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더나은 세상으로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학군조정안, 강북의 '강남식민지'화 가속
[하재근 칼럼] 강북을 교육슬럼으로 만들 학군조정안, 강남북 양극화 불러
 
하재근   기사입력  2008/09/05 [10:00]
이번 주 화요일(2일)에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시 고등학교 학군조정안을 발표했다. 2010년부터 시행할 고교선택제를 위한 개편작업이다.

기존 11개 학교군을 단일학교군 1개, 일반학교군 11개, 통합학교군 19개로 구분해 모두 31개 단위로 재편성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바뀌는 것은 고교진학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재편성된 학교군 속에서 학생들은 1단계에서는 서울시 전 지역 고교 중 2곳을 지원할 수 있고, 2단계에서는 자기 거주지의 일반학교군에서 고교 2곳을 지원할 수 있고, 3단계로 가면 집근처 통합학군에서 강제배정된다.

복잡하다. 간단히 잘 가던 고등학교를 이제부턴 신경 써서 가게 생겼다. 이렇게 사람이 신경 쓰는 절차를 만드는 것을 일컬어 ‘선택권 확대’라고 한다.
 
▲ 지난2일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2010년 부터 3단계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 고교학군제를 발표했다.     © 서울시교육청

한국인은 대입 정보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대학선택권이 자유롭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교평준화는 그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고입단계에서만큼은 국민들의 머리가 가벼웠다. 이제 다시 무거워진다.

하지만 고교평준화가 완전히 깨지는 건 아니다. 1단계 지원에서 떨어지면 2단계로 밀리고, 2단계 지원에서 떨어지면 다시 3단계로 밀리지만, 시험은 보지 않는다. 학생선발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교육수요자는 서울시 전체 고교 일람표를 쭉 펼쳐놓고 심혈을 기울여 1지망, 2지망을 선택한다. 그 다음에 할 일은? 달 보고 기원하는 것이다. 붙느냐 안 붙느냐는 운이 가른다. 왜냐하면 당락을 ‘추첨’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말 엉터리같은 정책이다. 기껏 원하는 학교를 고심해 선택해놓고 추첨이라니, 장난하나? 이 제도가 막상 시행되면 누구도 추첨으로 갈리는 당락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왕 선택했으니만큼,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당락을 가려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못 이기는 척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게임은 끝난다.

즉, 고교평준화 해체다. 운이 아닌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성적선발이 시작된다. 사람들한테 선택권 나눠주고 학교선택을 고민하게 한 다음, 정작 뽑을 땐 추첨으로 뽑는다는 이 황당한 정책은 사람들이 스스로 고교평준화 해체를 요구하게끔 만드는 책략이라고 할 수 있다.

-강북을 교육슬럼 만들 우려가-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모두가 강남학교를 지원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 측은, 시교육청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수요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통편이고, 그 다음이 시설과 학풍(두발자유 등 학생인권)이며, 명문대 진학률은 맨 마지막 고려사항이었으므로 강남선호에 의한 부작용은 적을 것이라고 판단한단다.

정말 황당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수요자들이 원하는 학교는 교통 편리한 집 근처 두발 자유 학교란 말인가? 이런 정도로 만족하는 소박한 학부모들의 나라에서 입시경쟁, 입시지옥이 생겨났단 말인가? 특목고 경쟁은 왜 있으며, 국제중 경쟁은 왜 생겼을까? 아무래도 교육당국이 꿈나라에서 사는 것 같다.

선호학교와 기피학교가 극명히 갈리면 선호지역과 기피지역도 갈리게 된다. 선호지역은 당연히 중상층 밀집 지역이 될 것이다. 이런 지역은 지금도 교육특구지만 선호집중으로 인해 더더욱 교육특구가 된다. 반면에 기피지역은 아무도 원치 않는 교육슬럼이 될 텐데, 결국 강북이다.

