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의 방송장악 기도와 횡포 3월 20일 노무현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것이 언론자유 독립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정부가 언론의 독립성을 침해하려 한 적이 있느냐”며 최근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KBS를 직접 겨냥했다. 노대통령은 “최근 KBS가 방송 80주년과 관련해 특집프로 등을 방영하면서 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프로들을 방영했는데 이는 자사 이기주의와 전파남용의 예”라면서 “이에 대해 즉각 언급하려 했으나 한미FTA문제 등 많은 현안들이 있어 미뤄왔다. KBS가 의원 60여 명을 통해 법 개정까지 하려는데 이래선 나라 꼴이 문제다.”는 말까지 뱉는다. 그리고 또 “그러한 법령 규정이 있다고 해서 기획예산처가 KBS의 언론독립을 어찌 침해할 수 있겠느냐. 힘을 가진 집단의 횡포가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당 부처에서 적절히 잘 대응해 달라”는 당부까지 했다. 먼저 공공기관운영법이 왜 문제인지 짚어보자. 제14조(공공기관에 대한 기능조정 등)에 따라 기획예산처장관은 공공기관 기능의 적정성을 점검하고 통폐합과 기능재조정, 민영화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주무기관이 이를 집행한 뒤 기획예산처에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제15조(공공기관의 혁신)에 따라 공공기관은 경영효율성 제고와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해야 하고, 기획예산처는 관련 지침의 제정과 혁신을 진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공공기관운영법에 적용받는 KBS와 EBS로서 가장 위험한 조문이 바로 14조와 15조다. 14조의 ‘통폐합과 기능재조정 그리고 민영화 계획’의 대상에 KBS와 EBS가 오를 수 있다. KBS1과 EBS의 통폐합, 그리고 KBS2의 민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노대통령의 발언처럼, 단순히 ‘기획예산처가 KBS의 언론독립을 어찌 침해할 수 있겠느냐’며 너스레를 떨 일이 아니다. 기획예산처는 권부 중 권부다. 정권의 의중을 돈으로 정부부처와 공기업을 통제하며 관철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통폐합권한과 기능재조정권한 심지어 민영화권한까지 줬다. 예산처가 작심하고 현재 지상파의 ‘多공영 一민영’체제를 깨겠다고 하면 깨버릴 수 있는 권한이 법으로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이 ‘감히 예산처가 그 권한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며 물타기를 시도한다. 최근까지 한나라당이 KBS2와 MBC의 민영화를 공공연히 주장해 온 사실. 호시탐탐 집요하게 중앙일보가 지상파 진출을 소망해 왔고, 취임 후 줄곧 삼성 및 중앙일보와 밀월관계를 즐겨온 노대통령. 심지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에 임명하고 유엔 사무총장까지 만들려 했던 사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결코 ‘예산처의 의지’로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원하고, 삼성이 밀고 중앙일보가 삼키려 하는 KBS2와 MBC. 이를 가능하게 한 14조. 이를 두고 단순히 ‘정부의 선의’를 의심할 수 있느냐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노대통령의 ‘말씀’은 이래서 ‘쇼’인 것이다. 또 있다. 이 법은 당장 시행되는, 그러니까 다음 정부의 권한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대통령은 정권재창출을 위해 이 권한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노대통령의 선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정국이 노대통령의 선의를 ‘악의’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상파를 장악할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를 노대통령이 쥐었다는 점을 읽어야 한다. 14조는 KBS만 겨냥한 것이 아니다. KBS 입장에서 보면 KBS2의 상실은 치명타다. MBC 또한 KBS2가 민영화 물결을 타면 자기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몸을 그 물결 위에 실어야 한다. 또 SBS는 유일한 민영방송으로서 기득권이 사라지며 KBS2 및 MBC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극한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SBS대주주 태영그룹과 비교할 수 없는 삼성급 재벌이 대주주로 지상파를 운영하면 경쟁 자체가 아주 고달파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공기관 운영법 14조는 지상파에게는 미래의 재앙이 아니라 현실의 재앙인 것이고, 노무현 정권에게는 당장의 정치수단이요 선거수단인 것이다. 15조는 또 어떤가? 경영효율성 제고와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기획예산처가 지침을 제정하고 혁신을 진단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지난 해 도올 김용옥 선생이 EBS 논술특강 프로그램에서 영화배우와 감독을 불러다 놓고 한미FTA 반대 의견을 듣고, 도올이 한미FTA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요지의 발언이후 EBS가 재경부와 청와대 일부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 사건이 결국 EBS의 경영진 교체로 이어지는 시발점이었다는 것이 당시 가까이에서 지켜 본 당사자로서 평가다. ‘서비스 품질 개선’이 ‘정부정책과 정권을 위한 효율적 홍보 개선’으로 둔갑시켜 기획예산처가 지침을 내릴 수 있는 조문이라는 의미다. 정부정책을 넘어 정권홍보의 수단으로 정치권력이 지상파를 갖고 놀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개가 될래? 방송인이 될래?’ 공공기관운영법 15조는 지금 KBS와 EBS를 향해 묻고 있다. “KBS가 의원 60여 명을 통해 법 개정까지 하려는데 이래선 나라 꼴이 문제다.”라는 노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KBS가 동원했다는 의원 60명은 무뇌아 꼴통들인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법 개정 운동을 하면 나라 꼴이 망가지는가?”, “노대통령은 애국자고 KBS와 EBS는 나라 망치는 주범인가?”
노대통령이 말한 “힘을 가진 집단의 횡포가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그 집단은 결코 KBS가 아니라 노무현대통령이고 노정권이다. 언제까지 방송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려는 노대통령의 횡포를 우리는 참아내야 할까? ‘방송 덕에 대통령이 됐다’고 고백한 노대통령. 그는 누구보다도 방송의 힘을 잘 아는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집요하게 방송을 장악하려 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 본문은 <언론노보>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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