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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노무현 시대' 그리울 날 올까?
[비나리의 초록공명] 민중을 돌아보지 않은 대통령, 통치의 흔적만 남겨
 
우석훈   기사입력  2006/12/06 [16:12]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그리워질지 모른다. 이명박 시대든, 박근혜 시대든 혹은 하다못해 그 누구의 시대가 오더라도 그 때는 또 그 때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그나마”라는 표현을 찍찍 해대면서 노무현 시대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싫어했으면서도 때때로 사회과학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노무현 시기에 그렇게 많았던 계간지와 사회과학 출판물들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무현 시대는 끔찍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끔찍할 것이다. 이 정권에서 첫 번째로 여야협력이 이루어졌던 법안은 ‘기업도시’였다. 국회 안에 포럼까지 만들면서 일사천리로 달려가던 기업도시 앞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너무 추웠다”. 정권은 가도 기업도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조금 지나면 기업이 토지수용을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영화 <짝패>에서 보았던 것처럼 동네 깡패들이 설치는 일이 이런 지역마다 한 번씩 벌어질 것이다. 노무현 시대에 경제가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왜 깡패들이 신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 노무현이 대통령직을 걸고 한 마디 하니까 이번에는 국회에서 2년 넘게 국회에서 계류 중이던 비정규직법안이 후다닥 통과되었다. “그는 갔어도 그의 그림자는 오래오래 남았다”는 옛사랑의 아픈 기억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명품을 좋아하는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사준 선물의 할부금이 꼬박꼬박 카드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의 아픔, 그런 아픔이 시대에 남을 것이다. 헤어짐보다 더 어려운 것은 기억을 안고 빠져나가는 할부금이라는 표현, 이 경우에 딱 맞는 것 같다.
 
그런 대통령이 농업 붕괴와 한미 FTA보다 더 값진 선물을 하나 민중들에게 안겨주었다. ‘손배소’라고 줄여서 부르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꼬박꼬박 하라고 행정자치부를 통해서 각 지자체에 공문으로 때렸다. 얼마 전에 세어보니까 우리나라에는 시위로 경찰한테 맞아죽은 사람보다 손배소로 자살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나마 요즘은 기업들이 손배소에 의한 가압류로 인한 자살 등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 손배소를 줄이는 분위기인데,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총리는 ‘제로 톨레랑스 정책’의 기조 하에 전면적 손배소를 또 다른 정책틀로 세웠다. 그가 떠나더라도 손배소로 인한 가압류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님의 아픔은 몇 년간 남을 것이다.
 
명품을 좋아했던 남자 친구처럼 대통령도 정말 명품을 좋아했다. 며칠 만에 교육부총리에서 물러났던 ‘이기준’ 그도 명품이었고, 황우석을 민중영웅으로 만들고자 했던 ‘김병준’도 명품이었던 셈이고, 한미 FTA의 문을 열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끔찍하게 사랑했던 것 같다. 그가 내어준 광우병 시장도 “사실은 내가”라고 대신 안아주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명품에 대한 사랑만큼은 정말 유별났다. 박사나 전문가들은 “돈만 주면 올 사람”이라고 전혀 신뢰하지 않았던 정주영과는 좀 다른 판단을 가진 사람이다.
 
그나저나 이런 노무현 대통령이 화가 났다. 나름대로 충실한 계급정당인 한나라당한테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측근들한테 화가 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에게 표를 주었던 소위 백성들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닌 것 같다. 전혀 명품 분위기 나지 않는 백성들이야 그냥 “패면” 그만이고, 예전에 JP가 “푸대접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처럼 지금 백성들은 푸대접도 못 받는 셈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박정희 시절이나 전두환 시절에도 백성들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았던 시절이 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살인마 전두환도 민정당 당원 아니라고 국민들을 차별하지는 않았는데, 자신을 믿고 따르는 열린우리당 평당원과 “그냥 국민”이 대통령에게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것 같다. 지지율 10% 넘는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보수신문이 자기와 국민들 사이를 이간질시킨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무리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백성들이라도 감정도 없겠나.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섣부르게’ 나서는 국민들에게는 민사소송을 한 다발씩 안겨주겠다는 대통령은 너무 잔인하다.
 
