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눈치 보는 방송위원들
 
최근 경인민방 허가추천과정을 보면 방송위원회라는 성격의 기구가 왜 존재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외부로부터의 독립을 목적으로 ‘무소속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위원회 구조를 지닌 방송위. 방송위는 방송통신융합 국면에서 정보통신부와 치열한 샅바싸움을 펼치는 중이다. 시민사회도 덩달아 방송위의 입장, 즉 ‘독립성’이라는 명분에 대해 상당부분 지지 옹호하며 직무상의 독립이 보장되는 합의제행정기구의 성격을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직무상의 독립이라는 명분이 최근 경인민방 허가추천 과정을 보며 ‘포장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경인민방 대주주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미제스파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국정감사기간 중에 터지면서 방송위는 허가추천과정을 ‘중단’해 버린다. 이로 인해 경인민방에 입사할 예정이던 전 iTV노동조합이 주축인 ‘희망조합’의 조합원들의 순차적인 입사 행진이 사실상 멈춰 섰고, 경인지역시청자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지역의 방송사 출범’ 준비도 정지됐다.
 
2004년12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700일에 가까운 기간 동안 ‘실직’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희망조합원들, 그리고 바짝 바짝 말라 가뭄에 갈라진 논밭 같은 횅한 눈으로 지켜보는 그 가족들. 그들에게 단비처럼 여겨졌던 2007년 5월 경인민방 개국은 ‘대주주는 미제스파이’라는 ‘일각의 주장’ 하나로 사라져 버렸다.
 
일단 물어본다. 방송위는 백회장이 미제스파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적어도 지금까지 방송위는 백회장이 미제스파이라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인민방 허가추천을 중단했다. 경인민방. 질질 끌던 사업자 공모과정과 1차 유찰을 거쳐 2차 공모과정에서 겨우 ‘영안모자’를 지명한 방송위. 그 과정에서 영안모자를 둘러싸고 ‘뇌물공여’부터 ‘미제스파이’까지 그 소문은 끝이 없다. 그리고 ‘개국’하는 그 날까지 이런 소문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
 
1차 공모과정과 2차 공모 및 사업자 확정과정에서 여러 집단들이 경쟁했다. 내용으로 경쟁했고, 유언비어로 다투었다. 상대방의 기업이미지에 치명적인 상처를 낼 수 있는 온갖 악소문. 청와대 비서실장 개입설을 비롯한 수많은 외압설이 나돌았고, 방송위원들의 뇌물수수혐의까지 파다했다.
 
소문과 주장.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확인된 바 없다. 그런데 방송위는 유독 ‘미제스파이설’ 앞에서 자신들의 의무와 권한을 포기한다. 특정집단이나 특정권력으로부터의 ‘허가추천 일정중단 압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여론으로 포장된 ‘소문과 주장’을 둘러싸고 이쪽저쪽 눈치 보는 전혀 독립적이지 않는 방송위.
 
백번 양보해서, 방송위 말대로 어떻게 ‘미제스파이’에게 지상파 방송 사업권을 줄 수 있느냐는 ‘엄살’을 이해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미제스파이인지 아닌지는 검찰에서 수사하고 법원이 판정하면 된다. 그 때까지 방송위는 팔짱끼고 구경 말고, 허가추천 일정을 밟으면 된다.

만약에 백회장이 미제스파이로 판정되면 백회장에게 응분을 책임을 물으면 되고. 예를 들어 미제스파이로 판정되면 백회장이 가진 지분을 공익재단 등에 기부하도록 약속을 받아낼 수도 있다. 법적 효력이 있는 각서를 쓰고 이를 기자회견 등으로 공개하는 안정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고. 백회장이 지금까지 자신은 미제스파이가 아니라고 했으니, 백회장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거부하면, 다른 대책을 세우면 될 일이고.
 
허가추천할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일. 문제는 이쪽저쪽 눈치 보며 전혀 독립적이지 않는 방송위가 방송통신융합기구 논의과정에서 가장 많이 주장하는 단어가 ‘독립’이니 기가 차다. 이러니 방송위를 누가 보호하려고 하겠는가. 눈치 보기에만 실력을 발휘하는 방송위원들을 믿고 융합과정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내맡긴 방송위 직원들도 불쌍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