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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와 현진권의 한여름 밤의 개그쇼
[진단] 조세정책를 통해 주택가격안정을 유도하는 나라는 없다?
 
홍헌호   기사입력  2008/08/15 [10:36]
전문가의 편협성은 치명적인 오류를 불러올 수 있어.

2008년은 대한민국 지성사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남기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촛불집회와 함께 촉발된 네티즌들의 광범한 정부정책 검증작업은 자칭,타칭 전문가란 꼬리표를 달고 국민들에게 무책임한 거짓말을 일삼아 왔던 전문가 집단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네티즌들이 중심이 된 이른바 ‘집단지성’이 항상 옳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경력으로 포장된 전문가들이 항상 옳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 노무현정부만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전문가들의 목소리와 집단지성의 목소리를 균형있게 들었다면 부동산정책에서 실기(失機)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전부터 네티즌들은 1990년대 후반 시행된 분양가 자율화 조치를 부동산 가격폭등의 주범으로 보고 정부가 조속히 ‘분양가 원가공개나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집단지성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경제관료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2002년 대선공약까지 번복하며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고 말았다.

당시 네티즌들은 경험과 직관에 의하여 이 제도가 부동산 가격안정에 매우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시장친화적이지 못하며 장기적으로 공급을 줄여 가격을 폭등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2008년 현 시점에서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포함하여 후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과학자들은 이런 류의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편협성이 가져오는 치명적인 오류를 의식하여 ‘전문가의 무능’이라는 용어를 학술적으로 정립해 놓고 있다. 학술적으로 ‘전문가의 무능’이란 전문가들이 지극히 협소한 전문성에 매몰되어 사회의 여러 현상 간의 관련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비전문가들보다 더 심각한 오류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뒤집으려 하니 기가 막힐 노릇

“조세 정책을 통해서 부동산 안정을 위한 정책을 쓰는 나라는 선진국에서는 별로 없다"(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 프레시안 7월 30일자)
“이 세상에 세제를 통해 주택가격을 통제하려는 정책을 시도하는 국가는 없다.”(현진권 아주대 교수, 서울신문 8월 7일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거 재무부에서 세제실장을 지냈고,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조세연구원 출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을 조세전문가라 부른다. 그러면 이들의 말은 100% 믿어도 좋은가.

자칭,타칭 전문가들은 자신의 경력을 은근히 과시하며 자신의 말을 믿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이들은 집단지성이 그들의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의외로 쉽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위의 인용구에서 보듯이 강 장관은 세제를 통해 부동산 가격안정을 모색하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현 교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용감무쌍하게 “이 세상에 세제를 통해 주택가격을 통제하려는 정책을 시도하는 국가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서 조세정책을 정책수단으로 쓰고 있는 마당에 전문가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뒤집으려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그래도 보다 정확한 사실 적시를 위하여 몇 가지 자료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2001년 4월 한국조세연구원이 내놓은 연구보고서, <토지공개념제도 개편에 따른 토지세제 발전방안>은 ‘개발이익 환수제도의 유형’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이렇게 썼다.

[자료-1] 개발이익환수제도의 유형(16개 유형 중 일부)
1. 원천적 환수형
   1) 토지의 국·공유화 및 임대제 : 스웨덴,싱가포르,이스라엘
   2) 공적토지취득시 기준지가제도 : 프랑스,서독 
2. 과세형
   5) 보유세(재산세,지가세) : 대부분의 국가
   6) 토지증치세 : 대만,이탈리아
   7) 양도소득세 : 대부분의 국가
3. 부담금 징수형
   8) 개발허가부 공공시설부담‘금’제 : 일본,서독
   9) 개발부담금제 : 서독, 싱가포르
  12) 수익자부담금제 : 일본, 서독 
4. 시설정비 부담형
  14) 개발허가부 공공시설부담제 : 일본, 미국, 영국, 서독, 프랑스

학술적으로 ‘개발이익환수’란, 부담을 하는 입장에서는 부동산 관련 모든 부담을 총칭한다 할 수 있다. 위의 16개 유형 모두가 다 형태만 다를 뿐 조세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안정은 전세계 부동산 관련 조세정책의 주요 목표

논란의 관건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시행하는 이런 개발이익환수제의 정책목표와 ‘부동산 가격안정’이라는 목표가 무관한 것이냐에 관한 것인데 강 장관과 현 교수는 양자가 무관하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위의 조세연구원 보고서는 ‘개발이익 환수의 필요성’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이렇게 썼다.