강남을 정점으로 한 아파트 가격대 분포와 학교선호도가 일치할 것이란 얘기다. 좋은 학교와 땅값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그 학교는 정말로 황금학교가 된다. 반면에 나쁜 학교와 싸구려 부동산은 저주받은 동토의 땅을 만들 것이다.

이때 예전부터 주장 됐던 학교퇴출제가 함께 시행되면 더더욱이나 강남북 양극화는 극으로 치달을 것이다. 강북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학교선택제 하나로 졸지에 자기 지역이 교육슬럼으로 변해가는 꼴을 봐야 한다.

강남북 양극화를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평준화를 유지하고 열악한 지역에 재정지원을 늘려 서울시 전체를 상향평준화하면 된다. 학군조정-학교선택은 거꾸로 가는 길이다.

강북 학생이 강남에 갔을 때 학교 친구들이 ‘너희 집 무슨 동네니?’, ‘어.... 난 강북에서 왔어...’ 참 좋은 풍경이겠다. 그렇지 않아도 배타적인 강남 학교 풍토에서 그 어린 친구들은 이방인 취급을 받을 것이다. 못할 짓이다. 게다가, 지역에 남은 강북민은 탈출한 학생들을 선망하며 열패감에 젖을 것이다. 이건 더 못할 짓이다. 답답하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8/09/05 [10:0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의문 2008/09/07 [16:53] 수정 | 삭제
  • 윗분 댓글 내용중

    "결론적으로 고교평준화는 대입지옥을 한 걸음 늦춘 것에 불과했음. 아무리 고교평준화를 유지해 봤자 현재와 같은 대입풍토에선 눈가림에 불과한 것.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 간의 지원 학생들의 학력격차가 극심하고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의 명문대가 대학서열화를 더욱 공고히 지켜내고 있는 현실에서 고교평준화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대입생들이 실력에 밀려 기숙사가 구비되지 않은 지방대에 원정 통학하는 풍토가 일반화된 지금 학생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학부모들은 터무니없이 과중한 등록금과 만만치않은 통학교통비 부담에 이중으로 시달리고 있음."

    실재 현실을 드러낸 내용으로서, '범죄집단 나와바리 안에서 죽기 싫으면 복종해야만 한다' 식의 처세가 상식이듯 '학벌패권과 그들이 주도하는 구성이데올로기'는 이미 '무언의 협박'과 다름없을 정도로 죄악이 되어 있음.

    그리고,

    개인이 개인자격으로 개인적 견해를 여러 분야에 걸쳐 쓰는 글에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이라는 직함을 다는 것은 그 단체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학벌없는 사회'는 그러한 '견해'나 '기술'방식에 단체 차원의 공식적인 승인 내지는 지지를 하는가? 결코 학벌이데올로기 강화에 일조하는 단체가 아니라면 교육운동진영의 비판 '내용'이나 '기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민운동의 적합성을 높혀야 마땅하다.
  • 지엽금지 2008/09/07 [12:10] 수정 | 삭제
  • 결론적으로 고교평준화는 대입지옥을 한 걸음 늦춘 것에 불과했음.
    아무리 고교평준화를 유지해봤자
    현재와 같은 대입풍토에선 눈가림에 불과한 것.
    지방대와 수도권대학간의 지원학생들의 학력격차가 극심하고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의 명문대가 대학서열화를 더욱 공고히 지켜내고
    있는 현실에서 고교평준화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지엽적인 문제.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대입생들이 실력에 밀려
    기숙사가 구비되지 않은 지방대에 원정 통학하는 풍토가 일반화된 지금
    학생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학부모들은 터무니없이 과중한 등록금과
    만만치않은 통학교통비 부담에 이중으로 시달리고 있음.

    그렇게해서 과중한 투자로 양산된 대학생들의 진로는 여전히 불투명.
    수준 이하의 시설로 대학을 설립한 관계자들만 떼돈을 벌 뿐
    대다수 학부모들이 등골이 휘는 엄청난 국가적 경제손실.
    일년에 천만원 가랑 투자되는 이 돈이 차라리 거리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데로 투자되었을 때의 경제효용과 비교해 보시기를

    이런 사태에 대한 단기적대책 없음.
    거시적인 대책으론 그 망할 학벌주의의 척살뿐인데
    구체적인 방법론을 짜내기가 만만찮음.
    대책수립의 당사자들이 학벌주의의 수혜자들인데
    누가 자기 밥그릇을 깨려할까.

