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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편의, 감시카메라에 내맡겨진 치안
[정문순 칼럼] 지엽말단에 치우치는 정부의 성범죄 대처법이 더 문제
 
정문순   기사입력  2008/04/17 [17:21]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반장 엄석대의 횡포에 시달리던 한병태는 볼 일 보러 화장실에 왔다가 문득 그와 맞설 궁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깐일 뿐, 교실에 돌아와서는 어느새 못된 반장을 대신해 시험을 쳐주는 소심한 아이로 돌아온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만다. 그에게 마음을 바꿔 먹으라고 누군가가 시킨 것도 아니다. 화장실과 교실이라는 공간의 차이가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사적이고 비밀스런 행동이 가능할 수 있는 화장실과 달리 모든 것이 노출돼 있는 교실은 개인의 마음속 자유로운 생각이 활보하는 것마저 발목을 잡는다.

학교 폭력에 대처하고자 교실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학교가 늘고 있지만, 왕따 현상이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아직 나온 적이 없다. 영리한 아이들은 교사의 권위가 미치고 비밀이 보장될 수 없는 공적인 장소에서는 어른의 규범이 허용하지 않는 사건을 벌이지 않는다. 학교폭력이 빈발하는 현장은 화장실처럼 권위와 감시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감시카메라가 노려보는 곳에서는 노골적인 폭력이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학교폭력은 더 은밀해지고 교묘해지는 쪽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온다. 오히려 짓궂은 아이들은 교실에서 일부러 저희들끼리 왕따 동영상을 연출하여 인터넷에 퍼뜨리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학교 당국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교실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학교폭력의 전부인 줄 아는 어른들의 짧은 생각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감시카메라가 범죄를 줄이기보다 오히려 범죄를 더 은폐된 곳으로 이끄는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실은 잘 먹히지 않는다.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되는 데 아파트 승강기의 감시카메라가 큰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이자 감시 시설의 설치가 범죄의 필수적인 대처 방법인 양 떠오르는 반면 꼭 필요한 사회적 논의는 순식간에 잠재워졌다.
 
여성이나 아동이 범죄에 무기력하게 노출되는 현실에서 감시 시설의 인권침해 가능성이나 실질적인 범죄 대처 능력에 관한 의문은 떠오르기 쉽지 않다. 성범죄가 횡행하고 공권력의 치안 능력을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불안과 공포는, 감시카메라가 은밀하고 폐쇄적인 것을 속성으로 하는 성범죄를 막는 데는 그다지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나의 경우, 밤중에 아파트 승강기를 타려다 입구에 낯선 남자가 먼저 기다리는 것을 볼 때는 물러나는 것이 습관이 돼버렸다. 주민들의 요청으로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버릇은 바뀌지 않았다. 승강기 안에서 혼자 있으면 옷매무새를 만지고 콧노래라도 부를 수 있었던 예전의 완벽한 자유를 내 일거수일투족을 내려다보고 있는 카메라에게 내주는 대가로 범죄로부터의 보호막을 얻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밤길조차 마음 놓고 다닐 수 없는 숨 막히는 공포감 앞에서 어떤 것에도 의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미치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저 감시자에게 느끼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 

당국이 성범죄 대처에 진작 소매 걷고 나섰다면 개인이 자신의 안전을, 범죄 지능화에 기여하는 감시 기구에 의존하는 모순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인을 잠재적인 범죄 용의자로 취급하는 감시 기구의 존재가, 행정 당국에게는 전 사회를 촘촘한 그물망으로 얽어 범죄의 싹을 미리 차단함으로써 손쉽게 치안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비쳐지는 듯하다. 경찰의 치안 능력을 믿을 수 없는 시민들의 절박함이 감시카메라에 의지할수록 치안 당국은 자신의 무능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미련을 털지 못하고 있다. 

국가도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보다 민심의 분노에 편승하여 전시 행정에 치우치는 데서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한다. 정부는 미성년자 성폭력 살해범에게 무기징역 이상의 형을 선고하고,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팔찌 착용을 추진하겠다는 등 범죄자의 인신 장악에만 관심이 있을 뿐, 친고제 폐지와 공소시효 연장이나 폐지 등 법 개정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성 인권보다 행정 편의가 우선인 정부로서는 공소시효에 손을 댈 경우 물밀듯이 밀려오는 성범죄 고소 사건을 일일이 감당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전자팔찌 착용이나 신상 정보 공개 등은 성범죄의 특수성에 비추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범죄 전력자의 인신 규제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다.  

무엇보다 엉터리 성범죄 관련 법을 아래에서 지탱해주는 것은 당국의 저열한 성의식일 것이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몸을 도촬한 것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에서, 저개발국 마사지 업소 여성을 희롱하는 언사를 주저하지 않는 인사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성범죄자에 대한 무기징역 운운은 비웃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효과가 없고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환부의 고름을 닦는 데 급급하며 생색내는 데 흔들리지 않는 정부를 보고 싶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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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4/17 [17: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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