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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조차도 한문으로 광고하는 사람들
시대에 맞지 않는 한문보다는 알기쉬운 한글로 알려야
 
이대로   기사입력  2003/07/25 [11:39]

돈 많은 회사 사장이나 또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죽으면 그 죽음을 알리는 부고를 신문에 광고하고 있다. 그런데 그 광고문을 한문만으로 된 조선시대 문장으로 내는 사람이 많다. 언제 돌아가셨고 어디서 장례식을 한다는 것을 알리는 게 목적이라면 꼭 한문으로 광고할 이유가 없다. 광고란 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에게 빨리 또 널리 알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문장을 잘 아는 사람만 읽고 알게 하려는 뜻이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과 우리말투로 광고문을 쓰는 것이 옳고 좋다.

 

▲ 중국글로 쓴 에스케이 최태원 회장 부고 광고문 ⓒ2003 이대로

1950, 60 년대만 해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리는 부고를 글로 써서 집집마다 직접 돌리던가 말로 전했다. 편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우편으로 보내는 것을 보지 못했고, 부고장도 집안으로 넣지 않고 대문 밖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놓았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한 분, 지도자가 돌아가셨을 때 나라에서 국장이나 사회단체에서 사회장을 치른다는 소식은 신문에 광고하는 일이 있었다.

▲ 한글로 쓴 안호상 박사 사회장 장례식 광고

그런데 70 년대부터 돈이 많은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신문에 부고광고를 내고 있다. 그것도 꼴 알 필요도 없는 온 국민을 상대로 한문만으로 써서 말이다. 일간 신문에 5단 크기로 광고를 내자면 보통 1000만원이 넘게 드는데 여러 신문에 내니 그 돈도 엄청나게 든다. 나라나 사회단체에서 치르는 국장이나 사회장도 큰돈을 들여 광고하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아무리 자기 돈을 쓰는 것이지만 개인이나 회사가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온 국민에게 광고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도 일반인들이 읽기도 어렵고 무슨 말인지 알아보기 힘든 중국 문장으로 광고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 한자로 된 부고 광고 ⓒ 2003 이대로

다행스럽게도 가뭄에 콩 나듯이 특별한 분들이 가끔 한글로 광고를 내는 데 알아보기 좋았다. 근래에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님(아래 사진), 정대철의원의 어머님 이태영 여사, 한겨레신문 송건호 사장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소식을 한글로 알리고 있어 알아보기 좋았다.  “안호상 박사께서 언제 돌아가셨기에 알려드립니다”하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데 “訃告,   000 大人 0公 以宿患 於自宅 別世 玆以告訃”라고 쓰니 보통사람은 알아보기 힘들다. 완전히 중국 문장이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이나 잘 알아보고 애도하라는 뜻은 아닐 터인데 그 분들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꼭 신문에 광고해서 온 국민에게 알려야 할 분이라면 일상생활을 할 때 보통국민들이 쓰는 말투를 한글로 써 광고하면 좋겠다. 그것도 세로로 쓰지 말고 아래에 소개한 박현채선생 광고문처럼 가로로 써 내는 것이 좋다.  제목도 ‘訃告’라고 하지말고  ‘ 000선생 사회장 알림’ ‘장례식 알림’으로 하고 내용도 ‘ 以宿患 於自宅 別世 玆以告訃’라고 중국 말글로 쓰지 말고 “나라의 민주화와 겨레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한 평생을 바친 선생께서 지난 월 일에 운명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라고 쉬운 말투로 쓰면 더 좋을 것이다.

 

▲ 한글로 쓴 박현채 선생 민주사회장 알림글 ⓒ2003 이대로

 

죽는다는 것은 인생사에서 태어나고 사는 것과 함께 매우 중요하고 큰 일이다. 그리고 슬프고 아쉬운 일이며 가슴아픈 일이다. 온 사회와 인류,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 분이 돌아가시면 온 국민에게 알려 함께 추모하고 애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것도 아닌 개인은 돈이 많더라도 그 돈을 벌기 위해 도와 준 회사원들이나 사회에 마지막으로 고마운 선물을 하던지, 기념으로 복지시설이라 장학재단이라도 하나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공병우 박사처럼 흔적도 남기지 말고, 장례식을 치른다고 바쁜 사람들 번거롭게 하지말고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안과병원 개업 의사이자, 한글 속도타자기 발명가인 공병우 박사. 한글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한글기계화에 온 힘을 바친 그 분은 1995년 3월 7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 분은 살아있을 때 써 논 유언장에서 아무에게도 당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고 했다. 그 분의 가족은 유언대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 뒤에 나는 병원 문병도 오지 말라는 그 분 소식이 궁금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확인하고 알만한 사람은 알고 마음 속으로라도 애도하자고 언론에 알렸다. 그 분의 유족이나 보호자는 유언을 지켰지만 나는 유언을 어겼다. 공 박사를 따르던 분들과 언론사에 “공 박사가 돌아가신 것이 분명한데 본인이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유족은 말하지 않는다. 너무 아름답고 거룩한 삶이니 병원에 확인하고 널리 알려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서 그 분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분이 피시통신을 통해 한글사랑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함께 그 일을 하자는 말씀을 따르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고 후회가 되어 그 분이 돌아가신 1995년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피시통신과 인터넷통신을 통해 우리 말글 사랑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분의 삶과 뜻을 잊지 않고 본받고 싶어하는 데 돈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말글살이까지 방해하면서 자꾸  보통사람이 알아보기 힘든 중국 문장으로 부고 광고하는 것을 보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이 글을 쓴다. 좀 더 살기 좋은 사회, 허례허식이 없는 장례문화를 꿈꾸면서 공병우 박사님의 유언장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부고 광고를 즐기는 분들에게 묻는다.


“공병우 박사처럼 돈이 많으면 그 돈을 겨레와 나라와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다가 이 땅을 떠날 때는 깨끗이 떠나는 것이 멋있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리고 공 박사처럼 유언장을 써놓으면 어떨까? ”  


▲ 공병우 박사 사진 ⓒ2003 이대로

 


장례식이나 추도식 같은 것도 열지 말라!

공박사님의 유서 주요 내용

첫째, 목숨이 다한 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가족이나 보호자는 이 사실을 다른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 것.

둘째, 죽었을 경우에도 누구에게나 일절 알리지 말고, 장례식이나 추도식 같은 것도 열지 말 것. 그리고 주검 처리는 다음과 같이 할 것.

(1) 다른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장기를 떼 내고, 나머지 주검은 병리학이나 해부학 교실에서, 쓰도록 의대에 내놓을 것.

(2) 위처럼 할 수 없을 땐 24시간 안에 화장이나 수장을 할 것. 법으로 이렇게 할 수 없을 땐 가까운 공동 묘지에 묻을 것. 입던 옷 그대로 가장 싼 널에 넣어 최소한의 땅에 묻을 것. 여행하다 바다나 강물에 빠져 죽었을 땐 수장으로 생각하고 주검을 찾지 말 것.

(3) 죽은 지 한 달이 지난 뒤에 다른 가족, 친척, 친구에게 알리고, 묻었을 때라도 화장한 것과 같은 것으로 알고 누구에게도 묘지가 있는 곳을 말하지 말 것.

셋째, 죽은 뒤 나의 유형, 무형의 재산이 있을 경우엔 신체 장애자들, 그 가운데서도 장님들의 복지 사업에 쓸 수 있도록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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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25 [11: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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