    학벌주의 타파의 첫 단계는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의 명문대를 한 곳에 모아
    지방으로 강제 이전시켜 기숙사를 완비하는 것.
    물론 대학의 명칭도 바꿔야겠지

    서울대와 연고대 동창들이 이런 현상을 묵인해줄 수 있을까.

  • 2008/09/05 [22:45] 수정 | 삭제

  • "강남을 정점으로 한 아파트 가격대 분포와 학교선호도가 일치할 것이란 얘기다. 좋은 학교와 땅값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그 학교는 정말로 황금학교가 된다. 반면에 나쁜 학교와 싸구려 부동산은 저주받은 동토의 땅을 만들 것이다....강북 학생이 강남에 갔을 때 학교 친구들이 ‘너희 집 무슨 동네니?’, ‘어.... 난 강북에서 왔어...’ 참 좋은 풍경이겠다. 그렇지 않아도 배타적인 강남 학교 풍토에서 그 어린 친구들은 이방인 취급을 받을 것이다. 못할 짓이다. 게다가, 지역에 남은 강북민은 탈출한 학생들을 선망하며 열패감에 젖을 것이다.", "강북의 강남 식민지화"(하재근)

    "서열화는 돈이 빠듯하거나 부족한 사람에게 불리하다. 사교육비를 많이 투입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아이가 좋은 성적을 얻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뿐만이 아니다. 서열화란 곧 고급차 구간과 나머지 자가용 구간으로 나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육은 ‘합리적인 소비’를 해서는 곤란하다. 돈이 적으면 모닝 구입하고, 많으면 에쿠스 사는 소비를 하면 안 된다. 무조건 에쿠스를 사야 한다. 모닝으로는 목적지(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목적지에 갈 수 없으면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출혈을 해서라도 에쿠스를 사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불리하다."(송경원)

    “이런 구조로 성적공개-학교서열화는 없는 집 자식들을 천덕꾸러기로 만든다. 대학서열체제 하나만 갖고도 있는 집 자식들이 일류대 가고 없는 집 자식들이 지방대 가는 꼴을 봐왔다. 초중고 서열화는 전 국민의 교육과정 전체에 걸쳐 없는 집 자식들을 화끈하게 배제하겠다는 기획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통해 1류의 딱지를 받는 사람은 극소수다. 학교서열화는 나머지 다수에게 천덕꾸러기 딱지를 붙이는 국민능멸장치다. 초중고에까지 이것이 전면화되면 두 가지가 죽는다. 바로 일반국민과 교육이다. 대신에 두 가지가 산다. 바로 부잣집 자식들과 일류학교다. 일반국민에겐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 부자들에겐 극락으로 가는 KTX다”(하재근)



