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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미국이 만든 '주몽' 봐야하나
[언론시평] 한민족의 정신과 영혼을 생각지 않는 종편채널 주장의 위험
 
양문석   기사입력  2007/02/08 [12:23]
종편채널논란, 거란족 여진족이 되려하는가?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제안하는 전문가모임’이 지난 2일 유료방송시장에 종합편성채널 도입를 건의했다. ‘방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 프로젝트’라는 설명과 함께, ‘사회의 다원화 전문화에 부응하여 보편적 서비스를 지향하는 지상파채널이 담기 힘든 각 분야의 소수를 대변하는 채널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란다. ‘제안한 종편채널은 또 하나의 지상파급 채널이 아니’라고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도입반대’이다. ‘방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프로젝트’라는 주장은 허구다. “새로운 채널의 성격으로 시민 전문가가 함께 만드는 오픈미디어, 각 분야 20%의 니즈를 반영하는 생각상자, 합리적 여론형성의 공간이 되는 시민공론장, 자본과 광고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미디어, 민간의 창의성을 북돋고 효율성과 경영 책임성을 가능케 하는 민영방송, 독립제작사들이 참여하는 출판형 외주시스템 등을 제시각 분야의 소수를 대변하는 채널”의 성격? “시민과 전문가가 주체가 되는 것이므로 시민단체의 참여는 필수”? R-TV가 지향하는 성격이다. ‘옥상옥’이다. 차라리 종편채널을 허가받으려는 힘이 있으면 RTV개혁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리고 지상파급 채널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 또한 허구다. 한국의 시청자들이 지상파를 어떤 경로로 시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왜 허구라고 단정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5년8월 현재 총가구수 대비 79.1%, 즉 1770만 가구 중 1400만 가구가 SO에 가입돼 있다. 스카이라이프에 가입해 있는 가구 수가 200만 가구다. 90% 이상이 유료방송시장에서 지상파를 시청한다. 기존의 지상파처럼 뉴스 교양 드라마 오락 등을 모두 하는 유료종합편성채널이다.
 
지상파급 맞다. 또 그들은 평균 시청률 5%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주장도 하는 모양. EBS의 평균 시청률이 불과 0.8~0.9%수준이다. 지상파 3사도 평균 시청률이 5% 안팎이다. 목표로 하는 시청률은 지금의 지상파3사와 맞먹는 비율. 이렇게 되면 지역방송사와 EBS는 죽으란 소리다. 이들의 존재이유는 없는가? 또 하나의 지상파급 채널이 보호받아야 할 가치를 붕괴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따로 있다. 종편채널을 허용했다고 치자. ‘전문가모임’이 어떤 전문가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가모임이 주도하는 성격의 종편채널을 허용하면, 다른 전문가 모임의 종편채널을 무슨 수로 거부할 것인가? 돈벌이 수단으로 종편채널을 요구하는 ‘전문가모임’이 등장하여 ‘산업발전을 위한 종편채널 전문가모임’이라고 하면 허용하지 않을 재간이 있나? 한 나라에 도대체 종편채널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마지막으로, 도무지 정세분석에 대해서는 무식한 집단이 소위 ‘전문가모임’이다. 한미FTA정국이다. 미국의 USTR보고서와 암참보고서 쯤은 읽어보고 이런 주장을 해야지...
 
---FTA에는 미국 투자자의 한국투자에 대한 장벽을 완화 또는 제거하고 양국에서 투자자들에게 내국민대우를 제공하는 규정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통신업체, 케이블 TV 관련 SO(시스템 운영업체), NO(망 운영업체), 비뉴스/종합 채널 프로그램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을 49%로 위성방송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을 33%로 제한하고 있는 규정을 제거해야 합니다. FTA는 또 현재 종합채널과 뉴스채널에 대한 PP(프로그램 제공업체)에 대해 외국기업의 투자를 금지하고 있는 조항도 제거해야 합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KOREA)가 2006년 발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정책보고서> 통신과 정보기술 파트인 15쪽과 투자파트인 24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미국은 2차 FTA협상부터 지속적으로 PP소유제한 철폐,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외국기업 투자 금지 조항 제거를 요구해 왔다. 이 시기에 종편채널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에게 종편채널을 허용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투자의 내국민대우’라는 전문용어를 안다면. 쉽게 말해서 유료방송시장에 종편채널을 허용하면 미국에도 줘야한다. 미국프로그램의 한국어 방송 말이다.
 
