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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조흥은행 노조에 돌팔매질을 하는가?
조중동보다 더한 진보매체의 '조흥'죽이기 유감
 
이장규   기사입력  2003/06/25 [18:31]

▲조흥은행 이미지 로고     ©조흥은행
이번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처럼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파업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나마 조중동보다는 훨씬 낫다는 한겨레나 인터넷 상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프레시안 등 이른바 '중도적' 매체들조차도 이번 조흥은행 파업에 대해선 거의 한 목소리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한 인터넷이나 오프상의 여론도 거의 대부분 파업에 부정적이었다.

물론 조흥은행 노조가 일정정도 잘못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다. 우선, 애초 파업의 명분이었던 매각(민영화) 저지투쟁의 정당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매각결정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실리'만을 챙기려다보니 최종합의의 결과가 마치 자신들의 밥그릇만을 지키기 위한 파업이었던 것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장 내의 비정규직과 연대하고 그들의 문제를 같이 해결하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는 바,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미흡함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최근의 거의 일방적이라 할 노조에 대한 비난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번 파업과 관련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논의되었어야 할 은행 민영화의 정당성 문제에 대해선 그 어느 언론도 거의 의제화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애초 파업의 출발점이었던 이 문제에 대해, 그 누구도 민영화 반대의 주장은 소개하지 않은 채 매각을 이미 기정사실로 전제해버린 상황에서, 조흥노조가 매각결정 자체를 끝까지 반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할 수 있는 것이, 매각된 이후에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일 이외에 무엇이 가능했겠는가? 좀 심하게 말하면, 매각을 받아들이고 대신 니들 이익이나 챙기라는 식으로 '집단이기주의적'인 합의를 보도록 언론 등이 사회적으로 강제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은행 민영화는 과연, 아예 기정사실화해서 반대 따위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당연하고 옳은 경제정책인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와 '시장의 힘'을 과신하는 우리 사회 대다수 세력들에겐 이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이 옳은 방향이겠지만 (참여연대나 한겨레, 프레시안 등도 결코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개혁'의 기치 하에 이런 류의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나아가야할 유일한 개혁방향인양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다), 과연 그러할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 조흥은행노조 파업모습     ©민중의소리

현재(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한국경제의 핵심적인 불안요소는 투자율 저하와 이로 인한 자금의 부동화이다. 투자율 저하는 성장잠재력을 고갈시킬뿐 아니라, 막대한 자금을 부동화함으로써 부동산 투기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시장'에 맡겨두면 이 문제가 해결되리란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며, 투자가 이루어지고 제조업의 미래의 실적기반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이 생산적 분야에 장기투자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미 주식시장조차 단기성 유동자금이 판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은행은 이런 상황에서 자금의 적절한 배분, 특히 생산적 분야로의 투자를 유도해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이것은 제조업의 성장잠재력을 강화하기 위한 적절한 산업정책과의 연관성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는 단기적인 주주의 이익에만 집착하게 만들거니와, 은행 분야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한 가계대출이나 국공채 투자 등에 자금을 집중하게 만듬으로써(이런 현상은 이미 IMF 이후 뚜렷히 드러난다) 성장을 위한 생산적 투자를 저해할 뿐 아니라 경제 전체적으로는 거품을 형성시킨다 (가계대출확대는 단기적으로는 위험이 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분야에로의 자금유입과 경기저하 등과 맞물려 심각한 연체율 상승과 거품 붕괴를 불러온다. 또한 국공채 투자란 본질적으로 아랫돌 빼어 윗돌괴기일 뿐이다). 미국은 전세계적인 달러의 집중을 통해 이 문제를 해소하고 있으므로 이른바 주주자본주의란 것이 가능하지만 (그러나 미국조차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한때 그렇게 찬양되었던 이른바 '신경제'가 소위 '첨단'분야에로의 자금유입이 적어지자 침체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것이 좋은 예이다. 아무런 산업정책 없이 시장에 의존하는 자금배분이란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킬 뿐이다. 사실 미국은 7~80년대에 이미 숱한 금융기관의 파산과 거품의 붕괴를 겪었다. 이것을 전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달러 집중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이 신자유주의 형성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우리는 그럴 정도의 힘도 없거니와, 제조업의 기반이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은행의 자금배분 역할을 시장논리에만 맡겨놓을 경우 성장과 안정 그 어느 것도 보장하지 못한 채 단기적이고 왜곡된 자금흐름만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더 크다.

