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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 대입자율화안은 특혜와 재앙
[하재근 칼럼] 교육의 고질병은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사회, 해체해야
 
하재근   기사입력  2008/01/24 [12:24]
인수위는 결국 22일에 그간 예고해왔던 대입 3단계 자율화안을 공식 발표했다. 1단계는 수능등급제 실질적 폐지, 내신 반영비율 자율화, 신입생 정보공개 등이 그 골자다. 2단계는 수능과목을 최대 4과목으로 줄이고, 영어를 수능과목에서 떼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3단계는 완전 자율화한다는 내용이다.
 
기존의 참여정부 입시안은 국민들에게 고통과 혼란만을 안겨줬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사회에 있는데 참여정부는 엉뚱하게도 대학입시 자유화와 내신강화, 등급제, 논술가이드라인 등으로 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고 강변했다.
 
내신은 학생과 학부모를 동시에 내신지옥으로 몰아넣고, 사교육시장만을 살찌웠다. 등급제는 대학서열체제가 요구하는 변별력을 제공할 수 없어 국민적 혼란을 초래했다. 논술가이드라인은 있으나마나 한 정책으로 논술사교육 시장의 폭발을 막을 수 없었다.
 
인수위의 발표는 위의 난맥상들을 모두 폐기하고 대학입시 자유화의 정신만을 계승하겠다는 내용이다. 각 대학에 자율성을 준다는 발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이미 참여정부 때 충분히 목도한 바 있다. 정부는 말로만 내신강화를 외쳤지만 이미 자율성을 받은 대학들은 국가정책을 무력화했다. 또, 각 대학의 자율적인 입시요강들 때문에 입시가 너무나 복잡해져 전국의 학부모들은 애타는 마음으로 사교육 시장에 매달려야 했다.
 
우리는 지난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점수 위주의 획일적인 입시경쟁이 얼마나 망국적인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바 있다. 그 획일적인 점수경쟁은 획일적인 대학서열체제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나 불행히도 한국사회는 문제의 원인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을 봤다. 그리하여 중등과정의 획일성과 강압적인 점수경쟁을 없애기 위해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 수요자 중심주의 등을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입시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데 주력해왔다. 그 결과가 지금의 교육파탄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의 흐름을 극단적으로 계승해 완전한 자율화로 대학입시를 결정적인 미궁 속에 몰아넣으려 한다. 각 대학의 자율적 입시요강을 입시전문 고액사교육 기관이 아닌 일반 공교육 교사가 어떻게 다 꿰뚫고 있을 것이며, 전업주부가 아닌 맞벌이주부가 언제 대학별 전형을 연구한단 말인가.
 
한국의 대학서열체제는 언제나 변별력 논란을 야기한다. 서열체제에 맞게 아이들의 줄을 엄정히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점수경쟁을 지양하겠다던 등급제 입시안도 이런 실정에선 구두선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서열체제의 변별은 학벌사회에서 사람의 신분을 가르는 것이기 때문에 엄정해야 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궁극적으로 대학입시를 완전 자율화한다고 하는데, 완전히 자율적인 각 대학별 선발은 변별의 객관성과 충돌해 등급제 이상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각 대학들의 자율적인 입학생 선발 경쟁은 필연적으로 서울지역 일류대들의 인재독식으로 이어져 대학서열체제를 더욱 강화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교육개혁을 실패하게 하고 교육파탄만을 부른 구체제가 오히려 심화되는 것이다. 대학서열체제로부터 파생되는 입시경쟁과 사교육부담도 역시 심화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구체제 파탄의 고리를 더욱 악화시킴은 물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이미 과거에 한국사회에서 폐기하기로 합의가 된 점수위주의 획일적인 입시경쟁을 부활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번 인수위의 발표로 인해 당장 수능시험의 중요성이 대폭 강화됐다. 또, 앞으로 수능과목을 더 줄인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국영수 중심의 획일적인 입시경쟁이 심화된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영어를 따로 떼어내 별도의 평가를 받도록 한다고 한다. 대학서열체제에 맞는 변별기능이 살아있으려면 어차피 획일성과 점수위주는 따로 떼어낸다 해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인수위의 계획대로 떼어낼 경우에 우려되는 것은 영어평가 부문이 민간회사의 영리사업에 넘겨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국영수 입시경쟁은 그대로 강화되면서 국민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대학 신입생 정보 공개는 고교서열화를 더 부추길 우려가 있으며, 대학의 선발 자율성은 각 대학으로 하여금 고교등급제를 시행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이 모두가 고교평준화를 파괴하는 흐름이다.
 
인수위의 정책은 특혜정책이다. 이번 발표로 이익을 얻는 건 수도권 일류대들과 그 대학에 자녀를 보낼 부유층들이다. 지방대는 아무리 자율적으로 선발해도 대학서열체제에서 절대로 일류대들과 경쟁할 수 없다. 자율성만 있으면 중소기업이 삼성과 경쟁할 수 있는가? 자율성을 준다는 건 마치 재벌들처럼, 서울지역 일류대들더러 ‘절대괴물’이 되라고 국가가 특혜를 주는 것이다.
 
또한 학벌망국정책이며 대학서열체제 고착화정책이다. 서울지역 일류대들과 지방대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결국에는 국가를 두 동강이로 만들 반국가정책이다. 더욱 커진 일류대 권력에 모든 국민이 일류대만을 열망하게 됨에 따라 입시경쟁을 더욱 심화시킬 교육재앙정책이다.
 
뿐만 아니라 입시경쟁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사교육비를 폭발시켜 국민의 허리를 휘게 할 국민테러정책이다. 그렇게 전 국민이 사교쓴다 해도 사교육비를 많이 쓰지 못하는 계층의 자식들은 입시경쟁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지방민, 강북민, 비정규직, 농어민, 영세자영업자, 도시빈민, 노동자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낼 반인륜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라도 자유화에 대한 허망한 기대를 접고 교육파탄의 근원인 학벌사회 대학서열체제를 응시해야 한다. 이 지점을 개혁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개선을 해도 파탄상은 심화될 뿐이다. 이미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때 충분히 증명된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양식에 호소한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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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1/24 [12:2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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