‘CSI과학수사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편당 수입가격이 1천 달러에 불과하다.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이 편당 거의 5억 원 꼴이다. 주몽을 제외하고 ‘CSI과학수사대’와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누가 1천 달러, 100만원이면 되는 시청률을 5억 원 들여서 국내 제작할 것이며, 국내제작해도 미국의 값싼 컨텐츠를 무슨 수로 당해 낼텐가.
 
안방은 길지 않은 미래에 미국의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종편채널에 점령당할 것이다. 또한 여론 다양성은 일방적인 미국이익중심의 관점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로 인해 급격히 왜곡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문화적 정체성도 없고 여론의 다양성도 현실적인 힘의 관계에서 무너져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거란족이 여진족처럼 역사의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한민족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비약이라 말하지 마라. 정신과 영혼이 없는 사람, 정신과 영혼을 미국에 빼앗긴 민족. 이는 없어진 민족이나 다름없다.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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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08 [12: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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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인성 2007/02/10 [17:19] 수정 | 삭제
  • ‘종합편성채널 도입을 제안하는 전문가모임’에 함께 하는 원인성입니다. 양문석님의 글에 대해 제 의견을 올립니다. 합리적 토론을 하면서 저희 제안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논의하고 많은 분들께 판단의 도움이 되도록 했으면 합니다.


    ▨ 양문석님 글 반론(1) 새 방송 제안은 허구

    양문석님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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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프로젝트’라는 주장은 허구다. ~ R-TV가 지향하는 성격이다. ‘옥상옥’이다. 차라리 종편채널을 허가 받으려는 힘이 있으면 RTV개혁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저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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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은 R-TV가 지향하는 바와 같으니 ‘방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프로젝트’라는 전문가모임의 주장은 허구라는 논지를 펴고 있습니다. 지향하는 바가 같을 경우 한 쪽은 진실이고 다른 한 쪽은 허구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희 제안이 허구라고 보신다면 R-TV가 지향하는 바와 다를 뿐 아니라, 이런저런 근거에 비추어 진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R-TV 개혁에 힘을 집중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주장도 매우 비논리적으로 들립니다. R-TV는 운영주체가 있을 것입니다. 주체가 있는데 외부 인사들이 와서 개혁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개혁의 필요성이 있더라도 그건 주체의 책임입니다. 기성언론과 다른 시민방송이 주체적인 개혁능력이 없다면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주체가 기업의 형태로 되어 있다면 더더군다나 외부에서 들어가 개혁을 하라는 건 절대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지향점이 반드시 같은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설령 비슷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하나로 다 모여야 한다는 건 정치집단이라면 모르지만 언론에선 적절하지 않은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이든 하나씩만 있으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표현의 통로를 하나로 통일하자는 것은 민주적 사고방식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야말로 언론의 생명이고 민주주의의 핵심일 것입니다. R-TV도 잘 하고, 또 다른 매체도 잘 하는 것, 그게 가장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 양문석님 글 반론(2) 다른 방송은 죽으라는 소리

    양문석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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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파급 채널이 아니라는 주장은 허구다. 시청자의 90% 이상이 유료방송시장에서 지상파 방송을 시청한다. 기존의 지상파처럼 뉴스 교양 드라마 오락 등을 모두 하는 유료종합편성채널이다. 목표시청률 5%가 지상파와 비슷하다. 그래서 지상파급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민방과 EBS는 죽으라는 소리다.