    거침없는 비판 좋다. 앞뒤 안가리고 쏟아내는 '비판하기'로부터 시원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보주의자의 위와 같은 기술은 진정 계급적 관점을 올바로 견지하고 있거나 반 학벌주의에 복무하는 기술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현상유지를 기반으로 대충 타협점을 찾아 나서는 개혁론자라면 몰라도 '학벌체제 혁파'의 관점에서 볼 땐 반학벌주의에 미치고 못한채 오히려 다른 방향을 강화할지도 모르고 결과 또한 원하는 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송경원과 진보신당 그리고 하재근 같이 교육운동하는 사람들은 이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진정으로 학벌체제를 철폐하려는 입장이라면 서울대 가치를 숭배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계급적 이해에서 서울대패권과 부도덕성을 정면으로 비판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궁색하게 만들고 2~3류대 지방대 무학벌을 폄훼하는 꼴이 되어 버리는 사유방식과 글쓰기를 재고해야 한다. 학벌체제나 교육문제를 계급적으로 접근한다면 피해의식이나 컴플렉스만 강화될 억울한 비판을 넘는 당당한 자주성과 자존심이 필요하다. 무턱댄 자기비하가 아닌 사회의 주체를 어디에 둘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예컨데 미국패권과 재벌독점을 비판할 때나 학벌체제와 학벌주의를 비판할 때 가치 관점의 위치는 동일하다. 부도덕한 쪽은 분명하고 민중과 시민이 패자가 되거나 저급한 존재가 될 순 없다. "미국식 문명으로 제3세계 문화를 재단하는 오류" "대중을 계몽과 견인 대상으로 놓는 운동 엘리트주의 비판" "한국에서 학벌은 그의 인격(인성)을 대변하지 않는다. 계급을 가를 뿐이다" 식의 기술을 보라. 그렇다. 노동자 농민 서민 대중이 기죽으며 천덕꾸러기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


    반미하면서 미국을 위대한 선진국으로 설정하고 스스로를 개화되지 못한 천덕꾸러기로 비하하는 어리석음.

    부자들만 들어가고 가난한 우리는 (다 들어가고 싶지만)못 들어 갈수 밖에 없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서울대나 명문대, 우리는 3류이자 천덕꾸러기이고 그들은 1류이고 부자이고 교양 있는 우아한 계층들, 아와 타 간에 가치를 제대로 설정하였는가? 진보적 철학이 민중사관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저래서는 곤란하다. 훌륭한 서민의 똑똑한 자식이 똑똑함에도 들어갈 수 없는 체제라면 혁파의 대상이지 선망의 대상으로 전도되 버리면 곤란하다. 강남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패권을 가린채 제도나 기회의 공정성에만 매몰되면?

    송경원이나 하재근같은 사람들의 오류는, 예를 들어 사교육 불평등 정도가 아닌 아예 상위 부자 10%(매년 수능생 중 6만명에 해당되니 서울에 모든 4년제 대학 입학정원에 해당하는 숫자)를 서울대에 들어갈 수 없게 제도적으로 막아버린다면? 나머지 가난한 사람들만 서울대 들어갈 기회가 주어지니 이제 공정해진 것인가? 다시 가난한 그들끼리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죽음의 경쟁이 나타나도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인가? 사회패권은 어디로 움직이게 될까 ?


    서울대를 띄우고 학벌체제를 강화하는 오류 - 학벌 이중간첩들

    서울대(명문대)를 대단한 지위에 놓고 그곳에 들어가는 제도의 공정성만을 쟁점 삼는 인식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정확히 개혁적 유사학벌주의자일 수 있다. 서울대 패권은 학벌 이중간첩들의 비판이 고맙고 일정정도 제도개선이 되어 반서울대 정서가 무뎌지길 바랄 것이다. 누가 어떤 경로로 들어오든 서울대로선 정점의 자리를 지키며 국가권력과 사회주도권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사회는? 여전히 서울대(명문대) 입학을 위한 죽음의 경쟁이 강요될 것이다.


    사교육이 결국 서울대(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동원수단 그렇게 하여 계급 되물림을 이루는 기회와 조건이 되기에 그 동원수단을 많이 가진 부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지점은 맞는 얘기다. 그런데, 늘 거기서 멈춰 버리고 만다. 인식이 학벌(교육)과 부자(사교육)와 서울대(명문대, 계급대물림)가 서로 어울려 노는 수준에서 멈춰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늘 본질은 서울대에 들어가는 길의 공정성 문제일 뿐 서울대공화국 패권 자체가 아니게 된다. 내심 의도하는 바일까?


    '서울대'의 가치와 '대학평준화' 안의 이념적 근간.

