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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적 개헌론에 실종된 87년 헌법정신
[비나리의 초록공명] 87년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은 전경련 같은 우파들
 
우석훈   기사입력  2007/01/12 [15:07]
나는 9차 개정헌법을 사랑하는 편이다. 87년 체계라고 부르는 이 시스템에는 문제점이 좀 있다. 국민투표의 발의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과 같이 구조적인 문제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헌법이다. 그러나 이 헌법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습의 헌법 중에서는 가장 민중적인 헌법이고, 감히 부른다면 민중 헌법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농림부에서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난리를 치지만 "경자유전"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헌법에 들어간 것도 이 9차 개정헌법이고, 앞으로 헌법을 전면 개정하는 시기가 오면 이런 표현과 정신은 현재의 분위기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원래 이 9차 개정헌법을 바꾸고 싶어했던 사람들 중 맨 앞에 있는 흐름이 전경련과 같은 소위 대기업들이다. 이 헌법이 지나치게 민중적 권리를 많이 규정하고 있고, 소위 '경제 민주화'라는 정신을 명확히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우파 헌법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헌법에 관한 연구들을 좌파들보다 우파들이 더 많이 하고 있던 것은 87년이라는 상황은 그야말로 노동자, 민중이 제헌헌법 이후로 가장 많이 개입해서 헌법을 만들 수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약자들을 보호한다고 재계에서는 이 헌법에 불만이 많다.
 
환경권 같은 것들은 약간 오래된 헌법이라서 몇 가지 논쟁거리가 있기는 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환경권을 규정해야 한다는 흐름과 도롱뇽 소송에서 보듯이 동물과 식물과 같은 생명 혹은 비생명들의 환경권을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일리는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소유권 중심으로 강화된 환경권을 부여하자는 논의도 있다.
 
물론 다 타당한 말이기는 한데, 이런 일련의 변화를 헌법에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더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고, 소위 지지세력들이 필요하다. 다른 법과 달리 헌법은 아이디어와 논리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사회적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던 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열었다. 4년 중임제인가 5년 단임제인가가 문제이기는 한데, 소위 '원포인트 개헌'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꼭 4년 중임이 5년 단임보다 낫다고 말할 근거는 별로 없을 것 같다. 대통령 중간선거의 성격을 갖는 국회의원 선거를 일치시키자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지방선거라는 것이 별도로 움직이고 또 계속해서 보궐선거가 있기 때문에 해보는 말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중간선거가 두렵다고 하면, 뒤집어서 생각하면 '안정성'이 아니라 한 그룹에게 너무 많은 힘을 줄 것이라는 생각과 정치집단으로서 정정당당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는 7년 중임제인데, 병으로 물러난 퐁피두 대통령을 제외하면 대부분 연임까지 다 했다. 14년 동안의 대통령, 젊어서 엘리제궁에 입각했다가 나중에 퇴역할 때에는 정말 늙은 대부가 되어서 물러나게 된다. 미테랑의 경우는 전립선암으로 그야말로 눈물의 14년째를 보냈다.
 
여기도 2원집정부제 비슷해서 소위 '동거정부(cohabitation)'라는 것이 형성되면 상당한 혼란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제도의 개선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개헌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는 할테지만, 4년 중임제로 미국식으로 바꿔야 꼭 정치가 선진화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고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논의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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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12 [15: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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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 2007/01/12 [20:33] 수정 | 삭제
  • neung1an님 지당하신 말쌈입네다.
    대자보 독자들은 어째 이토록 상황을 정확히 꿰뚫는 사람들만 있을까나.
  • neung1an 2007/01/12 [17:18] 수정 | 삭제
  • 정신 바짝 차리자구요...
    원 포인트 개헌은 '사치품'이지만...
    한미FTA 협상을 저지시키는 건 '생활필수품'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