    저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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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매체에서 ‘지상파급 종편채널’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저희 제안의 초점이 흐려진 느낌이 있습니다. 편성의 분야, 가시청 가구만 놓고 ‘지상파급’이라고 말한다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력 조직 사업의 규모 및 콘텐츠의 영역을 놓고 말한다면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종편채널이 공룡화한 기존 지상파급이라고 한다면 부정하겠습니다. 어쨌건 이 것은 지엽적인 논쟁이니 어떤 식으로 표현하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목표시청률이 지상파의 현재 시청률과 비슷하니 지상파급이라는 지적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목표와 실제는 다릅니다. 지상파 방송에서 시청률 5% 짜리 프로그램은 당장 추방됩니다. 그들의 목표시청률은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새 방송은 5% 정도의 시청률을 목표로 하지만 그것을 달성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현실의 시청률은 아마 초기에 1%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목표시청률과 현재시청률을 혼동하여 지상파급이라는 개념 판정의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역방송이나 EBS의 존재이유가 없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지역방송은 그 지역주민에게 꼭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 EBS는 교육채널이라는 게 존재이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 방송은 특정지역 주민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니 존재이유가 다릅니다. 그들의 존재이유를 부정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존재이유가 다른 채널이 생기는데 그들이 왜 죽으라는 것이라고 판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YTN이나 MBN이 생겨났다고 해서 지역민방이나 EBS가 죽으라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채널이 각자 제 역할을 제대로 할 때 방송은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 양문석님 글 반론(3) 무제한 종편채널

    양문석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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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편채널을 허용했다고 치자. ‘전문가모임’이 어떤 전문가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가모임이 주도하는 성격의 종편채널을 허용하면, 다른 전문가 모임의 종편채널을 무슨 수로 거부할 것인가? ~ 한 나라에 도대체 종편채널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저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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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가 보내드린 자료를 보고 이 글을 쓰신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전문가모임’의 명단도 보셨을 겁니다. 그런 전문가들입니다. 언론인 문화예술인 학자 등. 이름과 약력까지 있는데 어떤 전문가인지 모르겠다는 말씀은 사실을 점검하고 확인해야 하는 글쓰기 원칙에서 보면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설령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게 올바른 것 같습니다.

    전문가모임이 제안한 것은 그들의 모임에 종합편성채널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종합편성채널이 필요하다고 보니까 투명하고 공정한 공모절차에 따라 최적의 주체를 선정해 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책당국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공모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고 거기서 한 곳이든 두 곳이든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만큼 선정하면 됩니다.
    ‘무슨 수로 거부할 것인가’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방송법은 등록, 승인 등의 규정을 정한 것입니다. 종편채널은 승인제이므로 등록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방송위는 교양 오락 등 등록제 채널의 경우에도 시장상황 등을 감안하여 등록거부나 보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합편성채널이 몇 개나 더 있어야 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바로 그 점을 논의하자는 것이지요. 현재 지상파 3사의 4개 채널이 종합방송입니다. 방송법에 규정한 ‘종합편성PP’는 한 곳도 없습니다. 케이블 위성 DMB IPTV 등 매체가 다양해진 지금 종편PP 한 두 개는 있는 게 맞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상파 4개 채널은 방송법 상 종합편성채널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종합편성 지상파방송’이 가까울 것입니다. 편성범위가 같으므로 종편PP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케이블 위성 DMB IPTV 등 다양한 뉴미디어마저 지상파 종합채널 4개가 장악하는 게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들 중 극히 일부는 님과 같은 주장을 폅니다. 광고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는 걸 꺼리는 게 사업자로서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희가 만나본 지상파 방송사의 전현직 고위인사들조차 새 종편PP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는 다수를 위한 보편적 서비스를 해야 하는 만큼 여기서 제외되는 다양한 소수를 위한 종편채널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방송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종편채널이 몇 개나 더 필요하냐는 님의 주장은 일부 지상파 방송사의 주장을 대변하는 셈이 됩니다. 현업 방송인 중에도 소속 회사의 사적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분들은 새로운 종편PP의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독과점이나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방송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아직 하나도 없는 케이블 위성 종편채널이 한 두 개 쯤은 탄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양문석님 글 반론(4) 미국의 내국인 대우

    양문석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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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참보고서는 ‘FTA는 현재 종합채널과 뉴스채널에 대한 PP(프로그램 제공업체)에 대해 외국기업의 투자를 금지하고 있는 조항도 제거해야 한다’ 밝히고 있다. 또 미국은 2차 FTA협상부터 지속적으로 PP소유제한 철폐,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외국기업 투자 금지 조항 제거를 요구해 왔다. 이 시기에 종편채널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에게 종편채널을 허용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투자의 내국민대우’라는 전문용어를 안다면. 쉽게 말해서 유료방송시장에 종편채널을 허용하면 미국에도 줘야 한다.