    고유명사로서나 옥스포드 사전적 의미가 아닌 한/국/사/회/ 공/동/체/ 문/제/의/식/에서의 '서울대', 그러한 사회문제적 혹은 계급(계층)적 맥락에서라면 서울대는 더 이상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다! 라는 단호한 양심 선언 ! 그러한 근본적 접근이 진보다. '대학평준화'가 그것을 부정하고 성립될 수 있는가? 만약 지켜야 할 가치가 남아 있다면 '대학평준화' 안도 양보할 내용이 있다는 의미이다. 양보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결국 학벌 이중간첩들에 의해 서울대(명문대)는 더욱 대단한 지위와 권위를 부여받게 된다. '숭배'는 '비판'으로부터도 구축된다는 점을 모를 정도로 인식의 깊이가 낮은 막 갈기는 칼럼질 일 뿐이다.

    "서울대에 가고 싶었는데 사교육 못 받아 못 갔고, 부모인 내가 경제적으로 무능력 해 자식 서울대에 못 보냈다. 그래서 학벌에 반대한다." 이런 냉소적 비난이 성립되는 꼴이다. 그렇게 각인된 사회(이권)적 가치로서의 승복과 비판적 숭배, 집요하게 강조된 성적에 대한 굴종과 숭배, 그래서 '서울대에 못들어 간 주제라 서울대 욕하는 것'으로 보일까 봐 반서울대 학벌체제 혁파의 전선에 나서길 주저하는 심리는 어쩌면 자연스럽고, 2등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히 얻어 만족하는 연고대도 그 지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시 강조한다.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는 교육운동가들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그러니까 반학벌주의 진보주의자가 "우리 아이 서울대(명문대) 갈수 있나 ?" 라는 식으로 비판의 맥락을 잡으면, 이 얘긴 결국 "서울대에 보내고 싶은데 부모인 내가 사교육비 동원 못하는 경제적 무능력자 다 보니 아기가 서울대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교육개혁하고 대학을 평준화 하자 !" 이런 얘기가 되어 버리지 않는가? 일단 제목부터 아주 섹시하게 학벌사회를 강조하고 있는 꼴 아닌가?

    서울대 출신 등 학벌주의자들이 보면 오르가즘 느낄만한 제목이다.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면서도 서울대공화국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모습과 다름이 없다. 솔직히 진보지식인들이나 진보정치 진영에서 좌파 운운하면서도 학벌차별이나 학벌의 계급적 사회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침묵하거나 전혀 진보적이지 않는 기회주의자들 많다.

    고교평준화 이전과 이후 상관없이 '서울대'는 변수인가 상수인가. '서울대'는 늘 '상수'였고 '입시제도'와 '중등교육제도'만이 수없는 '변수'였다.

    서울대 입학사정의 공정성 논쟁, 왜 그런 걸까? 왜 진보적 교육운동가들이 그 구도에 끼어 서울대 삐끼노릇을 할까? 역시 서울대를 중심으로 학벌 패권이 작동되는 진보바닥 즉 진보정당이나 전교조 그리고 여느 시민단체에서 한자리 차지해 맡은 게 '교육분야'라고 그저 개념없이 진보적 연기를 충실히 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만 하다. 진짜 학벌체제 타파를 꿈꾼다면 그러한 허위와 기만의 바닥부터 쳐야 한다!

    '서울대' '명문대' 그것을 가치로 놓는다면(명문대 내 아이도 갈수 있나? 이는 가치인정의 집약이다.) 아무리 칼날같은 비판이 섞여 있다 하더라도 효과는 없이 그저 서울대(명문대)를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그런 논쟁을 통해 사회를 지속적으로 (서울대를 중심으로 하는)엘리트 중심사회로 재편하는 그 본질을 누가 주도할까? 서울대 때문에 장사 좀 해 묵고 살려는 신림동과 봉천동 순대국집 아줌마들과 노래방 카라오케 나가요 걸들이 주도하는가? 설대 주변 부동산 자본가들인가? 뻔하지 않는가.


    "한국서 진보가 진도 못나가는 이유가 다 있다. 하나는 맑스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간섭을 하고 있다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서울대패권이 너무 강력하게 맑스를 막아내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