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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학벌, 기숙형공립고는 완전 사기극
[하재근 칼럼] 입시경쟁 지방살리기 교육정책, 지방도 죽고 교육도 죽여
 
하재근   기사입력  2008/09/01 [10:30]
지난 주에 기숙형 공립고로 선정된 82곳이 발표됐다. 지방의 부족한 교육기반을 강화해 도농간 교육격차를 해소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한 마디로 지방살리기 교육정책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렇게 될까?

사기극이다. 지방도 죽고 교육도 죽는다.

기숙형 공립고는 지방에 있는 몇몇 학교에 국가의 자원을 몰아주고 자율성을 준다는 기획이다. 현재는 일단 총 3,173억 원, 학교별로 38억 원씩 돌아간다.

한국 학생들의 처지가 지금 어떤가? 죽을 지경이다. 공황이고 파탄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국가가 국립서울대학교에 자원을 몰아주고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하게 했다. 그러자 학생들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을 시작했다. 모두 죽을 지경이 됐다.

지방 단위에서 학교를 하나씩 골라 자원을 몰아주고 학생을 뽑으라고 하면, 전국 단위에서 벌어지던 일이 지방 단위에서도 벌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기숙형 공립고는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방 중딩들아 지옥이 궁금하니? 입시지옥의 끝을 보여줄게.’

지방 아이들한테 원수 졌나? 그렇게 아이들에게 지옥체험을 시키는 대가로 지방이 얻을 이익이 있을까? 미안한 얘기지만, 아무 것도 없다. 바람만 잔뜩 든 ‘공갈빵‘ 이다.

한국의 지방은 붕괴지경이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교육문제도 크다. 젊은 인재가 교육 때문에 유출된다. 기숙형 공립고 만들면 그 인재들이 돌아오나?

아니, 고졸로 학력 마감할 일 있나? 한국인이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추구하는 건 ‘명문고‘가 아니라 ‘명문대‘다. 명문대가 서울에 있는 한 지방 공동화는 필연이다. 고등학교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지방은 애들만 잡고 얻는 건 없다. 이래놓고 지방을 살려?

물론 지방 명문 기숙형 공립고 학생들에겐 약간의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명문고엔 누가 가나? 전국 단위에서 선발했을 땐 부잣집 자식들이 갔다. 입시경쟁은 돈경쟁이니까. 지방에서 선발하면 이 구조가 바뀌나? 그대로다. 역시 사교육 경쟁이고 돈경쟁이다. 결국 지방 중상층과 지방 학원업자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대신에 일반적인 지방 아이들은 지망 명문고 경쟁의 들러리를 서느라 사교육비를 더 써야 하고, 고교생이 돼서는 명문고의 교복에 주눅 들려, 자기 교복을 ‘쪽팔려하며’ 3년을 땅만 쳐다보고 다녀야 한다.

그러므로 지방 죽이는 정책이다. 지방 아이들에게 10대 때부터 3류의 낙인을 찍게 된다. 그 아이들이 나중에 참 잘도 크겠다.

교육도 필연적으로 죽는다.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 관계자는 “다양한 학습 커리큘럼도 도입해 기숙형 공립고를 인성교육의 구심점으로 키워 나가겠다“라고 했다 한다. 이런 때에 쓰라고 있는 우리말 관용구가 이것이다.

‘웃기고 자빠졌네.’

기숙형 공립고가 인성교육의 구심점이 되면 그 학교는 망한다. 세금만 허비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고교의 목표는 인성교육이 아니니까. 이미 취지가 도농간 교육격차 해소에 있는데 웬 인성교육? 우리나라에 도농간 인성격차가 있나? 지방 애들이 서울 애들보다 인성이 떨어지나?

웃기는 소리다. 떨어지는 건 입시석차일 뿐이다. 예컨대 착한 50점 지방 아이와 못된 100점 강남 아이가 서울대를 지원하면 후자가 뽑힌다. 그러므로 우리 학교의 목표는 아이들이 착하건 못됐건 100점을 맞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 특수학교를 만들어 도농간 교육격차를 줄이려 하면, 그 학교는 매우 특수한 교육을 하게 되는데, 바로 아이들 ‘인성’을 내팽개치는 교육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성교육 운운은 ‘웃기고 자빠진’ 얘기다.

지방 아이들이 염려되면 지방 교육예산을 늘려 재정지원을 하면 된다. 왜 몇몇 학교를 찍어서 아이들을 ‘시험에 빠지게’ 만드나? 입시경쟁은 일류대라는 자원을 보유한 서울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입시경쟁 문화가 강화될수록 지방은 피해를 입을 뿐이다.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방에다 입시경쟁의 판을 조장한다. 그렇지 않아도 비평준화로 발생하는 지방의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것도 어린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사고는 민간이 자유롭게 알아서 교육을 파탄시킨다지만, 이번엔 국가다. 국가가 국민의 돈을 걷어 국민을 죽이는 데 쓰는 셈이다.

기숙형 공립고가 대성공을 거두면 기숙형 공립고 학벌만 생겨나 학벌사회를 더 강화할 것이다. 그 학벌에 속하지 못할 지방 아이들은 어떡하라고? 이래놓고 교육정책이란다. 정말 훌륭한 ‘사기극‘ 아닌가?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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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9/01 [10: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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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혈압 2008/09/01 [15:31] 수정 | 삭제
  • 혈압 높이지 마세요.

    시민들이 그러길 바래서 공정택 뽑았잖아요.

    다 자업자득인 것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을...

    에고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