    저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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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종편채널을 요구하는 것은 미국에 종편채널을 내주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은 부정확한 사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종편채널은 방송위의 승인사항입니다. 원한다고 다 내주는 게 아닙니다. 공모과정에 참여해 떨어지는 내국인 사업자가 있을 것입니다. 우려하시는대로 한미FTA가 발효해 미국자본이 종편 공모에 참여하더라도 국내 자본처럼 탈락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내국인 대우’입니다. 지금 종편채널을 도입하자는 게 미국에 내주자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닙니다. 미국자본에도 공모참여 기회를 주자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요.

    정세분석을 말씀하셨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지금 종편채널을 내주자는 게 더 타당한 주장이 됩니다. 우려 하시는 대로 미국에 방송시장이 개방되더라도 한미FTA의 국회 비준을 감안하면 아무리 빨라도 올 가을 이후에나 발효가 가능합니다. 지금 종편채널을 도입하면 공모와 심사절차를 포함하여 올 가을 이전에 내국자본 중에서 선정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정책당국의 판단에 따라 필요한 만큼 선정했는데 미국이 뒤늦게 와서 더 선정해달라고 요구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건 내국인 대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년 이후까지 종편채널이 하나도 없다면 법에 근거하여 공모를 요구할 수 있고 미국자본도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겠지요. 님의 우려대로라면 오히려 미국자본이 참여할 기회를 갖기 전에 종편채널을 서둘러 도입해야 맞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종편채널을 요구하는 것과 미국에 내줘야 하는 것은 직접 연결되지 않습니다. FTA 발효 후라면 님의 우려가 맞을 수 있습니다만. 따라서 미국을 걱정한다면 서둘러 방송법의 종편채널 규정을 삭제하든지, 아니면 FTA 발효 전에 보도채널처럼 종편채널을 내국인에게 내주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 양문석님 글 반론(5) 미국의 값싼 콘텐츠에 어떻게 맞서나

    양문석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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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I과학수사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편당 수입가격이 1천 달러에 불과하다.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이 편당 거의 5억 원 꼴이다. 주몽을 제외하고 ‘CSI과학수사대’와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누가 1천 달러, 100만원이면 되는 시청률을 5억 원 들여서 국내 제작할 것이며, 국내제작해도 미국의 값싼 컨텐츠를 무슨 수로 당해낼텐가.


    저의 반론
    -----------
    이는 종편채널을 반대하는 근거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예시한 프로그램들은 교양채널 오락채널 등 등록만 하면 되는 채널에서 방영할 수 있습니다. 굳이 종합편성채널이 아니어도 됩니다. 미국자본이 원한다면 굳이 종합편성채널로 승인 받지 않고 교양채널로 등록만 하여 마음대로 수입물을 방영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케이블 위성의 여러 교양채널 오락채널에는 수입물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케이블과 위성의 PP들은 거의 다 수입물 아니면 지상파 재송출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자체 제작물의 비율은 매우 낮습니다. 그 내용도 부실합니다. 국산 콘텐츠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입물 범람에 대처하는 해법은 기존 독립PP나 독립제작사들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독립제작사들은 지상파 방송사에 약자의 위치입니다. 적정한 제작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애써 만든 제작물의 저작권도 지상파 방송사가 대부분 독점합니다. 독립PP들은 지상파 계열 PP들에 시장을 내주고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외주채널 개념의 종편채널이 생겨 이들에게 제작의 기회를 넓혀주고 저작권도 보유하는 공정한 계약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립제작사나 독립PP의 목소리입니다. 지상파나 MSO의 위세 때문에 공개적으로 떠들지는 못하지만 직접 만나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수입 콘텐츠에 맞설 수 있는 제작자들이 해법 중의 하나로 종편채널을 지지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종편채널을 거부하는 주장은 지상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독립제작자들에게 들릴 수 있습니다.



    ▨ 양문석님 글 반론(6) 거란족 여진족

    양문석님 주장
    ---------------
    안방은 길지 않은 미래에 미국의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종편채널에 점령당할 것이다. 또한 여론 다양성은 일방적인 미국이익 중심의 관점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로 인해 급격히 왜곡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문화적 정체성도 없고 여론의 다양성도 현실적인 힘의 관계에서 무너져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거란족이 여진족처럼 역사의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한민족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비약이라 말하지 마라. 정신과 영혼이 없는 사람, 정신과 영혼을 미국에 빼앗긴 민족. 이는 없어진 민족이나 다름없다.