“국토가 협소한 우리나라의 경우 폭발적인 개발수요에 못 미치는 토지의 제한된 공급과 이로 인한 과다한 지가상승으로 개발사업과 관련..막대한 개발이익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토지공개념제도의 도입 당시 개발이익의 사회적 환수를 통한 부의 공평한 분배, 부동산투기에 대한 사전적 대처, 지가안정을 통한 토지시장에서의 원활한 공급확대는 어느나라보다 절실한 실정이었다.”

인용문에서 보다시피 조세연구원 보고서는 분명히 “부동산투기에 대한 사전적 대처, 지가안정을 통한 토지시장에서의 원활한 공급확대”를 개발이익환수제, 즉 부동산 관련 조세제도의 주요 목표로 적시하고 있다.

조세연구원 보고서만 그런 것일까. 1999년에 국토연구원이 내놓은 연구보고서, <개발이익환수제도의 재구성방안>도 역시 ‘개발이익 환수의 필요성’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이렇게 썼다.

“토지는 단순히 보유함으로써 불로소득을 사유화할 수 있게 되면 토지투기는 만연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지가는 한층 상승하여 토지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투기의 억제와 지가안정을 위해 개발이익은 환수되지 않으면 안된다.”

또 2003년 국토연구원은 <일본과 영국의 개발이익환수제도>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일본의 지가폭등억제책과 관련하여 이렇게 썼다.

“1980년대 (일본의) 지가폭등은...토지투기에 금융완화가 더해져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지가폭등의 억제책으로...1991년 세제개정으로 인한 지가세의 도입, 토지에 관한 양도소득세·법인세의 중과, 토지매수시의 융자 규제 등이 시행되었다.

이는 토지 자산가치의 증가에 따른 보유비용 증대를 통한 지가억제, 양도 단계에서의 개발이익의 흡수, 지가상승과 관련된 금융적 요인 해소 등을 목표로 한 것이다. ”

강 장관과 현 교수, 대안없는 무책임한 발언 일삼아선 곤란.

그리고 또 전문가를 자처하는 강 장관과 현 교수가 기존 정책을 비판하면서 대안없이 비판만을 일삼아서도 곤란하다. 나는 강 장관과 현 교수에게 묻고 싶다. 조세정책이 부동산 가격안정정책으로 부적절하다면 이보다 더 시장친화적인 다른 대체수단이 있는가 ?

늦게나마 우여곡절 끝에 2006년 말에 정립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가격안정정책을 정리해보면 크게 3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 조세정책 : 종부세, 양도세 강화를 통한 매수세 냉각유도
▲ 금융정책 : LTV규제, DTI규제 등 대출규제를 통한 매수세 냉각유도
▲ 수급조절정책 : 분양가 상한제+주택전매제한제도 등을 통한 매수세 냉각유도

그런데 이 세 가지 주요 정책 중 가장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무엇인가? 당연히 조세정책이다. 물론 노무현정부가 시장친화적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조세정책에만 매달린 게 화근이 되어 실기(失機)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조세정책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3대 정책을 다 써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열기가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의 자동차 보유댓수 폭증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고급주택 선호도나 고급자동차 선호도는 열병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부동산 열병이 있기에 부동산 투기광풍도 가능하다.

그래서 진보진영의 학자들이 조세정책 하나로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3대 정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실기(失機)한 것은 이런 한국적인 특수성-1980년대 이후 폭발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고급주택 선호 열풍과 고급자동차 선호 열풍-에 지나치게 안이하게 대처했기 때문이고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해서 실기(失機)했다 하여 종부세 등 조세정책이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면 사칙연산이 모두 필요한데 노무현정부가 덧셈만으로 충분하다고 우기다가 실기했다 하여 덧셈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강 장관과 현 교수는 덧셈 수준의 조세정책마저 부적절하다고 한다. 그러면 이들의 대안이 무엇일까? 보수주의자이면서 시장주의자인 이들이 수급조절정책인 분양가 상한제와 주택전매제한제도를 선호할 리가 없고, LTV규제, DTI규제 등 대출규제 정책 또한 선호할 리가 없을 터인데, 3대정책 중에서 가장 시장친화적이라는 조세정책마저 부인한다면 무슨 수단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단 말인가.

금리정책과 통화량 조절정책? 그것이 강 장관과 현 교수의 대안인가? 강 장관이나 한나라당, 그리고 MB정부가 한 번이라도 금리인상이나 통화량 축소에 찬성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2008년 현재의 경기침체국면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수단으로 이런 정책들이 권고할 만한 수단인가 ?

일국의 경제장관과 꽤 지명도 있는 조세전문가가 이렇게도 대안없이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아도 되는 것일까. 국민들이 강 장관 등에게 비판을 자주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랄 뿐이다.
* 필자는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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