구들이 ‘너희 집 무슨 동네니?’, ‘어.... 난 강북에서 왔어...’ 참 좋은 풍경이겠다. 그렇지 않아도 배타적인 강남 학교 풍토에서 그 어린 친구들은 이방인 취급을 받을 것이다. 못할 짓이다. 게다가, 지역에 남은 강북민은 탈출한 학생들을 선망하며 열패감에 젖을 것이다. 이건 더 못할 짓이다.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