    저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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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종편채널에 안방이 점령당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종편채널이 아닌 미국의 교양 오락채널에 점령당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봅니다. 그러나 뉴스를 추가로 다룰 수 있는 종편채널에 미국자본이 반드시 진입할 것이라고 단언할 근거를 제시해 주십시오. 저는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반드시 그렇게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보도매체의 경우 반드시 대자본이나 외국자본이라고 하여 시장논리에 따라 장악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언론사를 보십시오. 재벌기업이나 대자본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은 신문이나 지역방송 중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더 많습니다. 뉴스보도는 돈으로만 되는 건 아닙니다. 고도의 정신적 집적물 입니다. 그걸 현명한 국민이 잘 판단해 가려내고 있습니다.

    미국이익 중심의 관점이 쏟아지는 뉴스를 우려하시는데, 이는 종편채널과 직결되는 건 아닙니다. 보도채널로도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종편채널을 승인해주지 않듯이 기존의 보도채널도 폐쇄해야 하는 걸까요? 우려하는 식의 미국 대자본이라면 굳이 한 개의 채널에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이른바 MPP가 되어 뉴스보도, 교양, 오락, 드라마 등등 복수의 채널을 갖겠지요. 케이블 위성에선 얼마든지 채널을 가질 수 있고, 디지털화 및 IPTV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미국 관점의 뉴스를 쏟아내자면 하루 서너 시간 뉴스 내보내는 종편채널 보다는 하루 종일 뉴스방송 하는 보도채널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미국 관점의 뉴스를 접하면 민족의 정신과 영혼을 빼앗기는 것이라는 주장에도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온 국민과 교포를 ‘무뇌아’로 간주하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미국에는 2백만으로 추정되는 동포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줄곧 미국의 매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님의 논리를 적용하면 이들은 모두 미국에 정신과 영혼을 빼앗긴 거란족 여진족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뉴스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종편채널이 아니라도 보도채널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KBS MBC SBS의 뉴스보도 과점상태를 깨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미국이 무서워 우리의 뉴스보도 독과점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좋은 뉴스를 여러 곳에서 많이 만들어 미국식 관점에 접할 필요를 못 느끼게 해야겠지요. 콘텐츠는 다양함 속에서 발전한다는 게 경험적 진실입니다.


    ▨ 양문석님 글 반론(7) 합리적 토론을 제안합니다

    “도무지 정세분석에 대해서는 무식한 집단이 소위 ‘전문가모임’이다. 미국의 USTR보고서와 암참보고서 쯤은 읽어보고 이런 주장을 해야지...”

    양문석님 글 중 한 대목입니다. 좋은 사회는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인간도 존중하는 사회라고 믿습니다. 이걸 부정하는 사람은 일부 극단주의자 말고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자신과 정세분석이 다르다고 ‘무식한 집단’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사회를 함께 꾸려가는 동시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토론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토론은 상대를 존중하면서 논리와 근거를 토대로 해야 객관적 사실과 진실 발견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 토론문화는 너무 척박합니다. 막말을 하고, 논리보다는 일방적 주장을 펴고, 심지어는 인신공격까지 합니다. 이런 방송토론에 식상한 탓에 대중은 토론프로그램을 멀리 합니다

    새 방송은 이런 토론과는 다른 토론을 열심히 하는 채널이 되어야 합니다. 토론이 싸움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아주 유용한 수단임을 공감할 때 합리적 여론이 형성되고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새 방송은 그런 시민 공론장으로서도 꼭 필요합니다.

    잘 아는 어른 한 분은 기자를 일컬어 ‘살인자’라고 합니다. 저도 기자 출신이지만 이 말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저도 한 때는 부정확한 사실에 기초하고 논리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펜이라는 칼을 휘둘러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지금의 언론에서도 이런 ‘살상’은 여전합니다. 저는 그것이 언론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칼이 아닌 펜으로 합리적 토론을 하는 것을 전적으로 환영합니다. 그래서 종편채널 제안에 대한 의견을 주신데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님의 지적이 타당한 게 있다면 저희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저희 모임의 구성원들이 지적하신대로 무식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유식하지도 않다고 자처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토론으로 더 좋은 의견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저의 반론 중에 이성이 아닌 감정에 의지한 부분이 있다면 부족함의 소치이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