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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나 징병제 보다 우선돼야 할 것들
[비나리의 초록공명] 평화에 대한 철학적 논의 및 포괄적 합의가 관건
 
우석훈   기사입력  2006/12/26 [11:34]
1991년도 걸프전 때 양인개병제인 징병제를 실시하던 프랑스에서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다. 유엔 차원에서 파병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어떤 부대를 보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프랑스 남자는 10개월간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만약 전투가 벌어져서 사망하게 되는 경우 너무 억울하지 않으냐는 질문이 제기됐다. 병역을 10개월간의 부담스럽지 않은 '국가에 대한 서비스'라고 설명하던 프랑스로선 곤혹스러운 문제제기였다.

직업군인만으로 새로이 부대를 편성해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의무병과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일반 부대를 보낼 것인가를 놓고 찬반이 팽팽했다. 용병이라는 독특한 전통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다운 논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쟁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론자 모두가 동의를 했다. 결국 일반 부대를 파병하게 되었는데, 그보다 10년 후인 2001년 우파인 시라크 대통령은 군대를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지금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징병제를 실시하는데, 미국·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같은 일부 국가들이 모병제로 전환을 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 사회의 혐오감이 극도로 높아진 1973년 전격적으로 모병제로 전환된다. 그리고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양인개병제이기는 하지만, 4개월 정도의 짧은 군사훈련만 하고 상설군대는 유지하지 않는 독특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민족국가'라는 정치적 이름을 가지고 있는 현대 국가체계에서 군대를 유지하지 않는 나라는 없는데, 결국은 누가 군대에 갈 것인가라는 어려운 사회적 결정을 해야 하는 셈이다. 전쟁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생태주의자들에게 전쟁이라는 질문만큼이나 '병역의무'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경우에는 '거부한다'는 간단한 대답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해법을 찾는다면 생태주의자들이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답변이다.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라면 징병제가 평화체계에 가까운 것인가, 혹은 모병제가 평화체계에 가까울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료만으로 살펴본다면 '세계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모병제 이후에도 크고 작은 참전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므로, 모병제와 징병제라는 제도 자체만으로 평화체계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물론 모병제 하에서는 베트남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은 없지 않았는가라는 반론이 있기는 했지만, 이라크전 이후로 그렇게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미국 일각에서는 모병제 때문에 자식들의 전쟁 참가 부담이 없어진 고위층과 부유층이 지나치게 쉽게 경제적 이유만으로 참전을 지지하게 되므로, 전쟁 참가가 많아진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이라크전과 같은 불행한 사태를 줄이기 위해 징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안이 준비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모병제가 확실히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전쟁 부담을 지우게 된 속성이 있기는 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현재 2년 기간의 징병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생태주의자들에게는 국방비를 점차 줄여 민간의 후생으로 전환해야, 과도한 경제성장과 물질소비로 저성장 상태에서도 국민경제의 생태적 부하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또 다른 요구에도 답해야 한다. 무조건 국방에 많은 돈을 들여 거의 용병처럼 운용되는 모병제도 찬성하기 어렵다.

생태주의의 논리로만 본다면 스위스의 양인개병제와 평화헌법 체계의 일본 자위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스위스는 자신들의 시스템에 만족하는 반면, 일본은 불만이 많은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병제든 징병제든, 평화에 대한 철학적 논의 및 포괄적 합의와 함께 진행되어야 전쟁 없는 사회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전혀 다른 시스템인 모병제와 징병제가 맞붙었던 이라크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본문은 <서울신문> 12월 25일자 녹색공간에 게제되었습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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