시인 최영미가 노래한 ‘마지막 섹스의 추억’처럼 민중을 돌아보지 않는 대통령의 통치는 명품을 좋아했던 사디스트와의 결혼생활과 마찬가지이다. 채찍의 상처가 이별 후에도 남는 것처럼 통치의 흔적이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 간 대통령은 남의 나라 얘기하듯이 국내에서는 자본이 부동산에 너무 몰려 골치 아프다고, 세계 투자를 좀 해야겠다고 한다. 대단히 침착한 것인지 성격이 무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남의 일처럼 얘기한다.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면서 결국 대부분을 지역토호와 땅부자들에게 안겨준 보상금 20조는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한다.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한미 FTA”는 사실상 계급정당인 한나라당의 지지자들에게는 천국을 열어줄 것이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에게는 골치 아픈 우환덩어리가 될 것이다. 기다렸다가 한나라당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최적안을 만들어도 되는데,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설은 ‘팥쥐엄마 가설’ 밖에 없다.
 
한나라당에 대해서 잔뜩 화난 대통령을 보면서 그는 절대로 민중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후대에 이 현상을 ‘노무현 학습효과’라고 부를 것 같다. 시인 최영미의 슬픈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은 너무너무 딱 들어맞는다.  

<흔들리는 깃발>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1.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혁명이 진부해졌다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랑이 진부해졌다

 
위의 두 문장 사이엔 어떤 논리적 연관도 없습니다 다만
 
2
예언자들의 더운 피로 통통히 살진 밤, 일요일 밤의 대행진처럼 나도 소리내 웃고 싶지만 채널을 돌리면 딩동댕, 지난 여름이 자막과 함께 우연히 흘러가고 담배연기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서른을 통과한 이들은 모두 만만찮은 얼굴을 하고 적들도 우리처럼 지쳤는지 계속 쫑알대고, 빨아 헹굴 어떤 끈적한 현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세탁기 열심 히 돌아가고 딩동댕, 시체처럼 피곤해지는 밤이 몰려 온다
 
3
빨간 고무장갑만 보면 여자는 무서워 아 악 악을 써 도 소리가 돼 나오지 않는 혼자 있는 빈집, 귀신이 닷!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든 귀신이 손만 보이는 투명인간이 쓰으윽 일어나 피 묻은 손으로 목을 휘감을 것 같아
 
숨이 막혀 헉 헉, 못살겠어요 뭐라구? 헤어지자구? 등뒤에서 하나 둘 창문이 스르르 닫히는, 혁대가 딸각 풀어지는 소리 헉 헉, 그러나 결코 말로 번역될 수 없었던 말들, 때리지 마 제발 때리지만 말아요 도둑맞은 첫사랑이 부패하기 시작하는 냄새 진동하던 그 여름의 오후, 그것도 세월이라고, 기억을 통과한 상처는 질겨져 있다 저기 저 방충망 바깥에서 윙윙대는 모기처럼 지금은 더이상 위험할 것도 없는 데......
 
다만 나오던 땀이 도로 들어가고
다만 설거지그릇이 달그닥거리고

 
4
요즘은 통 신문 볼 시간이 없어
 
살아남은 자들은 예언자의 숱 많던 머리칼을 자르고 자기만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책임질 수 있는 것만 책임지려 하고, 바야흐로 총천연색 고해의 계절, 너도 나도 속죄받고자 줄을 섰는데....
 
그러나, 그러나 아직도 골방에서 홀로 노래를 만드는 이 있어 바다, 끓어오르고 산, 넘어지고 시퍼렇게 술, 넘쳐흐르고 딩동댕.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바람이 분다니까!
 
5
(조금씩 자주 흔들리는 게 더 안전해)
 
일천구백원짜리 마마손 장갑이 내 속을 뒤집어놓고 아픈 내가 - 내게 아직도 아파할 정열이 남아 있던가 - 다시 장갑을 뒤집는다 채도가 떨어진 붉은색은 더이상 피를 흘리지 않아, 장미빛 인생을 약속할 것 같아, 분홍도 빨강에서 나왔으니, 그러나 다시는 속지 않으마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부해져 썩는 냄새, 곶감 터지듯 하늘 벌어지고 떨어진다 떨어진다 아 - 누가 있어 밑에서 날 받쳐주었으면 

-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中)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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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2/06 [16: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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