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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미래를 알려면 서라벌의 과거를 보라
[비나리의 초록공명] 천년을 넘어 서울 강남에서 서라벌의 역사 반복돼
 
우석훈   기사입력  2006/12/04 [19:30]
이제는 베를린으로 옮겼지만 오랫동안 독일의 수도였던 본과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정말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도시라는 점이다. 밤에도 술을 마셔야 하고, 외국에 가도 노래방을 찾아야 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이 도시들은 별 볼일 없는,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들이다.
 
물론 구석구석을 찾아보면 베토벤 하우스와,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책을 우연히 찾아들고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는 헌책방이 있기는 하지만 탐닉을 찾아 헤매는 한국인들에게는 정말 의미없는 행정도시들에 불과하다. 라인강의 기적을 총지휘했던 독일 본에는 심지어 국제공항도 없다. 2차 대전 이후에 잘 살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도시들의 수도들이 대개 이렇게 생겼다. 심지어 스위스의 수도 베른은 인구가 13만 정도다.
 
삼국이 통일이 된 후 첫 도읍지는 당연히 신라 수도였던 서라벌이었는데, 이명박식의 ‘생태복원’과 ‘생태도시’라는 표현을 그대로 적용하면 서라벌은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도시였던 셈이다. 대체적으로 17만호 정도의 집들이 처마에 처마가 붙어 늘어서 있었다고 하니, 가구당 식구를 작게 잡아도 70~80만은 넘어서고, 근처의 ‘위성도시’까지 계산하면 지금도 유럽의 큰 도시 기준인 100만명 가량 되었을테니, 정말 대단한 위세였을 것이다. 고구려의 일부를 당이 차지했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백제와 고구려를 사실상 복속시킨 통일신라의 권력이 서라벌이라는 작은 도읍지에 집중되었으니 그 세도가들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이런 대단한 도시 서라벌에 살 수 있었던 사람은 소위 진골들과 6두품의 가족들 그리고 인질처럼 끌려온 지방 토호들의 피붙이였을 테니, 규모도 규모지만 그들의 권력과 함께 재력은 우리나라 경제사와 생태사의 중요한 연구분야가 될 것이다. 이 귀족들이 깔끔하기는 얼마나 깔끔하셨던지, 밥할 때 나무를 때면 연기난다고 질색들을 하셨고,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로 취사용으로 숯을 도입하신 분들이 바로 서라벌의 귀족들이시다. 로마가 사라진 당시로서는 아마 세계 최대의 용적률과 인구집중률 그리고 환경친화적 ‘웰빙’ 생활들을 하셨으니, 아마 고려 말기의 몽골에 붙은 기 황후 일파나 왜정 시대의 친일파들을 제외하면 한반도 ‘국토’ 역사상 가장 호사하게 사셨을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대로 하면, 숯을 사용하는 ‘친환경적 소비재’를 통한 ‘에코시티’를 구현한 셈이고, 고밀도 개발로 좁은 공간에 최대로 많은 부자들이 들어가 있는 ‘컴팩트 시티’가 펼쳐졌던 셈이다.
 
그러나 이 영광은 영원하지 못했고, 이 ‘에코 시티’ 서라벌의 자원과 부를 뒷받침하던 곳에서 다시 새로운 나라들이 일어나게 되고, 이 영광스럽던 천 년 역사를 뒤로 하고 “잘 살아보자, 경주”에는 우리나라의 방사능폐기물이 묻히게 될 원전센타가 건립되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숯으로 밥을 해 드시던 경주 땅 여기저기에 묻혀계실 진골들과 6두품들께서 넋이라도 이 상황을 돌아보시면, 그야말로 “천 년의 영광이여!”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법하다.
 
고려 특히 조선은 호족들의 씀씀이가 커지는 것을 특히 경계했던 좀 특별한 왕조들인데, 오죽하면 집 크기는 물론이고, 숟가락은 물론 밥그릇 크기와 반찬 수까지 다 정해주고, 그보다 늘리면 “반역이야, 반역!”이라며 왕조가 호화로워지는 것을 국법으로 막았던 나라들이다. 이런 ‘규모관리’에 세계 최장수 왕조였던 조선의 비밀 중의 하나가 숨어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생태경제학적 시각에서 내가 조선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흔들리면서도 상당히 오래 버텼던 엄격한 토지제도와 규모관리가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는 조선의 힘일 듯하다.
 
이런 눈으로 자랑스러우신 ‘대한민국’을 한 번 들여다보자. 서라벌의 팽창과 화려함을 어찌 감히 서울에 비할 것인가. 로마가 목욕탕 좋아하다가 망했다는 역사가들의 핀잔대로라면, 한국은 망해도 벌써 망했을 나라이고, 서라벌의 교훈대로라면 서울의 힘이 영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역사상으로는 드문 중층 구조인 셈인데, 강남은 서울을 지배하고, 서울은 수도권을 지배하고, 수도권은 전국을 착취하는 이 구조는 참으로 드문 경우이다.
 
천 년을 훌쩍 뛰어넘어 서라벌의 역사가 강남에서 그대로 반복되는 이 묘한 구조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당나라의 힘을 업고 반도를 지배한 것처럼, 강남이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다시 반도를 지배하게 된 때문인가? 설마 통일 신라의 비극이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인가? 아니길 바란다.
 
2003년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10살 미만 유아 중 아토피 발병 비율이 38.2%이고, 서울에서는 49.8%의 중구 다음으로 높은데, 이 정도면 이 동네 아이들 중 3명 중 1명 이상이 아프다는 얘기인데, 그래도 최고의 거주조건이라고 떠드는 아파트쟁이들의 광고문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아토피 정도로 죽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어지간한 환경성 질환들의 통계는 울산이나 여수 같은 대표적 공단지역보다 두 배나 높은 이 지역에 그래도 용적률을 높이고, 더 많이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는 사람을 보면서, 통일신라의 말기에 서라벌의 상황이 어땠는지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다.

굳이 서라벌의 말년 모습을 사료를 통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는가? 지금 눈을 들어 강남과 서울의 모습을 보면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인데 말이다. 게다가 당나라와 통일신라의 외교관계도 굳이 자료로 찾아볼 필요 없다. 지금 추진되는 한미 FTA가 바로 신라 망하던 대당외교의 마지막 모습과 비슷할 것일테니 말이다.
 
지금 강남의 이상한 모습은 자본주의라서 그런 게 아니라 토지와 권력을 틀어쥔 사람들이 한 동네 모여 살고 국권을 가지고 있을 때 어떤 모습이 생기는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들이 외세를 등에 업고 전국을 수탈할 때 생기는 모습에 관한 이야기만 같다. 인구 30만의 조용한 수도 본이 독일 통일 뒤 베를린으로 이사가던 멋진 역사에서는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일들이 지금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리얼타임 상영 중이다.
 
자꾸 <삼국유사>를 들쳐보고만 싶어진다. 대관절 서라벌과 강남은 생태적으로 어찌 이토록 닮은 것이냐!
 
* 본문은 <한겨레> [여기는 명랑국토부] 12월 13일자 기고문입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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