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는 사회의 긴장이 떨어지는 탓인지 대형 사고나 사건이 이 시기에 자주 터진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냉동창고 화재, 해안 기름 유출, 국보문화재 소실 등 최근에 일어난 몇몇 인재들이 하필이면 정부가 바뀔 즈음 일어난 점을 생각하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으나 평소에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나라의 기강이 느슨해지는 시기를 맞아 한꺼번에 발화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정치권력이 뒤바뀌는, 힘의 공백기는 사회적 재난에만 머리를 치켜들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위헌판결을 받아 진작에 폐기됐던 제도에도 소생할 틈을 주고 있다. 만인의 눈길이 대통령 당선자 주변의 일거수일투족에 붙들려 있는 요즘은, 제대군인들의 심리적 박탈감을 등에 업고 군 가산점 제도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역사의 시계추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자들은 보수세력의 재집권을 즈음한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여성가족부의 난파 위기와 더불어 군복무자 가산점 제도의 국회 상정은 이명박 정부에서 여성인권에 대한 적신호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9년 전 군 가산점 제도가 위헌판결을 받은 이유는 이 제도가 제대군인이 아닌 사람의 취업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제대군인의 취업 기회를 특혜적으로 보장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가산점 제도가 제대군인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피해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제도가 다시 만들어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원회는 한편으로는 헌재의 판단과 충돌하는 가산점 제도를 다시 만들어놓고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군인에 대한 혜택을 이전의 제도보다 줄이고 군 면제자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말함으로써 차별을 지적한 헌재의 판결을 의식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피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피해가 분명히 있다는 것에 있다. 제대군인에게는 특혜를, 여성/ 장애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에게는 피해를 주는 제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정신에 어긋나는 것일 뿐이다. 헌재도 애초의 가산점 제도가 가진, 제대군인의 전역 후 사회 복귀를 돕는다는 목적의 정당성만큼은 인정한 바 있다. 문제는 수단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회 국방위원회가 할 일은 죽은 법을 조금 손을 봐서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대군인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과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합리적 제도의 마련이어야 한다. 위헌판결 후 9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들이 10년 가까이 그런 고민은 전혀 없이 가산점에만 죽어라고 목을 매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산점 제도가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에게 피해가 돌아감을 알면서도 ‘피해 최소화’ 운운하며 밀어붙이고 있는 이들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고 있는 것은 예의 ‘신성한 국방 의무’ 논리다. 병역은 ‘신성’한 것이니까 피해자도, 특혜를 보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참으로 ‘신성’하다는 것은 어떤 차별도 특권도 합리화할 수 있는 만사형통의 무기다. 군필자들은 ‘신성’한 일을 했으므로 ‘신성’한 일을 하지 않은 자들이 피해를 감수할 만큼의 혜택을 얻어야 한다는 것. ‘신성’이란 낱말은 차별도 특혜도 어떤 식의 차별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묻어버릴 수 있는 위력이 있다. 그러나 숭고하고 초월적인 뭔가를 내세우는 것일수록 본래 얼굴은 그다지 고상하지 않다. ‘신성’이 숨기고 있는 이면은 실은 지극히 속물적이고 동물적인 욕망이다. 제대군인에 대한 사회적 보상 방법을 취업시 가산점에서만 찾는 사람들은 취업 전쟁에서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는 현실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2007년 기준으로 행정고시, 외무고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여성의 합격률은 절반에 가깝거나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와 있다. 하위직 공무원만 떼놓고 보면 여성 합격률이 70%가 넘을 만큼 압도적이다. 취업난 시대에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 자리에 여성들의 진출이 일취월장 늘어나는 현실은 안정적인 직장이 자신들만의 몫이라고 알고 있는 남성들에게는 자기 영역을 침해하는 위협으로 느껴질 법하다. 가산점 제도가 있던 시절 필기시험에서 만점을 받아도 탈락하는 여성이 나오던 때는 남성 구직자들에게는 꿈 같은 세상으로 여겨질 것이다. 군 가산점 제도는 실상 군대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 여성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싶지 않은 남성 구직자들의 독점적 욕망이, 만사형통인 신성한 병역 의무 담론을 내세워 여성들을 압박한 것일 뿐이다. 군대에 가지 못한 사람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정당하다면 취업을 하든 안 하든 모든 여성들이 그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취업 여성은 제쳐두고 하필 취업 여성에게만 피해가 돌아가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합리성이라도 갖췄다고 생각하는지? 가산점 제도가 취업시 여성과의 경쟁을 두려워하는 어떤 집단의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여성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집 안에 있거나 기껏해야 자신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질 낮은 일자리에 취업하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배타적인 욕망이 군 가산점 제도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역과 관련하여 남성들의 화살이 날아갈 방향은 애꿎은 여성들이 아니다. 병역을 오염시켜 묵묵히 병역을 수행한 사람들을 참담하게 만드는 이들은 정작 따로 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들 모두 병역면제자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가산점 부활을 선동하는 보수언론들도 (사주) 자식들의 병역면제율이 일반인보다 몇 배나 높게 나온다. 병역기피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 ‘신성’ 운운하며 병역을 농락하고, 가산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맞아야 할 화살을 힘 없는 여성들에게 돌리려고 하는 것에 대한 성찰은 왜 없는가. 그래도 여성이 군에 가지 못한 것이 죄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굳이 차별을 해야겠다면 여성들에게 병역 의무의 짐을 지우고 나서 차별을 합리화하라고. 병역면제자와 병역기피자는 엄연히 다르다. 병역 의무가 부가되지도 않은 사람이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고 차별을 당하는 것만큼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대우는 없을 것이다. 여성의 군대 면제가 남성의 취업 특권을 보장하는 희생양이 되는 건 결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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