최근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중심국가론과 관련하여, 주한 미상공회의소 등에서 주장하는 금융허브론은 바로 위에서 말한 미국식 해결방법을 한국에 그대로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한국이 동북아시아권에서 달러를 집중시키는 중간통로로 기능하도록 만듬으로써 외부의 자금유입을 통해 국내경제의 선순환을 유지하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다른 어떤 정책적 개입없이 '시장'만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으니, 적절한 산업정책과 생산적 분야로의 자금배분을 통해 제조업의 성장잠재력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설사 외부의 자금이 유입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기적이며 언제든지 더 높은 수익실현을 위해 옮겨갈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중간통로' 이상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제조업이 거의 없이 금융만으로 경제가 유지될 수 있는 홍콩 수준의 경제규모가 아니다.

결국 한국의 상황에서는 은행조차 시장원리에만 내맡기는 미국식 대안이 아니라 은행 등의 금융기관이 적극적인 경제정책적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이 더 올바르다고 보여지며, 적어도 이 부분에선 대안연대 쪽의 주장이 참여연대 등 이른바 주주자본주의의 주창자들보다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대안연대가 민족적 소유 운운하며 재벌을 일정정도 옹호하는 것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은행이 시장에만 맡겨져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옳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은행의 매각과 민영화는 결코 권장할만한 대안이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시장논리의 과신 및 주주자본주의와 결합한 은행 민영화는 생산적 분야로의 자금배분을 저해하고 자금을 부동화함으로써 성장잠재력과 경제안정을 해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 그런데 현실을 보자. 민영화와 관련해서 이런 문제들이 언론에서 얼마나 논의되었던가? 설사 이런 주장이 완전히 옳지는 않다 하더라도 (현실의 경제정책이란 대부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같이 작용한다), 나름대로 충분한 근거가 있는만큼 최소한 이런 부분이 충분히 논의되었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어느 언론도 민영화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선 따지지 않았다. 이미 결론이 나있는 상태에서 한시라도 빨리 '적당한' 선에서 조흥노조의 반발을 무마하려고만 했을 뿐이다. 그러고선, 그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을 (신한지주 측은 이번 협상결과에 상당히 만족했다고 한다) 집단이기주의로 비난하기에 바쁘다.

언론의 보도태도와 관련해서 특히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곳이 있다. 인터넷 상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담론의 방향성과 관련해 어떤 의미에서는 오마이뉴스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고도 평가되는), 프레시안의 박태견 편집국장의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박태견 편집국장은 조흥노조의 파업기간 동안 계속 '시장의 보복'이니 '점령군적 행태' 운운하면서 조중동을 뛰어넘는 수준의 선정적인 기사로 파업을 비난하기에 바빴으며 마침내는 독자투고까지 동원해서 조흥은행 노조를 비난하고 있다. 네티즌들의 여론이 조흥 파업에 대해 거의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른데는 그의 기사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박태견 국장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와 금융허브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은행 민영화와 합병을 통한 경쟁력 강화는 그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프레시안에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에 대한 긍정적인 기사가 계속 나오는 것을 광고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그의 논리상 국민은행이나 우리은행 식의 방향이 우리나라에서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프레시안에서도 누군가 지적했지만, 상대적으로 기업부문에 대한 대출이 적고 소매금융에 치중한 결과로서 기업대출 위주였던 조흥 등 다른 은행에 비해 '우량'해진 국민은행 식의 방향이 과연 우리 경제에 참으로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의심스럽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조흥 노조 죽이기의 최선봉에 섰던 것이 아닐까?

그가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는 그런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 의제로서 상호토론되어야 할 주제이므로 다른 입장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 자체를 비난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조흥 파업을 기화로 자신의 주관적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기사라는 형식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은 별도의 칼럼 형식으로 주장해야 할 사항이지, 기사 속에 온갖 감정적인 표현들을 집어넣어서 '선동'해야 할 사항이 결코 아니다. 프레시안은 조중동의 못된 행태를 그대로 따르려 하는가?

마지막으로, 조흥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 부분은 나 역시 일정정도 공감하는 부분이며, 조흥 노조가 앞으로 보다 심각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 노동운동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 조흥 노조만이 특별히 비난받아야 할 사항은 아니다. 그래도 금융산업노조는 우리나라 산별노조 중 최초로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으로 명시했으며 (아직 실천은 그리 많이 되고 있지 않지만), 전 산별 차원에서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주요 정책으로 결정한 노동조합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비정규직의 문제에 대해 거의 관심조차 갖지 않던 일부 언론에서, 이번 조흥 파업에서 비정규직이 소외되었다는 식의 비판기사를 쓰는 것에 보니 '제발 요럴 때만 비정규직 팔아먹지 말고 평소에 좀 떠들어봐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 논설위원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이 적절하게 언급한 내용이 있어 그것을 링크한다. -- 조흥관련 기사에 대한 하종강소장의 비판적 언급

* 본문은 진보누리(http://www.jinbonuri.com)에서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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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25 [18: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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